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올드 게임 유저들이 신화적 영웅이야기의 게임을 플레이하고 때론 눈물 흘린 경험들이 있습니다. 한국 게임 역사에서도 90년대 ‘창세기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와 같은 패키지 게임들이 성공하면서 많은 유저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전의 패키지 RPG 게임들은 과거의 향수가 됐고 2011년 현재 국내에서는 수많은 RPG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제 국내에서는 예전과 같이 엔딩이 있는 하나의 스토리를 홀로 플레이하는 유저보다 동시에 여러 사람들과 같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최근에는 수백억원의 비용을 들여 제작된 대작 온라인 RPG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작 게임에서도 스토리가 빈약하고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RPG를 하면서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는 유저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개발자와 개발비용으로 게임을 제작하는데도 왜 RPG 장르에서는 잘 만들어진 스토리를 만나기 힘들어졌을까요.
게이머들은 스토리 때문에 게임을 하지는 않습니다. 역대 흥행 게임 순위를 보아도 게임 속 스토리 비중이 크지 않은 게임들을 상위권에서 많이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스토리가 꼭 명작의 필수조건이 아닙니다. RPG의 스토리가 유저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게임을 플레이 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준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온라인게임에서 새롭게 유저들을 자극시키는 동기들은 다양합니다. 게임 상에서 사람들이 모임으로 인해서 사회성이 생겨났고이제 온라인 RPG 게임에서는 직접 게임 내에 정치 시스템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 게임 밖에서 게임속 아이템이 현금 거래되면서 유저들은 게임 내 경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한 달에 아이템이 현금 거래되는 회수가 수만건을 넘기는 온라인 RPG 게임도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유저들은 이제 스토리 외에도 정치, 경제와 같은 현실적인 요소를 경험할 수 있게 됐습니다.
흥미롭게도 온라인 RPG에서는 정해진 스토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 유저들이 스스로 신화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일도 생겨났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리니지2’에서는 서버를 지배하던 혈맹의 압제에 맞서서 약 1년 동안 서버에서 여러 혈맹과 수많은 유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일명 ‘바츠해방전쟁’ 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는 PVP로 유명해져 마치 서사시와 같은 형태로 활약이 소문을 타고 영웅과 같은 대우를 받기도 했습니다. 일명 ‘용개’로 알려진 ‘Drakedog’ 라는 유저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유저들은 스스로 사건들을 정리해서 마치 역사서처럼 남기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며 게임 안에서 창조된 스토리를 즐겼습니다.
이처럼 온라인 RPG에서는 스스로 서사시적인 사건들을 발생시키기도 하며, 훌륭한 스토리가 아닌 다른 요소에 더욱 열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스토리가 게임을 더욱 빛내며 유저들의 재미를 향상 시킨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훌륭한 스토리는 게임에 쉽게 몰입하게 해주며, 게임이 제공하는 스토리가 전혀 없다면 유저들이 온라인 게임만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게임을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국내 게임 개발자들은 종종 유저들을 감동에 젖어 눈물 흘리게 하는 멋진 스토리를 가진 게임을 만드는 꿈을 꿉니다.
아쉽게도 잘 만들어진 스토리의 게임을 만드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빈약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성공을 보여주는 시장과 훌륭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비싼 비용 때문에 요즘 국내 온라인 RPG는 스토리보다도 정치와 경제 같은 온라인 RPG만의 새로운 요소들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게다가 국내에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 양성기관 조차도 없다시피 합니다.
게임 스토리에서 감동을 느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간혹 지금의 온라인게임이 주류인 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온라인게임으로의 변화는 시장이 이끌어 왔고, 시장은 또 다시 다르게 변화할 것입니다. 변화되는 게임의 흐름에 준비하는 것에는 여러 시도와 종류들이 있겠지만, 분명 온라인 게임에서도 훌륭한 스토리를 제공하는 것이 그 중 중요한 하나가 될 것입니다.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스토리를 가진 놀라운 RPG가 한국에서 나오기를 오늘도 꿈 꿔 봅니다.
-황선우-
씨드나인게임즈 개발실장
* 본 칼럼은 데일리게임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