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령(본명 김대현)은 인터넷 개인방송이 낳은 톱스타다. 방송만 켰다하면 수백 명의 애청자가 그의 입담을 듣기 위해 몰려든다. 남들은 따라하기도 힘든 절정의 게임 실력을 뽐내면서도 쉬지않고 쏟아내는 그의 '드립'에 빠져든 이들도 수두룩. 길거리에서 목소리만으로 그를 알아보는 팬들이 있을 정도다. 이만하면 아이돌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대 맨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는 '신비주의'는 그만의 매력포인트.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한다. 가면 속에 가린 그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방송에 대한 열정을 발판삼아 더욱 큰 꿈을 그리고 있다는 인기 BJ 대정령을 만났다. 예능프로 무한도전과 노홍철을 존경한다던 대정령은 자신만의 방송 철학을 갖춘 생각있는 젊은이였다.
◆"어떻게 시작했냐면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몇 번의 천금같은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항상 우연히 찾아온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한 행동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대정령의 꿈도 원래는 방송과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도둑을 '때려잡는' 경찰을,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게임 기획자를 꿈꿨단다. 1년의 나이를 더 먹으면서 세상의 높은 장벽을 체감한 그는 장래 희망을 급선회한다. 바로 '마술을 잘하는 바텐더'였다. 독특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항상 '웃긴 놈'으로 통했어요. 평소 열심히 연구하던 마술로 친구들을 놀래키는것을 특히 좋아했죠. 두 특기를 모두 살릴 수 길을 찾다보니 마술로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바텐더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방송과 연을 맺게된 이유도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마술 연습을 해보기 위해서였단다. '대정령'이라는 닉네임을 지은 것도 이때다. 당시 즐겨하던 온라인게임 '리니지'에 나오는 몬스터 정령에 '대'(大)자를 붙여 지은 것이 바로 대정령. 하지만 그는 이 닉네임에 대한 아쉬움이 많단다.
"오타쿠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원래는 김대현 제 본명을 그대로 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누가 이미 선점했더라구요. 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김대현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렇게 마술 방송을 시작한 대정령. 방송이 주는 남다른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술을 위해 시작한 방송이 나중에는 방송을 위한 마술로 변해갔다. 무심코 던진 럭비공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셈. 이왕 할 방송, 마술보다 판이 더 큰 게임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면서 그의 방송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정령을 스타덤으로 올려준 '메탈슬러그' 방송도 빼놓을 수 없다. 자로 잰듯 신속 정확한 공략과 모터를 단 마냥 쉴새없이 쏟아지는 입담에 그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됐기 때문. 메탈슬러그 방송에 힘입어 대정령은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른다. 많아야 10명만 시청하던 그의 방송은 수백명이 들락거리는 메이저 급으로 급성장했다. 대정령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회고한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하나. 제 안에 가득찬 기름을 메탈슬러그 방송을 통해 불붙였다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문자 그대로 폭발적었어요"
◆멘트 기록한 종이 빨래줄에 걸어놔
천재형과 노력형. 굳이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대정령은 후자에 속한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대정령의 유쾌한 드립의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와 관찰의 결과다. 그는 자신만의 개그 철학을 쏟아냈다.
"개그에도 공식이 있어요. 소재가 다르더라도 개그 공식만 지키면 반드시 웃길 수 있다는 이야기죠. 또 방송에서 뜬금없이 사용해 사람들을 웃기는 멘트가 있거든요? 이것들도 사실 다 외운거예요. 중학교때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별별 요상한 것들도 다 외우기 시작했지요"
지금도 길을 걷다가 어감이 재밌거나 독특한 건물 간판을 발견하면 빼놓지 않고 메모지에 적어놓는단다. 이를 한데모은 '멘트 메모집'까지 있을 정도. 방송 시작전에는 항상 이를 훑어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강원도 횡성 자택에도 이같은 노력이 묻어나 있다. 할아버지와 삼촌이 직접 지었다던 자택 2층에 차려진 그의 스튜디오에는 한 줄의 빨랫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빨래줄에 각종 개그 멘트들이 적힌 A4 용지들을 달아놨어요. 방송을 하다 개그가 끊길것 같다 싶으면 슬쩍 '컨닝'만 하면 되는거죠. 두 세명밖에 모르는 극비 정보예요"
대정령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가면을 쓰게된 이유도 알고보면 고품질 방송을 추구하기 위한 그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며 방송을 진행하던 타 BJ들과 달리 그는 처음부터 신비주의를 고수했다. 그래야 극한의 재미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제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상상을 펼치게되요. 목소리에 어울릴법한 얼굴을 떠올리며 방송에 빠져든다는거죠. 그런데 얼굴을 보여주면 이런 재미가 없어져요. 왜 얼굴하고 목소리가 전혀 매치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같은 맥락이죠"
온게임넷 'G맨 게임종결자' 패널로 출연하면서도 이같은 전략은 계속해서 이어갔다. 맨얼굴을 드러내라는 제작진들도 대정령에게는 두손두발 다 들었다고. 그렇게 매번 다양한 가면을 쓰고 방송에 출연한 대정령을 가장 만족시킨 한 가면이 바로 지금까지도 늘 쓰고다니는 하얀 가면이란다.
◆돈보다 방송, 곧죽어도 방송
대정령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TV에서는 유료 아이템 '별풍선'을 BJ에게 선물할 수 있다. 이는 BJ들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같은 별풍선에 대한 대정령의 평소 생각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별풍선만 추구하는 BJ는 결코 방송의 주인공이 될 수 없어요. 대신 별풍선을 쏘는 시청자가 주인공이 되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결국 방송이 별풍선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립니다. 오늘 만 개를 받았으면 내일도 만 개를 받아 내겠다는거예요. 그러면 시청자들과의 사이도 멀어지죠. 결과적으로 방송의 질은 낮아집니다"
무작정 별풍선을 추구하기보다 BJ가 우선인 재미있는 방송을 만드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개인방송을 즐겨보는 시청자와 BJ 상당수가 10대들이다 보니 쉽게 지켜지기 힘든 결론이기도 하다. 대정령은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는 '어르신'스러운 말도 했다. 남다른 사고뭉치였던 자신도 20대에 접어들면서 나름 철이 든 것 같다는 '사족'도 굳이 보탰다.
"가끔 '유명해지고 싶어요'라는 쪽지가 옵니다. 그럼 전 '한심해요'라고 답해줍니다. 정말 대놓고요. 유명해지려고 방송하면 안되요. 재미있게 방송하니까 유명해지는겁니다. 공들여 방송에 임하면 그에 걸맞는 시청자들이 찾아오기 마련이에요"
스물 세살의 대정령. 그는 가슴 한켠을 통해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다. 더 큰 무대, 공중파 예능 프로에 진출해 그동안 축적한 내공을 아낌없이 풀어내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정령은 오늘도 '빅재미'를 시청자들에게 안겨주기 위해 분주하다.
"방송이 너무 재밌어요. 그냥 재밌어요. 시청자수가 0명이 될때까지 개인방송을 하겠다는 약속. 끝까지 지킬 겁니다. 제가 정말 진짜로 공중파에 진출하더라도 말이죠"
인터뷰 말미에 돌연 그가 공약을 내걸었다. 최근 예능 프로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바로 그 공약 말이다.
"만약 제가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가 하나 더 생긴다면 그 프로에서 가면을 벗고 맨 얼굴을 공개할 의향이 있어요. 전국의 방송사 예능국 PD 및 작가님들, 사랑합니다"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