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소녀를 만나다(2)
우우웅.
탐지기가 진동을 했다.
도서관이었다. 이슬휘는 보던 책을 덮고 탐지기를 확인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조선 한양 경복궁.
슬휘는 갑자기 뒷목이 뻐근해졌다. 이날은 그녀가 일본인 낭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슬휘는 얼른 탐지기를 조작해 아카식레코드의 기록을 살폈다.
정상적인 역사에서는 그녀가 죽어야 하는데 그녀가 죽지 않고 피신하는 버그가 발생한 것이었다.
같은 사람에게 두 번의 버그가 발생하는 것은 그의 임무 중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쩌면 자기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발생한 버그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결과가 하필이면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이라니.
잊은 줄만 알았던 그녀에 관한 기억들이 봇물 터지듯 와르르 밀려나왔다.
얄궂은 그녀의 운명과 자기의 운명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껏 애써서 살려 놨던 그녀를 이제는 죽음으로 내몰러 가야 한다니…….
***
버그로 인해 잘못 죽게 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은 비교적 쉬운 편에 속했다.
죽음의 길은 하나지만 살 수 있는 길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므로 죽이려는 자, 혹은 죽음에 이르는 환경과 마주치지만 않게 약간 틀어 놓으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살겠다는 사람에게 죽음을 향한 단 하나의 길로 내모는 일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웠다.
아무리 주변을 점검하고 사람들을 살펴봐도 그녀를 죽게 할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찾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0월 7일이 되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그녀는 죽어야 한다.
이슬휘는 결단을 해야 했다.
자기가 괜한 미련으로 시간을 끌다 그 시간이 그냥 넘어간다 하더라도 다음번, 혹은 그 다음번, 그렇게 몇 번째가 되든지 결국에 가서는 그녀가 죽어야 역사가 바로잡히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린 이슬휘는 정면 돌파를 하기로 작정했다.
10월 7일 저녁. 슬휘는 경복궁의 한 방 안에서 그녀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중전 마마, 저를 기억해 주시고 또 이렇게 시간 내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슬휘는 자리에 앉은 채 머리를 숙여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내가 어찌 그대의 청을 거절할 수가 있겠소? 이슬휘 공.”
“네, 마마. 푸른 구슬 슬 자에 빛날 휘 자, 슬휘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잠시 당황스러운 침묵이 흘렀고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할까 고민하던 차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그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오? 어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이 그대로란 말이오?”
슬휘는 민망한 순간을 넘긴 데 감사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마마. 그건 제가 설명 드리기 곤란한 부분입니다.”
“음……. 그렇단 말이오? 내 처음 그대를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했지만…….”
잠시 슬휘를 쳐다보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 그동안 어디에 있었기에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았는데도 나타나질 않았소? 하긴, 그 덕분에 왜놈들의 음모를 알게 되었으니 내가 그대에게 또 한 번 신세를 지게 되었소.”
“으음.”
이슬휘는 가볍게 침음을 흘렸다. 자신의 짐작대로 버그가 생긴 것을 알아서다.
‘마마, 이번에는 제가 살려 드리러 온 게 아니고 돌아가시게 하러 온 것입니다.’
이슬휘는 도대체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이슬휘를 보고 그녀가 물었다.
“왜 그러시오? 무슨 문제가 있는 게요?”
이슬휘는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진심으로 납득해야만 자기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마마, 긴 이야기가 될 터인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래, 나도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어디 한번 해 보시오.”
이슬휘는 자기의 정체와 임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30년 전에 그녀를 구할 때의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자기의 실수로 인해 오늘의 이런 결과가 생겼음을 또 이야기했다.
그녀는 집중해서 이슬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그녀는 미동도 없이 이슬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불과 몇 시간 뒤의 운명이 오버랩 되어 도저히 마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슬휘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그녀가 툭 던지듯이 물었다.
“만약 내가 죽기 싫다면?”
“마마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이 일이 몇 번이고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다시 침묵을 깨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왜놈들의 음모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놈들의 손에 죽어야 한다는 말이오? 내 발로 호랑이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서?”
“죄송합니다, 마마.”
또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이슬휘는 고개를 숙인 채 모든 감각을 청각에만 집중시켰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이슬휘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도 그녀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결 평화로워져 있었다.
“그때는 와서 나를 살려 주시더니 이제는 죽음으로 내모는구려……. 그대는 어찌 그리 가혹하고도 잔인하시오? 마치 저승사자와 다름없구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때 나를 구하지 말지 그랬소?”
