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거액에 팔려간 국산 게임들이 정작 현지에서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된지 5년이 지났지만 현지에서는 비공개테스트 일정조차 잡지 못하기 일쑤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게임 수출 업체들은 서비스 일정을 잡지 못해 수출대금은 커녕 계약금조차 받지 못하는 등 타격을 입고 있다. 보통 상용 서비스에 돌입해야 '미니멈 개런티'가 포함된 계약금을 지금하는 것이 업계 관례이기 때문.
피해를 보고 있는 업체들은 계약 당시 서비스를 시작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현지에서 다른 파트너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어서 한국 업체들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한빛소프트는 2006년 5월 중국 더나인과 3500만달러 계약금과 상용화 후 30% 러닝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헬게이트:런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 금액은 국산 온라인게임의 해외 직접 수출은 물론 국내 업체에 의한 외국 작품의 해외시장 퍼블리싱까지 통틀어 역대 최고 수출액이다.
5년이 지난 현재에도 ‘헬게이트’는 중국 서비스는 감감무소식. 더나인은 비공개테스트를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5년전 최고 그래픽으로 꼽히던 게임에 대한 평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빛이 바랬다. 언제 서비스될지 기약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웹젠의 ‘헉슬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웹젠은 2007년 2월 더나인과 ‘헉슬리’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수출 계약금 및 미니멈 개런티만 3500만 달러에 달하고, 상용화 이후 3년 동안 발생하는 매출액의 22%를 로열티로 받기로 했다.
그러나 서비스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더나인과 웹젠은 '헉슬리' 국내 서비스 이후 중국 서비스를 진행하기로 합의했으나, 더나인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디션2’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판권을 보유한 와이디온라인은 2007년 5월 더나인에 800만불에 수출계약을 맺었다. 역시 현지에서 비공개테스트조차 진행된 적이 없다.
이들 업체의 경우 어느 시점까지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담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다. 서비스가 지연되도 국내 업체들이 보상을 받을 방법이 없다.
설사 문제 삼는다 하더라도 중국 업체들이 ‘판호’(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권리)를 이유로 내세우면 할 말이 없다. 중국 정부가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외산 게임들의 판호를 제한하면서 이를 획득하는 것이 표면상으로 힘들어졌기 때문. 서비스 업체가 협조는 고사하고 중국 정부를 향해 야료라도 부린다면 게임 서비스는 사실상 어려워 진다.
국내 업체 관계자들은 중국 회사들이 경쟁 업체에게 좋은 게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선점한 뒤, 흥행 가능성이 낮아지면 판호 등을 핑계로 고의로 서비스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2008년까지 중국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대형 퍼블리셔들이 한국 게임을 ‘입도선매’ 방식으로 가져갔다”며 “경쟁자들에게 좋은 게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일단 계약부터 체결해 놓던 관행이 이러한 결과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꼬집기도 한다. 이들 게임이 기대와는 달리 국내 흥행에 실패하면서 중국 업체에게도 부담이 됐다는 해석이다. 흥행에 성공했다면 이미 상용화까지 진행됐다는 것.
특히 이들 게임을 수입한 더나인이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서비스권을 넷이즈에 뺏기면서 매출이 급락하면서 국산 게임을 서비스할 여력이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마케팅 자금이 부족한 더나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산 게임을 서비스할 이유도 없다는 시각이다.
한 중국시장 전문가는 “더나인 입장에서는 굳이 한국에서 망한 게임을 거액의 마케팅을 들여 서비스 할 이유가 없다”며 “이들 게임은 대박이 터졌다면 중국서 서비스를 할 계약이었던 일종의 ‘보험’ 성격이 강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와 수출 계약을 체결할 시 계약금의 액수보다는 충실히 서비스를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라고 충고한다. 한국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계약에 있어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합의를 통해 되도록이면 서비스 일정을 명시하도록 권고한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상우 교수는 “국내 메이저 업체들이 중국 현지에 진출에 제대로 된 유통 질서를 만드는데 실패한 이상, 국내 업체들은 계약에 있어 ‘을’의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며 “중국 업체들이 계약서상에 서비스 일시를 명시하기를 싫어하겠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조항을 넣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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