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나올 줄 알고 있었음에도 티노는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아르카를 바라보았다.
“이봐? 공짜는 싫다며?”
“선물은 다르지.”
당연하다는 투로 답하는 아르카의 태도는 평소처럼 딱딱하면서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기계 팔을 뜯어보는 눈은 흥분과 호기심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마키에이프의 팔이군. 몸통 쪽은 파손됐던가?”
“응. 먹힐 때 망가진 것 같았어.”
“몬스터끼리 싸웠는데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니……. 상대가 압도적으로 강했다는 뜻이군. 어디서 주웠지?”
“여기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지점에서.”
티노가 이동하는 경로를 훤히 아는 아르카이기에 이 정도만 말해도 충분했다. 아르카는 이번엔 기계 팔에 묻은 피와 먼지를 닦아 내기 시작하며 중얼거렸다.
“가 봐야겠군.”
기계에만 관심이 있는 아르카는 기계와 관련이 없는 몬스터는 마주쳐도 상대를 안 하는 남자였지만, 그의 기준에서 ‘이상하게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면 반드시 죽여 그 시체를 해부해 보는 악취미가 있었다. 여러모로 특이한 녀석이었다.
기계 쪽과는 달리 그 악취미는 아르카만의 것으로 티노와 함께하는 일은 없었다. 티노 역시 거기엔 가담하고 싶지 않았기에 신경 끄고 아르카의 손에서 깨끗해져 가는 기계 팔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지금 뜯어볼 거야?”
“흠…….”
아르카는 기계 부품이 가득한 작업대를 보고 고민했다. 공간이 없어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넓은 건축물을 작업실용, 창고용, 주거용 등등으로 다섯 층이나 이용하고 있었고 각 층마다 방도 많았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원래 하려던 것을 계속 하느냐, 새로운 흥밋거리에 집중하느냐였다.
“이 일이 더 흥미롭긴 하지만…….”
아르카는 아쉬운 듯 기계 팔을 어루만지다가 번쩍 들었다. 그리곤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갔다. 티노도 가뿐하게 들긴 했지만 아르카는 마치 새털을 든 듯이 무게감 없이 움직였다.
곧 빈손으로 돌아온 아르카는 들고 있던 천을 티노에게 던지며 말했다.
“닦아라.”
“쳇! 그냥 흥미가 가는 쪽을 하지 그래?”
“이쪽이 손이 더 가고 번거로우니까 심부름꾼이 있을 때 하는 게 합리적이지.”
티노는 투덜대면서도 능숙하게 기계 부품을 닦기 시작했다. 아르카 역시 새로운 천을 꺼내어 작업에 동참했다.
“선물해 준 성의를 봐서 그거 먼저 해도 되잖아?”
“걱정 마라. 성의를 봐서 충분히 즐겨 줄 테니.”
몬스터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계형, 야수형, 아니마형 그리고 야수형 몬스터에 기계 팔다리 따위가 달린 복합형. 플로레스라면서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흐르는 아르카는 오래 전부터 기계형 몬스터들을 분해하고 연구해 왔다고 한다. 그러다 복합형 몬스터까지 관심이 번졌는데, 기계형 몬스터와는 달리 복합형 몬스터의 기계 부위는 분해할 수가 없었다. 강제로 뜯으려고 하면 램 특제 폭탄처럼 스스로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티노가 합류한 이후로도 소득이 별로 없긴 마찬가지였다. 분하지만 그 기밀 보안 장치만은 램의 것보다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티노도 다른 건 몰라도 복합형 몬스터를 분해하는 일만큼은 아르카만큼이나 흥미가 있었다. 그러니 맛있는 걸 나중에 혼자 먹겠다는 고약한 심보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친구가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아르카를 슬쩍 노려본 티노는 곧 관대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뭐, 좋아! 이것도 오늘로 끝이니까 너그럽게 봐주지.”
아르카는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티노는 항상 성인이 되면 수도로 갈 거라고 말해 왔으니까.
“레나센시아에 갈 생각인 건가?”
“당연하지! 나도 이제 당당한 성인이야. 할아버지 허락이 없어도 섬을 떠날 수 있어.”
“여기는 허락받고 왔었던가?”
지극히 당연한 반문에도 티노는 당당했다.
“바로 옆에 있는 섬과 수도는 엄연히 다르지.”
“여기 들락거리는 걸 걸려도 죽기 직전까지 혼나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어쨌거나!”
“돈은 있나?”
“진작 꿍쳐 놨지. 난 계획적인 남자거든. 흐흐.”
티노는 일부러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가슴을 쫙 펴 보였다.
