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게.이.머'의 이번 시간에 다룰 이야기는 모바일로 만들어져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 매출 순위 상위권을 휩쓸며 대세 IP로 떠오른 '리니지'에 대한 이야기 인데요.
자칫하면 '리니지'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과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을 뻔한 일을 아시나요? 현재 '리니지'가 흥하게 된 저작권과 관련해 일어난 일입니다.
◆리니지, 모르면 간첩인 게임
'리니지'는 엔씨소프트가 1998년 9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MMORPG로 국내 온라인 게임 산업의 태동을 이끈 기념비적인 게임입니다.
신일숙 작가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해 서버이름과 캐릭터명, 지역명, 일부 아이템과 캐릭터 디자인 그리고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원작에서 따왔습니다. 원작의 스토리는 '반왕'까지라 이후로는 독자적인 스토리를 입혀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있죠.
이 게임은 다양한 후속작과 모바일화로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는 대형 IP로 성장했는데요. 출시된지 얼마되지 않은 2001년 '리니지'의 이름으로 서비스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될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원작자의 소송 제기
엔씨소프트는 1999년 1월 19일 원작자인 신일숙 작가와 '리니지 원작 사용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초 신일숙 작가는 아이네트와 온라인 게임 수익의 5%를 로열티로 받는 조건으로 원작 사용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핵심 개발자였던 송재경(당시 엔씨소프트 부사장)씨가 엔씨소프트로 옮겨가면서 재계약을 체결하게 됐고 엔씨소프트는 IMF라는 경제 상황을 이유로 로열티 제공 조항을 계약서 상에서 삭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창 개발 중이던 1997년 당시 송재경 엔씨소프트 부사장이 원작사용에 대한 대가로 1500만 원을 지급한 것이 전부였죠.
이윽고 출시되며 초기부터 흥행에 성공한 '리니지'. 그런데 출시 1년만인 2000년 3분기경 엔씨소프트가 '리니지'를 활용한 사업에 나서면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원작자인 신일숙 작가가 '리니지' 해외 진출 및 캐릭터 사업과 관련해 합의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이죠.
양측은 법정 대리인을 내세워 물밑 협상을 진행했지만 왔으나 결국 협상이 결렬돼 2001년 1월 법정 분쟁으로 까지 번지게 됩니다. 2001년 2월 2일 신일숙 작가의 법정 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 측은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캐릭터 사업을 위한 컨소시엄 '아이스크림'에 참여한 것과 캐릭터 개발사 에이치(EICH)를 통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과 대만 진출에 이어 미국, 일본에서 게임 서비스를 추진하는 것 모두가 계약 위반이라고 말했는데요.
엔씨소프트 측에 온라인게임 개발, 서비스를 제외한 다른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는게 원작자 측 주장의 골자였습니다. 해외 진출을 위해 판권을 제3자에게 양도할 때 원작자의 동의를 구해야하지만 합의가 없었다는 것도 중요 주장이었죠.
반면 엔씨소프트 측은 "원작 '리니지'의 권리는 신일숙 씨에게 있지만 2차 저작물인 온라인게임의 모든 권리는 엔씨소프트에 귀속된다"고 주장했는데요. 게임을 해외에 수출한 것과 게임 캐릭터를 활용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만화 원작을 기반으로한 계약 내용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렇게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사업 접어VS.이건 달라!
신일숙 작가 측은 엔씨측에 1달간의 여유를 줬지만 엔씨소프트는 권리침해와 계약위반 내용 모두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로 인해 신일숙 작가와 엔씨소프트가 맺은 계약 자체가 파기됐다고 까지 선언했습니다.
특히 원작자 측이 승소하면 게임에서 사용 중인 원작의 이름, 인물, 배경을 이용한 일체의 것을 사용할 수 없게 돼, 온라인게임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까지 역설했죠. 당시 '리니지'는 서버 이름부터 엔피씨 이름 및 복장 모두를 원작의 것에 맞췄기에 정말 이런일이 벌어질 경우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게임 대부분을 바꿔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김택진 대표도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리니지' 게임은 엔씨소프트가 독자적인 노력을 기울여 창작한 작품으로 신일숙 씨의 만화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저작물'"이라는 주장을 폈는데요. 따라서 '리니지' 게임에 대한 저작권은 엔씨소프트가 독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리니지' 게임은 줄거리가 완결돼 있는 만화와 달리, 게임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내용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것이 엔씨측 입장이었죠. '리니지' 게임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 역시 엔씨소프트가 소유하고 있으며 이 회사는 이번 입장 표명을 계기로 캐릭터 사업에 본격 나설 것임을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대로
엔씨측 주장을 접한 신일숙 작가 측은 '리니지' 게임이 독립된 저작물이라면 애초에 원작 사용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었겠냐며 코웃음쳤습니다. 2차 저작물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반박이죠.
이 소송은 1000만 명의 이용자가 즐기는 '리니지'의 서비스 지속 문제와 더불어 오프라인 콘텐츠를 디지털화한 것에 대해 '새로운 저작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판례가 될 것으로 보여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신일숙 작가 측은 2001년 7월 법원에 '리니지' 원작사용 계약 위반행위 등을 이유로 중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요. 서울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이유는 그동안 양측의 종합적인 정황에 비춰봤을 때 엔씨소프트가 원작사용계약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원작자의 요구사항이 '리니지' 서비스 중단을 요할만큼 시급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죠.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자 신일숙 작가 측은 본 소송을 준비했는데요.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대로 법정 공방 전에 극적인 합의를 이뤄냅니다. '리니지'가 대만과 일본에 수출되고 관련 캐릭터 상품도 출시된 지금을 토대로 유추해봐도 엔씨소프트가 2차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합의 내용은 엔씨소프트가 만화 '리니지'에 대한 2차 저작권을 받는 대신 10억 원을 지급하고 신일숙 작가를 고문으로 위촉, 매월 100만 원 지급과 스톡옵션 1000주 부여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당초 1500만 원의 IP 사용 비용에서 끝났던 일이 이렇게 커진거죠.
엔씨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소송이었기에 신일숙 작가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합의를 했다는 후문인데요. 만약 이 소송이 진행됐고 엔씨소프트 측이 패소했다면 엔씨소프트의 기둥인 '리니지'가 어떻게 됐을지……. 엔씨소프트 자체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