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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소설] 이데아 [여신의 눈물] - 2화 그녀의 눈물(2)

[게임소설] 이데아 [여신의 눈물] - 2화 그녀의 눈물(2)
그녀의 눈물(2)



꿈은 항상 그곳에서 끝났다.

“머리가 엄청 길고 온몸에서 빛이 나는 여자가 나와요. 슬픈 표정으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말하고 사라져요.”

칼이 빈 수프그릇 위에 땔그렁 수저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뿌듯하게 차오른 배를 두드리며 방으로 들어간 칼은 나인 선생이 낸 숙제를 떠올리고 하는 수 없이 바닥에 엎드려 교과서를 펼쳤다.

헤스페리아족의 기원에 관한 서사시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헤스페리아족이라면 누구나 읽고 배워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소학교 졸업시험은 이 책을 통으로 암송해 보이는 것이었다.

“주신의 딸 헤스페리아.”

칼은 책 제목을 읽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보라. 눈보다 희고, 빛보다 밝은 자의 딸을.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오라기, 위대한 세계수의 뿌리에서 태어난 주신의 딸 헤스페리아를…….”

첫 구절을 읽던 칼은 자연스럽게 꿈에서 보았던 여자를 떠올렸다. 환한 빛에 감싸인 채 아주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그녀…….
칼의 눈이 다시 감기기 시작했다.



“나 왔어.”

땅거미가 완전히 질 무렵 칼의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와. 오늘은 좀 늦었네?”

드레이브 부인이 외투를 받아 들며 물었다. 드레이브 씨는 수염이 거슬거슬하게 자란 턱을 흔들었다.

“공납하는 쌀의 양을 늘리라고 영주성에서 공문이 왔어. 군량미를 확보해야 한다나? 찰스 씨랑 모여서 이야기 좀 하고 오는 참이야.”

“이런 외진 곳까지…….”

전쟁의 기미가 코앞에 닥친 느낌에 드레이브 부인이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걱정 마. 영주들이 공납 늘리겠다고 한 것이 어디 한두 해야? 다 빌미야.”

드레이브 씨가 부인의 어깨를 다독였다. 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좀체 걱정이 줄지를 않았다. 어린 칼이 전쟁에 휘말릴까 염려되는 탓이었다.

“당신 식사해야지.”

드레이브 부인은 코를 훌쩍이고는 솥을 얹어 놓은 화로에 불을 피웠다.

“칼 녀석은 어때?”

“맨날 놀기 바쁘지. 미스 나인이 칼이 요새 자주 존다고…….”

말을 잇던 드레이브 부인은 칼의 꿈 이야기를 떠올렸다.

“여보, 칼이 생겼을 때 꿨던 꿈 기억나?”

“으응, 기억하다마다.”

칼을 임신할 무렵 드레이브 부부는 같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드레이브 부인은 호숫가를 거닐었다. 환하고 빛으로 가득한 호수는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그 속에서 홀연히 여신이 나타나 그녀의 앞에 섰다. 차마 눈을 마주칠 수도 없을 정도로 고귀함이 풍겼다.

여신이 커다란 알을 부인에게 건넸다. 드레이브 부인은 무릎을 꿇고 알을 받아 들어 안았다. 알에서는 환한 빛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빛을 머금은 알에서 칼이 태어났다고 믿는 두 사람이었다.

“같은 꿈을 꾸고 나서 당신이나 나나 한참을 신기해했지. 꿈이 워낙 신기해서 칼 녀석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고 기대했는데, 학교에서는 말썽이나 부리니 원…….”

드레이브 씨가 보리빵을 뜯으며 한탄했다.

“우리 칼이 뭐 어때서. 앞으로 칼이 어떻게 자랄 줄 알고 벌써 그래?”

“하지만 마나석 다루는 실력이 워낙 떨어진다니까 말이야. 다른 애들은 벌써…….”

턱.

드레이브 부인이 식탁에 고기수프 그릇을 놓았다. 다른 애들에 비해 마나석을 다루는 능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 칼이었고, 그게 흠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애는 건강하면 그만이야. 식기 전에 드셔.”

드레이브 씨가 작게 한숨 쉬고는 수저를 들었다.

***

우르릉!

대지가 수천 갈래로 갈라져 터졌다. 용암과 불기둥이 사방에 솟았고, 새까만 재가 하늘을 빽빽하게 뒤덮었다. 화산이 터진 지 얼마 안 된 곳이 분명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이 빛을 차단하고 있는 곳이었다.

별이 보일 리 없건만 한 점 새빨간 빛이 쨍! 빛났다. 붉은 빛은 거짓말처럼 깜빡 하늘에서 사라졌다. 붉은 빛이 있던 자리에 이내 은색의 섬광 같은 빛이 나타나는 듯싶더니 팟! 사라졌다.

슈아악!

거대하게 펼친 붉은 날개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구름을 갈랐다.

온몸이 붉은 비늘로 덮인 거대한 드래곤이 새빨간 빛을 뿜으며 허공을 날았다.

