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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멀티라이프 시대를 꿈꾸며

[신년사] 멀티라이프 시대를 꿈꾸며
“가상현실 기술이 미래시대 인간의 개념과 가치를 바꿀 것이다.”

2007년 발간된 ‘위험한 생각들’이라는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 해 엣지재단이라는 곳에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석학 110명을 모아 놓고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위험한 것’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 뒤 그것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클리포드 피코버(Cilfford pickover) 박사의 멀티라이프(Multi-Life) 시대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석학인 그가 예언을 했을 리 없겠지만 읽는 이에게는 ‘예언’처럼 들렸습니다.

피코버 박사는 멀지 않은 미래 가상현실(시뮬레이션) 기술이 인간의 개념과 삶의 가치를 바꿀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뮬레이션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개념과 가치를 삶의 가치를 바꿀수 있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가상현실 기술은 인간의 뇌에 직접 영상과 사운드를 전달하는 3D 시뮬레이션을 말합니다. 지금은 매우 초보적인 단계지만 이 기술이 점차 발달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피코버 박사는 멀지 많은 미래 가상현실 기술이 인간의 꿈 수준으로 올라설 때,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매일매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컨대 낮에는 평범한 셀러리맨이지만 잠자리에 들 때는 자신이 선택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중세시대 기사나 마법사가 되는 것에서부터 SF 영화속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카사노바가 될 수도 있으며, 왕이되거나 도둑, 심지어는 몬스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당신의 진짜 인생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월화수목금토일의 인생 모두가 결국 그 사람의 진짜 인생이 되는 ‘멀티라이프’ 시대이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인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것도 어리석은 질문이 됩니다. 현실(Real World) 속 일상은 물리적인 나를 존재하게 하지만, 가상현실 속 인생이야 말로 ‘꿈꾸고 원했던 삶’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멀티라이프 시대가 되면 우리 모두는 ‘가상’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화 ‘매트릭스’나 ‘토탈리콜’, ‘인셉션’이 생각나는 대목이지요.

일견 심한 비약일 듯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온라인게임과 e스포츠를 통해 이러한 삶을 살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 가상현실 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탓에 사실성은 떨어지지만 말이지요.

실제 게임이 추구하는 가치는 ‘멀티라이프’ 시대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과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판타지를 체험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리얼월드’ 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온라인게임이 만들어 가는 멀티라이프는 청소년들을 중독에 빠뜨려 학습장애를 유발하는 ‘호환마마’의 세상에 불과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이미 ‘멀티라이프 세대’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뜬금없이 멀티라이프 시대를 언급했던 것은, 사실 우리 업계가 그간 안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지 못하다보니 정작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초 게임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은, 온라인게임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타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MMORPG가 특히 그랬지요. 우리가 시작한 이 장르의 게임은 미국 일본이 주도하고 있던 PC나 콘솔 기반 스탠드얼론(Stand-Alone) 게임으로는 불가능한 체험을 제공했습니다.

실제 세상의 사람을 게임속 세상에 모아놓고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하는 것. 2년전 엔씨소프트가 ‘넥스트 씨네마’(Next Cinema)를 외치며 선보였던 ‘블레이드앤소울’과 같은 게임이 특히 그랬습니다.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 이 게임은 멀티라이프 시대의 가치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켜 왔던 우리 개발사들의 노력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요.

지난 몇 년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규제안’이 나오다 보니 우리 모두는 일에 집중하기보다 ‘분노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장이 침체된 것은 물론이구요. 스마트폰이 새로운 ‘탈출구’로 떠오르는 듯 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아직 ‘설익은 밥’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흔들림과 고민으로 게임업계와 e스포츠계는 가야할 길을 잃은 듯 보였습니다. 개발사들은 ‘지향점’을 잃었고 퍼블리셔들은 내내 허둥댔습니다.

e스포츠계도 스폰서 중심 시장에서 종목사 중심으로 시장개편이 이뤄지면서 혼란과 잡음이 일었습니다. 이 와중에 방송사들은 제살길 찾아 채널을 변경하거나 돈이 안되는 리그를 접었습니다.

탄생 이후 줄곧 세계 시장을 주도해 왔던 온라인게임, e스포츠의 핵심 경쟁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다행히 e스포츠계는 관심이 많았던 정치인이 업계 수장으로 영입되고 신규 e스포츠 채널이 등장하면서 2014년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개발 지향점이 사라져 버린 온라인게임 업계는 움츠려 있기만 합니다.

아무리 주변이 안녕치 않더라도 움츠려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길을 잃었다면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앞으로 다가올 멀티라이프 시대를 믿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길 희망합니다. 데일리게임과 데일리e스포츠가 응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택수 데일리게임, 데일리e스포츠 발행인 (libero@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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