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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역사위원회] 22화

행성역사위원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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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22화
앤지의 비밀(4)

탐지기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아주 사소한 버그였다.
1973년 10월 17일, 장소는 브뤼셀.
이슬휘는 박형준을 남겨 두고 타임머신에 올랐다.
과거의 현장에 도착해 보니 낯익은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윤선용과 앤지가 기다리고 있다가 이슬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슬휘가 다가가자 윤선용이 웃으면서 말했다.
“슬휘 님께 전달 사항이 있어 제가 사소한 버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앤지를 돌아보며 웃었다.
“제가 슬휘님 만나러 온다고 했더니 저분이 어찌나 조르시는지……. 사령관님이 허락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이슬휘는 앤지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생각 같아서야 손도 잡고 싶고 와락 안아 주고도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래, 사령관님 전달 사항은 뭡니까?”
“네, 저희 쪽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앤지 님께 마이크로칩도 이식했고요. 이제 디데이를 정해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슬휘는 윤선용과 이야기해서 디데이를 정했다.
윤선용이 웃으며 이슬휘와 앤지를 번갈아 보았다.
“이제 제 임무는 끝났습니다. 제가 버그를 바로잡아 놓을 테니 두 분은 데이트를 즐기셔도 되겠습니다. 그럼 돌아갈 시간에 여기서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친 윤선용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걸어서 사라져 버렸다.
이슬휘는 윤선용이 사라지자 앤지의 손을 잡았다.
“잘 지내셨어요? 칩 이식한 거 불편하지는 않아요?”
앤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잘 지냈어요. 양은모 사령관님이나 다른 분들이 모두 잘 해 주셔서 불편한 게 없었어요. 칩은 여기, 귀 뒤에 이식했다는데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이식을 하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요.”
앤지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귀 뒤를 보여주었다.
정말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봉합되어 있었다.
“잘됐네요.”
“그건 그렇고 우리 어서 가요.”
“어딜요?”
이슬휘가 얼떨떨해서 물었다.
앤지가 표 두 장을 내밀었다.
“롤링스톤즈 공연 표예요. 윤 팀장님이 저를 위해서 특별히 구해 주신 거랍니다.”
“아!”
윤선용의 배려였다. 앤지와 함께 공연에 가라는.
“오늘 앤지도 부른대요?”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확인해 보고 윤 팀장님께 부탁드린걸요.”

***

“앤지에 대한 분석 자료가 나왔습니다.”
박형준이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이슬휘에게 말했다.
“여기, 지도상에 이 근처에서 앤지의 마지막 파장이 잡혔다는 분석입니다.”
“그럼 그쪽 부근을 뒤져 봐야겠군요.”
이슬휘가 모니터를 보며 대답했다. 그쪽은 양은모가 있는 사령부 근처였다.
“네. 지금 바로 가 볼까요?”
“그러시죠.”
두 사람은 외출 채비를 했다.
이슬휘는 집을 나오기 전에 화장실에 잠시 들렀고, 화장실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슬휘도 전화를 끊었다.
이슬휘는 화장실을 나왔다. 이슬휘가 나오니 바로 문밖에 박형준이 있었다.
“아, 저, 저도 화장실 좀 쓰려고…….”
박형준이 당황한 말투로 말했고 이슬휘가 한쪽으로 비켜서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 그러세요.”

***

“사령관님, 슬휘 님이 이제 출발한다는 신호가 왔습니다.”
“오케이. 그럼 우리도 바로 준비시키도록. 앤지 씨께는 내가 말하지.”
“네, 알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은모는 앤지가 있는 방으로 찾아갔다.
“앤지 씨. 슬휘 씨가 지금 출발한답니다. 그러니 우리 요원 지시에 잘 따라서 차질 없게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실수 없이 잘하겠습니다.”
앤지가 결연히 말했다.
양은모와 같이 온 요원들이 앤지를 안내해서 나갔다.