오염되고 황폐화된 환경은 몬스터 이상으로 위험하다. 육로로 이동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정기적으로 오가는 비행선의 표 값은 거품 없이 합리적이었지만 이제야 간신히 성인 대접 받게 된 16살 소년의 용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지만 티노가 구해 놨다면 구해 놓은 거다.
“레나센시아에서 쓸 돈까지 구해 놓은 거냐? 수도니 물가가 더 비쌀 텐데?”
“얼마 정도는 모아 뒀어. 그리고 어차피 사관학교는 기숙사제니까 괜찮아.”
“네가 사관학교란 곳에 들어갈 수 있으면 말이지.”
“왜 못 들어가?!”
티노는 펄쩍 뛰며 언성을 높였다.
“난 친위대원이 될 의욕과 정성이 하늘에 뻗친 사람이라고! 할아버지랑 네 손에서도 이렇게 건실하게 자란 근성을 무시하지 마! 어떤 훈련이라도 버텨 낼 자신이 있으니까!”
“어디에 던져 놔도 쉽게 죽지 않을 녀석이라는 것만은 동의하지.”
“믿음직스럽단 소리로 듣겠어.”
아르카는 답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당당한 친위대원이 되어서 돌아와 주지!”
“죽기 전엔 볼 수 있겠군.”
운이 좋으면, 이라고 냉담한 어조로 얄밉게 덧붙인 아르카는 들고 있던 천과 부품을 내려놓았다. 잔뜩 쌓여 있는 일거리들을 앞에 둔 티노가 항의했다.
“뭐야? 왜 손을 놓고 그래? 설마 나 혼자 다 하라는 건 아니겠지?”
“무운을 비는 의미에서 작별 선물을 주지.”
“오! 뭔데? 얼른 줘.”
티노는 반색해선 두 눈을 반짝였다. 아르카는 아까와는 다른 문 너머로 사라졌다. 남겨진 입으로야 뭐라 투덜대도 천성이 부지런한 티노는 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기다렸다. 네 번째 것을 닦고 내려놓았을 때, 아르카가 돌아왔다.
아르카는 작업대 위에 물건들을 올려놓았다. 얇은 은사슬과 검은 철사, 평집게, 라운드 노우즈, 니퍼였다. 다음으로 가슴 안주머니에서 천으로 된 작은 주머니를 꺼내어 내용물을 손바닥에 쏟았다. 검지 두 마디만 한 크기의 길쭉한 타원형의 수정조각 같은 것이다. 얇고 투명하면서 양쪽 다 날카롭다.
“그게 뭐야?”
“이상할 정도로 흉포하거나 크거나 강한 몬스터의 몸을 해부하다가 발견한 것들이다. 나중에 연구해 보려고 모으는 중이다.”
“엑?! 왜 그런 걸 모으는 거냐? ……아니지, 너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알아서 납득한 티노는 이번엔 다른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것들’이라니? 하나밖에 없잖아?”
아르카는 행동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얇고 길쭉한 조각을 두 손으로 잡더니 쿠키를 쪼개듯이 양쪽으로 꺾은 것이다.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그것은 반으로 쪼개졌다. 원래부터 두 개였던 것처럼. 아니, 정말 원래부터 두 개였던 걸까? 티노가 의문을 담아 아르카를 올려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비슷하게 생긴 거라 비교하려고 대 봤는데 붙더군. 떨어지기도 하고. 자석처럼.”
아르카는 수정조각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이번엔 철사와 니퍼를 들어 철사를 여러 크기로 똑똑 잘랐다. 그 다음엔 집게로 철사를 들어선 라운드 노우즈로 이리저리 꼬기 시작했다. 새로운 철사를 꼬아서 둘을 엮고, 또다시 꼬아서 엮기를 반복하자 어느새 분위기 있는 넝쿨 모양의 틀이 만들어졌다. 딱 수정조각 하나가 들어갈 크기의 틀이었다.
역시나 아르카는 그 안에 수정을 넣고 다시 철사를 이리저리 비틀고 꼬아서 뚜껑을 만들었다. 뚜껑 윗부분엔 작고 동그란 고리를 만드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조여졌는지 확인한 뒤 고리 안에 은사슬을 꿰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수정목걸이 하나가 만들어졌다. 철사의 굵기를 보면 저렇게 섬세하게 꼬기 힘들 것 같은데 아르카는 우악스러운 힘과 섬세하면서 야무진 손,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해냈다.
