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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소설] 이데아 [여신의 눈물] - 1화 그녀의 눈물(1)

prologue



“그대는 주신의 눈물을 본 적이 있는가?”

하얀 로브를 길게 늘어뜨린 남자가 아름다운 석벽을 마주하고 섰다.

석벽에는 거대한 나무가 조각되어 있었다.

“세상을 창조한 창조신의 눈물에는 무한의 마나가 잠들어 있다네.”

하얀 로브의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나무 조각의 꼭대기를 우러렀다.

천장에는 거울 완드를 들고 있는 여신이 새겨져 있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신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한의 마나…….”


[게임소설] 이데아 [여신의 눈물] - 1화 그녀의 눈물(1)

그녀의 눈물(1)



드래곤.

공포와 힘을 상징하는 종족.

엄청난 힘을 갖고도 더 큰 힘을 끝없이 갈망하는 파괴자.

세상에 처음 드래곤을 생겨나게 한 것은 ‘한발 늦은 자’ 남신 바이칸의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여신 바이킨이 만든 아름다운 세계에 감탄했던 그가 어째서 드래곤을 만든 것일까?

사실 바이칸은 여신이 만든 세계를 질투해 드래곤을 만든 것은 아닐까? 그 약간의 질투심이 드래곤 종족에게 파괴와 힘을 꿈꾸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이킨은 드래곤이 파괴한 세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여신의 눈물방울은 황폐한 땅에 떨어져 무한한 마나를 지닌 돌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를 파멸시키는 드래곤에 대항해 여신은 페이서스라는 이름의 또 다른 영원불멸의 종족을 창조했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세상을 창조한 여신에게 드래곤을 없앨 힘은 없던 것일까?

처음으로 돌아가 빛에서 다시 시작했다면, 처음 그녀가 세계를 창조했듯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다시 만들었다면 더 아름답고 살기 좋으며 평화로운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몇 만 년 동안 이어진 전쟁. 수많은 생명들의 절규. 황폐한 대지…….

평화를 깨뜨린 드래곤에 맞서 여신이 페이서스를 창조한 순간부터 이 땅에는 전쟁이 피었다.

여신이 바라던 것은, 사실은 푸르른 평화가 아니라 피와 살육의 전쟁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녀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전능한 여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운명이란 것이 존재할는지도 모른다. 깊은 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밤안개 같은…….

***

여물은 햇볕이 창을 넘었다.

아이들이 스무 명 남짓 있는 교실 안, 기다란 책상 앞에서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갈색 머리카락 아래 눈을 가물거리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색은 빛이 거의 못 보며 지낸 것처럼 매우 창백했다.

‘졸려…….’

점심 후 마지막 수업시간. 잠이 대군을 몰고 눈꺼풀에 매달리자 소년은 이내 항복했다. 소년은 책을 베개 삼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칼.”

한창 단잠을 자고 있던 칼은 낮게 부르는 소리에 깜빡 눈을 떴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난 나이 든 여선생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학교 담임선생인 나인 선생이었다.

“……드래곤은?”

소년이 몽롱한 눈으로 묻자, 반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땡그렁, 땡그렁!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인 선생은 주름진 입술로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다. 칼, 벌로 다음 시간까지 오늘 배운 ‘주신의 딸 헤스페리아’ 부분을 빠짐없이 외워 오도록.”

나인 선생이 책을 덮자 아이들이 와아 교실을 뛰어나갔다. 칼은 아직 꿈의 여운이 남아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받아라, 레드 드래곤의 파이어 볼!”

퍽!

밀짚색 머리칼의 소년이 쏜살같이 달려와 칼의 등에 부딪쳤다. 칼이 창백한 얼굴에 인상을 쓰기 무섭게 퍽!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트윈 레드 드래곤의 연속기 맛이 어떠냐. 드래곤 슬레이어!”

등을 붙들고 끙끙 앓는 칼에게 낙엽색 머리칼의 소년이 외쳤다.

“이 사악한 드래곤들! 내 번개 마법으로 한 방에 보내 주마. 라이트닝 볼트!”

책을 바닥에 팍 내팽개치고 칼이 분노한 얼굴로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마법을 시전하는 시늉을 했다. 두 소년이 몸을 흔들며 “으아아아, 분하다…….” 하며 풀썩풀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다시는…… 대용사 칼 드레이브 님을 무시하지 마라.”

갈색 머리칼 아래로 칼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윽고 그가 돌아서자 쓰러져 있던 네프랑과 차이콥이 벌떡 일어나 칼의 등을 덮쳤다.

“우리가 무릎을 꿇은 것은 이때를 위함이었다!”

