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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5화

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5화
[데일리게임]

회심의 미소를 지은 세아트는 즉각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 했다. 계속해서 열 명 안팎의 오칸 무리를 골라 처리하여 수를 줄여 나가면 곧바로 근거지를 들이칠 수 있다.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오칸 무리를 토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바로 그때 그들을 향해 백여 마리가 넘는 오칸 전사들이 달려들었다. 정보길드를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곳의 오칸 무리는 백이십여 마리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칸의 뛰어난 번식력을 간과했다. 태어난 지 사오 년만 되면 충분히 전사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종족이 오칸이었다.

오칸 무리는 그사이 백오십 마리 가깝게 불어 있었다. 새끼와 암컷들을 소굴에 감춰 두고 소굴을 지킬 전사들을 배치하고 나서도 백 마리가 넘는 오칸 추격병이 구성되었다.

그들은 머뭇거림 없이 정찰병의 안내에 따라 숲을 달렸다. 그들이 도착한 때는 그곳을 정리한 세아트의 파티가 막 떠나려던 무렵이었다. 오칸 무리를 전멸시켰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끈 것이 화근이었다.

“꾸에엑! 인간 놈들을 죽여라!”

백 마리가 넘는 오칸 무리가 복수의 눈빛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제아무리 강한 세아트의 파티라 해도 한꺼번에 백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수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견고하게 방어진을 구축하고 싸웠다. 그러나 오칸 무리는 죽여도 죽여도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죽은 것은 사제인 스티브였다. 달려드는 오칸이 워낙 많았기에 전사들은 금세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급히 치유 주문을 외운 스티브에게 오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전사들이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지만 후미의 오칸들이 창을 쥐고 스티브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오칸의 창에 가슴과 배가 꿰뚫린 스티브가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다음으로 마법사 두 명이 차례대로 죽었다. 그들의 강력한 화력이 오히려 명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된 것이다. 화염구에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죽지 않은 오칸이 동료들을 이끌고 달려들었다. 마법사들이 필드에서 단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집요하게 달려드는 오칸 무리를 완전히 떼놓을 순 없었다.

마나가 바닥난 두 명의 마법사가 수많은 오칸에게 난도질당한 뒤 다음 차례는 궁수들이었다. 그나마 그들은 마법사보다는 오래 버텼다. 판금갑옷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지만 그나마 로브에 비해서는 방어력이 강한 가죽갑옷에다 민첩한 몸놀림으로 접근하는 오칸을 열심히 활로 쏘아 죽였다. 그러나 몰려드는 오칸의 수는 너무도 많았고 전통의 화살은 한정되어 있다.

결국 그들은 준비해 간 화살을 모조리 쏘고 난 뒤 허리에 찬 쇼트 소드를 뽑아 들었고, 무수한 오칸 무리에 둘러싸여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살아남은 것이라곤 방패와 판금갑옷으로 버티던 전사 세 명과 뒤에서 필사적으로 치유를 하던 포르나, 그리고 텅 빈 전통을 내팽개치고 나무 위로 기어오른 두카뿐이었다.

포르나가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부족한 치유 능력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오칸들은 포르나에게 전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게다가 신력이 워낙 미약하다 보니 마나가 금세 바닥나 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전사들이 모두 쓰러질 경우 그녀의 생명 역시 거기에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전사들의 눈빛은 암울했다. 필사적으로 분전했기에 그들의 주변에는 오십여 구의 오칸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죽인 수와 동일한 오칸 무리가 살기를 번뜩이며 달려들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데다 이미 무수한 상처를 입은 탓에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실정이었다.

결국 한 명의 전사가 비틀거리다 그 자리에 쓰러졌다. 출혈이 워낙 극심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쓰러진 전사의 갑옷 틈새로 창날이 푹푹 박혀 들어갔다.

“안 돼!”

세아트가 부드득 이를 갈며 욕을 퍼부었다.

“이 쓸모없는 계집애야! 어서 치유를 하란 말이다! 그러고도 네가 사제냐?”

