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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퍼 28화

메탈리퍼 28화
[데일리게임]

게다가 루드 의원에 대한 테러 문제가 마무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의 또 다른 테러로 모두가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상황이었다.

전쟁이 남의 얘기 같았던 노만 마을 사람들 또한 비로소 심각한 전쟁의 분위기를 느끼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연방의 군용트럭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자벨과 예리엘은 이제 너무 울어 더 울 힘도 없었다. 남겨 놓고 온 아이딘이 걱정이 돼서 서로가 부둥켜안고 몇 시간을 함께 울었다. 예리엘과 칼레 위원장의 일행이 마을에 돌아온 즉시 아이딘과 미하일 중위를 찾기 위한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그들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피투성이가 된 아이딘의 옷가지와 미하일 중위의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만이 발견되어 돌아오면서 그들의 생사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호퍼가 퍼플 하스피탈에서 흐느끼는 예리엘과 이자벨을 달래고 있었다.

경비대는 노만 마을에서 그나마 가장 넓은 공터가 있는 이 안마당에 대책위를 세웠고 루드 의원과 일부 인원들을 이곳 퍼플 하스피탈에 머물게 했다. 경비대 관저에는 랑베르 위원과 기타 VIP들이 머물기로 했다. 보다 안전한 곳으로의 이동이 논의되었지만 야간에다가 일부 부상자들도 있어 비교적 안전한 이곳에서 머물고 내일 이동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시체도 안 나왔잖아?”

잭슨 역시 예리엘을 위로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자벨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체라니……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아저씨는 지금 아이딘 오빠가 죽기라도 바라는 거예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잭슨이 이자벨의 날이 서 있는 뜻밖의 반응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저씨가 남았으면 됐잖아요! 왜 아이딘 오빠보고 남으라고 해서…… 엉엉엉…….”

앙칼지게 쏘아붙이고는 펑펑 우는 이자벨 앞에서 잭슨은 대답도 못한 채 얼굴이 벌게서 자리를 피한다. 그런 잭슨을 호퍼가 따라붙는다.

“괜찮아?”

“어, 괜찮아. 아마 너무 걱정되어서 그랬을 거야.”

“아니…… 그 어깨 말이야.”

잭슨의 어깨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 괜찮아. 그냥 관통이라서 총알을 뺄 필요는 없다는데…….”

군의관들이 잭슨의 상처를 살펴보긴 했지만 말 그대로 살펴보기만 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VIP들만이 눈에 들어왔지, 동네 건달 잭슨의 상처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저 대충 붕대만 감고 나머지는 병원에 가서 치료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안 되겠다. 페이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러지 뭐…….”

잭슨이 애써 괜찮은 척한다. 꽤나 아플 터인데 군소리 한 번도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근데 저 이자벨이라는 애 너무한 거 아냐? 다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호퍼가 잭슨의 붕대를 고쳐 매 준다.

“뭐 어린 여자애들이 다 그런 거지 뭐.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좀 그렇잖아. 암튼 내가 페이를 찾아볼게.”

호퍼가 부리나케 사라진다. 잭슨은 의자에 걸터앉아 멀찍이 보이는 예리엘과 이자벨을 바라본다.

이자벨은 어느덧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아버지 루드 의원과 울먹이며 대화하고 있었다. 아이딘에 대한 걱정을 아빠에게 토로하는가 보다. 잭슨은 아이딘이 반드시 살아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초원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아이딘에게 잠시나마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부러움을 느꼈다.

* * *

경비대는 경비대대로 소동이다. 이 심각한 상황에 경비대장 란돌이 정오부터 연락이 두절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아직까지도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사실이 모두를 분노케 했다.

사실 수도향 고속도로의 경비책임은 모두 중앙군 치안유지군에 있고 이번 요인들의 경비 업무 역시 중앙군에서 직접 인력을 파견한 만큼 모든 책임은 중앙군에 있을 텐데 모든 비난의 화살들은 경비대로 쏠렸다. 아무래도 힘 있는 중앙군보다는 힘없는 변두리의 경비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훨씬 용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경비대에게 다행인 것은 미하일 중위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그나마 피해가 이 정도로 끝났다는 생존자 폴 슈렉 의원의 발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써 자신이 남고 싶었지만 미하일 중위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과 미하일 중위의 희생을 눈물까지 흘리며 호소했다.

