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어느날, 데일리게임 편집국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온게임넷에서 걸려온 그 전화는 허준 기자를 찾고 있었다. 전화를 돌려 받았을때, 그때는 그 한통의 전화가 최고 레벨 던전 입장을 예고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온게임넷 '켠김에왕까지' 담당 나형은 PD로부터 걸려온 그 전화는 '켠김에왕까지' 1주년을 기념해 진행자인 허준이 허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게임을 즐긴다는 콘셉트로 진행하고 싶다는 섭외 전화였다. 그렇다. MC 허준과 이름이 같다는 정말 원초적인 이유로 데일리게임 허준 기자는 '켠김에왕까지'에 출연하게 된다.
2010년 10월 24일, 드디어 '켠김에왕까지' 촬영을 하는 날이 됐다. 때마침 그날 용산 아이파크몰 e스포츠 전용경기장에서 열리는 소니에릭슨 던전앤파이터 챔피언십 2010 시즌3 취재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3~4시간만 촬영하고 취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분당 온게임넷 사무실로 향했다.
정오가 조금 지나서 촬영장에 도착하자 나형은 PD가 반갑게 맞아줬다. 처음에는 반갑게 맞아줬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왕을 깰 것을 종용하는 PD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PD는 섭외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간단히 촬영에 대해 설명했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넥센 히어로즈 허준 선수도 촬영을 위해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미 허준이라는 동명이인 선수가 넥센 히어로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담배를 한대 피우면서 이야기하면서 어색함을 푼 뒤 소리를 지르면서 혼자 게임을 하고 있던 MC 허준이 있는 조그만 방으로 끌려갔다(?).
촬영은 매우 간단했다. MC 허준이 동명이인인 나와 허준 선수를 소개하는 시간을 짧게 가지고 바로 게임으로 돌입했다. 그날의 게임은 '뉴 슈퍼마리오브라더스 위'였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종종 즐겼던 '마리오 게임'이니 금새 왕을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마리오게임' 주제에 의외로 매우 어려웠다. 온라인게임만 하다가 오랜만에 콘솔게임을 하려니 익숙치도 않고 마리오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무수히 죽어가면서 라운드를 클리어했다. 이 '마리오게임'은 월드가 총 8개나 있다. 2시간 정도 플레이해야 월드 하나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산술적으로 16시간이나 필요한 '말도 안되는 촬영'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난 '던파리그' 취재가 있으니 그때까지면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했다. 촬영을 시작한지 2시간쯤 지났을까. 고정 출연자 중 한명인 강성민씨가 촬영장을 찾았다. 강성민씨까지 합류해 총 4명이서 '마리오'에 매달렸다. 그래도 어느 정도 게임이 익숙해지니 라운드를 클리어하는 시간도 조금씩 빨라졌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던파리그' 취재를 위해 이동해야 할 오후 5시가 됐다. MC 허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난 이만 '퇴갤'을 외쳤으나 MC 허준이 배신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래도 어쩌랴 난 취재를 해야 하는 기자인 것을... 허준에게 혹시 리그가 끝날때까지도 게임을 계속해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시 와서 도와줄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하고 촬영장을 나섰다. 나형은 PD의 '다시 오실거죠?'라는 말을 뒤로 한채.
분당에서 용산으로 이동해 던파리그 취재에 매진했다. 취재를 하다보니 자연히 '켠김에왕까지'를 잊고 기사 작성에 주력했다. 리그 취재를 마치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10시 경이 됐다. 혹시 아직도 촬영을 하고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나형은 PD에게 전화를 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말은 "촬영중이죠. 월드5에서 몇시간째 클리어하지 못하고 있어요"라는 대답이었다.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괜히 MC 허준과 약속을 해가지고… 약속을 했으니 안갈수도 없고, 나는 내일 취재도 해야하는데… 속으로 '너희들은 내일 아침에 쉬잖아!'를 외쳤다. 어쩔 수 있나, 다시 분당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분당에 도착하자 시간은 어느덧 오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넥센 히어로즈 허준 선수는 이미 사라진 뒤였고 MC 허준과 강성민씨가 열심히 플레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번엔 나를 맞아준 나 PD의 모습은 낮에 날 맞아준 나 PD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잘못 돌아왔다는 불길한 예감도 스쳤다.
정말 '켠김에왕까지'라는 프로그램은 왕을 깰때까지 무작정 녹화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사정따위는 봐주지 않는다. 계속 방에 갖혀서 게임만 하다보니 화도 나고 오기도 생긴다. 새벽 2시가 넘어가자 게임 전문지 기자 명예를 걸고 꼭 왕을 깨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 이후의 플레이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빨리 왕을 꺨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계속 게임만 플레이했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으면 MC 허준은 거침없는 욕을 내뱉기도 한다. 나도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만큼 짜증과 화와 오기가 버무려진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끝판 왕을 만났다. 그런데 이 끝판 왕이 너무 어렵다. 정말 깰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끝판 왕에만 1시간을 투자한 것 같다. 끝판 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조급해지고 짜증과 화가 배로 늘었다. 그러나 결국 깰 수 있는 방법은 있었고 당당히 엔딩을 볼 수 있었다.
왕을 깨는 순간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4시 30분, 약 16시간 정도의 녹화 끝에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로 왕을 깨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본인이다.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특이했던 사실은 왕을 깨는 순간 녹화는 종료되고 녹화가 종료되면 출연진들은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런 말 따위는 사치다. 16시간동안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고통이다. 물론 본인이 재밌어서 계속 하는 게임은 예외겠지만…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새벽 5시가 넘었다. 잠을 자야 하나? 내일 아침 10시에 편집국 회의가 있는데…
jjoony@dailygame.co.kr
*체험후…
다음날 나형은 PD에게 문자가 한통 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설마 또 섭외하려고 연락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형은 PD님, '켠김에왕까지' 섭외만 아니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셔도 됩니다. 그러고보니 나 PD님, 저 섭외메일 주셨을때 이렇게 쓰셨더군요.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함께해주시면 더 재미있는 방송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