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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각성자, F급으로 회귀하다] 7화

[SSS급 각성자, F급으로 회귀하다] 7화
[데일리게임]

7. 다섯 악당 (1)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거주 구역에 들어섰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지면.

간간히 늘어선 건물.

안심하며 길을 걷는 사람들.

잘 가꾸어진 녹색 화단.

확실히 모래와 흙뿐인 삭막한 황야보단 훨씬 생기가 넘쳤다.

“오늘은 사람이 꽤 많은데?”

태구는 돌아다니는 행인의 수를 헤아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MGF의 치안대에서 주관하는 회의인 만큼 각층의 보안관, 길드원,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가 거주 구역으로 모여들었다.

“이상하군. 보안관 정기 보고 회의라면 끝났을 텐데? 설마 회의가 연장된 건가?”

회의가 연장됐다면, 그것은 절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자잘한 건 신경 쓰지 말고, 가발이나 사러 가요.”

건기는 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재촉했다.

건기에게 있어 중요한 일은 치안이 아니었다.

오직 서쪽마을로 가서 윌리에게 돈을 준 다음, 상층으로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바로 저기가 가발 가게야.”

두 사람은 태구가 가리킨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원하던 모히칸 가발을 구입했다.

“햐햐햐! 드디어 대머리에서 탈출이다!”

아무리 가려도 여전히 대머리.

건기는 그 점을 지적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럼 이제 서쪽마을로 갈까?”

모히칸 머리를 한 중년.

태구는 한껏 들떠서 건기에게 물었다.

“아니요. 그전에 길드부터 들러야 해요.”

두 사람은 길드 사무소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건기는 홀로 상담 창구로 향했다.

그는 내심 자신이 상담원과 상담을 하는 동안 태구가 떠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네, 90번 손님.”

건기는 자신이 뽑은 번호표를 내밀며 상담 창구 앞에 앉았다.

상담원은 환한 서비스 미소와 함께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건기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임시 통행증과 수표, 그리고 구슬을 꺼내 상담원에게 내밀었다.

“대출 받은 걸 상환하고, 남은 금액은 현찰로 바꿔 줘.”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상담원은 키보드를 두들겨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고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계좌를 말씀해 주세요.”

“이건기555.”

“네, 알겠습니다.”

상담원은 일단 건기가 내민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 후 그의 계좌에 입금시켰다.

그 다음 임시 통행증에 적혀 있는 대출액만큼 계좌에서 출금.

마지막으로 계좌에 남은 돈을 현금으로 바꿔서 건기에게 건넸다.

현금 8백만 원.

건기는 돈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상담원에게 물었다.

“상층으로 가는 다른 일거리를 맡고 싶은데, 뭐가 있지?”

“몇 층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갈 수 있는 한 높이.”

상담원은 눈에 외눈을 착용한 후 건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음, 스킬이……없으시네요?”

“상관없잖아?”

“그러……세요…….”

상담원은 생각했다.

현재의 건기는 실적도 적고, 스킬도 없는 상태.

그런 사람을 너무 높은 층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현재로선 20층까지 가는 보부상 일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보부상.

단어 그대로 하층의 길드 건물에서 상품을 싼 값에 구매한 다음, 상층의 길드 건물에 웃돈을 주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단순 운반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부상의 경우 물건을 거주 구역 밖 황야에서도 마음대로 판매할 권리가 있었다.

“그걸로 하지. 목록 좀 줘 봐.”

상담원은 서류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엔 현재 10층 길드 사무소가 보유 중인 물품 목록과 수량, 가격이 적혀 있었다.

“흐음, 어디 보자.”

건기는 목록을 내려다봤다.

소금, 설탕, 식용유, 쌀, 물 등등.

목록에는 생필품 위주의 싼 물품이 적혀 있었다.

“응?”

그때 건기의 머릿속 기억 중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전생에 있던 일들 중 가장 시끌벅적했던 대소동.

건기의 입꼬리가 본인도 모르게 히쭉 올라갔다.

“소, 손님?”

건기의 기분 나쁜 미소.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던 상담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딘가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신가요? 왜 그런…….”

역겨운 표정을?