***

“여기, 이 근처인 것 같아요.”
박형준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
이슬휘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앞에 공원이 있는 이 길에서 좌회전해서 백 미터쯤 내려가면 사령부가 있었다. 일반 건물로 위장되어 있고 사령부 시설은 지하에 있어 찾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한다.
가능하면 사령부 근처로 가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다.
“일단, 저기 공원으로 가 볼까요? 공원이 언덕 위에 있어 주변을 내려다보기 좋아 보이네요.”
“그게 좋겠네요.”
박형준은 이슬휘의 말에 동의하며 공원을 향해 앞장서 걸었다.
공원에서는 주변 건물들이 대부분 내려다보였다.
두 사람은 공원 가장자리를 걸으며 건물들을 살폈다.
어두워진 덕분에 불 켜진 건물 안이 잘 보였다.
“뭐,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요?”
박형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래서는 찾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이슬휘가 맞장구를 쳤다.
이슬휘가 슬쩍 시계를 봤다.
이 정도 시간이면 준비가 다 됐을 텐데…….
그때 가까운 건물의 창 안으로 사람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이슬휘가 조용히 박형준의 팔을 끌었다.
“저기, 건물 안을 좀 보세요.”
이슬휘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자 박형준이 몸을 움츠리며 이슬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앤지인가요?”
형준이 역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네, 틀림없습니다.”
“여기는……. 위치가 안 좋으니 좀 더 위로 올라갑시다.”
박형준은 앞장서서 언덕 위로 더 올라갔다.
두 사람은 공원 제일 높은 곳에서 앤지가 있는 건물을 향해 자세를 낮춰 앉았다.
박형준은 가방에서 저격용 장총을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이슬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 하는 겁니까?”
박형준이 계속 총을 조립하며 대답했다.
“우리 임무는 앤지를 제거하는 겁니다.”
조립을 마친 박형준이 앤지를 향해 총을 겨냥했다.
이슬휘가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가 임무를 수행하게 해 주십시오. 제 손으로 끝내고 싶습니다.”
그 소리에 한참을 이슬휘를 쳐다보던 박형준이 총을 슬휘에게 건네주었다.
이슬휘는 심호흡을 하고 총을 겨누었다.
앤지의 가슴에서 반짝, 하고 액세서리가 빛났다.
그 순간 이슬휘는 호흡을 멈추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소리 없이 날아간 총알은 창을 뚫고 앤지의 가슴에서 빛나던 액세서리를 정통으로 맞췄다.
앤지가 펄쩍 뛰었다가 뒤로 쓰러졌다.
주변에 피가 흥건했다.
그 모습을 본 박형준이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슬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수고하셨습니다. 명사수네, 명사수.”
박형준은 총을 받아들어 분해를 했다.
그때 건물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때처럼 헤어졌다가 이따 집에서 다시 만납시다.”
가방을 챙겨 든 박형준이 이슬휘에게 말하고는 반대쪽으로 뛰어 사라져 갔다.
이슬휘는 박형준이 사라진 걸 보고 천천히 일어났다.
한참 후 한 사람이 다가와 이슬휘에게 말했다.
“T17E가 차를 타고 간 걸 확인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앤지 씨! 괜찮으세요?”
이슬휘는 앤지를 보자마자 달려가 물었다.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내던 앤지가 웃으며 말했다.
“워낙 정확히 쏘셔서 이렇게 무사하답니다. 사실 좀 걱정했거든요, 슬휘 씨 사격 솜씨를 본 적이 없어서.”
이슬휘가 안도하며 기분 좋게 말했다.
“그 정도야 기본이죠, 기본.”
양은모가 옆에 있다가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마무리만 잘하면 되겠습니다.”
“칩은 정상 작동됐나요?”
이슬휘가 물었다.
“네. 앤지 씨가 총에 맞는 순간부터 작동 시작되었습니다. 행성연합이 제아무리 철저히 분석한다고 해도 앤지 씨는 아까 그 총에 맞아 사망한 걸로 확인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슬휘는 앤지의 손을 잡았다.
“고생하셨습니다.”

