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섯 악당 (5)
“후후후.”
파이톤은 맨 뒤에서 걸어갔다.
그는 여차하면 부하 하나를 잡아 또 고기방패로 쓸 생각이었다.
무덤 하나 사이.
건기와 파이톤 일당이 서로 대치했다.
건기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집중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감촉.
아주 짧은 시간,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하앗!”
건기는 멀쩡한 오른쪽 다리로 힘껏 땅을 걷어찼다.
그리고 몸을 왼쪽으로 날렸다.
몸을 따라 시야도 이동하면서 무덤에 가려졌던 적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팡팡팡팡팡.
건기는 손바닥으로 리볼버의 공이치기를 쉴 새 없이 재끼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 속도는 가히 다섯 발을 동시에 쏘는 수준.
그는 순식간에 부하 다섯을 맞혔다.
“억!”
총에 맞은 부하들은 건기의 몸이 지면에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쓰러졌다.
남은 건 셋.
건기는 허리춤에 꽂아 둔 노멀소드를 거꾸로 잡아서 투창처럼 던졌다.
날아간 검은 부하의 가슴에 박혔다.
“히이이익!”
행운일까, 악운일까.
마지막 부하의 손에 들린 것은 마총이 아닌 검이었다.
“하아아앗!”
인벤토리를 열 시간이 없었다.
건기는 왼쪽 다리에 박힌 단검을 뽑아서 그것을 투척했다.
깔끔하게 날아간 단검은 그대로 부하의 왼쪽 눈에 박혔다.
“히히히!”
박수갈채.
파이톤은 순식간에 부하 일곱이 죽는 것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것은 가히 예술적 공연을 보고난 다음 느낄 수 있는 황홀함이었다.
“너 뭐야? 사람 죽이는 장인이냐? 히히히!”
파이톤은 박수를 치다가 건기가 인벤토리를 여는 순간, 단검을 그의 가슴에 던졌다.
푹.
건기의 가슴에 단검이 박혔다.
“제, 젠장……!”
빠르게 높아졌다가,
빠르게 떨어지는 혈압.
전신의 경련.
건기의 가슴에서 피가 찔끔찔끔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미 다리의 단검을 뽑은 상처에서 피가 대량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히히히! 넌 사망 확정이야. 스킬도 없잖아? 엉?”
파이톤은 안심하고 건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건기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제 난 널 죽인 공로로 조직의 간부가 될 테고, 앞으로도 더 많이 살인을 할 수 있어. 히히히!”
파이톤.
그의 머릿속엔 오직 살육만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취미이자, 특기이고, 삶의 목표이자, 즐거움이었다.
“이상한 녀석하고 싸우지만 않았더라면, 좀 더 손쉽게 이겼을 텐데 말이야.”
건기의 귀에는 파이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병신.”
“뭐라고?”
파이톤은 건기의 멱살을 잡아 그의 상체를 들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윽!”
절체절명의 위기.
조여 오는 숨통.
건기는 메피스민과의 싸움이 떠올랐다.
그 마지막 순간.
그때 느꼈던 분노와 원한이 두 배로 늘어났다.
“크으으윽.”
흐려지는 시야.
건기는 필사적으로 파이톤을 노려봤다.
그리고 메피스민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하지 못한 마무리를 짓고자 자신을 진정시켰다.
‘아직 죽지 않았어.’
건기는 파이톤의 목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기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법 깊게 베인 상처.
베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응급처치도 엉망이라 조금씩 피가 나오고 있었다.
“으아아아!”
마지막 의지.
건기는 몸을 움직여 파이톤에게 부딪쳤다.
죽음의 기로에서 그가 짜낸 것은 ‘악의’였다.
“이 자식!”
파이톤은 깜짝 놀라 건기의 접근을 허용해 버렸다.
그 다음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
뜯겨 나간 핏줄.
터져 버린 상처.
그는 다급한 마음에 단검으로 사정없이 건기의 복부를 찔렀다.
“죽어, 죽어, 죽어! 이 새끼야!”
건기는 극심한 통증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땅바닥에 버려졌다.
“머저리.”
건기는 자기 자신을 향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진작 이렇게 메피스민을 죽였어야 했는데…….’
병신과 머저리.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피로 물들이며 죽었다.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리트라이]
***
건기는 눈을 떴다.
눈앞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팬이 보였다.
‘천장?’
‘누워 있는 건가?’
그는 몸을 뒤척였다.
“크윽.”
뻐근한 몸.
건기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볼품없는 가구들.
흙먼지가 낀 마룻바닥.
황야의 주민이 사는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휴우.”
건기는 자신이 살아 있단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부상이나 상처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엥?”