하바로프 및 중앙정부에서 정치력 영향력이 큰 그의 발언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날 늦은 밤 경비대원 몇 명이 퍼플 하스피탈에 늦은 저녁을 먹으려 왔건만 이곳이 요인들의 거처로 지정받아 영업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치안유지군 경비 인력에게 듣게 된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기로 하고 잠시 모여 옹기종기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휴…… 그나마 다행이야. 란돌 대장은 도대체 어디 간 거야?”

“괜히 불똥이 우리까지 튀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러게 말이야.”

“요새 왜 이렇게 이 조그만 곳에 사건사고가 많은지 모르겠네.”

“맞아. 일주일이 멀다하고 하나씩 사건이 생기는데 이제 우리의 평온한 세상도 이제 끝인가 봐.”

그리고는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너희들은 그거 알았어? 미하일 중위가 랄프 프린츠 사령관의 외아들인 거?”

“뭐라고?”

말을 꺼낸 경비대원 말고 모두가 깜짝 놀란다.

“정말이야?”

“그래, 나도 오늘 처음 알았어. 미하일 중위가 랄프 프린츠 장군의 아들이란 걸.”

“아.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속이고…….”

“와. 나도 그럴 줄 몰랐다.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 매일 그림이나 그리고 있던 미하일 중위랑 그 백전노장 랄프 장군이랑은…….”

얌전한 샌님 같던 미하일과 전투의 귀신이라고까지 불렸던 랄프 장군과의 연관성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야, 그거 알아? 이번에 미하일 중위 아니면 모두가 다 몰살당할 뻔했다는 거?”

“뭔데, 뭔데?”

경비대원들이 궁금한 듯 귀를 쫑긋 세우고는 바짝 모여 선다.

“위원장을 습격한 반란군이 수십 명은 넘었는데 엄청 중무장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중앙군 경비 인력들도 꽤나 많이 죽었잖아. 그런데 미하일 중위가 열 명도 넘는 반란군들을 권총 하나로 다 물리친 거야. 총알 한 방에 한 명씩. 말 그대로 원 샷 원 킬 알지?”

손가락 하나를 펼쳐서 총 모양까지 그려 가며 설명에 한창 열을 올렸다.

“그래. 미하일이 매일같이 거기 원샷인가에 권총 손질 보내는 거 알고 있었어. 나는 거기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정말 사격연습에 열심이었구나.”

“게다가 몸에 총을 맞으면서 루드 의원의 딸도 구하고 게다가 랑베르 위원장까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까지 구출해 냈다는 거야. 게다가 모두가 안전하게 탈출하게 하려고 혼자 남아서 끝까지 저항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다는 거야.”

“정말 대단했구나…… 미하일 중위.”

경비대원 몇 명은 마치 자기가 그 현장에 있었던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안되었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친하게 지내는 건데.”

갑자기 미하일 중위의 생전 모습을 생각하며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나마 미하일 중위 덕분에 이만하길 다행이지. 지금 란돌 대장 때문에 경비대 위쪽은 발칵 뒤집혀진 거 같아.”

“도대체 이 양반은 어디로 간 거야?”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나도 몰라. 페이라는 의사한테 빠져서 아주 정신 못 차리던데?”

“페이가 누구야?”

“페이 몰라? 여기 퍼플 하스피탈의 주인 말이야.”

“아.”

모두가 알았다는 듯이 동시에 감탄사를 보낸다.

“나도 잘은 몰라. 근데 페이라는 여자가 경비대에도 몇 번씩 찾아오곤 했거든.”

“그거야 뭐 이 마을에 의사라고 그 여자 한 명뿐이라서 그런 거 아냐?”

페이는 종종 경비대의 긴급환자들의 수술을 도와주고는 했다. 의무대가 있긴 했지만 본격적인 수술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 소문이 있었다니까?”

“에이…… 설마…….”

“에이…… 이제 되었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경비대원들은 어느덧 단초가 되어 버린 담배를 비벼 끄고는 어디론가 자리를 옮겨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담배꽁초만이 수북이 남아 있었다.

* * *

다음 날 정오가 되어도 아이딘과 미하일 중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호퍼가 수색대와 함께 아이딘과 헤어진 곳을 직접 다녀왔지만 그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대신 랑베르 위원장이 습격받은 곳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차량이 폭파되고 다수의 탄피가 발견되었다는 다른 수색대의 보고가 있었다. 흔적으로 보아 다수의 사상자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고 아마도 미하일과 아이딘도 이 전투에서 사망했을 거라는 추정이었다. 그리고 인근에서 피가 잔뜩 묻은 아이딘의 상의와 미하일 중위의 권총만이 발견되어 그 추정을 좀 더 명확하게 했다.

