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게.이.머'의 이번 시간에 다룰 이야기는 바로 테트리스에 얽힌 수년간의 분쟁인데요. 정부부터 세계 각국의 유명 게임사까지 복잡하게 얽혔던 이 사건은 게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세우는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테트리스, 다 알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퍼즐 게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모두 '테트리스'를 나타내는 말인데요. 지금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함께 역대 인기게임 톱을 다투고 있는 게임입니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다고 하니 대단하네요.
'테트리스'는 1984년 소련 과학 아카데미(현 러시아 과학원)의 알렉스 파지노프가 개발한 게임입니다. '테트리스'(Tetris)라는 이름은 그리스 숫자 4를 나타내는 수사 접두어 'Tetra'와 개발자가 좋아하는 운동이었던 '테니스'(Tennis)를 결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소 엉뚱한 이름이죠.
개발자 파지노프는 소련 시절 '일렉트로니카60'을 연구하다 아이들의 공간 지각능력을 키우기 위한 퍼즐 게임을 만들었고, 그것이 '테트리스'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는 수족관에서 넙치가 춤추듯 내려와 수족관 바닥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내려앉는 모습과 다른 넙치와 겹치지 않도록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퍼즐게임 '펜토미노'(Pentomino)를 응용해 펜토미노의 5칸으로 이루어진 조각을 4칸으로 줄이고 조각의 모양을 7개로 제한한 것이 '테트리스'의 기초였습니다.
◆출시되자마자 선풍적 인기…'소련의 작전' 음모론까지
미국과 소련이 지구촌 패권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던 냉전시대에 개발된 '테트리스'. 개발자가 소련 과학 아카데미 소속의 프로그래머이기도 해 의심을 받기도 했는데요.
개발 3년 후 미국에 진출한 '테트리스'. 미국에서 '테트리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소련 KGB 음모설'이라는 황당한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소련의 정보기관 KGB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전산망을 마비시키기 위해 '테트리스'를 배포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죠.
아이러니하게도 '테트리스'가 서방으로 넘어가 전산망을 마비시킨 것이 아니라, '테트리스'가 전세계로 퍼져나갈 무렵인 1989년부터 소련의 붕괴가 시작됐습니다.
◆출시 10년간 저작권료 0원?
'테트리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가며 전 세계적인 인기와 유명세를 얻었지만 정작 원 개발자 알렉스 파지노프는 10년간 이와 관련한 소득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개발자 본인이 '테트리스'의 인기를 몰랐고 또 저작권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었던 게 원인인데요. 당시 저작권 개념 자체가 희박한 탓도 컸습니다. 파지노프가 정부 기관 소속인 것도 한 몫했죠. 그가 정부 기관 소속임을 이유로 소련 정부는 1985년부터 10년간 저작권을 행사해 모든 수익을 대신 챙겼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인 1991년. 파지노프가 미국으로 이민한 뒤 '테트리스' 독점 라이선스사를 총괄하는 회사를 설립했고 그 이후부터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다루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이미 유명해진 '테트리스'의 가짜 판권이 해외에서 사고 팔린 뒤였다는게 문제입니다.
◆게임역사 상 가장 복잡하게 얽힌 저작권 분쟁
'테트리스'의 저작권 분쟁은 게임사상 가장 복잡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선 영국 사업가 로버트 스테인 안드로메다 사장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테트리스'를 보게되고 계약을 위해 개발자인 파지노프와 저작권을 협의했는데요. 협의가 마무리 되기도 전에 그 라이선스를 스펙트럼홀로바이트사에 팔아버리면서 길고 긴 저작권 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콘솔과 아케이드용 라이선스를 아타리의 자회사인 텐겐으로 팔아버렸는데요. 이 때문에 정식 저작권 계약을 한 닌텐도가 1989년 닌텐도 테트리스를 출시하기 전에도 '테트리스'는 1986년부터 미국 게임 시장을 휩쓸었죠.
여기에 텐겐의 콘솔게임을 보고 텐겐에게서 라이선스를 얻은 게임 퍼블리셔 헨크 로저스는 닌텐도가 '패미콤' 용으로 '테트리스'를 발매할 수 있도록 중개해주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가짜 '테트리스' 저작권을 사고 파는데 더해 재판매까지 하게 된 이야기인데요. 이 거래를 주고 받은 회사 중 어느 곳도 가짜 저작권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밝혀진 진실, 진짜는 러시아에
'테트리스' 저작권을 재판매했던 헨크 로저스는 닌텐도 게임기 '게임보이'용 저작권 계약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다가 파지노프를 직접 만난 그는 콘솔용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어느 회사에도 판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아타리 자회사인 텐겐이 가진 것으로 알려진 콘솔 저작권 계약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닌텐도에게 사정을 설명한 그는 콘솔용 '테트리스' 정식 라이선스를 계약하게 됩니다.
당시 아타리는 자회사 텐겐에서 개발한 아케이드 버전 '테트리스'를 출시하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요. 지금도 '테트리스'를 떠올리는 사람은 이 텐겐 버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특유의 러시아 민요를 바탕으로한 배경음악 'Karinka', 'Loginska', 'Bradinsky', 'Troika'는 현재까지도 패러디되고 있죠.
한 레벨이 끝나 점수 정산 시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러시아 병정 캐릭터도 텐겐 버전의 특징입니다. 가장 유명한 테트리스 버전이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긴 '테트리스'일텐데요. 이 게임을 즐긴 사람 수많은 사람 중 이 게임이 가짜라는 생각을 떠올린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후 닌텐도는 아타리와 기나긴 법정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이 법정 공방으로 인해 불티나게 팔리던 아타리의 '테트리스' 카트리지는 급하게 회수됐고 출시를 기다리고 있던 25만 개의 카트리지가 폐기되기도 했죠.
이 공방 자체가 수 년 동안 계속돼 1993년에야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벌어진 '테트리스' 저작권 분쟁
그런 역사를 가진 '테트리스'이기에 더욱 저작권 이슈에 꼼꼼한 편인데요.
지난 2003년 국내 게임 업계에 불어온 '테트리스 멸종'도 이러한 저작권 다툼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당시 정식 라이선스 없이 서비스되던 게임에 대한 판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테트리스'류 게임 대부분이 서비스를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약 2년에 걸친 판권료 경쟁을 거쳐 NHN, 넷마블, 컴투스의 3개 대형 회사만이 정식 서비스 계약을 따내게 됐죠.
당시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업체는 NHN, 넷마블 외에도 200여 곳에 달했는데요. 저작권 협상 이후 연합 전선을 펴고 저작권 협상 보다는 오프라인 게임인 '테트리스'와 '온라인 게임 테트리스'는 다르다는 논지를 펴던 다른 업체들은 정식 계약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넷마블과 NHN 등 대형 게임사가 저작권 계약을 함으로써 저작권을 인정해준 셈이 됐기 때문인데요. 계약 체결이 사실상의 베타적 사용권 체결이며 계약 자체도 독단적 행위라는 비난도 이어졌지만 금세 사그라들었죠.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현재와는 많이 다른 풍경인데요. 당시에는 저작권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이 즐기던 게임이 사라진 사실에만 집중해 아쉬워하는 이용자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네요.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