그러나 포르나에겐 더 이상 치유를 할 만한 능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차오른 마나를 깡그리 모아 치유 주문을 외웠기에 상처의 출혈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그사이에도 서너 개의 상처가 다시 생기는 형국이었다.

결국 철통같이 버티던 동료 전사가 방패를 놓치고 말았다. 기다렸다는 듯 창날이 갑옷 틈새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는 금세 여러 조각으로 해체된 시체가 되어 버렸다.

세아트 역시 팔에 힘이 빠진 나머지 무기를 놓쳤다.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은 세아트의 투구로 묵직한 쇠뭉치가 날아들었다.

콰아앙!

쇠뭉치가 작렬하는 순간 턱 끈이 끊어지며 투구가 벗겨졌다. 드러난 뒷목에 싸늘한 금속이 파고들었고 뒤이어 묵직한 둔기가 그의 뒤통수를 으깨어 버렸다.

‘빌어먹을. 이 세아트가 고작 오칸 무리에게 최후를 맞이하다니…….’

그 생각을 끝으로 세아트의 의식이 사라졌다.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죽은 세 명의 전사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던 오칸들이 흉흉한 기색으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나무 밑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포르나와 그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포포리 궁수 두카가 다음 목표물이었다.

최후를 예감한 듯 포르나가 눈을 꼭 감았다.

‘이렇게 죽게 되는군. 정말 안타까워.’

나무 위의 두카도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오칸족은 무척이나 끈질긴 종족이다. 근처에 옮겨 갈 다른 나무가 없는 이상 오칸족은 두카가 힘이 빠질 때까지 나무 밑에서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굴로 돌아가 사냥감의 시체로 잔치를 벌일 것이다. 오칸족은 인간의 고기도 마다하지 않는 악식가들이다.

저벅저벅.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발자국 소리를 듣자 포르나의 꼭 감은 두 눈 사이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첫 사냥에서 이 꼴이 되다니……. 오칸의 뱃속으로 들어가긴 정말 싫은데…….’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 * *

카르고와 세실리아는 느긋하게 몬스터를 사냥하며 아펜디아 분지로 이동했다. 큰 사냥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몬스터는 사냥하지 않고 그냥 쫓아 버렸다. 오로지 세실리아가 실전 수련을 할 만한 몬스터만 상대하며 둘은 계속해서 목적지로 나아갔다.

숲을 걷던 카르고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몬스터의 기척을 발견한 것으로 생각한 세실리아가 카르고의 옆에 바짝 붙었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군. 병기 부딪히는 소리, 갑옷 소리…… 인간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예요. 갑옷 입고 날뛰는 몬스터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오칸이나 고블린 같은 놈들 말이에요.”

“흠. 이 비명소리는 인간의 것이로군. 아무래도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에 세실리아의 얼굴이 살짝 굳어 들었다. 필드에서 위기에 처한 모험가를 발견하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도와주는 것이 철칙이다. 언제 자신이 위기에 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력이 닿는 한 구해 주어야 한다.

“도와주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하자. 어차피 나도 이제 발키온 연합의 일원이니 말이야.”

허리를 굽혀 세실리아를 안아 든 카르고가 숲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몬스터의 영역을 통과할 때 몇 번 안겨 보았기 때문에 세실리아는 놀라지 않고 휙휙 지나가는 숲의 정경을 감상했다.

카르고가 달리는 속도는 말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들은 금세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터의 상황을 본 순간 세실리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아, 아니! 포르나 언니!”

마지막 전사 세아트를 무참하게 짓이겨 버린 오칸들이 흉흉한 기색으로 나무둥치에 주저앉아 있는 포르나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나무 위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포포리족 하나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우렁찬 포효소리가 터져 나왔다.

꾸어어어어어어!

마치 지옥의 심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포효소리는 바로 카르고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장내의 상황을 살펴본 카르고가 포르나의 얼굴을 금세 알아본 것이다.

‘도시에서 나올 때 만난 여인이로군.’

비록 대화 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세실리아와 친분이 있는 여인임을 알았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카르고의 부르짖음에는 기세가 함축되어 있었다.