꿈이라도 꾸고 있나?
건기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삐걱삐걱.
마루의 판자가 흔들리면서 소리가 났다.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서쪽마을에 있음을 깨달았다.
“오! 깨어났다!”
지나가던 주민이 건기를 보며 외쳤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다가왔다.
다들 환한 얼굴.
건기는 너무나도 일관된 주민들의 분위기가 불안했다.
“빌어먹을.”
건기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러자 주민들이 문을 두드렸다.
쿵쿵.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차분하게 현재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인벤토리.”
인벤토리는 그대로.
마총은 떨어뜨려서 없었지만, 구슬과 노멀소드는 있었다.
건기는 하나 남은 노멀소드를 꺼내 손에 쥐었다.
“스탯.”
***
[등급 : D]
[근력 : E] [순발력 : E]
[지구력 : D] [지력 : B]
[스킬 : 리트라이]
***
“앗!”
건기는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스탯창을 확인했다.
‘리트라이.’
분명 스킬이 있었다.
“무슨 스킬이지?”
리트라이(Retry).
직역하면, 재시도.
건기는 대충 이해가 갔다.
그리고 줄어든 스탯으로 스킬의 기능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부 한 단계씩 줄어 있네.”
사망할 때마다 스탯이 한 등급씩 내려간다.
목숨 값으로 생각하면, 싼 편.
그러나 문제는 만약 스탯이 F가 될 경우였다.
스탯이란 아무리 낮아도 F.
그 이하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스탯 하나라도 F가 된다면 더 이상의 추가 목숨은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스탯이 하나라도 F가 되면, 그땐 정말로 죽는 건가?”
대부분 스킬이란 반드시 입으로 스킬명을 외쳐야 발동됐다.
하지만 건기의 ‘리트라이’처럼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면 자동으로 발동되는 능력도 소수 존재했다.
“이것도 회귀의 여파인가?”
건기는 눈을 깜빡였다.
정신은 얼떨떨.
몸은 뻐근.
아직도 살짝 컨디션이 별로였다.
“한숨 더 잘까?”
쿵쿵.
문을 두드리는 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기야! 문 좀 열어 줘! 몸은 좀 어때? 괜찮냐?”
“아저씨?”
건기는 문 옆에 몸을 기댄 채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집 안으로 태구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손에 든 검을 내렸다.
“몸은 어때?”
“괜찮아요.”
건기는 침대 끝, 태구는 의자에 앉았다.
건기는 태구에게 물었다.
“제가 왜 누워 있었죠?”
태구는 차분하게 하나씩 이야기를 풀었다.
“난 네가 시킨 대로 공동묘지에서 떨어진 곳에 엎드려서 저격을 하다가 구슬이 떨어진 후에는 쭉 숨어 있었어. 그런데 가만 보니까, 네가 혼자서 녀석들을 쓸어버리더라고. 그래서 네가 무사한지 확인하러 공동묘지에 갔지.”
“그래서요?”
“너 빼고 다 죽어 있더라고. 난 너도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의외로 멀쩡하길래, 너만 따로 여기에 눕혀 놓은 거야.”
“얼마나 됐죠?”
“아마 6시간?”
6시간.
그렇다면 건기는 기절한 것이 아니라 수면을 취한 것이었다.
컨디션이 나쁜 것도,
정신을 잃은 것도 그간 쌓인 피로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스킬 때문에 부활한 건가?”
메피스민.
건기는 회귀한 이후 줄곧 녀석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 같았다.
“존은 어때요?”
“존? 괜찮아. 숨이 붙은 부하 놈한테 물어서 관에서 꺼내 놨어.”
“윌리는요?”
“멀쩡해.”
건기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옐로우 클랜 녀석들은요?”
“잔챙이 넷이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까지 다섯 모두 죽었어.”
“그래요?”
“그래. 주민들이랑 묘지, 구덩이 할 것 없이 싹 다 뒤졌어. 부상자고, 시체고 확실해. 옐로우 클랜은 다 제압됐어.”
둘은 다섯의 시체를 갖고 거주 구역의 치안대로 가서 현상금을 받기로 했다.
현상금의 액수가 클 경우에는 오직 거주 구역에서만 현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네 덕에 보너스가 생겼어. 거주 구역에 가면 내가 한 턱 낼게.”
태구는 히쭉 웃었다.
“좋아요. 그럼 바로 떠나죠.”
“벌써? 조금 더 쉬지 그래? 공짜로 쉴 수 있다고?”
“충분히 쉬었어요.”
건기는 태구와 함께 집을 나와 윌리를 찾아갔다.
윌리는 목발을 진 채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차라도 드릴까요?”
