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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게임판 '은전 한닢' 노예 에센스가드

수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집니다. 게임 내 시스템, 오류 혹은 이용자들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게임 내외를 막론한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이에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오늘은 게임판 '은전 한닢'으로 불리며 게임 노예 1호로 유명한 이용자 '에센스가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요. 한 커뮤니티에서 너무 유명해진 탓에 네이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지금 검색해봐도 스스로 해당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암시하는 이용자들의 수많은 지식인 조작 글들이 발견될 정도죠.

[게.이.머] 게임판 '은전 한닢' 노예 에센스가드

◆'에센스가드'가 누군데?

'에센스가드'는 2006년 11월 경 블리자드의 온라인 MMORPG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즐기는 이용자였는데요. 아즈샤라 서버의 얼라이언스 진영 나이트엘프 종족 사냥꾼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플레이어였는데요. 어떤 사건 이후로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 오를 만큼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그는 사냥꾼을 택해 당시 만 레벨인 60레벨을 향해 열심히 레벨업을 했고 만 레벨 달성 후 펫도 하나 테이밍해 만 레벨 콘텐츠인 '레이드'를 위해 아이템 파밍을 진행했습니다.

'에센스가드'의 펫인 에센스프로텍터. 에센스프로텍터가 본캐릭이고 '에센스가드'가 펫이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다.
'에센스가드'의 펫인 에센스프로텍터. 에센스프로텍터가 본캐릭이고 '에센스가드'가 펫이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듯 딜러 직업은 항상 인구가 많았기에 쉽게 레이드 파티에 속하기가 힘들었는데요. 특히 2006년 당시에는 도적과 사냥꾼의 인구가 크게 많았기에 레이드에 참여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오죽하면 레이드에 참여할 이용자를 모집하는 글 말미에 '도냥풀'(도적과 냥꾼은 이미 모집이 완료됐다는 뜻)이 붙어 나오기 일쑤일 정도였습니다.

특히 직업 인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귀족과 천민 등의 계급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었기에 인구가 많던 사냥꾼과 도둑은 더욱 천대받았죠. 사냥꾼에게는 '냥닥솔'(사냥꾼은 닥치고 솔로 플레이나 해라), 도적은 '도닥붕'(도적은 닥치고 붕대나 감아라, 힐 스킬을 써주기도 아깝다는 뜻)이라고 대꾸할 정도로 크게 천대받았습니다.

파밍 중인 '에센스가드'
파밍 중인 '에센스가드'

그렇게 레이드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일반 사냥 필드나 전장에서 일일 퀘스트를 진행하며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할 골드를 벌곤 했는데요. '에센스가드'도 그런 이용자 중 하나였습니다.

◆뜻밖의 제의에 덥썩! 그런데…

레이드에 가지 못했던 '에센스가드'는 그날도 일반 필드에서 일일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아즈샤라 얼라이언스 진영 유명 공격대 중 하나인 뿌우 공격대에서 가입 제의를 받았습니다.

뿌우 공격대는 웹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와우 갤러리 이용자들이 주축인 길드로 높은 단계의 레이드에 도전하던 팀이었습니다. 그만큼 공격대원을 모집하는데도 굉장히 까다로웠는데요. 일정 수준의 아이템 레벨과 콘트롤 실력을 요구하거나 테스트하는 '면접'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게.이.머] 게임판 '은전 한닢' 노예 에센스가드

그런 상황에서 '에센스가드'에게는 그런 요구가 일절 없었으니 덜컥 오케이할만도 했죠. 그런데 뿌우 공격대가 내건 조건이 기가막혔습니다. 바로 '암호화된 황혼의 문서' 1000개였으니 말입니다.

◆시작된 노예 생활 "봇 아냐?"

당시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선 안퀴라즈 사원이 업데이트된 직후였는데요. 이에 따라 많은 공격대들이 신규 레이드 던전인 안퀴라즈 공략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뿌우 공격대 역시 안퀴라즈 사원을 공략하고 있었는데요. 이 안퀴라즈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자연 저항 물약과 자연 저항 아이템들이 필요했습니다.

