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게임은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장수 게임인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의 '리니지'에서 한 때 최고의 미니 게임으로 큰 인기를 누리던 슬라임 경주장, 개 경주장, 버그베어 경주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업데이트와 동시에 대 성황 '슬라임 경주장'
1997년 베타서비스에 돌입한 '리니지'의 미니 게임으로 등장한 슬라임 경주장은 2003년 폐쇄되기 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오크성 인근 글루딘 마을에 위치한 트랙에서 즐길 수 있었던 이 슬라임 경주는 골인 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슬라임을 맞추는 간단한 방식의 미니게임이었습니다. 아만이라는 NPC에게 말을 걸어 각 슬라임들이 승률과 현재 상태를 알아보고 개당 100아데나(게임 재화)라는 저렴한 가격의 표를 사서 베팅하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가끔 변수가 나오기도 하지만 보통 승률과 상태가 좋은 슬라임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고, 짧은 직선 코스로 구성된 트랙에서 경주가 벌어졌기에 대부분의 승부는 스타트 지점에서 갈렸습니다.
슬라임 경주장의 인기를 반증하듯 사이하, 슈팅스타, 젤리피쉬, 이븐스타 등의 이름을 지닌 슬라임들은 팬층이 형성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베팅한 슬라임이 경주에 승리할 경우 경주장 하단의 NPC에게 구매한 표를 각 배당율에 따른 아데나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슬라임 경주장이 성황을 이룰 당시에는 해당 콘텐츠의 수익이 세금으로 들어가는 오크성을 많은 혈맹들이 탐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슬라임 경주장의 수익을 세금으로 오크성에 전달하는 오크 NPC가 따로 있어 이용자들은 이를 습격해 세금을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NPC가 모든 수익을 들고 전달하는 것은 아니어서 실제 경기에 지불된 만큼의 큰 액수는 아니었습니다.
한편 왕년의 인기 경주 슬라임이었던 '슈팅스타'는 경기장 페쇄 이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사막 지역에 이벤트 몬스터로 출현하게 됐습니다.
'슈팅스타'는 일반 슬라임과 동일한 생김새로 별 다른 공격은 하지 않으나 왕년의 레이서답게 이동 속도가 빠르고 방어력도 높게 설정돼 있습니다. 쓰러뜨리면 특이하게도 일정 수치 이상 인챈트된 아이템을 줘 다른 의미로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판을 키웠다, '개 경주장'
2001년 기란 마을에 업데이트된 '개 경주장'은 2004년 3월까지 운영됐습니다. 번호가 적힌 조끼를 입고 달리는 개들은 슬라임과는 달리 구분하기도 쉽고, 속도감 역시 훨씬 빨랐습니다.
트랙 또한 더 긴데다 곡선 코스를 마련해 추월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쳐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슬라임 레이스보다는 기본 베팅 가격이 500 아데나 이상으로 비싸기는 하지만 더 큰 트랙 스케일과 속도감, 박진감을 갖춰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베팅 액수 자체가 큰 차이가 나다보니 높은 배율로 승리해도 몇 만 아데나 수준이던 슬라임 경주에 비해 한 경기에 50만 아데나를 얻는 경우도 많았고 높은 배율로 승리해 150만 아데나 이상을 얻은 이용자도 있었습니다.
한탕을 노리는 일부 게이머들은 개 경주장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명 '매입꾼'들이 경주장 주변에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장비를 헐값에 사들여 되파는 이들은 전당포 같은 역할을 했죠.
몇 시간 안에 판매 금액을 가져오면 아이템을 되돌려 주겠다는 매입꾼도 있었지만 미니 게임에 빠진 이용자는 돈을 벌어도 아이템을 되찾기 보다는 다시 경주에 몰입하기도 했습니다.
경주견의 이름인 제피, 코피니, 핀핀, 베라티, 티소, 페콜라 등은 리니지 이용자들 사이에서 애견 이름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물론 승률이 높은 경주견의 이름에 한해서 말이지요.
◆ 리니지 마지막 경주장, 리틀 버그베어 경주장
사행성 논란이 커지며 슬라임 경주장과 개 경주장은 각각 2003년과 2004년 폐쇄됐습니다. 그러다 2004년 리틀 버그베어 경주장이 열렸고, 한동안 즐기던 레이싱의 갑작스러운 폐쇄에 목말랐던 이용자들은 다시 경주장으로 몰렸지요.
당시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인터뷰를 통해 "이용자 간담회나 의견 접수 등을 통해 가장 많이 요청이 들어왔던 내용이 바로 개경주를 부활시켜달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히며 많은 이용자들의 요청으로 부활시킨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기존 슬라임 경주장, 개 경주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 리틀 버그베어 경주장은 게임 내에 등장하는 버그베어라는 몬스터에 비해 1/2 크기의 리틀 버그베어가 조끼를 착용하고 골을 향해 달리는 미니 게임이었습니다.
제프리, 오버폿, 럼프스, 대망 등의 이름을 가진 리틀 버그베어들은 각자 피부색이 달랐고 이용자들은 이름 대신 피부색에 따른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돌아온 레이싱 미니게임에 열광한 것도 잠시, 콘텐츠 오픈 1년만인 2005년 10월 지나친 사행성 조장을 우려할 수 있다는 엔씨소프트 측의 판단으로 리틀 버그베어 경주장도 폐쇄되게 됩니다.
이렇듯 '리니지'의 경주장 콘텐츠들은 이용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에 수반된 여러 문제점들이 배경이 돼 폐쇄됐습니다. 일부 이용자들은 미니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해 모든 게임 내 재화를 탕진했고, 각 경주를 모두 데이터화해서는 실제 승률을 전문적으로 계산하는 이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자각이 있던 엔씨소프트는 결국 2001년 4월 슬라임 경주장의 사행성 문제가 표면화된 후 몇 번의 개선 작업을 시행하다 결국 모든 경주장 콘텐츠를 폐쇄하는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이후 경주장 콘텐츠는 '펫 레이싱'이라는 베팅 방식이 아닌 소량의 참가비를 내고 이용자 스스로가 동물 및 몬스터로 변신해 순위에 따라 이벤트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이벤트성 콘텐츠로 추가돼, '리니지' 내 레이싱 미니 게임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