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많은 소리를 만든 주인공은 엔씨소프트의 송호근 사운드실장이다. '리니지'부터 게임의 '청각'을 담당해온 송 실장은 2007년 '블소' 사운드 디렉터를 맡아 5년이 넘도록 '블소' 소리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22일 삼성동 엔씨소프트 R&D센터에서 송 실장을 만났다. '소리의 달인'인 탓일까. 그의 목소리도 청산유수다.
◆블소, 소리로 역동성 느낄수 있을 것
무엇을 위해 '블소'는 다른 게임의 3배가 넘는 음향을 사용했을까. 송 실장은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짤막한 답을 꺼냈다.
"지금까지 나온 MMORPG 중 캐릭터의 모션에 따른 음향 효과를 살린 게임은 없었습니다. 전투의 타격감을 살리는데 음항 효과를 치중하다보니 일반적인 모션에 따른 음향 효과는 생략되는 사운드로 여겼기 때문이죠"
다른 게임에서는 불필요하다던 소리까지 '블소'는 모두 살려냈다는 것이다. '블소'는 캐릭터의 모션이 중요한 게임이다. 주인공은 게임 속에서 많은 NPC들과 역동적인 모션을 주고받는다. 시각적으로도 클로즈업 연출이 빈번하다. 걸맞는 소리가 없다면, 활기찬 캐릭터를 맛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활시위를 당길 때 팽팽한 긴장감과 재질이 서로 다른 무기가 맞부딪힐 때의 쾌감 등이 좋은 예이다. 각기 달리 연출한 음향효과로 극대화된단다. 송 실장은 "음향은 물론 미세한 음향, 메아리 효과까지 모두 연출한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배경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거리다. 엔씨소프트가 전작에서 판타지를 다룬 것과 달리 '블소'는 동양적 세계관을 차용한 무협 게임이다. 음향은 물론 배경음악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송 실장은 고민했던 것을 털어놓았다.
"'블소'가 무협 게임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동양적인 색채만 강조하면 촌스러운 느낌이 날까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동서양 퓨전의 냄새를 살려야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음악은 게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송 실장에 따르면 '블소'에서 배경음악은 동서양의 비율이 2대8로 나눠진다. 피리 등 동양 냄새가 나는 악기를 사용해 동양적인 색채를 2할만 채웠다.
그 2할을 채운 것이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서 세계적인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와시로 타로다. 이와시로 타로는 '바람의검심', '귀무자2' 등 유명 재패니메이션과 게임을 비롯해 '살인의추억', '적벽대전' 등 영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2할이 갖는 무게가 가볍지 않다. 송실장은 그가 작업한'귀무자2' 음악에 깊이 매료됐다고 운을 뗐다.
"이와사로 타로는 동양의 무사도와 복수를 소재로 한 음악을 주로 작업해왔습니다. 비장하면서도 슬픈 감정을 실어내는 작곡가죠. 특히 한(恨)의 정서를 잘 표현합니다"
'블소'는 스승과 사제의 목숨을 앗아간 악당 '진서연'에 대한 복수의 여정을 그린 게임. 이와사로 타로와 '블소'는 딱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엔씨소프트같은 회사 전세계에 없어
화제가 '블소'에서 엔씨소프트로 바뀌었다. 송 실장이 소속된 엔씨소프트 사운드실 직원은 40명.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그럭저럭 운영하거나, 아예 사운드팀이 없는 타 개발사와는 크게 다르다. 송 실장은 전세계적으로도 엔씨소프트같은 환경을 제공하는 업체는 없다고 치켜세웠다.
"해외 대형업체인 EA의 경우도 각 개발조직별로 사운드팀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엔씨소프트처럼 단일화된 사운드팀을 운영하는 업체는 없습니다"
엔씨소프트 사운드팀은 회사에서 개발하는 모든 게임의 소리효과를 만든다. 이로 인한 시너지효과도 크다.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더욱 완성도 높은 소리를 연출할수 있다는 것이다.
소리의 완성도에 대한 송 실장의 욕심도 클 수밖에 없었다고. '블소' 제작 초기부터 사운드실이 깊이 관여했다. 일반적으로 게임이 완성단계에 이르러야 마무리 과정으로 소리를 작업하던 업계의 일반적인 통념에서 크게 벗어난다.
"'리니지'와 '리니지2'의 음악을 작업해놓고 보니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막상 결과물을 보고나니 사운드 제작자로서 아쉽고 섭섭한 부분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죠"
수동적으로 사운드를 제작했던 입사 초기와 달리 송 실장은 사운드실도 적극적으로 게임 기획에 관여할 필요성을 느꼈단다. 개발 과정부터 사운드실이 관여한다면, 누락되거나 놓칠수 있는 효과를 하나라도 덜 빠뜨릴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송 실장은 "지금은 사운드실 팀원들이 전부 기획자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며 웃었다.
5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단다. 많고 많은 에피소드 중에 송실장이 기억을 들춰냈던 것은 몬스터 효과음 녹음이었다. '블소'에 등장하는 몬스터 30%는 사운드팀원의 육성이란다.
"사운드팀원이 녹음실에 들어가 자신이 낼 수있는 가장 기괴한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에 여러 동물 소리랑 섞어서 몬스터 효과음을 만드는거죠"
'블소'에 동원된 성우만도 100여명에 육박한다. 송 실장은 "워낙 많은 성우들이 '블소'에 출연하다보니 성우들 사이에선 '블소'에 출연한 성우와 그렇지 않은 성우로 갈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송 실장은 "소리없는 영상으로는 아무런 감동도 느낄수 없다. 소리가 뒷받침되야 비로소 희노애락을 느낄수 있다"며 "지금까지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소리를 표현하려고 한다.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