난데없는 포효소리에 놀란 오칸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얼굴에 서서히 흉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만약 이곳에 열 마리 이내의 오칸이 있었다면 카르고의 포효소리에 놀라 줄행랑쳤을 것이다. 그러나 오칸의 수는 아직까지 오십 마리를 넘었다. 무엇보다도 오칸은 숫자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몬스터이다. 게다가 전투를 통해 흉성이 폭발한 상태였기에 카르고의 포효소리는 그들의 투지를 여지없이 자극했다.

“꾸에엑. 적이다. 죽여라!”

오칸족이 무기를 움켜쥐고 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죽이려고 다가가던 포르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카르고는 망설임 없이 칼리아스를 휘두르며 오칸족의 대열로 파고들었다.

쐐애애액 퍼퍼퍽!

조잡한 투구를 뒤집어쓴 오칸족의 머리통이 잇달아 부서져 나갔다. 세로로 쪼개진 오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카르고는 마치 하이에나 무리에 뛰어든 사자처럼 무차별적인 살육을 해 나갔다. 예기를 발하는 칼리아스가 허공을 완전히 점한 채 오칸의 몸뚱이로부터 피를 빨아냈다.

카르고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날카로운 도끼날로 오칸족의 몸을 방패와 함께 쪼개 버리고 창날을 목덜미에 쑤셔 박았다. 뭉툭한 뒷면으로는 오칸의 안면과 머리통을 박살냈다. 그야말로 살 떨리는 위용이었지만 타고난 전사종족답게 오칸들은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달려들었다.

슈각 슈가각.

수십 자루의 창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카르고가 요령 있게 쳐 내고 회피하며 살육을 이어 나갔지만 달려드는 오칸의 수가 워낙 많았다. 게다가 카르고가 입고 있는 사슬갑옷은 판금갑옷에 비해 찌르는 공격에 상당히 취약한 갑옷이다. 결국 카르고의 몸에서 상처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상황에 포르나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했다.

“세, 세상에…….”

그녀의 시선은 광전사처럼 오칸족을 밀어붙이는 덩치 큰 아만 전사에게 쏠려 있었다. 덩치만 클 뿐 겁이 많고 온순하다고 알려진 아만족이 마치 성난 사자처럼 오칸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전사도 흉내 낼 수 없는 용맹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때 누군가가 달려들어 그녀를 흔들었다.

“어, 언니, 괜찮아요?”

“세, 세실리아? 설마 꿈은 아니겠지? 흐흑…….”

죽을 운명에서 겨우 살아난 포르나가 세실리아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게 그녀를 달래 줄 틈이 없었다. 포르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준 세실리아가 서둘러 캐스팅을 했다.

“카르고 님을 도와야 해요.”

얼음 화살의 캐스팅 시간은 화염구보다 월등히 짧았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캐스팅을 완료한 그녀의 손끝에서 서너 개의 얼음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캐스팅이 완료되자 그녀가 망설임 없이 얼음 화살을 날렸다.

쐐애액.

허공에 둥실 떠오른 얼음 화살이 카르고를 포위한 오칸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아직까지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이번 공격에서 드러났다. 마법사는 공격할 때 전사와 가장 근접해 있는 몬스터를 집중적으로 노려야 한다. 그래야만 몬스터가 마법사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급한 마음에 덮어놓고 얼음 화살을 날렸다. 머릿속에 카르고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탓이다. 따라서 세실리아의 얼음 화살은 가장 뒤에 서서 호시탐탐 달려들 순간을 노리는 오칸 서너 마리의 몸에 틀어박혔다.

쿠와악!

신음소리를 흘린 오칸이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얼음 화살로 인해 세실리아에게 분노의 방향이 돌아간 것이다.

세 마리의 오칸들이 무기를 움켜쥐고 세실리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는 얼음 화살이 박혀 피가 스멀스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실리아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어, 어떻게……?”

다음 얼음 화살의 캐스팅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고 그것을 쏜다고 해도 오칸을 모두 처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색이 된 세실리아를 향해 오칸 세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대기가 갈가리 찢겼다.

둥실.