상담원은 차마 그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것은 프로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아, 아니야.”

혹여나 지금의 생각이 들킬까.

건기는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며 물품을 정했다.

“소금, 설탕, 식용유, 생수를 각각 백만 원씩 살게.”

건기는 그 자리에서 4백만 원을 지불했다.

돈을 받은 상담원은 즉시 그에게 ‘지급증서’와 20층까지 갈 수 있는 임시 통행증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건기는 지급증서와 임시 통행증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얌전히 그를 기다려 준 태구와 함께 사무소를 나왔다.

태구는 건기 손에 들린 지급증서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보부상? 아니, 우리 한탕 하려는 거 아니었어? 이거 왜 이래?”

건기는 임시 통행증을 태구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게 있어야 위로 올라갈 것 아니에요. 큰돈을 벌려면 가능한 상층으로 가야 하잖아요?”

“아하, 그건 그렇지.”

길드의 창고.

건기는 1층 부둣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급증서를 길드원에게 제출하고 거기에 적힌 물건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태구는 그동안 창고 벽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TV뉴스를 시청했다.

“그럼 이제 볼일 다 봤나?”

“그런 것 같아요. 이제 가요.”

“아니, 잠깐만. 지금 속보가 나오는 중이야.”

태구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건기는 팔짱을 끼면서 그와 함께 뉴스를 시청했다.

TV속 앵커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MGF에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습니다! 지난밤 새벽 2시, 정상 도시에서 난동을 부리던 블랙 클랜의 조직원들을 총사대 종자이신 라울 씨가 멋지게 처리했단 소식입니다.

“블랙 클랜?”

건기는 그들에 대해 떠올렸다.

마탑 내 범죄 조직, 클랜.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세 조직을 ‘3대부’라 불렀다.

블랙 클랜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나 라울 씨의 스킬이 아주 인상적인데요. ‘썬더 블레이드’라는 스킬은…….

“뭐?”

건기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앵커는 몇 번이고 스킬을 강조했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목격자들의 의하면 ‘썬더 블레이드’는 정말 강력하고 멋진 스킬이라고 합니다. 저도 제 눈으로 직접 ‘썬더 블레이드’를 보고 싶네요. ‘썬더 블레이드’…… ‘썬더 블레이드’…… ‘썬더 블레이드’…… ‘썬더 블레이드’……!

건기는 얼이 빠졌다가, 이내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하하, 이름만 같고 다른 스킬이겠지? 그래, 그럴 거야.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렇…….’

앵커는 계속 말했다.

“썬더 블레이드는 검에 번개의 힘을 부여하는 기술인데요. 검을 휘두르면 번개가 번쩍이면서 목표물을 자동으로…….”

“똑같잖아!”

건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내 꺼야, 내 꺼! 라울인가, 룰라랄라인가 하는 놈이 아니라! 내 꺼란 말이야!”

건기는 흥분해서 마구 날뛰었다.

그러자 창고를 지키는 길드원들이 다가와 그런 그의 양쪽 팔을 붙잡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창고에서 떨어져. 수상한 짓을 하면 바로 치안대에 신고하겠어.”

각층에는 소수의 치안대원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주 구역을 안전한 치안 지대로 만드는 핵심 전력이었다.

“이 녀석이 아직 식사 전이라 이래요. 배고프면 흥분하거든요.”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태구는 건기를 밀치면서 대신 길드원에게 대꾸했다.

“알았으니까, 조용히 꺼져.”

“예이, 예이.”

태구는 길드원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건기를 끌고 창고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건기를 흔들며 계속 말을 걸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얼이 빠졌어? 혹시 라울이랑 아는 사이야?”

“아니요.”

듣도 보도 못한 잡놈.

전생에서 만나 본 적은커녕,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왜 그런 놈이 자신의 스킬을 갖고 있는 걸까?

“그런 놈은 몰라. 그런 놈은 없었는데…….”

건기는 차가운 얼굴로 태구를 쳐다봤다.

그의 표정이 어찌나 섬뜩한지 태구는 도중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아저씨, 빨리 서쪽마을로 가요. 그리고 돈……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해요.”

건기는 회귀한 후 처음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을 느꼈다.

