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를 거쳐 이번에는 태국을 방문했습니다. 태국은 남부에는 멋진 해변이 즐비하고 중부 지역에는 문화유산이 산재해있으며, 북부 지방에는 각각이 왕국으로 발전해오다 태국에 합병된 도시들이 다수 분포해 있어 어디를 가도 관광객이 많은 관광 대국입니다. 특히 4월의 송크란과 11월의 로이끄라통 시즌이 되면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태국을 찾아 축제의 열기를 함께 나눈답니다.
◆서로 물뿌리며 새해 인사 나누는 송크란
마침 데일리게임이 동남아시아 기획을 위해 태국을 찾은 기간이 송크란과 겹쳤습니다. 송크란은 태국의 새해 명절로 태국인들은 새해를 맞아 서로에게 물을 뿌리면서 새해 인사를 나누는데요. 새해 축하를 과격하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송크란 축제가 실사판 '물총 FPS게임'으로 변모된 느낌입니다.
송크란에 사용되는 물총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화려하기만 합니다. 예전에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작은 물총만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1리터가 넘는 물을 담을 수 있는 물탱크를 장착한 소총 수준의 물총 사용이 일반화된 것이죠. 장전 후 발사하면 10m가 넘는 곳까지 물을 쏠 수 있는 물총도 적지 않습니다.
◆화력 좋은 물총으로 격한 새해인사 나누는 사람들
송크란 시즌이 다가오면 길거리 노점상이나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물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우리 돈 1만 원(300바트) 정도면 제법 화력 좋고 물통도 큰 물총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총 수준의 물총은 덩치가 큰 어른들이나 사용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작은 권총 같은 물총이나 가방 형태로 물탱크를 연결한 물총이 주로 주어집니다. 가방에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고 상단에 위치한 뚜껑을 열어 물을 보충해줘야 합니다.
비록 상대적으로 화력이 약한 물총을 지니고 있지만 어린이들이 사실 송크란 물총 대전에서 가장 강력한 선수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형 물총을 들고 헤드샷을 일삼으며 평소 FPS 게임을 하던 실력을 뽐내던 어른들도 아이들 앞에선 순한 양이 되곤 하기 때문이죠. 기자도 다른 물세례를 피해가며 이동하다가도 아이들이 귀여운 미소와 함께 물총을 겨눌 때는 차려 자세로 그들의 처분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반격이라고는 손가락으로 물방울 몇개만 아이들의 몸에 뿌리는 것말고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폭탄 세례 최대 위험지역은?
송크란 축제는 태국 전역에서 진행되는데요.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는 배낭여행자의 성지로 알려진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와 한국의 명동이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번화가 중심지 시암역 인근, 실롬역 인근이 가장 유명합니다.
13일 오전부터 카오산 로드에서는 수시로 국지전(?)이 벌어졌는데요. 서로 눈치를 보다 누군가 먼저 발포하면 반격이 시작되고, 주위에서 협공에 나서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습니다. 카오산 로드로 진입하는 거의 모든 길목에 물총 판매상들이 운집했고, 사방에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 물총과 방어구를 장착하고 격전의 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암역 인근에는 낮부터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워낙 많은 인원이 밀집해 이동이 어려울 정도였는데요. 그 위로 물폭탄이 연신 투하되기 때문에 흠뻑 젖지 않고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롬역 인근의 실롬 로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낮부터 인파로 가득해 이동이 쉽지 않고, 여기저기서 물세례가 쏟아져 온몸이 흠뻑 젖지 않고는 빠져나오기 불가능합니다.
◆길거리를 장악한 복병들을 조심하라
주요 교전 지역으로 진입하는 길목에는 복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물을 담아 바가지로 물을 퍼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 버스나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교통수단)에 탄 사람들에게 무차별 투하합니다. 가끔 버스나 툭툭 탑승객들이 반격을 하기도 하지만 쏟아지는 물폭탄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입니다. 센스 넘치는 툭툭 기사들의 경우 물폭탄 앞에 잠시 정차해 승객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간혹 툭툭에 탄 사람들끼리 교전을 벌이기도 하는데요. 길목에 버티고 있는 복병들이 가세해 양각을 당하는 팀도 나오게 됩니다.
카오산 로드나 시암역 인근 격전지에서도 보급로를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물총으로 싸움을 벌이기에 물이 떨어지면 아무 공격 수단이 없게 되는데요.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곳곳에 배치된 대형 물통을 사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의 보급로가 곧 적의 보급로인 셈이어서 물을 채우기 위해 모인 이들 사이에서 끊임 없이 교전이 벌어집니다. 보급로를 장악하고 지속적인 재장전을 하고 싶다면 물폭탄을 계속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배틀그라운드'와 비슷하면서 다른 송크란 물총 대전
송크란 물총 대전(?)을 '배틀그라운드'와 비교하면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넓은 지역에서 시작해 특정 지역으로 모여드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곳은 안전지역이라기보다는 극도로 많은 적이 밀집한 위험천만 지역이기 때문이죠.
물을 쏴서 적을 맞혀도, 물폭탄을 던져서 적중시켜도 전사하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반격해올 뿐이죠. 물총 구입이나 물안경, 방수 포켓 구입 등 파밍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장비가 좋다고 물에 흠뻑 젖는 일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한 명이 생존해 치킨을 뜯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함께 즐기는 시간이라 할 수 있죠.
◆송크란 기념 이벤트 모드 나온다면?
송크란을 응용한 FPS 게임 모드가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명이든 200명이든 일단 한 방에서 게임이 시작되고, 물총 파밍에 이어 교전을 벌인 뒤 물에 젖으면 무적 상태가 되는 겁니다. 모든 이들이 물에 젖을 때까지 게임이 계속되고, 얼마나 오래 물에 맞지 않고 생존했는지와 적에게 물을 적중시킨 점수를 합산해 1위를 가리는 거죠.
안전지역이 여러 번 줄어들 때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교전이 계속적으로 발생할 테니 훨씬 빠른 속도로 게임이 진행될 것이고, 전사 걱정 없이 서로 물을 시원하게 퍼부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특히 기자처럼 FPS게임에 젬병인 사람에게 딱일 듯한데요. 내년 송크란 기간에 게임 안에서 함께 태국의 새해를 축하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참여해볼 생각입니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