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황야의 만남 (3)
네 가닥의 실은 빠르게 허공을 날아 건기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닿기 직전, 건기는 글랙의 목에 걸어 둔 올가미의 밧줄을 당겼다.
“케엑!”
올가미는 인정사정없이 글랙의 숨통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그것은 단순 기도만 조르는 것뿐만 아니라 뇌로 가는 혈류까지 차단하고 있었다.
글랙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오던 실은 그의 의지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너 지금 어항 물 갈아 달라고 애원하는 금붕어 같아.”
“커어어억.”
글랙은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것을 본 건기는 올가미를 살짝 풀어 줬다.
덕분에 그는 기침을 하면서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개수작 부리지 말고, 인벤토리에서 물건이나 꺼내. 한 번만 더 수작 부리면 다음엔 리치 형님 뒤를 따라갈 거야. 알았지?”
건기는 죽은 리치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글랙의 새빨간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아,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게.”
결국 글랙도 순순히 물건을 전부 꺼낸 후 건기에게 맞아 기절하고 말았다.
건기는 두 사람이 꺼낸 것들과 함께 리치의 시체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런 다음, 밧줄에 묶인 둘을 데리고 흙산을 빠져나왔다.
“후하!”
상쾌한 바깥 공기.
건기는 두 사람을 끌고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1시간 뒤.
두 명의 강도가 보안관 사무소 감방에 갇혔다.
정신을 잃은 그들은 건기가 끌고 온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생포한 둘은 한 명당 백만.
시체인 두목은 2백만.
“살려서 잡아 올걸 그랬나?”
반쯤 예상하고 있었지만, 리치 일당은 현상 수배범이었다.
심지어 살려 보냈던 로스와 김촌상도 각각 50만.
건기는 보안관으로부터 4백만 원이라 적힌 현상금 수표를 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 마을에 윌리라는 이름을 지닌 아이가 있나? 할아버지랑 같이 산다고 하던데.”
보안관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이 마을 주민들은 내가 다 알지만,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 혹시 서쪽마을에 사는 걸 착각한 것 아닌가? 그 마을 사람들이 종종 이 근처로 와서 채굴을 하거든.”
“서쪽마을?”
건기는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히 가장 가까운 이 마을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서쪽마을.
건기는 그렇게 정하고는 사무소를 떠나기 전, 노파심에 하나를 더 물었다.
“사무소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무슨 일 있나?”
사무소에 있는 건 보안관 하나.
건기의 질문에 보안관은 코를 찡긋거렸다.
“거주 구역에 있는 치안대에 정기 보고를 하러 인원이 떠났다네. 간 지 며칠 됐으니, 아마 내일이면 돌아올 거야.”
“그렇군. 수고하쇼.”
건기는 사무소를 나왔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기 전 마을에 단 하나뿐인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외관.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는 주인.
바닥엔 황야의 건조한 흙투성이.
진열대 물품 위에는 먼지.
먼저 온 손님이 하나.
구멍가게도 이런 구멍가게가 없을 것이다.
건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가게 진열대의 물품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한쪽에서 원하던 물건을 찾았다.
“있다!”
길드표 커피우유 분말.
황야의 가게에서 파는 식료품은 유통기한이 긴 것뿐이었다.
생우유의 유통기한은 2주.
멸균우유는 2개월.
그러나 이 기준은 어디까지나 ‘미개봉’에 한해서였다.
그렇기에 거주 구역 밖 황야의 주민들에게는 액체 우유보단 가루 형태인 우유 분말이 더 인기였다.
건기는 커피우유 분말 한 봉지를 집어서 카운터에 내려놨다.
“만원.”
“뭐?”
건기는 주인이 말한 가격에 돈을 꺼내려다가 멈췄다.
거주 구역에서 파는 가격의 2배.
터무니없는 바가지였다.
‘그냥 살까?’
건기가 머뭇거리자, 주인은 잽싸게 우유 분말 봉지를 집어 들었다.
“싫으면 사지 마.”
배짱 장사를 넘어선 횡포.
건기는 혀를 차면서 주인을 노려보다가 등을 돌렸다.
오싹.
그 순간, 건기는 본능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그의 직감대로 무언가가 뒤통수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이번엔 죽일 맛 좀 나겠군.”
대놓고 살인 예고.
건기는 짜증을 내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먼저 온 손님, 파이톤.
