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를 만든 데이비드 하사비스가 17살에 게임을 만든 이력이 소개되면서 게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고, 인공지능과 게임의 연관성이 강조되면서 게임에 대한 우호적인 눈길이 쏠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계를 3주 전으로 돌려보자. 보건복지부(보복부)가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중독 물질로 분류하고 의학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질병코드를 부여하겠다고 발표해, 국내 게임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신의진 의원이 4대 중독법을 입법하려다 반대로 무산되자, 보복부가 단독으로 법안을 만들려고 한 것. 이면에는 차세대 먹거리 산업인 게임을 볼모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보복부와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신의진 의원을 비롯한 의료계의 바람이 부합돼 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해져서 일까. 정작 국내 게임회사들을 대표하는 한국인터넷엔터테인먼트협회(이하 게임협회)는 조용하다. 셧다운제가 제정되고 4대 중독법이 입법될 때만 하더라도 성명서를 내고 공청회를 하고, 나아가 '국내를 떠나겠다'며 비공식적이나마 으름장을 놓던 협회와 게임 대외라인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말이 없다. 사실 이러한 활동도 적극적 대응이라긴 보다 업계의 요구와 분노에 나섰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다. 그래도 할 말은 했고 여론을 만들기도 한 것도 사실이다.
협회의 속내를 살펴보니 그 시선이 문화부를 향하고 있었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일단 지켜봐달라'는 문화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보복부가 일방적으로 규제안을 발표하고 청와대로 불려가 엄청나게 '깨졌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게임협회는 청와대 지원에 힘입은 문화부가 보복부를 설득해 3월 말까지 입장을 철회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큰 잡음(?) 일으키지 않고 없던 일이 된다면 업계 입장에서 손해볼 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건 오판이다. 4대 중독법을 무산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여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이 분노했고 당사자인 게임업체가 뭉쳤고, 언론이 움직여 공감대를 형성한 덕이 컸다. 신의진 의원이 자신의 입법취지가 왜곡됐다며 억울해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끓어오른 여론이 입법 시도를 막은 것이다.
이건 부서간 힘대결이나 청와대 눈치를 봐야하는 사안이 아니다. 보복부가 문화부이 입장을 수용해 없던 일로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의학계에서 그냥 손 놓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가, 절대 아닐 것이다. 이번에 그냥 넘어간다 하더라도 다시 입법을 시도하게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들 입장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게임 중독과 질병 연관성을 더 큰 공론의 장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이 사안에 대한 문화부와 보복부, 게임계와 의료계의 암묵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당사자들끼리 공개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첫걸음은 피해를 입게 된 게임업계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의학적 근거를 대고, 중독과 관련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게임으로 인한 부작용은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도 이번에 결정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게임업계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더불어 게임에 대한 호의도 올라간 이 때, 전 세계가 알파고와 이세돌 9단(한자) 대결을 지켜보는 이때, 게임의 선진국이라 일컫어지던 한국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린다면 이보다 더 좋은 여론전이 있는가.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시기 놓치고 믿던 문화부에 뒷통수라도 맞게 되면 어찌할 것인가. 그때는 늦다.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