***

이슬휘가 집에 들어서니 박형준이 위원회와 통신을 하고 있었다.
이슬휘가 형준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최종 확인되었나요?”
박형준이 이슬휘를 힐끔 보고 다시 눈을 모니터로 돌렸다.
“네, 지금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아카식레코드에 기록이 모이는 시간, 또 그걸 분석하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어쨌든 지금 행성연합의 모든 슈퍼컴퓨터를 다 연결해서 분석하고 있다 하니 곧 답이 올 겁니다.”
이슬휘가 박형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근데 앤지 씨가, 우리가 제거해야 할 만큼 그렇게 위험한 사람이었습니까? 전 전혀 그런 인상 못 받았었는데…….”
“글쎄 말입니다. 저라고 아는 게 있겠습니까? 말단 현장 요원이. 다만 제가 여기 올 때 얼핏 그런 소리는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요?”
“앤지가 행성연합을 와해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래서 꼭 제거해야 한다고.”
“참 이해가 안 가는 소리군요.”
“아, 연락이 왔습니다.”
모니터에 메시지가 떴다.
앤지가 소멸된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형준, T17E에게는 복귀를 지시하는 내용이 있었고 이슬휘, E3에게는 이번에 공을 세웠으니 지난번 징계 기록을 삭제해 주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저는 이제 돌아가야겠군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박형준은 이슬휘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개인 자료들을 일부 챙기고 나머지는 폐기 처리했다.
이슬휘는 문밖으로 나서는 박형준을 배웅했다.
“다시는 볼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슬휘가 무뚝뚝하게 말했고 박형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절 안 보는 게 좋은 일이죠. 임무 수행 잘하시고 잘 지내십시오.”

***

“T17E는 어제 지구를 떠난 게 확인됐습니다.”
“네, 이제 숨 좀 쉬면서 살 수 있겠군요.”
양은모의 말에 이슬휘가 크게 숨 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사령부 안, 양은모의 사무실이었다.
“이제 좀 더 편하게 행성연합의 음모를 조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은모가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앤지 씨가 안전해져서 다행입니다. 근데 T17E의 기억은 문제가 안 되겠죠?”
이슬휘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그럼요.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사실 기억 이식 단계를 넘어선 기억 조작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거라 안 할 뿐이었지 기술적으로는 이미 완벽한 상태까지 와 있는 겁니다. T17E가 여기 잡혀와 있던 기억은 아예 뿌리째 제거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걸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네, 그래야지요. 근데 T17E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앤지 씨가 행성연합을 와해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래요? 마침 저희도 본부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행성연합에서 앤지 씨의 DNA 구조를 분석했었다는 기록을 찾아냈답니다.”
“앤지 씨의 DNA 구조요?”
“네, 여러 분석 기록 중에서 앤지 씨 것도 있는 걸 발견했답니다.”
“그건 또 무슨 이유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앤지 씨의 DNA 샘플을 본부로 전송했습니다. 분석해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요.”
“답은 왔나요?”
“네. 답이 오기는 왔는데…….”
“왜요? 이상한 점이 있답니까?”
“아니, 그 반대예요. 아무런 이상한 점도 없는 특이한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한 지구인의 DNA 구조랍니다.”
“그래요? 근데 왜 그걸 굳이 분석해 봤을까요?”
“그러니까요. DNA를 분석해 봤는데 아무 특이 사항이 없는 평범한 지구인이었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그 사람을 소멸시키려고 했다.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참 이상하군요. 그런 평범한 지구인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행성연합을 와해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겁을 먹고 있었다니…….”
“하여튼 우리가 앤지 씨의 그 비밀을 풀어내는 수밖에요.”
“저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반행성연합의 일원이 되기로 완전히 마음먹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슬휘 씨가 함께해 주신다면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이 될 거라 믿습니다.”

나비의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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