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마찬가지다. 배경 그래픽 없는 게임은 상상할 수 없다. 아름다운 배경으로 인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살아 숨쉰다.
'블레이드앤소울'(이하 블소)에 생기를 불어넣는 조용환 배경리드아트디렉터를 29일 엔씨소프트 R&D센터에서 만났다. 조 디렉터는 초창기 '블레이드앤소울' 프로젝트부터 합류한 배경그래픽의 달인. 입사한지 11년이나 된 '엔씨맨'이다. 이쁘장한 캐릭터는 체질에 안맞아 풍경화만 줄곧 그려왔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블소 배경, 한국적 정서 담았다
조용환 디렉터는 어떤 관점에서 동양 무협게임인 '블소'의 배경을 그렸을까.
"어려웠죠. 무협은 영화나 소설로만 접했지 게임은 처음이었습니다. 블소가 동양풍 게임인만큼 한국적 색채를 넣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습니다"
실감나는 무협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조 디렉터는 우선 대중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영화나 무협지 등 각종 미디어에서 친숙한 중국 무협에 기본을 뒀다. 블소가 무협을 표방한만큼 기본에 충실했다는 이야기다. 조 디렉터는 "난다긴다 하는 고수들이 모이는 강호의 객잔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적 색채를 어떻게 배경에 녹여내느냐는 숙제는 쉽게 풀기 어려웠단다. 무작정 전통 건축물이나 사물을 배경으로 그렸다가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美)는 하루이틀 공부해서 디자인할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어설프게 접근했다간 오히려 게임의 풍미를 해칠것이란 우려가 들었습니다"
고민끝에 조 디렉터는 우리나라의 자연 풍경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블소'에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모습을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가령 강원도 동해바다의 경우 민박집에서 바닷가까지 가는 길목 사이에는 소나무숲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풍경을 '블소' 배경 디자인에 곳곳에 녹여냈다는 말이다.
◆경공이 조 디렉터 울린 사연
조 디렉터는 '블소' 배경디자인이 게임의 주연이 아닌 탓에 남다른 고생을 겪기도 했다. 특히 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지역인 무일봉은 이들의 눈물(?)이 배어있는 장소라고.
현재 '블소'에서 무일봉은 탁 트인 드넓은 공간으로 구현돼 있다. 초반부 기획에서는 좁디좁은 땅덩어리였다. 만화 '머털도사'에 등장하는 누덕봉을 모티브로 삼았다. 기획팀에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왔다. 이 좁디좁은 무일봉에서 달리고 나는 '경공'을 도입하겠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일봉은 이용자들의 경공을 시전하기엔 너무 좁았습니다. 완전히 갈아엎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배재현 PD에게 추가 말미를 얻어낸 조 디렉터는 처음 만들었던 무일봉을 죄다 뒤엎고 새로운 무일봉을 그렸다. 그것이 지금 1, 2차 비공개테스트에서 이용자들이 접한 탁 트인 무일봉이다.
◆게임의 배경, 연극 무대와도 같아
일반적으로 개발자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게 팀장이 해야할 중요한 업무다. 하지만 조 디렉터는 정 반대로 개발자들의 넘치는 의지를 적절히 억눌러야(?) 했다고.
"배경 그래픽은 말 그대로 배경이다보니 게이머들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대신 캐릭터와 같은 주요 오브젝트를 돋보이게 만듭니다"
남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자신을 낮춰야하는 운명을 가진 것이 게임의 배경이란다. 조 디렉터가 30명에 이르는 '블소' 배경팀원들의 의욕을 '억눌러야' 하는 이유다. 의욕에 넘쳐 바위나 나무 디자인에 너무 공을 들이면 전체적인 게임의 풍경을 해치고 만다.
"3000개가 넘는 배경 오브젝트를 '우주 최강'으로 디자인했다간 캐릭터도 죽고 배경도 죽어요. 주요 포인트로 잡은 특정 오브젝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억눌러야 합니다."
이만하면 배경디자인은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경그래픽은 게이머들이 주의깊게 바라보지도 않는다. 자신이 육성하는 게임캐릭터에 관심을 둘 뿐이다. 어떻게 보면 배경은 찬밥 신세다.
"게임의 배경디자인은 연극이나 뮤지컬의 무대와 같다고 봅니다. 연극이 진행될때마다 무대도 다양하게 변하면서 극을 이끌지 않습니까? 게임에서의 배경 역시 그렇습니다"
조 디렉터는 그렇게 덤덤하게 말했다. 무대에 오른 연기자가 더욱 실감나는 연기를 펼치는 것. 자신을 낮춰 빛나는 별을 만든다는 말이다. 문득 영화 '라디오스타' 안성기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곤아.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거야."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