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집필한 김정률 작가는 “10년이 넘는 작가생활 동안 온라인게임을 판타지소설로 각색해 보긴 처음”이라며, “잘 짜인 세계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걱정이 되면서도 색다른 시도에 설레기도 한 그런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우) 마니아인 김 작가는 “이 책은 판타지소설 독자뿐 아니라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삼았다”며, “나도 온라인게임을 좋아하기에 게임을 하면서 경험했던 장면들을 최대한 사실감 있게 책으로 녹여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2012년 흑룡의 해가 시작된 1월 테라 소설책을 들고 온 김 작가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 테라 재미있죠,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테라 꽤 재미있더라구요. 논타켓팅 시스템도 특출하고 특히 종족들에 대한 세부묘사가 탁월해 이를 글로 풀어내는데 수월했습니다.”
‘집필한다고 게임 못해서 어떡하냐’는 엄살 섞인 인사말에 ‘글쓰기 전후로 충분히 해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와우’ 열성팬인데 한동안 ‘테라’에 빠져 인스턴스 던전도 못 돌았다는 푸념도 나온다.
‘와우’가 스토리 위주로 오밀조밀하게 엮인 세계관이라면 ‘테라’는 확장성이 많은 큰 그림을 그린 세계관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와우’가 팀원들이 힘을 합쳐 레이드를 하는 게 제 맛이라면, ‘테라’는 몬스터를 몰아놓고 한번에 때려잡는 손맛이 일품이란다.
뛰어난 그래픽과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역시 후반 콘텐츠 부족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MMORPG는 게이머들이 갈등과 반목, 화해로 이어지는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콘텐츠 고갈을 막을 수 있는데 ‘테라’는 그 부분이 부족했다는 지적. 한 마디로 전쟁 콘텐츠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테라’에도 정치와 전장시스템이 있긴 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에는 실패했다. ‘와우’와 ‘아이온’에는 진영간 대립이 있고, ‘리니지’와 ‘리니지2’는 공성을 중심으로 한 길드전이, 최근 유행하는 AOS 게임들도 이용자간 대결이 있는데 ‘테라’에는 이러한 부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많이 아쉽죠. ‘테라’가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한국 게임사를 새롭게 바꿔 쓸 정도는 아니잖아요? 게이머들간에 커뮤니티를 강조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이 추가됐음 더 크게 흥행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 우연한 글쓰기가 천직이 되다
김정률 작가는 100만 명이 넘는 팬층을 보유한 인기 작가지만 그도 처음부터 판타지소설 쓰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가전제품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그였다. 판타지소설을 좋아해 자주 읽긴 했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생각을 아내에게 말하자 ‘한번 써보라’고 했단다.
그렇게 습작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더니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묶어서 책으로 내자는 출판사의 제의도 따랐지만 그는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기라고 생각했죠. 그냥 재미로 쓴 글을 책으로 내자고 하니 제 판단에는 이상했거든요. 분명 돈을 달라 라든가 보증을 서자라든가 요구가 뒤 따를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세네번 거절을 했는데 그래도 자꾸 제안을 하니 조심해서 해보자고 했고 지금의 이 자리에 서게 됐죠.”
김 작가가 재미로 썼다는 글은 판타지소설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소드엠페러’(2001년)다. 차원이동이라는 색다른 설정과 빠른 스토리 전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재미요소다.
이후 ‘다크메이지’, ‘하프블러드’, ‘데이몬’, ‘트루베니아 연대기’ 등 인기작을 집필했다. 특이한 점은 꽃미남이 등장하는 한국판 판타지소설의 공식이 김 작가의 책에선 깨진다는 것이다.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추한 남자가 만인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삼고파
“제 내면에 힘없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있나 봐요. 이상하게 사회 부적응자에게 관심이 가더군요. 지금 이 세상에서는 그들이 비난이나 멸시의 대상이 되겠지만 다른 세상에서는 다르잖아요. 카르고에서 아만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도 비슷합니다.”
김정률 작가의 말처럼 카르고의 주인공은 아만종족이다. 온라인게임 ‘테라’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종족이다. 우락부락하게 못 생긴 외형 때문이다.
그러나 김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아만종족이 매력이 많다는 설명이다. 소외됐던 카르고가 동료들을 만나 리더십을 발휘하고 모험을 즐기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매력 있는 아만종족이 이 소설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랑을 받길 바래요. 필드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김 작가의 바람이 닿은 것인지 ‘카르고’ 소설이 연재되면서 아만종족의 비율이 소폭 증가했다. 한 게이머는 “소설을 읽으면서 게임 속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서 주인공인 아만종족을 선택했다”며, “소설 덕에 게임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고 글을 남겼다.
◆ 한국판 해리포터 꿈꾼다
흑룡 해를 맞은 김정률 작가에게 올해 소원을 물었다. 주저하던 김 작가는 해리포터 이야기를 꺼냈다. 왜 한국에서는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소설이 나올 수 없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는 바람이다.
“한류가 전세계적으로 열풍이잖아요? 그런데 판타지소설만은 그렇지 못해요. 해외 수출은 커녕 아직 주류문학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고 싶죠. 다행히 테라가 해외에서 수출되고 그곳에서 인기가 좋으면 제 책도 해외 게이머들에게 소개되지 않겠어요? 그런 희망을 품고 있어요.”
판타지 세계관이 서구에서 시작된 것, 그래서 대중에게 익숙치 않은 단어들이 등장하는 점 등이 장르소설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해리포터 이야기는 전형적인 서양 판타지 소설이지만 전세계 독자들을 열광케 했다. 판타지소설의 핵심가치인 ‘재미’를 잘 부각했기 때문이다.
“통속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판타지소설의 본질은 철저히 재미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속에 권선징악 같은 교훈을 담을 수는 있지만 그 전달 과정이 지루해지면 안되죠. 카르고도 가볍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예요. 동료들과의 의리, 우정 등 교훈적인 요소도 물론 있구요.”
김정률 작가는 단권으로 출간된 ‘카르고’ 이야기를 더 풀어나가고 싶다 했다. 열린 결말로 끝을 맺었기에 추가로 에피소드를 붙여나가는 것이 가능하고 게임 속에서 경험하는 일들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 말했다.
“제 책이 테라 인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래요. 그리고 테라가 해외에서 승승장구하며 한국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시켰으면 좋겠어요. 카르고 같은 훌륭한 아만종족을 게임 속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할께요.”
[데일리게임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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