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규제’라고 말하면 타율규제를 의미하고 자율규제를 말해 본 적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인터넷산업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자율규제의 역사가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역사가 오래된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도 진정한 자율규제가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정부와 국회가 요구하거나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행하는, 사실상 자율규제의 탈을 쓴 타율규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는 타율규제가 당장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에 가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타율규제는 스스로 느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만 모면하자는 심리에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타율규제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잘 아는 ‘셧다운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제도는 청소년보호라는 매우 좋은 취지에서 출발하였습니다만, 인터넷의 속성 상 온라인게임 외에 다른 게임이나 해외게임으로의 이용자 이탈을 유도할 수밖에 없으며, 산업에 인위적인 장벽을 쌓아 중소기업의 진출을 막고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을 늘리는 심각한 왜곡을 초래했습니다. 외국인의 눈에는 OECD에 가입돼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개방된 선진사회에서 온라인 통금을 실시한다는 것이 해외토픽감인 것입니다.
저는 청소년보호라는 큰 목표에 결코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부나 국회가 여론의 눈치를 보기 위해 단기간에 효과 만점인 셧다운제와 같은 손쉬운 ‘차단’ 정책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 뿐입니다. 이로 인해 항상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일단 “막고 보자”는 일차원적 정책이 앞으로도 줄을 잇지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저는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을 이용자와 기업 스스로가 찾도록 그 책무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충격이 덜하고 가장 부드럽게 연착륙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자율규제는 그러한 의미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인터넷에 대한 불신은 여전합니다. 그러다보니 이용자와 기업은 자율규제를 경험할 기회가 없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선진사회는 국가의 공권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시민사회 스스로의 믿음에서 해법을 찾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율규제는 단 한 번에 달성될 수 없습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잘 되도록 조심스럽게 지켜봐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