“죄송합니다, 마마. 역사가 그렇다 보니…….”
“그래, 역사가 그렇다 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소. 근데 역사가 뭐요? 역사는 살아 있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게 아니오?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재미가 있겠소?”
이슬휘는 그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전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은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곧이어서 다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미래에서 왔다 하니 어디 한번 말씀해 주시오. 우리나라는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이오?”
이슬휘는 대한제국을 선포함으로써 그녀가 명성황후란 시호를 받게 되는 것에서부터 한일합병, 정부 수립 등 근현대사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현재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경제대국이 되었음도 말해 주었다.
“비록 조선은 사라졌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슬휘가 말을 마치자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는 낮게 한 번 헛기침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게 누구 있느냐?”
“네, 중전 마마.”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지금 얼른 홍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서 내일 새벽에 왜놈들이 난입할 거란 정보는 거짓이었다고 알려라. 그러니 평상시대로만 방비를 하면 될 것이라고 전하도록 하여라.”
“네. 알겠사옵니다, 마마.”
“그리고 나는 옥호루로 갈 터이니 그리 알고 준비하도록 하여라.”
“네, 마마. 그리 준비하겠사옵니다.”
***
다음 날 새벽, 이슬휘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살해되는 장면을 확인했다. 멀리서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탐지기를 확인하니 버그가 제거되었다는 신호가 떴다.
이슬휘는 참담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채 현재로 돌아왔다.
현재의 모든 기록에 명성황후의 죽음이 기술되어 있었다.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정상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뭐가 정상이란 말인가?
이슬휘는 그녀가 자기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역사는 무엇인가?
이슬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그 질문을 했다.
하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의 그 질문으로 인해, 앞으로 E3로서의 자기의 삶에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생길 것이란 예감만 강하게 들뿐이었다.
***
한 사람을 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몸과 정신을 쉴 새 없이 움직여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날카롭던 기억의 칼날이 어느덧 무뎌져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슬휘는 거의 혹사 수준까지 몸을 움직였다. 버그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가서 해결했고 보고서도 그 전의 두 배 가까운 분량으로 작성했다.
임무가 없을 때는 책을 읽고 운동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픈 기억의 칼날이 상당히 무뎌졌다고 스스로 생각되었을 때, 이슬휘는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했다.
이슬휘는 다시 찻집에 갔다.
커피를 시키며 보니 그가 즐겨 앉던 자리에 누가 먼저 앉아있었다.
긴 생머리의 여자가 귀에 이어폰을 쓰고 밖을 보고 있었다.
이슬휘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여태까지 누구도 넘보지 않았던 그만의 자리였다. 그 자리는 좁고 답답한 1인용 자리였기 때문에 선택의 우선순위에서 아주 뒤처지는,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그런 자리였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아무런 경쟁 없이 편안하게 자기만의 자리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슬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자리에 앉아 그 여자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으나, 그 여자는 이슬휘가 커피를 한 잔 다 마실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차 한 잔 시켜 놓고 저렇게 오래 있으면 이 집 장사는 어찌하라고…….
이슬휘는 혀를 차며 찻집을 나왔다. 그러면서 그 여자의 뒤통수에 대고 한 번 흘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슬휘가 다음 날 다시 그 찻집을 찾았을 때도 그 여자가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슬휘는 또 어쩔 수 없이 다른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왔다.
세 번째 날에는 역사 관련 특강이 있어 그걸 듣고 왔더니 시간이 많이 늦어 있었다.
이슬휘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래도 커피를 한잔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어 찻집으로 향했다.
찻집으로 막 들어서려다 우연히 고개를 돌렸더니 자기가 온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뒷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아 잠시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도 뭔가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이슬휘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그대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녀다!
분명히 그녀였다. 이제는 정말 겨우 잊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녀.
그녀의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로 그녀.
그녀가 고개를 돌려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이슬휘가 그녀를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그녀가 인파 속으로 반쯤 사라진 다음이었다.
이슬휘는 정신없이 뛰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이슬휘는 인파 속을 이리저리 헤매며 그녀를 찾았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슬휘는 인파 속에 망연히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슬휘는 해야 할 바를 잊은 채 마치 파도 속의 외딴섬처럼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
***
이슬휘가 다시 찻집을 찾았을 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슬휘는 그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이제는 그냥 살피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었다. 그녀를 찾는 것이었다.
한 번 이 길을 지나갔으니 언젠가는 다시 또 지나갈 것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기에게는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우우웅.
탐지기가 버그 발생을 알렸다.
이슬휘는 남은 커피를 한입에 털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비의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