“아니, 됐어.”
건기는 무뚝뚝한 얼굴로 윌리와 마주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소한 친절과 고통스런 최후.
할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윌리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할아버지께서 꼭 돌아오신다고…….”
건기는 인벤토리에서 노인에게 받았던 컵을 꺼내 보여 줬다.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컵.
그것을 본 윌리는 끝내 고개를 숙였다.
“여기, 네 돈이야.”
건기는 인벤토리에 있던 8백만 원을 모두 꺼내 내밀었다.
그러나 윌리는 그 돈을 받을 정신이 없었다.
그때 릭 관리관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다소 비굴한 자세로 건기와 태구에게 굽실댔다.
“헤헤헤. 저희 마을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전해 드리고자…….”
“감사 인사?”
태구는 코웃음을 쳤다.
“인사는 됐고, 돈이나 줍쇼!”
“저희 같은 가난한 마을에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금 낼 돈도 없는데요.”
건기는 다소 강한 어조로 릭에게 물었다.
“윌리를 돌봐 줄 수 있겠죠?”
“사실 그건 좀…….”
“뭐?”
건기는 즉시 인벤토리에서 노멀소드를 꺼냈다.
그것을 본 릭은 바로 그 앞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도 다 비슷한 처지입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입 하나 더 먹일 여유가 없습니다요.”
“그래요?”
건기는 검 끝으로 릭의 어깨를 살짝 눌렀다.
“그럼 이 아이는 저희가 데려가죠. 그리고 마을을 구해 준 비용은 관리관님께 받아야겠는데요?”
“예? 그, 그러니까 저희는 그럴 만한 여유가…….”
“옐로우 클랜에 협조한 사실은 마을 주민 전원이 알고 있을 겁니다. 그걸 치안대에 보고하면 어떻게 될까요?”
최소 현상 수배 신세.
최대 체포 및 사형.
릭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인벤토리에서 현금 다발 하나를 꺼냈다.
5만 원 지폐 100장.
건기는 그것을 거칠게 낚아챘다.
“협조 감사합니다. 이제 꺼져.”
릭은 굴욕적인 얼굴로 집에서 나갔다.
건기는 자신이 갖고 있던 8백만 원을 꺼내 릭에게 받은 돈과 함께 윌리에게 건넸다.
“이거면 당분간은 문제없을 거야. 혼자서 힘들겠지만, 뭐든 일을 하도록 해.”
마음 같아선 거주 구역에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거주 구역에서 지내려면 세금을 내야만 했다.
“저, 저기…….”
윌리는 우물쭈물하면서 건기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
“저도 데려가 주세요.”
“뭐?”
갑작스런 윌리의 요청.
건기와 태구는 서로 쳐다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서 하는 소리냐?”
태구는 진심으로 윌리를 염려하면서 그를 만류하려 했다.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떠돌이.
여차하면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윌리는 진심이었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갈 곳도 없어요. 여기 있어 봤자, 죽을 거예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윌리는 건기에게 받은 돈을 도로 돌려주려 했다.
“절 데려가 주세요.”
건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할 도리는 끝났다.
여기서부터는 괜한 오지랖.
괜한 동정을 베풀어 봤자,
메마른 황야에서 더 비참하게 죽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 있어도 같은 상황.
릭의 말과 반응으로 볼 때,
마을에 남아도 윌리의 처우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을 것이었다.
건기는 돈을 받고는 윌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꽉 움켜줬다.
그것은 경고이자, 위협, 그리고 당부였다.
“난 목적을 위해서 뭐든 할 거야. 그걸 위해서 너랑 태구 아저씨를 희생시켜야만 한다면, 망설임 없이 희생시킬 거야.”
윌리는 크게 침을 삼켰다.
이제 겨우 15살인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운명.
그러나 소년의 결심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
건기는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짐 챙겨. 빨리!”
건기의 호통에 윌리는 후다닥 인벤토리에 짐을 챙겼다.
건기는 그 모습을 보며 태구에게 물었다.
“아저씨, 총은 챙기셨죠?”
“물론이지.”
MGF의 마크가 찍힌 마총은 엄연히 MGF의 재산.
갖고 있는 게 들키면 여러모로 곤란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기엔 아까웠다.
“애를 데려가도 괜찮을까?”
태구의 반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건기는 방금 받은 돈 중 5백만 원을 태구에게 건넸다.
“엥?”
“저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을 알고 있어요. 거기까지만이에요.”
“그, 그래?”
태구는 얼른 돈을 챙겨서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손수 윌리가 짐 싸는 것을 도왔다.
건기와 태구, 그리고 윌리.
셋이 된 일행은 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쪽마을을 떠났다.
개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