자연 저항 아이템을 맞춰야하는 가장 큰 이유였던 '공주 후후란'. 체력이 떨어지면 광폭화 상태로 전환해 높은 데미지의 자연 피해를 주는 독을 쏘아댔다
자연 저항 아이템을 맞춰야하는 가장 큰 이유였던 '공주 후후란'. 체력이 떨어지면 광폭화 상태로 전환해 높은 데미지의 자연 피해를 주는 독을 쏘아댔다

문제는 이 자연 저항 물약과 자연저항 장비템들을 만들려면 '세나리온 의회'의 평판을 일정량 이상 올려서 제작 도안을 구매해야 됐는데요. 평판을 올리려면 실리더스의 '황혼의망치단'에 소속되어 있는 몬스터들에게서 일정 확률로 드랍되는 '암호화된 황혼의 문서'를 모아 NPC에게 전달해야 됐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몬스터는 한정돼 있었으니만큼 직접 하기에는 힘들었던 뿌우 공격대는 '에센스가드'에게 레이드 참여를 미끼로 이 역할을 떠넘긴 것이죠.

바로 '동물이'라는 이용자가 이를 주도했는데요. '에센스가드'는 이 말을 듣고 바로 실리더스로 직행해 '암호화된 황혼의 문서' 아이템의 파밍을 시작했습니다.

파밍 중인 그의 등이 쓸쓸해 보인다.
파밍 중인 그의 등이 쓸쓸해 보인다.

레이드에 참여하기 위해 '암호화된 황혼의 문서' 1000장을 모으기 시작한 '에센스가드'는 묵묵히 노가다에 임했는데요. 무조건 드랍도 아니었고 확률 드랍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요구됐습니다.

게다가 '에센스가드'는 그 당시 갓 만 레벨을 당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퀘스트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희귀 아이템 등급의 '피나무활'을 착용한 상태였는데요. 당시로써도 굉장히 낮은 데미지를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라 사냥에 걸리는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당시 그가 파밍에 사용한 무기 아이템.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 데미지가 굉장히 낮았다.
당시 그가 파밍에 사용한 무기 아이템.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 데미지가 굉장히 낮았다.

아울러 '에센스가드'는 '암호화된 황혼의 문서'만이 아닌 '자연저항의 물약'의 재료인 '대지의원소'도 모아 갔어야 했는데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이를 수거해 가는 뿌우 공격대원에게 욕을 먹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며 갈굼을 당하는 '에센스가드'(출처: 디씨인사이드 와우갤러리)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며 갈굼을 당하는 '에센스가드'(출처: 디씨인사이드 와우갤러리)

그렇게 그의 노예 생활 덕분에 뿌우 공격대의 안퀴라즈 레이드 공략은 굉장히 수월했는데요. 정작 '에센스가드'는 아직 1000장의 '암호화된 황혼의 문서'를 모으지 못해 레이드에 참석해보지 못했습니다.

아즈샤라 서버 이용자들은 실리더스에서 항상 사냥하고 있는 그를 중국 작업장 캐릭터로 오해하기도 했었다는데요. 그만큼 하루 종일 노예 생활, 아니 파밍을 했습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온정의 손길 이어져

그렇게 하루종일 황혼의 문서 작업과 대지의 원소 작업 등을 하던 '에센스가드'를 본 몇몇 이용자들은 작업장도 아닌데 하루종일 파밍을 하는 그를 보며 의문을 가졌는데요. 내부 사정을 아는 몇 명이 제보함에 따라 결국 그의 사정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의 사정을 알게된 이용자들은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는데요. 일부 이용자들은 그에게 사냥꾼 직업에 필요한 화살 등의 아이템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심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커뮤니티 밖으로까지 전해졌는데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오르기까지 하는 등 많은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해당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힘이 컸죠.

[게.이.머] 게임판 '은전 한닢' 노예 에센스가드

그렇게 사연이 알려진 '에센스가드'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뿌우 공격대에서 벗어나 서버 이전을 했는데요. 서버 이전 후 나름 귀족 캐릭터이던 성기사를 육성해 이전의 설움을 벗어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반전!

'에센스가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최초의 온라인 노예", "뿌우 공격대 너무하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요. 사실 이것은 뿌우 공격대의 '동물이'가 수많은 이용자들을 속인 대형 낚시였습니다.

'에센스가드'는 그저 본인이 좋아서 반복적인 파밍을 하는 이용자였는데요. 이를 지켜본 '동물이'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커뮤니티에 '에센스가드' 노예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에센스가드'는 여러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유명인사가 됐는데요. 후에 달라란 서버 얼라이언스로 이전한 그는 성기사를 육성하다 입대를 했고, 대격변에 맞춰 복귀했다고 알려집니다.

참고로 복귀 후 만 레벨 달성 외에 한 일은 동물 5만 마리를 잡는 길드 업적 '동물타격대'뿐이었다고 하니 정말 뼛속까지 필드 파밍을 좋아하는 이용자였던 것 같네요.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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