세 아이가 한데 엉겨 언덕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머리며 옷에 잔디와 흙먼지가 붙는 것도 아랑곳 않고 팔다리를 휘둘러 댔다.

“죽어라!”

“받아라, 똥침!”

“으아악! 비겁한!”

“거기! 싸움을 하다니!”

장난치던 세 소년이 휙 돌아보았다. 멀리서 나인 선생이 화를 내며 달려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잡힌다면 매우 성가신 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튀어!”

칼이 외쳤고 세 소년은 뒤도 보지 않고 뛰었다.



“미스 나인 화낼 때 봤어? 주름 장난 없어.”

“결혼을 못 해서 그렇대. 울 엄마가 그랬어.”

메뚜기를 잡아 날개를 뜯으며 차이콥과 네프랑이 시시덕거렸다. 칼은 근처에서 홀로 마나석과 씨름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좀처럼 빛이 안 나는 마나석이었다.

“메뚜기 소환 마법!”

차이콥이 칼의 얼굴을 향해 날개를 뜯은 메뚜기를 던졌다. 칼이 놀라 마나석을 꽉 쥐고 확 쳐들었다. 마나석은 움쩍도 하지 않았고 갈색 머리칼에 메뚜기가 달라붙었다.

“마나석 고장 난 거 아냐?”

차이콥의 말에 네프랑이 칼의 마나석을 받아 들었다. 이내 마나석이 느린 속도로 깜박거렸다. 칼은 그 모습에 조금 실망한 듯 말없이 머리에 달라붙은 메뚜기를 풀숲에 던지고는 등을 돌렸다.

“뭐, 딱히 잘 다루고 싶은 생각은 별로……. 난 간다.”

“어어, 도망치는 거냐. 드래곤 슬레이어!”

칼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차이콥과 네프랑이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 밥 주세요!”

쾅!

현관문을 열자마자 칼이 외쳤다.

수프 솥단지 앞에 서서 드레이브 부인이 아들을 건너보았다. 칼과 똑같은 갈색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모습이었다.

그녀는 지저분한 칼의 모습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보는 모습이기 때문에 딱히 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렇게 즐겁게 뛰어 놀고 건강한 것만으로도 신께 감사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오늘 세리네서 나눠 준 염소고기로 수프를 끓이던 참이다. 오늘도 차이콥과 네프랑이랑 놀고 온 거니?”

고기 생각에 들떠 칼은 모자를 벗어 던지고 식탁 앞에 앉았다.

드레이브 부인이 움푹한 그릇에 수프를 가득 떠 그의 앞에 놓았다. 뽀얀 국물 사이로 뭉근하게 익은 고깃덩어리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오른 주먹에 수저를 쥐고 칼이 수프 그릇에 허겁지겁 코를 박았다.

“와구! 후르륵! 쩝! 쩝!”

순식간에 수프를 먹어 치우고서 칼이 기운차게 고개를 들었다.

“한 그릇 더요!”

“나 원, 벌써……. 손은 씻고 먹는 거니?”

보리빵을 썰어 내오며 드레이브 부인이 물었다. 갈색 고수머리를 흔들며 칼이 연이어 보리빵을 입에 욱여넣었다. 드레이브 부인은 한숨을 쉬면서도 먹성 좋은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늘은 수업 시간에 졸지 않았지? 지난번에 시장에서 나인 선생님을 뵈었는데, 네가 수업시간에 자주 졸고 있다며 집에서 지도 좀 해 달라고 하시더구나.”

드레이브 부인이 두 그릇째의 수프를 내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꿈을 꿨는걸.”

뜨거운 수프를 허어, 허어, 입 안에서 식히며 칼이 대답했다.

“꿈?”

드레이브 부인이 물었다.

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칼은 매일 같은 꿈을 반복해 꾸고 있었다.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뿌연 공간이 있었다.

칼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저 푸르스름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칼은 무의식적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문득 그의 눈앞이 환해졌다.

환한 빛 속에서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빛에 감싸인 것인지, 그녀에게서 빛이 나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표현한다면, 그저 빛이라고밖에…….

빛의 여인이 칼의 앞에 다가섰다.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하늘색 옷자락 위로 가늘고 긴 백색의 투명한 머리카락이 한들거렸다. 그러나 그런 차림새보다도 칼의 시선을 끈 것은, 하얀 얼굴 위 그녀의 슬픈 눈망울이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간직한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구?”

칼이 묻자 빛의 여자가 새하얀 두 팔을 뻗어 그를 안았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 맑은 목소리가 칼의 귓가에 퍼졌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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