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노리아가 개발하는 MMORPG '세븐코어'의 녹음 스케줄이 잡혔던 4일 합정의 한 스튜디오에서 성우 강수진씨, 안장혁씨, 조현정씨를 만났다.
첫 인상이 충격적이다. 평소 들어왔던 그들의 목소리와 실물이 쉽사리 연결되지 않기 때문. 이들 중 가장 선임격인 강수진(KBS 21기) 성우는 인기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 역으로 세련된 목소리와 음색으로 유명하다.'창세기전3' 크리스티앙, '스타크래프트' 아르타니스 역을 맡아 게이머들에게도 익숙한 성우다.
'얼굴이 명함'이라던 안장혁(MBC 11기) 성우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나이트엘프, '스타크래프트2' 유령 등에 출연, 중후한 목소리를 뽐냈다. 조현정(MBC 16기) 성우는 만화 '도라에몽'의 히로인 신이슬 역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친 바 있다.
오전 녹음 스케줄을 마치고 근처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첫 만남 후 으레 있을법한 적막은 없었다. 마치 입이 하나 더 달린 것 마냥 이들은 거침없이 자신 본연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배역을 위해 억지로 꾸미거나 다듬지 않은 진짜 목소리 말이다.
◆게임 성우, 애니메이션보다 어려운 작업
시작은 형식적인 질문이다. 게임 성우의 난이도를 물었다. 애니메이션이 등 타 콘텐츠에 비해 대사량이 짧은만큼 쉬울 것이라는 대답을 예상한 질문이다.
"게임 성우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에요. 애니메이션 등 서사가 있는 녹음의 경우 극의 흐름에 따라 목소리 톤 등 감정 조절을 하면 되지만, 게임 더빙은 짧은 시간에 전혀 다른 상황의 대사를 연출해야합니다."(강수진 성우)
예를들어 전쟁신에 삽입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다 평온한 멘트 녹음으로 넘어가는 경우, 감정 조절이 어렵단다.
강수진 성우는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녹음하는 성우는 어렵다. 감정 교류 없이 짧은 대사를 짧은 호흡에 담아야해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안씨도 "게임사들도 특정 성우만 쓴다. 그만큼 게임 성우가 내공이 필요하다는 작업"이라고 거들었다.
게임 캐릭터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녹음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캐릭터 이미지와 특성, 수행 역할 등 한정된 정보만으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우의 몫이기 때문이다. 강씨는 "성우와 의견을 조율하는 게임 디렉터의 역량이 크게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게임사가 성우에게 요구하는 수준도 점차 높아진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단다.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비웃음'을 요청한 정도 있었단다. 도대체 이 것은 무슨 소리인가.
◆게임 성우 반응 좋아, 때때로 결과물 못보기도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성우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된 캐릭터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성우들의 게임실력이 '형편없다'는 점 때문이다. 온라인게임의 레벨업이 쉽지 않아 자신이 녹음한 보스 몬스터까지 '진도'를 뽑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요즘 게임 너무 어렵다"던 조현정 성우의 최고 기록은 모 온라인게임에서 달성한 40레벨이 전부. 안장혁 성우는 "지난번에 내가 녹음했던 보스 구경좀 하려고 했는데 요즘 게임은 '파티'없이는 아무데도 못가더라"라며 '파티플레이'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안장혁 성우는 "그래도 우리 수준에 맞춰 게임 만들면 망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보니 마을 구석에 위치한 NPC가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전부다. 그것만으로도 흡족하단다. 안씨는 "내 목소리가 녹음된 게임 캐릭터를 보는 것은 좋더라. 내 목소리를 세뇌시킬 수 있으니까"라는 의미 심장한 말도 남겼다.
강수진 성우는 99년 참여했던 '창세기전3' 크리스티앙 배역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 그가 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주변 게이머들의 반응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란다.
◆좋은 성우의 자질은 연기력과 목소리
식사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성우의 자질이 화두에 올랐다. 중후한 목소리만으로 좋은 성우가 될 수 있을까. 강씨는 "목소리가 자동차라면 연기력은 엔진"이라고 했다. 성우도 연기자다. 연기력 없는 좋은 목소리는 실격이란 소리다. "외형은 벤츠인데 엔진은 티코인 성우가 최악"이라고 강씨는 강조했다.
성우의 연기력이란 무엇일까. 직접 확인해봤다. 오후 스케줄이 시작됐고 안장혁, 조현정 성우가 목소리 녹음에 들어갔다.
식사자리에선 거침없이 농담을 던지던 안씨의 표정이 바뀌었다. '세븐코어'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큰 도끼를 휘두르는 브루터스 종족. 안씨는 두 손에 보이지 않는 도끼가 들려진 마냥 포효했다. 녹음이 끝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던 그의 말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