정밀함과 정확성을 요하는 기계 조립은 할 수 있지만 저런 식의 감각이 필요한 세공은 꿈도 못 꾸는 티노는 넋을 잃고 구경만 했다. 그러다 아르카가 완성된 수정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수정목걸이를 이리저리 감상했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으면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목걸이였다. 마을의 세공사가 몇 날 며칠 시간을 들여 만든 것들도 이보단 못했다.
“고마워!”
목걸이가 마음에 든 티노는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가 곧 슬쩍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근데 무운을 비는 선물이라더니, 왜 이상한 몬스터 사체에서 나온 걸 주는 거냐?”
“네가 친위대가 되려면 비상식적인 힘이 필요할 테니까.”
“뭐야?”
아르카는 티노의 반응에 관심 없이 말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운이 좋으면 네 목숨을 살려 줄지도 모르는 부적이다.”
“그래? 어느 순간인데?”
플로레스라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힘을 지녔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는 티노는 상대가 아르카임에도 기대에 부풀어 버렸다. 역시나 아르카는 단번에 찬물을 끼얹었다.
“전쟁에서 날 만났을 때.”
“……엥?”
“내 상대가 되면 반드시 내 손에 죽을 테니 너라는 걸 알아볼 수 있도록 주는 거다. 내가 전쟁에 참가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거 참…… 고맙구만.”
떨떠름하게 말한 티노는 다시 미간을 꿈틀하며 물었다.
“근데 이게 없어도 그냥 나 보면 난 줄 알 거 아냐? 왜 이런 표식이 필요한 거지?”
“노블리언들을 많이 본 것도, 그나마도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니지만 내 눈엔 다 그놈이 그놈으로 보였거든. 넌 경우가 다르지만 노블리언들 사이에서 널 구분할 수 있을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니까 확실히 해 두려는 거다.”
아르카가 스스로 확인해 보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확신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손으로 티노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진지하게 방도를 모색한 것이라는 것도 알기에 그의 말이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좀 쑥스럽고 낯간지러웠을 뿐이다. 그래서 티노는 오히려 토라진 척 입술을 삐쭉이며 말했다.
“아, 그래? 눈물 나게 고맙네. 그럼 너도 내가 보고 알 수 있게 이거 걸고 다녀. 나야말로 전쟁에서 널 만나게 됐을 때 살려 주지.”
“네가? 나를?”
“내가! 너를!”
티노는 남은 수정조각과 남은 재료 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
“자! 당장 만들어.”
“…….”
아르카는 특유의 냉담한 얼굴로 티노를 바라보다가 순순히 철사와 공구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아까의 작업을 똑같이 반복했다.
무기 제작 장인 아래서 컸기에 비밀을 지키는 것에 능숙한 티노는 누구에게도 아르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플로레스라가 뭔지 모를 때조차도.
아르카를 만나기 전부터 티노는 또래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혼자서 안전지대 밖을 쏘다녔기에 그가 자주, 오래 마을을 비워도 으레 그런 거려니 치부됐다. 티노는 램이 만든 총과 폭탄, 백팩 등으로 무장하고 다녔기에 다른 아이들을 끌어들이지 않는 한 다들 묵인했다. 그렇다 해도 어린애가 혼자 쏘다니는데 걱정하고 혼내고 묶어 놔야(?) 마땅했지만 전설처럼 전해지는 램의 유년시절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 다들 둔감해진 면이 있었다.
램은 티노가 할당된 공부와 숙제를 하고, 기술을 손에 익히게 하기 위해 시킨 공방의 일을 끝내면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줬다. 그러면 티노가 나가고 싶어서라도 꾀부리지 않고 집중해서 할당된 ‘짐덩이’를 해치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초 군사 훈련을 1년 만에 마치고 돌아온 손자가 집에 없자 램은 직접 요리해서 아까운 재료를 낭비하는 대신 보존식품으로 식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생존 본능이 뛰어난 그의 손자는 요리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고, 그 분야에 있어서만은 다행히도 할아버지를 닮지 않아서 사람이 먹을 만한 것을 만들어 냈다.
램은 지난 1년 동안 하도 먹어서 질린 보존식품을 맛없게 뜯어 먹으며 구색은 잘 갖춰져 있는 주방의 모든 것을 노려보았다. 기계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재료를 정확한 양과 크기로 계량하여 정확한 조리법으로 만드는데, 심지어 요리를 뒤적거리는 횟수나 팬을 달구는 시간과 ‘적당히’라 표기된 조미료의 양까지도 계산해서 넣는데, 왜 결과물은 항상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쓰면 좋겠지만 램의 직업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티노가 씩씩하게 돌아왔을 때 램의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아직 보존식품을 두 입밖에 안 먹었기 때문이다.
신승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