그는 한쪽 눈에 외눈을 빼서 건기에게 던졌다.
“뭐지?”
건기는 순순히 그가 던진 외눈을 받아 눈에 끼었다.
그리고 그의 스탯을 확인했다.
***
[등급 : A]
[근력 : B] [순발력 : B]
[지구력 : B] [지력 : D]
[스킬 : 스탯 도핑]
***
“A급?”
건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스탯 D가 일반인 수준이라면,
B는 훈련을 받은 치안대원.
스탯의 수준으로 봤을 땐 결코 A등급이 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파이톤의 진정한 무서움은 스킬에 있을 것이었다.
“A급 각성자가 10층에는 무슨 볼일이지?”
“어때? 이제 겁이 좀 나나? 그 외눈은 저승 선물이야. 히히히!”
파이톤은 입을 찢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양손 가득 단검을 꺼냈다.
“일단 정맥부터 시작할까?”
딱 봐도 살인에 환장한 놈.
건기는 득템한 외눈을 소중히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목을 긁으며 한 손에 노멀소드를 들었다.
“미안하지만,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어.”
건기의 검을 본 파이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 거지 같은 검으로 싸우자고? 히히히! 그건 너무 볼품없지 않아? 좀 더 큰 걸 꺼내 봐.”
“네 무기보단 큰 거 알지?”
“히히히! C급 주제에 여유 부리냐? 좋아, 자비를 베풀어 주지. 먼저 공격해 봐.”
“정말?”
“그럼! 세 번까지 봐주지.”
파이톤의 선공 양보.
눈앞의 상대는 분명 B급 악당처럼 보였다.
그러나 건기는 이 A급 양아치와의 대결이 부담스러웠다.
전생한 후 만난 최강의 적.
건기의 눈에는 그의 역량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보였다.
“하앗!”
건기는 후다닥 음료수 진열장 뒤로 뛰었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본 파이톤은 얼굴을 찡그렸다.
언제나 보던 사냥감들의 반응.
파이톤은 곧장 건기를 쫓는 대신, 출입문으로 가서 문을 잠갔다.
“어디 있니? 순순히 나오면 고통 없이 잘라 줄게. 엉?”
어차피 좁은 가게 안.
진열장만 대충 훑어보면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파이톤은 물건을 고르듯 건기를 찾았다.
“찾, 았, 다!”
건기의 위치는 캔음료 진열대.
파이톤은 고개를 까딱이면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좁은 통로, 코앞의 거리.
그리고 압도적인 전력 차.
단검을 던진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도 외눈을 통해 건기와 자신의 스탯 차이를 알고 있었다.
“역시, 겁먹은 거야? 좀 실망스러운데? 리치를 죽인 녀석이라고 해서 살짝 기대했는데…….”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2m.
갑자기 건기가 뒤를 돌아보며 파이톤에게 뭔가를 던졌다.
“이거나 받아라!”
주변의 뭔가를 던지는 것은 희생자들의 마지막 저항 중 하나.
파이톤은 활짝 웃었다.
흥이 식었던 그의 살인 욕구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런 걸로 날 막을 수 없어!”
흔히 아는 빨간 탄산음료 깡통.
파이톤은 단검을 휘둘러 캔을 단칼에 잘랐다.
“하! 기껏해야 설탕물이…….”
깔끔하게 잘린 캔은 양쪽으로 갈라지며 파이톤을 피해 갔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
캔에서 나온 검은 액체는 그대로 단검을 지나가 정통으로 파이톤의 얼굴을 덮쳤다.
탄산은 지옥의 고통을 싣고 파이톤의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크아아악, 크윽……!”
방심이 가져온 역습.
파이톤은 쓰라림을 참으며 억지로 눈을 떴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눈앞으로 탄산음료가 든 대용량 페트병이 날아들었다.
“그런 수가 또 통할 것 같아?”
파이톤은 고개만 옆으로 까딱여 페트병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A급 각성자로서의 피지컬.
제 아무리 근거리에서 날아온 것이라 해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이제 정말 죽여…….”
두 번째 방심.
파이톤의 머리 바로 옆.
페트병이 대폭발.
검은 탄산음료가 그의 머리를 통째로 뒤덮었다.
당연히 그의 눈으로 대량의 탄산음료가 들어갔다.
“카아아악!”