차가운 외모와는 정반대로 그의 속은 활활 타고 있었다.

***

서쪽마을의 공동묘지.

공동묘지라고 해 봤자, 그냥 황량한 땅에 묘비가 많은 것뿐이었다.

묘비는 돌이 아닌 나무.

이런 삼류 공동묘지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던 존은 기분이 아주 존 같았다.

“퍼킹 시발.”

존은 입안에 고인 모래 섞인 침을 퉷 뱉었다.

그는 사흘 전부터 기분이 최악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미국 출신임에도 마탑 공용어란 이유로 한국어를 강제 학습한 것도,

사흘 전에 웬 악당 새끼들이 나타나 보안관 사무소를 박살을 내고 마을을 장악한 것도,

마을에 있는 모든 부를 쓸어 담고 주민들을 노예로 삼은 것도,

그 과정에서 몇몇 주민이 그들에게 가담한 것도,

심지어 가담한 자들 중에는 마을을 관리할 의무가 있는 ‘관리관’이 껴 있단 것도,

존이 그들에게 반항하다가 개처럼 쳐 맞고 ‘아, 이러다가 진짜 죽겠구나.’란 생각에 신발바닥을 핥아 겨우 살아난 것도,

그 벌로 저항하다 죽은 부보안관과 마을 주민들의 시체를 홀로 묻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사흘 전 옆집에 사는 루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것 때문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딱히 사귀거나, 오랜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 가거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가 아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황야의 삶에서 그 따위 노력은 사치에 불과했다.

“내가 취향이 아닌 걸까?”

존은 일곱 번째 시체를 묻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자신이 거절당한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뭐 어때서? 잘생기고, 키 크고, 똑똑하고, 유머 감각도 있고, 정의감도 있고, 용기도 있잖아?”

“뭐라는 거야, 멍청아?”

존을 감시하던 김촌상이 맥주를 마시며 소리쳤다.

그의 호통에 존은 화들짝 놀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김촌상은 땅바닥에 앉은 채 소리쳤다.

“또 쳐 맞기 싫으면 그딴 식으로 웃지 마라.”

김촌상은 존이 입 다무는 것을 확인하고는 맥주를 비웠다.

그러고는 빈 병을 존이 파고 있는 구덩이로 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존이 깜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같이 묻히기 싫으면, 빨리 빨리 파! 이 존나 굼벵이 새끼야! 알았어?”

“예예.”

존은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허겁지겁 일곱 번째 시체를 묻었다.

그러나 여덟 번째 구덩이를 파려고 삽을 땅에 박자마자 다시 또 동작이 느려졌다.

“흥, 게으름뱅이!”

김촌상은 존에게서 시선을 돌려 마을을 쳐다봤다.

그는 아직도 자신들이 저 마을을 장악했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흘 전 고작 다섯이서 마을 하나 점령하자고 파이브가 말했을 땐 그를 포함해 다른 셋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지금은 파이브의 말처럼 마을이 일당의 통제 아래 있었다.

“역시 간부는 다르다니까.”

물론 마을 주민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도 성공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유야 어쨌든 마을을 장악한다는 발상 그 자체.

그야말로 간부에 어울리는 그릇이었다.

“저기, 부보안관님.”

갑작스런 존의 말에 김촌상은 깜짝 놀라며 마총을 집어 들었다.

마총, 펌프액션 샷건.

리볼버와 비교해 구슬을 훨씬 많이 장전할 수 있지만, 구슬의 숫자와 상관없이 구슬 하나당 한 발.

거기에 평범한 산탄총처럼 광선이 퍼져서 근거리가 아니면 효과가 미비했다.

물론 근거리라면 효과 만점.

특히 좁은 공간에서 그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김촌상은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존을 쏠 뻔했다.

“아, 시발! 뭐야?”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투성이가 된 자신을 가리켰다.

“콧구멍까지 흙이 들어가서 숨쉬기가 힘들어요. 흙이라도 좀 털면 안 될까요?”

김촌상은 이 성가신 백인을 그냥 쏴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마을에 있는 유일한 묘지기.

함부로 죽이면 앞으로 시체 묻는 일이 김촌상 본인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개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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