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지(4)
아카식레코드를 검색하면 앤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슬휘는 하급 현장 요원이라 아카식레코드에 접근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지구 시간으로 현재로부터 일정 기간 이내의 아카식레코드는 볼 수가 없었다.
이슬휘는 오랜 고민 끝에 위원회에 요청서를 보냈다.
발신: 코드네임 PHC-E3
제목: 특이사항 확인 요청
내용: 본 요원은 O월O일 1330년으로 돌아가 버그를 제거하고 돌아왔습니다.
확인 결과 1330년 이후 모든 역사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흘러왔으며 현재의 모든 환경도 본 요원이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나기 전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두 가지 특이사항이 있어 정밀 확인을 요청합니다.
첫째, 임무 수행 후 귀환 과정에서 과거의 인물과 우연한 조우가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오작동인지 귀환 후 탐지기에 아주 잠깐 버그 발생 경보가 나타났었습니다.
역사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봐서 작동 오류인 것 같지만 만일을 위해서 정밀 점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본 요원이 버그 발생을 감지했을 때 역사가 변하면서 현재의 한 지구인이 사라졌었는데 임무를 마치고 귀환해 보니 그 사람이 행방불명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확인 결과 역사의 변화로 인한 존재 변동은 아닌 것 같으나 좀 더 정밀한 점검이 필요할 것 같으니 그 사람의 행방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성별: 여자
나이: 20대
이름: 앤지(본명인지는 미확인)
직업: 물리학자
***
며칠 후 위원회에서 답신이 왔다.
버그 탐지기 알람은 아마도 탐지기의 오작동인 것 같으며, 앤지는 현재 시점에 존재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좀 더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감찰국과 화상 인터뷰를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슬휘는 감찰국과 화상 인터뷰를 연결했다.
담당 감찰관은 아카식레코드로 다 확인했을 텐데도 앤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앤지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구인과의 깊은 접촉은 금지되어 있다는 걸 모르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 징계가 있을 수 있으니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것은 위원회에 요청서를 보내서 이 문제를 공론화할 때 이미 각오한 부분이었다.
감찰관의 질문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앤지는 분명 현재에 살고 있습니다. 혹시 어디에 있을지 짐작되는 곳은 없습니까?
“글쎄요, 혹시 어머니가 계시던 시골에 갔을 수도 있고요…….”
―저희 짐작은 좀 다릅니다. 요원도 아시겠지만 우주의 활동 에너지가 아카식레코드로 모이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래서 현재 상황을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감찰관은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이슬휘를 쳐다봤다.
이슬휘는 감찰관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궁금해서 감찰관을 빤히 쳐다봤다.
잠시 뜸을 들이던 감찰관이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확정적으로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앤지는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슬휘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납치? 납치라고요? 누가요?”
감찰관이 급하게 이슬휘를 제지시켰다.
―아,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이건 그냥 저희들 짐작일 뿐입니다. 어찌 됐든 그건 지구인들의 문제이고, 또 그들의 역사이니까 절대로 요원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감찰관은 몇 마디 더 한 다음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슬휘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굳은 모습으로 멍하니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모든 동작은 멈추어 있었지만 머릿속만큼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도대체 누가, 왜 앤지를 납치한단 말인가?
감찰관은 개입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슬휘로서는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였다.
***
슬휘에게는 징계의 1단계인 ‘주의’가 내려졌다.
그동안의 임무 수행 실적을 참작해서 가장 낮은 단계로 정했으니 다시는 규정을 위반하지 말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하지만 이슬휘에게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슬휘는 임무 수행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앤지를 찾는 데 보냈다.
이슬휘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앤지가 다니는 연구소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연구소를 찾아갔다.
이슬휘는 건물 로비의 안내데스크로 갔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에……. 본명은 모르겠는데 앤지라는 별명을 가진 20대 여자 연구원을 찾는데요.”
그 말을 들은 안내 요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연구원이 수백 명인데요, 그렇게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슬휘의 머릿속에 반짝하며 불이 들어왔다. 이슬휘는 다시 물었다.
“아, 혹시 여기 며칠 전에 실종된 연구원이 있지 않나요?”
안내 요원의 얼굴에 잠시 당황하는 표정이 나타나더니 곧 다시 평안해졌다.
“아, 네. 그럼 담당자와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안내 요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잠시 후 보안 요원들과 경찰관이 와서 이슬휘를 에워쌌다.
이슬휘는 그들에 이끌려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슬휘를 회의 탁자 한쪽에 앉게 한 다음 경찰관과 한 사람이 이슬휘의 맞은편에 앉았다. 다른 보안 요원이 문 쪽에 서서 이슬휘를 지켜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연구소는 보안을 철저히 유지해야 하는 곳이라 실례를 범하게 됐습니다.”