치명상은 아니다.
하지만 치명적으로 아프다.
파이톤은 상체를 웅크린 채 고통을 참았다.
발 옆에 떨어진 페트병의 조각.
그 안에는 음료와 함께 동그란 알갱이가 들어 있었다.
“이 새끼!”
파이톤은 약이 올라 신경질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그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직감만으로 정확하게 건기의 위치를 노렸다.
“아이쿠!”
건기는 자세를 낮추며 도망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신이 난도질 됐을 거란 사실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정도면 준S급인데?”
건기는 진열대 옆으로 돌아가서 몸으로 힘껏 그것을 밀었다.
진열대가 옆으로 밀리면서 파이톤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나도 그냥 어중이떠중이는 아니거든!”
물건들이 떨어지며 드러난 진열대의 뾰족한 쇠고리.
파이톤은 쇠고리들에 몸이 찔려 핀에 꽂힌 곤충표본 꼴이 되었다.
“크아아악!”
얕보던 상대에게 역관광.
파이톤은 분노하며 전력을 냈다.
그러자 순식간에 진열대가 뻥 하고 튕겨 나갔다.
건기는 순순히 진열대에서 손을 떼며 도망쳤다.
“갈기갈기 찢어 주겠어!”
파이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는 펄쩍 뛰어올라 진열대를 넘어갔다.
어찌나 빠른지 마치 나무를 타는 맹수 같았다.
“쳇!”
건기는 바로 뒤 카운터 아래에서 탈취 스프레이를 집었다.
그리고 파이톤이 있는 진열대를 향해 스프레이를 뿌렸다.
“겨우 그딴 걸로 날 막을……!”
파이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기는 다른 손에 든 지포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것을 파이톤의 앞쪽으로 던졌다.
현재 파이톤의 앞은 탈취액으로 인해 안개처럼 자욱해진 상태였다.
“젠장!”
파이톤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
얼른 고개를 숙여 얼굴을 보호하려 했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간 그의 시야에 뭔가 보였다.
“구멍?”
진열대 아래 부탄가스들.
누군가 일부러 흩뜨려 놓은 깡통들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선 묘한 냄새를 내는 가스들이 뿜어져 나왔다.
“빌어먹을!”
파이톤은 경악.
건기는 지포라이터를 던진 직후 카운터 뒤로 몸을 던졌다.
펑.
한 번의 폭발 후 바닥에서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다.
진열대는 전멸.
유리는 죄다 파손.
제품들엔 활활 불이 타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가게 안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후우.”
건기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옆에 쓰러진 가게 주인의 손에서 분말 봉지를 뺏었다.
주인의 가슴에는 파이톤이 건기에게 던졌던 단검이 박혀 있었다.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쇼.”
건기는 봉지를 인벤토리에 넣은 후 엉금엉금 기었다.
그리고 빠르게 가게를 빠져나와 곧바로 마을을 떠났다.
***
건기가 현상금 수표를 갖고 보안관 사무소를 나간 직후.
보안관은 감방 안에 쓰러져 있는 두 수배범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설마하니, 옐로우 클랜의 단원들이 붙잡힐 줄이야.”
보안관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책상에 앉아 상층에 올릴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리치 녀석이 죽은 건 참 다행이야. 그런 악독한 녀석은 살려 둬선 안 되지, 암! 저 청년이 정식 현상금 사냥꾼이었어도 현상금을 모두 받았을 텐데…….”
기본적으로 현상 수배범의 처우는 ‘살인 허가.’
그러나 ‘정식’ 현상금 사냥꾼이 아닐 경우, 시체로 잡아 오면 현상금을 절반만 지급했다.
딸랑딸랑.
사무소 문이 열리며 새로운 방문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시게.”
보안관은 보고서를 쓰는 데 정신이 팔려서 방문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때문에 그는 방문자가 감방 바로 앞까지 가는 것조차 몰랐다.
방문자는 감방 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녀석들을 잡아 온 사람은 어디 있죠?”
“응? 이건기라는 친구 말인가? 그 친구는 조금 전에 서쪽마을로 떠났다네. 윌리라는 아이를 찾던데? 근데 여긴 무슨 일…….”
딸랑딸랑.
보안관은 두 번째 울린 방울 소리에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방금 막 사무소를 나간 방문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냥 나갈 거면 왜 온 거야?”
개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