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바라볼 때쯤 그는 개발사를 차렸다. 모바일 게임이 태동하던 그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나왔다. 때마침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정부가 창업을 독려했던 시기다. 월급쟁이서 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 동안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창업엔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몸으로 뛰는 일이야 그럭저럭 처리할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선배들의 조언으로 기술보증연금(기보)을 찾아갔다. 그 동안 배워온 게 있기에 자신이 있었다. 심사를 맡은 실무자는 사업계획서를 한참 보더니 연대보증을 요구했다. 금융권에서 이미 사장되다시피 한 연대보증을, 기술력만 있으면 창업을 지원한다는 국가기관서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장님이 망하면 우린 어쩌라고요?"라며.
기술 보증서로 은행에서 담보를 걸고 저리로 대출을 받았다. 대표의 신용등급도 대출조건에 중요한 요건이 됐고 납세 및 4대 보험료 완납 확인서 등도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사업자금을 마련했고 게임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시장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게임판엔 나 같은 대표가 부지기수였고, 모바일 게임들도 넘쳐났다. 접촉하는 퍼블리셔들은 차별점과 완성도를 내세우며 개발을 더 할 것을 요구했다. 개발기간은 곧 비용이다. 기보 대출은 이미 바닥났고 개인대출까지 받은 상황인데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월급이 밀릴까 불안해 하는 직원들의 눈빛, 결코 그래서 안 된다는 생각에 카드 현금서비스로 돌려막기를 했다. 선배들이 말하는 소위 '마지막 막장 테크'다. 그리고 그는 신불자가 됐다.
2년이 지나서 재기를 위해 다른 사업아이템으로 신보를 찾았다. 한번 실패했지만 다시 재기해야만 했고 이번만은 경험을 살려 잘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실무자는 신용불량자는 보증서를 받을 수 없다 했다. 정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대표로 앉혀 기금보증을 받으라 했다. 그는 고민 중이다, 정말 '바지사장'을 앉혀야만 하는 상황인지를.
2015년 기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이 느끼는 애로사항으로 가장 큰 부분이 자금부족(43.9%), 뒤를 이은 것이 기술인력 부족(23.9%)이다. 결국 돈이 있어야 좋은 기술력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인데, 돈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청년창업을 독려하는 정부는 기보의 연대보증을 전면 폐지하도록 지시를 내렸지만, '좀비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유보했다. 기술력이 있다면 연대보증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지만, 실무자들은 연대보증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게 현실이다.
실패해도 다시 창업해서 결국은 성공을 일구는 실리콘밸리. 우린 그들을 부러워하고 닮으려 하지만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설 자리가 이 사회엔 없다. 일부의 모럴해저드로 인해 재창업의 길까지 막아버리는 정부 앞에서 많은 대표들이 울고 있다.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