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걱정이 됐다. 그러면서도 이 걱정이 비단 나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개발자도 아니면서 '디아블로3'의 방향성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이머는 이땅에 수십만은 될 터다.
모두의 기대 속에 '디아블로3'가 15일 출시됐다. 12년만에 나타난 이 악마같은 게임이 전작 이상의 '악마성'을 보여줄 것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 서둘러 접속했다.
접속은 쉽지 않았다. 이미 많은 언론이 보도를 통해 질타했듯 접속 장애 현상이 장기화됐기 때문이다. '디아블로3' 커뮤니티에는 블리자드를 성토하는 글이 수백개씩 쌓여갔다. 그들의 속내가 이해가 갔다. 그들 역시 12년만에 찾아온 이 게임이 단순한 '추억팔이' 게임인지 아닌지 증명해보고 싶어 애간장이 다 녹았겠다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접속한 '디아블로3'. 직업 선택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게 달랐다. 해머를 돌려 카우레벨을 휩쓸던 팔라딘도, 가이드애로우를 날려 원거리에서 상대를 유린하던 아마존도 없었다. 익숙한 존재는 야만용사(바바리안) 단 한명 뿐.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되버린 그를 선택해 게임에 임했다.
◆직업별로 분화된 전투 자원 체계
모든 전투 자원이 '마나'로 통일됐던 전작과 달리 '디아블로3'에서는 5명의 직업 모두가 각기 다른 전투 자원으로 싸운다. 야만용사는 분노를 사용한다. 처음에는 제로(0)로 시작하는 분노는 적을 공격하거나 공격당할때 채워진다. 자원이 변경되면서 대표 기술로 손꼽히는 휠윈드는 전작처럼 마구 남발할수 없게 됐다.(기술과 룬 조합을 통해 무한에 가깝게 사용할수는 있다)
처음 이 분노 시스템을 접했을 때 야만용사가 약체 캐릭터가 되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됐다.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서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인 전사 역시 분노를 사용하는 캐릭터로 1:1에선 매우 약체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분노가 최고치로 차오른 '와우'의 전사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은 강력한 힘을 자랑하지만 이 분노 수급은 맘먹은 것처럼 쉽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디아블로3'의 야만용사가 우려된 것.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야만용사는 체감상 손쉽게 분노를 채울수 있다. '디아블로3'가 핵앤슬래시 게임인만큼 몇번만 공격해도 시원하게 분노가 찬다. 넘쳐나는 분노는 그대로 적들에게 쏟아부으면 된다.
전작과 다른 점은 또 있다. 스킬트리 시스템을 통해 캐릭터를 육성하던 전작과 비해 확 달라진 점이기도 하다. '디아블로3'에서는 레벨이 올라가면서 순차적으로 모든 스킬이 개방된다. 그렇다고 개방된 모든 스킬을 마구 쓸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스킬 중 한번에 사용할수 있는 스킬은 단 6개. 1~4까지의 단축키와 마우스 좌우버튼에 각각 하나씩의 스킬만을 등록해 전투에 임할수 있다.
단순한 변화같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휠윈드'만 돌면 끝났던 전작과 달리 '디아블로3'에서는 머리를 써야 한다. 보스전에서 '휠윈드'만 믿고 덤볐다간 죽음을 면키 힘들다. 상황에 맞게, 목적에 맞게 최선의 6개 스킬을 배치한 후 전투에 임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디아블로3'에서는 각 스킬마다 각기 다른 효과를 가진 룬을 하나씩 새길 수 있다. 어떤 룬을 새기느냐에 따라 해당 스킬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령 야만용사 인근에 위치한 적들을 동시에 기절시키는 기술인 '발구르기'는 특정 룬을 박을 경우 기절된 적들이 야만용사 주변으로 끌려오게 된다. 산개된 적들이 한점에 뭉치는만큼 일망타진하기 훨씬 용이해진다. 스킬 외에도 룬 효과까지 고려해 6개 스킬을 배치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컨트롤이 뛰어난 이용자에게는 이점이 아쉬운 대목일수도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스킬을 사용하기에 6개 스킬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게 스킬을 재배치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다소 귀찮게 느껴질때도 있다.
◆다양해진 전투 패턴, 상호 인터렉션하는 추종자에 의외의 재미
그렇다면 전투는 어떨까. 한마디로 요악하면 '디아블로3'에서의 전투는 전작과 크게 다를바 없다. 적어도 필드 전투는 그렇다. 넓은 필드를 무대로 적들과 치고받는 양상은 전작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는 크게 달라졌다. 단순히 서서 보스와 '다이다이'를 했던 전작과 달리 '디아블로3'에서는 수시로 움직여줘야 한다. 보스에는 이른바 전투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움직이고 공격해야 무사히 보스를 쓰러뜨릴수 있기 때문이다.
2막의 최종 보스 '베리알'의 경우 이같은 패턴이 극대화된 경우다. 이 보스와 싸우는 동안 전투 양상은 총 3번 바뀐다. 그때마다 '베리알'의 공격방식도 달라진다. 보스의 공격방식을 인지하고 안전한 장소로 수시로 움직이지 못하면 누적되는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여타 MMORPG를 통해 레이드 콘텐츠를 많이 즐겨온 게이머라면 이해가 빠를 부분으로 보인다.
'디아블로3'를 하면서 예상치 못한 재미를 느꼈던 부분이 있다. 바로 추종자다. 추종자란 전편에서도 선보였던 이른바 '용병'시스템으로 기사단원, 건달, 요술사 등 세명의 용병을 고를 수 있다.
전편과 다르면서 재미를 느꼈던 부분은 이 추종자들이 감정을 실어 말을 한다는 것이다. 복잡미묘한 감정선도 감지된다. 잠자코 전투를 돕던 요술사가 문득 야만용사에게 "오빠같은 친숙함을 느낀다"며 뜬금없이 말을 걸어왔다. 평생 전투만을 알던 우리의 야만용사는 "연애 상담은 안한다"며 무심코 대답한다.(시영준 성우의 연기력이 압권이다) 사색이 되어 황망히 말을 거두는 요술사의 감정이 그대로 실려왔다. 그러고보니 야만용사는 전작에 이어 이번작에서도 여전히 홀몸일까.
추종자들끼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게임을 하다보면 두명의 추종자를 함께 거느릴 때가 있다. 수시로 요술사에게 '작업'을 거는 건달의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새침한 말투로 건달의 작업을 거절하는 요술사를 보는 것은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PvP는 언제?
'디아블로3'는 전작에 비해 많은 부분이 바뀌거나 발전한 게임이라는 결론이다. 고사양 그래픽으로 중무장한 최신 MMORPG에 비해 그래픽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디아블로' 특유의 음침한 세계관을 잘 묘사했다. 최적화도 잘되있어 어지간한 PC로도 무난히 게임을 이용할수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디아블로' 시리즈의 꽃인 PvP 콘텐츠를 즐겨보지 못했다는 정도다. 아직 미구현된 PvP 콘텐츠는 현재 시점에서 왈가왈부할 단계가 아니다.
'디아블로3'의 PvE 콘텐츠는 합격점이다. 관건은 PvP. 블리자드는 밸런스상 문제를 이유로 '디아블로3' 정식 출시때 '투기장'을 배제했다. 보완에 보완을 거쳐 출시될 이 투기장이 'pala pk' 방 이상의 재미를 안겨주길 바랄 뿐이다. 'pala pk', 'baba pk'같은 방을 만들어 '질'싸움(팔라딘의 스킬 중 하나)을 벌이거나 휠윈드 한타 싸움을 즐기던 바바리안들은 모두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