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인생 20년, ‘삼품’에 녹이다
짧게 자른 머리, 뛰어난 말솜씨. 10여년을 봐온 김태곤 상무는 늘 한결 같은 모습이다. 외모만큼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게임에 대한 열정. 새로운 시도에 늘 목말라있고 목표가 정해지면 바로 전력질주다.
‘삼품’을 보면 그 동안 개발자 ‘김태곤’이 걸어온 길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게임에는 역사와 지리가 있다. ‘임진록’, ‘거상’, ‘군주’ 속에는 조선시대 역사가, ‘아틀란티카’에는 세계지도가 녹아있다. ‘역사적 사실보다 더 그럴듯한 이야기는 없다’는 개발철학을 가진 그가 새롭게 도전한 것은 아시아인이면 다 안다는 삼국지 이야기다.
“다 아는 이야기라서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게이머가 주군이 되어 삼국시대의 영웅들을 수하로 두고 천하통일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야기 구조는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역동성이 있습니다. 삼국지 이야기를 게임으로 제대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삼품’의 기획의도 입니다.”
‘삼품’은 김태곤 상무가 만든 기존 게임들의 정수가 모두 녹아있다. 더 정교해진 이야기 구조와 발전된 턴 방식 전투,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제작 시스템에 경영 시스템까지 과거 게임들의 장점이 버무려진 느낌이다.
“아무래도 최신작이니까 모든 경험이 다 들어갈 수 밖에 없었겠죠. 거기에 좀 더 새로운 시도, 멀티 플랫폼 같은 것을 더하는 거구요. 지금까지의 결정판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다음 게임이 되면 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새로운 게임을 만들 때는 과거 만든 게임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게임만 염두에 두고 개발하는데 스타일 같은 것이 묻어나서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삼품’이 출시되는 올해가 김 상무 개인에게도 중요한 해다. 올해로 김 상무는 게임개발 20년을 맞는다. ‘그만하면 장인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는가’라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오래된 것만 놓고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올해가 20년이 되는 해이니 잔치라도 벌여야 하나요? ‘삼품’이 잘되면 떡이라도 한번 돌려야겠습니다.”
◆ 삼국지 이야기, ‘삼품’ 하나면 끝
김태곤 상무는 ‘삼품’을 개발하면서 이야기 전달에 가장 공을 들였다.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들은 많았지만 삼국지 이야기를 이 게임만큼 잘 녹여낸 게임은 드물다. 책에서 보던 ‘황건적의 난’, ‘도원결의’ 같은 삼국지 내용들이 눈 앞에서 동영상으로 펼쳐진다. 주요 장수들의 사연은 캐릭터가 움직이는 연출로 풀어냈다. 보고만 있어도 삼국지 내용을 알 수 있다.
“책에서 나오는 지문 하나하나의 느낌을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퀘스트 방식으로 텍스트로 내용을 전달하면 빼곡한 글자를 다 읽어보고 넘어가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중요한 대목에서는 소리 하나라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 이야기 전달코자 했고 단어에도 색깔 같은 것으로 강조했습니다.”
이야기 전달을 위해 김태곤 사단은 다양한 사례를 비교 분석했다. 동영상 재생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인 2~3분으로 제한했고, 영상에 나오는 글자도 2줄을 넘어서도록 않게 했다. 한 눈에 내용을 다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2차 테스트에 구현된 분량은 ‘동탁의 최후’까지다. 10권짜리 삼국지 기준으로 3권 정도의 양이다. 하지만 주된 이야기와 별개로 게이머들은 전쟁을 통해 삼국통일을 할 수 있도록 해뒀다. 다른 군주의 영지와 전쟁하는 재미, 영웅 한명 한명의 숨겨진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2~3달은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처음부터 대하 드라마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삼국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비 삼형제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손견과 조조 등 영웅들의 이야기도 주요 내용으로 다뤄집니다. 삼국지가 위나라에 이은 진나라로 통일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나지만 ‘삼품’은 게이머들 간의 이야기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 PC와 스마트기기 연동, 한국 게임의 경쟁력 될 것
‘삼품’은 완전한 의미에서의 멀티플랫폼을 지원한다. PC로 즐기는 버전 그대로 스마트폰이나 테블렛PC에서도 구동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삼품’에는 낯선 면이 많다. 설치도 필요 없고 언뜻 보기에는 웹게임 같다.
그러나 게임을 해보면 콘텐츠와 완성도는 일반 MMORPG를 넘어서는 것을 알 수 있다. ‘삼품’에 매달린 개발자만 120여명, 개발기간도 3년이 넘어설 정도로 대작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시작은 쉽지 않았다. 웹게임을 개발한 경험이 없었고 선택한 유니티엔진에 대한 레퍼런스도 부족해서다. 김 상무는 ‘맨땅에 헤딩했다’고 말할 정도로 유니티 본사와 다양한 실험들을 했다고 했다.
‘삼품’은 처음부터 멀티플랫폼으로 제작됐다. 3년 전 스마트기기 시대가 나올 것을 미리 예측한 것이다.
“그때는 이르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의 분명한 목표는 기존 게임과의 분명한 차별성을 추구해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PC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삼품’에서 스마트기기는 PC의 보완재가 아니다. PC나 스마트폰 버전이나 같다. 다른 플랫폼을 사용하는 게이머들을 모아야 시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김태곤 상무의 생각이다. 또한 이것이 ‘남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온라인게임으로 세계를 선도했던 한국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일부 기능만 스마트폰으로 구현한다면 시장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죠. PC로 100만명이 즐긴다고 가정한다면 스마트폰 이용자 100만을 모으도록 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 어떤 플랫폼으로 게임을 하냐는 의문조차 들지 않게 두 플랫폼이 격차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죠.”
중국 역사인 삼국지를 소재로 한 만큼 중국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전 세계를 방만하게 공략하기 보다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문화권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개발인생 20년, ‘삼품’ 출시를 앞둔 김태곤 상무의 출사표는 한중 정벌에 나서는 제갈량의 그것처럼 비장했다.
“가슴속에 100번 넘게 출사표를 쓴 거 같네요. 무엇보다 매일 늦은 시간 고생하는 동료들이 일하는 거 보면서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매일 다집니다. 과거의 성공은 다 잊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삼품’ 하나 입니다. 지난해 긴 시간 동안 옳은 길을 갔는지에 대한 고민이 조만간 그 결과를 드러내겠죠. 평가를 기다리겠습니다.”
[데일리게임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