이슬휘는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경찰관이 먼저 슬휘의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슬휘는 신분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경찰관이 전화기처럼 생긴 장치에 슬휘의 주민번호를 입력해 신분을 확인한 후 돌려주었다.
경찰관 옆의 보안 요원이 물었다.
“이진 씨가 사라진 건 우리 연구소 내부에서만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요? 이진 씨와 어떤 관계이신지?”
아, 이름이 이진이구나.
이슬휘는 입속으로 발음해 봤다. 이진, 이진.
“아, 네. 저와는 여기서 멀지 않은 찻집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요,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습니다. 며칠 전에 저와 차를 마시다 제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남자 친구인가요?”
당황한 이슬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뭐. 아직 남자친구까지는…….”
이슬휘는 얼른 말을 돌렸다.
“사라진 다음 날 오전까지는 전화기가 꺼져 있더니 오후부터는 없는 전화번호라고 나오더군요.”
“네, 그건 저희도 확인했습니다.”
경찰관은 그날 이슬휘의 행적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고 슬휘는 경찰관의 질문에 자세히 대답했다.
경찰관이 더 이상 물어볼 게 없다는 듯 수첩을 덮는 걸 보고 슬휘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혹시 뭐 짐작이 가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네. 여기서 이진 씨가 연구하던 게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쩌면 연구 때문에 누가 납치했을 가능성은 없나요?”
보안 요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다셨다.
“저희도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만, 이 연구소도 그렇고 이진 씨가 연구하던 분야도 그렇고 누가 연구원을 납치해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할 만큼 극비이거나 중요한 내용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정황상 납치일 가능성이 제일 큰 것 같아서요…….”
보안 요원이 이슬휘를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아시겠지만 이진 씨는 최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다른 가족도 없습니다. 재산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고요. 누가 납치를 할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슬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한참 만에 이슬휘가 물었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로 심신이 피곤해서 잠적을 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때 경찰관이 나서며 한마디 했다.
“경찰에서 지금 찾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그러다 제 발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이슬휘는 자기의 연락처를 경찰관에게 알려 주었다.
경찰은 작은 단서라도 나오면 바로 알려 주겠다며 이슬휘를 내보냈다.
***
이슬휘는 연구소를 통해 알아낸 앤지의 집으로 가서 몰래 들어가 봤다.
집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앤지가 사라진 것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슬휘는 혹시나 해서 지난 며칠간의 사고 기록도 찾아보았지만 앤지와 관련되었음직한 사고는 없었다.
근처의 병원도 뒤져 봤지만 며칠 사이에 들어온 환자 중에 앤지는 없었다.
경찰관이 전화를 해서 찻집 주변 CCTV 감식 결과를 알려 주었다.
“이진 씨가 사라졌다고 말씀하신 시간을 전후해 찻집 주변의 모든 CCTV를 다 뒤져 봤지만……. 차에 막히고 행인들에 막혀서 찻집 출입구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나갔는지, 누구와 나갔는지 알 길이 없군요.”
감찰관의 말처럼 납치가 맞다면 누가, 왜 앤지를 납치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앤지가 누구이기에?
이슬휘는 먼저 앤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1330년, 소전거사의 임무 때 앤지의 존재 변동이 있었으니 그때부터 하나하나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나비의 날갯짓을 확인해보면 태풍으로 이어지는 것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시간이야 엄청나게 걸리겠지만.
***
슬휘는 소전거사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모두 검색해서 메모해 놓고 그들의 자손과 또 그들과 관계 있는 사람들을 찾아나갔다.
1330년에서 채 1백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거대한 계통 트리가 되어 버렸다.
이슬휘는 계속해서 계통 트리의 가지를 이어 나갔다.
그 가지가 현재에 이르는 순간, 앤지의 계통은 물론 관련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슬휘는 매일 저녁 같은 시간에 찻집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혹시 예전처럼 앤지가 불쑥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물론 첫 번째 사라졌을 때와는 분명 다른 상황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납치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슬휘는 감찰관의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감찰관은 왜 앤지가 납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 주었을까?
감찰관은 절대 감찰 업무와 상관없는 정보를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정황상 그 이야기를 자기에게 하면서 개입하지 말라는 건 개입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인 안타까움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감찰국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하고 잔인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기에게 온정을 베풀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감찰관에게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리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앤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던 감찰관의 태도도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탐지기 오작동이라 했지만 탐지기의 알람이 켜졌다가 사라진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이상했다.
뚜렷하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사건 뒤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의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납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납치가 아니라면 지금의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아니, 앤지가 누구이기에 그녀를 둘러싸고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이슬휘의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어쨌든 앤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면 계통 트리를 어서 빨리 현재 시점까지 완성시켜야 했다.
나비의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