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도 심상찮다. 누구나 어렸을적 교과서를 통해 접했을 김만중의 고대소설 '구운몽'을 발칙하게(?) 뒤튼 이 게임은 원작의 설정 역시 과감하게 뒤집었다. 원작 구운몽이 구국의 장군으로 대성하는 주인공 양소유와 그가 거느리는 여덞 선녀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게임 '구운몽'은 어여쁘고 가녀린 소녀 양소유와 그녀를 빛내는 여덞 미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 양소유와 여덞 미소년들간의 치열한 '밀당'(밀고당기기) 끝에 사랑을 성취하는 본격 연애 게임으로 탈바꿈된 것.
"여성 이용자들을 노린 게임들이 일본에서 많이 출시됐어요. 이들 게임은 일본의 역사나 소재를 녹여낸 사례가 많아요. 우리라고 못할까 싶었어요. 우리나라만의 문화와 소재를 담은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한게 바로 '구운몽'이죠."
'구운몽' 개발 총괄을 맡은 공나연 PD는 평소에도 여성 게이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 개발에 관심이 많았단다. 오직 '구운몽'을 개발하기 위해 그간 모회사 넥슨에서 구축한 입지도 뿌리치고 한 걸음에 네온스튜디오로 달려왔을 정도. 실제 공 PD는 '구운몽'에 대한 적잖은 애착을 시종일관 드러냈다.
"원작 '구운몽'은 일장춘몽, 인생무상 등 교훈을 담은 소설이잖아요?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많더라구요. 만약 주인공 양소유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면, 또 원작처럼 여자 양소유도 재주가 많고 미모까지 갖추고 있다면? 흥미롭지 않을까요?"
네온스튜디오의 살림을 도맡고 있는 박범진 경영기획실장 역시 게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어렸을 때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겨 했었습니다. 왜 '하렘물'이라고 하죠? 남자 주인공은 가만히 있는데 모든 여자들이 아무 이유없이 다가오는 거 있잖아요. 이를 그대로 뒤집으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여성들을 위한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대히트를 거두기도 한 시점이어서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죠."
게임 방식은 전혀 어렵지 않다. 깔끔한 그래픽으로 연출된 캐릭터 및 배경 화면과 텍스트를 읽어가며 진행하면 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분기점을 신중히 선택하고 미니 게임을 즐기다보면 그 결과들이 여덞 미소년들의 호감도에 영향을 미쳐 최종 엔딩이 결정된다. 공략 캐릭터가 8명이 넘고 히든 엔딩까지 감안하면 게이머가 볼 수 있는 엔딩의 숫자 역시 매우 많다.
특히 게임 속에 등장하는 여덞 미소년들은 미(美)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만큼 왕자님 뺨치는 미모를 뽐낸다. 더욱이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까지 지니고 있을 정도니 게임을 접할 여성 이용자들이 행복에 겨운 가상 연애에 빠지는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미소년들의 성격은 각자의 외모만큼이나 달라요. 소꿉친구도 있고 다정다감한 스타일, 대세인 나쁜 남자, 오타쿠도 있고 괜히 나한테는 심술을 부리지만 실상은 따뜻한 츤데레 스타일도 있죠. 어른 같은 캐릭터도 있고 귀여운 연하남도 있어요. 이용자들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요."
주인공 양소유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어떤 매력을 갖추고 있어야 무려 여덞명이나 되는 남자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을까.
"재주가 많고 출중해요. 혼자서도 문제를 잘 해결하지만 (남자를) 이용할때는 또 잘 이용하는 면모도 보이죠. 사랑스럽지만 어떻게보면 드세게 느껴질수도 있어요. 도전을 좋아하고 두려워하지 않기도 해요. 절대 얌전한 캐릭터라고는 볼 수 없죠. 전형적인 B형 여자랄까요?(웃음)"
게임 속 양소유의 팔자도 기구한 편이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왕자를 우여곡절 끝에 만나 그를 돕는다는 것이 '구운몽'의 핵심 줄거리. 폐위된 왕자와 얽히고 설킨 양소유가 얼마나 큰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는 벌써부터 눈에 훤하다. 또 그 와중에 다른 미소년들과 만나면서 양소유의 러브 스토리를 꽃피운다는것이 바로 '구운몽'의 큰 줄기다.
개발 과정 중 겪은 에피소드도 많단다. 실제 연애와 게임 속 연애의 괴리감이 대표적이다. 공 PD는 과거 연애할 당시 들었던 감미로운 대사와 온갖 '작업 멘트'들을 떠올려 그대로 게임 속 대사로 삽입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당시 팀원들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손발이 오그라든다'였다고.
심지어는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남자가 어디있냐'며 믿기 힘들다는 답변까지 나올 정도였단다. 제아무리 남자친구에게 분명히 들었던 말이라고 해도 도통 믿지 않았던 팀원들 덕분에 그 대사는 아쉽게도 게임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고. 때로는 현실이 보다 비현실적이기도 한 법이다.
미소녀와 미소년들의 로맨스를 담은 '구운몽: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는 현재 개발이 완료된 상태로 2월중 PC 패키지 형식의 체험판이 먼저 공개되며, 3월 중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연내 모바일 버전으로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에 공 PD는 '구운몽'을 개발하며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구운몽' 개발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어요. 여성 이용자를 위한 게임을 왜 만드는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구운몽'으로 크게 일을 벌여보고 싶어요."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