붉은색의 드래곤은 뿔이 다섯 개였고, 뿔이 다섯 개인 드래곤은 그 종족 중에서도 강력한 계급에 속한 드래곤만이 띨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위용은 대단했고 거대함은 마치 커다란 성이 하늘에 떠 있는 듯했다.

쉬아악!

빛이 바람이 되어 나타나는 듯하더니 드래곤의 배후의 하늘이 환해졌다. 드래곤과 비슷한 몸집의 생명체가 날개를 펄럭이며 나타났다. 부드러운 곡선에 기다란 몸 전체가 찬란한 은색으로 빛나는 종족이었다.

주신 바이킨이 드래곤의 적수로서 창조해 낸 존재, 페이서스였다.

“멈춰라, 카문! 주신께서 만든 세계를 어디까지 어지럽힐 셈이냐?”

은빛의 페이서스가 나타나자마자 붉은 드래곤이 입을 벌리고 새파란 불길을 내뿜었다. 고열의 파란 불이 화산이 터져 솟구친 용암에 닿아 연쇄를 일으켜 거대한 푸른 불꽃이 그물처럼 날았다. 불의 그물은 은빛 페이서스를 삽시간에 덮쳐 옭아맸다.

“큭!”

고열의 푸른 불꽃에 감싸여 페이서스가 신음했다.

“어지럽히다니 무례하군, 파루로니아! 여신이 만든 역한 세계를 드래곤족의 입맛에 맞게 재배치하는 것뿐이다.”

붉은 드래곤이 스산한 미소를 보이며 이를 드러냈다.

“그 오만과 끝없는 탐욕이 너희 드래곤족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이다. 카문!”

파루로니아의 주위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은빛과 함께 떠올랐다. 마법진에서 은색의 덩굴줄기 같은 것이 뻗어 나와 푸른 불꽃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온 하늘이 은빛의 마법구체로 겹겹이 가득 찼다. 단 한 번에 수십 개의 거대한 원형의 마법진이 하늘을 덮은 것이다. 그 속에서 하얀 구체들이 한 번에 터졌다.

번쩍!

하늘이 하얗게 빛났다. 빛은 사방으로 뻗었고 온 세상을 집어 삼킨 듯했다.

쾅!

폭음과 함께 빛을 뚫고 붉은 드래곤이 빠르게 활강했다.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엄청난 바람과 함께 화산 지대를 벗어나 울창한 수림으로 향했다.

쿠웅!

붉은 드래곤이 땅 위로 내려섰다.

우지직! 콰쾅!

드래곤이 내려선 땅 주변으로 강한 바람과 함께 수많은 나무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고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쿵!

그보다 한 걸음 늦게 파루로니아가 내려섰다.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카문이 시계 방향으로 움직였다. 파루로니아도 그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며 대치했다. 드래곤과 페이서스는 서로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쿠쿵! 쩌저적!

육중한 두 종족의 무게에 와지직! 갈라진 바닥의 균열이 한층 커졌다.

“카문. 넌 나를 이기지 못해.”

“주둥이만 살았군, 파루로니아!”

먼저 공격을 개시한 쪽은 붉은 드래곤이었다.

파파팟!

검붉은 마법진 수백 개가 허공에 떠오르기 무섭게 수만 개의 검붉은 마법화살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하늘을 수놓은 붉은 화살은 거대했으며 그 크기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와 비슷했다.

파루로니아는 재빨리 반사 마법진을 펼쳤다. 그녀의 앞 공간에 수십 개의 은색 반투명한 마법진이 겹겹이 생겨나자 화살들이 튕겨 나갔다. 튕겨 나간 화살들은 붉은 드래곤 카문에게 되돌아갔다.

카문은 빠르게 날아올라 피했다.

쿠쿠쿵!

거대한 산은 날아드는 화살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콰콰쾅!

순식간에 커다란 산은 수천 조각의 암석이 되어 버렸고 거대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두터운 흙먼지를 뚫고 파루로니아는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카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엄청난 양의 검붉은 기운을 두르고 카문이 파루로니아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이 자리에서 죽는 건 너야!”

검붉은 기운 위에 푸른 불꽃이 덧씌워졌다. 온 하늘이 불덩이가 되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파루로니아의 눈에는 카문의 모습이 마치 커다란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전력을 다한 카문의 공격이었고 최상의 절대마법인 유성 마법을 두른 것이 분명했다.

“이놈! 카문! 함께 죽자는 것이냐!”

카문의 공격에 맞서 파루로니아 또한 마법을 시전했다.

그녀의 몸에서 은빛 마나가 수천의 줄기로 솟아 나와 반은 길고 날카로운 은빛 창으로 변했고 반은 파루로니아를 감싸고 돌았다. 파루로니아는 빛으로 만들어진 창을 앞세우고 날아올랐다.

검붉은색과 은색, 두 개의 어마어마한 힘이 충돌했다.

콰콰쾅!

번쩍!

빛과 함께 그들의 주위의 산과 땅이 굉음과 함께 소멸했고 태풍 같은 바람에 하늘을 꽉 막았던 재가 한 번에 걷혔다.

슈아아아악!

거대한 바람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그 속에 카문과 파루로니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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