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비만으로 보이는,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주저될 법한 친구가 웃통을 벗겨 제치고 '스트리트파이터'에 나오는 '혼다'로 변신했다. 뚱뚱한 인어공주도 보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코스튬을 하고 친구 속에 이끌려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다. 자기 키 보다 큰 게임 속 무기를 만들어 들고 다니는 사람도 흔하다.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 모자를 쓴 사람은 오히려 애교 수준이다. 게임을 싫어하는 국내 종합지에서 '게임중독 심각, 과연 제정신인가'라는 식의 헤드라인을 뽑아내기 딱 좋을 풍경이다.
팍스를 보러 온 관람객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온 몸 그대로 즐긴다. 그리고 이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이방인인 기자 눈에만 낯설게 느껴 질 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준다.
팍스는 게이머들의 쇼다. 부스걸도 없고 비즈니스 미팅도 없다. 기자라고 별만 다를 수냐, 똑같이 줄을 서야 겨우 게임 한판 해 볼 수 있다. 게이머가 주인공이고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이것이 팍스가 E3가 있음에도 북미 최고의 게임쇼로 평가 받는 이유다.
그들의 자유로움에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여가나 취미 생활로 게임을 즐기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보스턴 컨벤션센터 인근에 있는 식당, 거주민, 버스기사도 지금 여기서 어떤 행사가 열리는지를 알고 있다. 게임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자신도 그 게임을 좋아한다며 친근함을 표하는 일반인도 많다. 그렇게 게임을 즐기고, 게임을 이해하며, 게임을 즐긴다. 매년 부산에서 지스타가 열리지만 행사장을 나서면 그저 남의 이야기가 되는 우리는 생각지도 못할 풍경이다.
팍스를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다. 기자도 그랬던 것처럼 분명 '미친 놈들 아냐'라는 생각이 먼저 들 테니까. 하지만 게이머들 외에 그들을 바라보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들의 태도는 꼭 경험케 하고 싶다. 게임을 자연스러운 취미활동으로 보고 게임을 즐기는 그들을 낯선 눈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인 시선이 부럽다.
이는 비단 미국이란 나라가 자유롭고 다양성을 존중해서만은 아닌 거 같다. 아무리 코스튬이라도 인종차별이나 테러를 상징하는 복장을 하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들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책임을 다하고 그 권리를 누릴 뿐이다.
소개팅에서 취미가 게임이라고 말하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친구가 '그 나이에 게임하고 있냐'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사회적 시선이 진정 부럽다. 미국이 게임강국으로 손꼽히는 건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처럼 왜곡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린 언제쯤 지스타에서 '민망한' 코스튬을 왜곡 없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데일리게임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