오칸 두 마리의 머리통이 허공에 떠올랐다. 하나는 턱이 잘려 나갔고 나머지 하나는 겨드랑이 윗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오칸의 머리통이 세로로 쪼개졌다.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허물어지는 오칸의 상반신에는 빛을 발하는 도끼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도끼 한 자루가 세 마리의 오칸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해 버린 것이다.

“저, 저것은…… 칼리아스?”

겨우 제정신을 차린 세실리아의 눈에 달려드는 오칸을 몰살시킨 무기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저것은 스트라비가 카르고에게 만들어 준 명품 무기 칼리아스였다.

“그, 그렇다면…….”

고개를 돌린 세실리아의 눈에 한 자루의 칼리아스를 든 채 종횡무진 날뛰는 카르고의 모습이 들어왔다. 세실리아가 위기에 처하자 카르고가 망설임 없이 칼리아스 한 자루를 던져 구해 준 것이다.

무기 하나를 잃은 탓에 카르고는 수세에 몰려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무 마리 정도의 오칸을 처리했지만 아직까지 남은 오칸은 많았다. 그나마 칼리아스 두 자루를 휘두를 때에는 거의 모든 공격을 회피하거나 쳐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기 하나를 잃자 카르고의 몸에 새겨지는 상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오칸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칸의 연합공격은 실로 무서웠다.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창날을 꽂아 넣었다. 빈사상태의 중상을 입은 녀석들도 기어 와서 발목을 물어뜯을 정도였다.

촤아악.

사슬갑옷이 길게 찢어지며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미 카르고가 입은 사슬갑옷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붉게 물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고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굳건하게 버티며 하나하나 침착하게 오칸을 베어 넘겼다. 그러나 출혈은 카르고의 체력을 서서히 깎아 먹고 있었다.

포르나는 넋이 나간 듯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한 번 실수를 경험한 탓에 세실리아는 세심하게 신경 써서 오칸을 공격했다. 상처입고 비틀거리는 오칸의 목에 얼음 조각이 푹푹 박혀 들어갔다. 하반신이 잘려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기어가서 카르고의 발목을 물어뜯으려는 오칸의 동공에는 얼음 화살이 박혔다.

실전 수련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세실리아의 싸움 감각은 탁월했다. 얼음 화살은 화염구에 비해 통제가 잘 되고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얼음 화살을 이용해 오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꾸에엑!

카르고의 등으로 달려들던 오칸이 두 눈을 움켜쥐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움켜쥔 눈 주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두 개의 얼음 화살이 눈에 박혀 장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칸들은 끝도 없이 달려들었다. 극심한 출혈로 인해 카르고의 몸이 휘청했다. 세실리아의 입술을 비집고 비통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 저런! 카르고 님, 괜찮아요?”

바로 그때 포르나가 정신을 차렸다. 이미 그녀의 몸에는 마나가 상당량 차오른 상태였다. 카르고가 처음 돌입했을 당시 다수의 오칸이 비명횡사했고, 그들이 죽으며 내뿜은 신력이 포르나의 몸속에 일정 분량 흡수된 것이다.

신력이 공급되면 마나가 회복되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진다. 그것을 간파한 포르나가 조심스럽게 치유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그녀는 섣불리 치유를 펼치지 못했다.

“어, 어떻게 하지?”

지금 상황은 사제가 치유 마법을 펼치기에 최고의 악조건이었다. 단 한 명의 전사를 수십 마리의 오칸이 포위공격하고 있다. 한 명을 상대로 동시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수는 정해져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오칸들이 동료의 뒤에서 서성이며 호시탐탐 달려들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앞에 선 동료가 죽어 넘어지면 즉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런 상황에서 치유를 펼친다면 후미의 오칸들이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할 것이다. 그리고 벌떼처럼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파티에 소속된 사제 스티브는 바로 그 때문에 죽었다. 그러나 포르나가 입술을 깨문 채 주문을 외웠다.

“어쩔 수 없다. 저 아만족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을 터.”

죽어 넘어진 오칸의 수가 제법 많았기에 마나가 삼분지 일 정도 차오른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포르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치유 주문을 외웠다.

“큐어.”

김정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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