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데일리게임 곽경배]
"시원 섭섭합니다."
30일 대구 엑스코에서 만난 박광진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원장은 10년 동안 맡아온 수장직을 떠나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깊어가는 가을, 대구에서는 게임쇼 'e-fun'과 '스페셜포스' 글로벌 랜파티, IeSF 그랜드파이널 등 3개 행사가 동시에 열리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박 원장의 눈빛은 뿌듯함 보다는 아쉬움이 더한 것으로 느껴졌다.
박광진 진흥원장은 대구에 문화산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박 원장은 소프트웨어진흥원 사업부장으로 대구지역을 지원하다 대구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이후 대구에 디지털산업진흥원이 생기면서 1대 진흥원장으로 부임했다. 2대와 3대 진흥원장도 지내면서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부임 당시 문화산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는 부천과 춘천, 부산에서 이미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늦게 시작한 대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게임이라 생각하고 관련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원장은 게임산업이 대구지역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했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문화산업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로 했다.
"지역 문화산업을 육성하자는 정부와 대구시의 의지는 부합됐지만 그것이 게임에만 국한되서는 안된다는 게 당시 입장이었죠. 그렇게 디지털문화산업박람회(DENPO)가 생겨났죠. 그래도 게임이 컨슈머쇼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2001년 관련 행사에 임요환과 홍진호 등 e스포츠 스타들을 초청하는 부대 행사를 벌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DENPO'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포함된 종합전시회 성격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콘텐츠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게임산업이 급속히 성장했고 이용자층이 확대된 덕분이다. 더불어 대구를 기반으로 한 KOG와 민커뮤니케이션, 라온엔터테인먼트 등 개발업체도 생겨나면서 지역경제에 도움을 줬다.
2003년부터 'DENPO'의 중심은 게임이 됐다. 4개국 70개사가 참여해 180개 부스를 차렸다. 이듬해에는 월드사이버게임(WCG) 국가대표 선발전 유치에 성공하면서 'e-fun'으로 행사명을 변경했다.
◆ e-fun 도심 속 게임쇼로 거듭나다
박광진 원장과 대구시는 2006년부터 'e-fun'에 새로운 요소를 접목시킨다. '무한 상상의 게임축제'라는 슬로건으로 도심 곳곳에서 행사를 벌인 것. 국채보상기념공원, 2.28기념공원 동성로 일대에서 게임뮤지컬과 게임음악제, 도심RPG 등 게임을 활용한 원소스멀티유스(OSMU) 행사를 벌였다. 특히 도심RPG는 가족 단위가 참여하면서 대구시민과 함께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도심RPG의 성공사례는 이듬해 세계게임문화컨퍼런스의 주제가 됐다. 당시 게임산업진흥원과 게임산업협회는 게임을 활용한 OSMU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했다.
더불어 대구시는 산학 클러스터를 조성해 기반이 약한 개발업체를 지원했다. 게임산업 지원을 위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다. 세제혜택과 부지를 제공해 준 이 클러스터 사업 덕분에 현재 40개 업체가 산업단지에 위치해 있다.
대구 시민과 함께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한 'e-fun'은 KOG와 민커뮤니케이션 등 지역 개발업체의 성장과 함께 대구에 게임도시 이미지를 심어줬다. 2008년까지 진행된 도심 RPG는 가을 대구의 독특한 축제가 됐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이, 승승장구하던 'e-fun'도 2009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 대구 '지스타'서 길을 잃다
"돈이 있어야 행사를 제대로 진행하죠. 올해 진흥원이 e-fun 배정받은 예산은 3억원에 불과합니다. 전성기인 2007~2008년에는 8억원과 비교하면 1/3수준으로 삭감된 거죠. 그래도 시 지원금과 IeSF 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최대한 행사를 꾸릴 수 있었습니다."
대구시 의회는 지스타 유치에 실패한 진흥원에 책임을 물어 예산을 삭감했다. 대구진흥원은 지스타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게임산업협회 이사사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엑스코 전시장이 부산 벡스코에 비해 규모가 작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유치한 부산시의 경험에 밀렸던 것이다. 주요 이사사 10개사 중 대구를 선택한 회사는 3개에 불과했다.
대구시 의회는 2011년 열리는 세계국제육상대회 초점을 맞췄다. 대부분의 예산이 여기에 투입됐다. e-fun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 홍보 효과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쉬움은 컸다. 그나마 시민과 함께해 온 도심RPG는 명맥을 유지한 것은 위안이었지만, e-fun행사가 아닌 대구시민생명축제 일환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B2B 성격을 갖추지 못한 e-fun의 구조적 문제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마케팅 효과만 생각하는 메이저 업체들의 이기심도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으로 봅니다. 지방 게임쇼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메이저 회사들의 협조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박 원장은 '대구시와 진흥원이 지스타 유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엑스코가 내년 5월까지 확장공사를 마치면 전시장도 경쟁력이 생긴다. 지역의 고른 성장을 추구하는 정부 입장에서도 부산에서만 지스타를 진행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부산시가 밝힌 지스타 유치로 인한 경제효과는 150억원 가량. 지스타 유치에 필요한 10억원을 대구시가 부담 못할 이유도 없다.
"전 떠나지만 다음 원장님께서 지스타 유치를 위해 열심히 해 줄 것으로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개인 신분으로나마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광진 원장은 잠시간의 휴식을 갖고 대학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대학에서도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대구 게임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e-fun과 대구 게임산업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그는 진정한 '게임 문화산업 전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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