그날 저녁, 하바로프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그 둘을 서둘러서 각각 사망과 전사 처리를 했다. 초원과 맞닿은 인근 숲까지 수색을 해 보고 싶었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너무나 무성한 숲인데다 광범위한 영역이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들의 혈흔과 유류품이 발견된 만큼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어제부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경비대장 란돌 때문이었다.

경비와 보안 실패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중앙군 치안유지군과 경비대의 치열한 알력 싸움의 결과는 의외였다. 경비대 미하일 중위의 영웅적인 희생이 빛이 바랠 정도였다. 사건 당일 경비대 란돌 대장이 자신의 애인과 피크닉을 떠났고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 문책을 당할까 봐 반란군으로 전향을 했다는 사건 정황 때문이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란돌 대장이 이전부터 수없이 많은 돈을 횡령했다는 제보에서부터 민간인들에게 끊임없이 뒷돈을 받아 왔다는 제보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들에 대한 혐의 일체가 란돌에게 씌워졌다.

게다가 퍼플 하스피탈의 여의사이자 마담인 페이와 함께 자신의 계좌에 있는 모든 돈을 인출하여 함께 나갔다는 결정적인 목격자들의 증언이 속속 등장하면서 경비대 란돌 대장의 비리는 거의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칼레 위원장의 이동경로와 시간대를 알고 있었던 몇 안 되는 주요 간부 중에 사건 이후 연락이 두절된 사람은 란돌 경비대장 한 사람뿐이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사건의 배후는 이렇게 명확해졌다.

시간을 두고 상황을 파악하자는 루드 의원의 목소리도 분노한 중앙군의 고급 간부들과 치안유지군의 확신 속에 의미 없이 묻혀 버렸다.

중앙군과 치안유지군 그리고 경비대의 윗선은 적당한 정치적 타협을 했다. 란돌 경비대장의 패행과 미하일 중위의 영웅적 행위에 대한 교차점을 찾도록 한 것이다.

중앙군의 책임은 모두 경비대장 란돌에게로, 그와 반대로 경비대의 명예 회복은 미하일 중위로.

참으로 기묘한 그들만의 정치적 야합이 이루어졌다.

아이딘을 걱정하며 두 덩치와 예리엘이 원샷에 모여 있었다. 예리엘은 마음이 편치 않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잭슨, 이게 말이 되냐?”

“말도 안 되지.”

“아이딘이 죽었을 거라고? 나는 믿을 수 없어.”

“나도.”

“그리고 란돌 대장이 페이 누님이랑 사랑의 도주라니? 도대체 이것도 말이 되는 거야?”

언제부터인가 호퍼는 페이를 누님이라 부르기 시작했었다.

“그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워낙 페이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보니 잭슨이 명쾌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페이 언니가 그러진 않았을 거예요. 페이 언니는 제가 잘 알아요.”

예리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결단코 페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표정이 얼굴에 묻어 나왔다. 그리고 막상 아이딘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직면하자 오히려 예리엘은 좀 더 담담해진 모습이다. 예리엘은 아이딘이 죽었다는 하바로프 정부의 공식 발표 사실을 절대로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군인 8명 전사, 민간인 1인 사망이라는 단출한 문구에 오히려 화가 날 지경이었다. 발표자가 어디에 있건 간에 한순간에 달려가서 절대 아니라고 소리까지 치고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불안한 감정은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내일 미하일 중위 영결식은 가야 하는 거야?”

“아니, 사라진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 난리인 거야. 그러다 살아 돌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거야?”

호퍼가 짜증난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가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왜 이렇게 빨리 처리하는 거지? 시체도 안 나왔잖아? 고작 유류품 하나 나왔다고.”

“란돌 대장 문제 건도 있고 정부에서 빨리 덮으려는 거 같아. 전시에 이런 일들이 흔한 일이기도 하고.”

“그렇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아이딘도 같이 하는 건가?”

예리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군인들만 하는 거 같아. 아이딘은 생각도 하지 않던데. 민간인은 신경 쓸 겨를도 없겠지.”

강성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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