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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순진한 넥슨, 뻔뻔한 정치인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옛 말이 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한 행동이 자칫 자두(오얏)를 훔치는 행위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잘못 받아들일 수 있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이다.

지난 주 넥슨은 좋은 일을 하고도 게임업계로부터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순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해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래도 더 조심했어야 했다.

사건은 이렇다.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강지원 변호사가 16일 '4대 중독 관리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4대 중독법 입법화를 지지하는 10만 명의 서명도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 의장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넥슨의 자회사인 네오플은 그 다음날 강지원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푸르메재단에 30억원을 기탁했다. 어린이 재활병원을 짓는데 사용하란 것이다.

두 사건 간에 연관성은 사실 없다. 속된 말로 정치적으로 '조지니' 돈을 가져다 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해한다고 해도 넥슨은 할 말이 없다. 오해할 만한 모양새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게임이 포함된 4대 중독법의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이 문제는 더 이상 게임업계만의 문제가 아닌 계층간, 종교간, 정치인들간의 대립으로 번진 상태에서, 넥슨의 이런 행동은 자칫 게임 중독법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게임규제를 주장하는 정치인과 집단의 이면에는 '게임업계로부터 돈을 걷겠다'는 욕심이 있다. 보건복지위원회나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매출의 퍼센트까지 정해뒀고, 정신중독의학회는 자신들을 위한 숙원사업이라고 표현했다.

정치권이나 정부가 지닌 규제권력은 사기업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며, 이러한 명분을 만든 단체는 그러한 통제로부터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기득권이 된다는 것은 숱한 역사를 통해 입증됐다. 그리고 넥슨의 행동은 그 행위의 순수성과 무관하게 '규제를 하면 돈이 된다'는 명제에 힘을 불어넣을 수도 있는 오해를 만들었다.

아픈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어린이 재활병원은 물론 필요하다. 넥슨은 일회성이 아닌 전사적인 차원에서 해당 사업을 오래 전부터 준비 중이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옛 속담처럼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더라면 선택지는 많았다. 재활병원 건립을 오래 준비했고 장기간 끌고 갈 것이었다면 후원금 전달 시기를 좀 더 늦춰도 괜찮았다. 아니면 강지원 대표에게 넥슨의 순수한 의도를 오해하지 않도록 방어막을 쳐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가 이 부분을 명확히 알리고 오해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다.

걱정은 이거다. 이 오해가 게임을 반대하는 정치권과 단체에 하나의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 ‘조지면 돈을 내더라’라는 오해가 퍼져, 여기저기서 게임업계에 압력을 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다. 부디 기우이기를 빈다.

마지막으로 강지원 변호사에게 묻고 싶다. 네오플 강신철 대표와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기금 30억원' 패널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전날 "게임업계는 4대 중독법법을 게임 중독법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며 힐난한 결과가 혹시 기금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생각하지는 않는지를 말이다.


[데일리게임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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