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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킬] 2화

판타지 스킬 표지
판타지 스킬 표지
[데일리게임]
제 2화

솔직히 미연인 그리 예쁜 얼굴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내 여친 기준에 미달일 정도다. 그렇다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며, 집이 부자인 것도 아니다.

운동? 게임? 몸치에 둔치로 익히 유명하며 게임이라곤 요즘 유행하는 테트리스 같은 간단한 게임만 겨우 할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고백했냐고 묻는다면…… 그게…….

잠시 내가 정신이 나갔다고 할까?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분위기란 거. 별 생각은 없었는데 한순간의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다.

주변의 닭 커플들로 인해 나의 마음이 휑했는지, 아니면 몇 년이나 차인 쇼크로 인해 나의 정신 회로가 미쳐 버렸는지 알 수 는 없지만 고백의 단어가 튀어나오기 바로 직전의 미연이는 엄청 예뻐 보였다. 말 그대로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씐 것으로, 아차 하고 깨달았을 땐 이미 물은 엎질러져 있었다. 서둘러 입을 틀어막고 무효화하려던 나는 에라 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나를 비교할 때 내가 엄청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의 기대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차이고야 만 것이다.

나보다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미연이가 이 나를 찬 것이다!

고맙게 얼씨구나 하면서 받아 주지는 못할망정 자기 타입이 아니라며 그 얼굴로 콧대를 세우다니?!

나처럼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늘씬한 몸매를 지닌 미소년이 어디 흔한 줄 알아?!

물론 내 얼굴에도 약간의 오점이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오점이라고 해 봤자.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극히 작은 부분이다.

눈이 작은 게 대수야? 코가 큰 게 대수야? 키가 작은 게 문제야?!

크어! 키 작은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남자는 군대 가서도 큰다구. 게다가 눈이야 나중에 쌍꺼풀 수술하면 되는 건데, 뭐가 불안이야? 그리고 이 큰 코가 나의 매력 포인트라는 걸 왜 아무도 몰라주는 거냐구!

“나 정도의 꽃미남을 거절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취향이 문제인 거야. 분명! 눈들이 그렇게 삐어 가지고서 잘도 애인을 만들겠다. 쳇!”

툭―!

“뭐야?”

이리저리 요즘 여자들의 이상형 기준에 불만을 가득 담고 투덜거리다가 차가운 물방울이 나의 머리 한가운데에 떨어져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마 새똥?!’

며칠 전 새똥을 맞은 기분 나쁜 기억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만져 보았지만 다행히 그냥 맹물이었다.

맹물이라도 해도 혹시 다른 건물에서 누군가 장난을 치는가 싶어 인상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람은커녕 별들만 간간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건물 옆 가로등의 빛 아래로 한두 개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비냐?”

내 말에 대답하듯 후드득하고 떨어지며 빗줄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아래로 내려갈까 하고 몸을 돌리는데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차갑게 내 몸을 적시자 치밀어 오르는 화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름대로 차가운 비의 감촉이 좋아지자 이대로 좀 더 있자는 생각에 가던 발을 멈추었다.

온몸이 젖자 왠지 모르게 분위기에 또 심취되어 가는 내 자신을 느꼈다.

‘훗! 역시 나는 센티맨털하다니까.’

한껏 비에 젖은 나 자신에 도취되어 난간에 턱을 괴고 살며시 눈을 내리깔아 건물 아래의 아스팔트를 바라보았다. 무수히 쏟아지는 비를 피해 바쁘게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밑에 아스팔트가 비에 젖어 어두운 밤의 색으로 물들어 갔다.

순간 나는 이곳에서 내가 번지점프를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자극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난간에 발을 올리고 하늘을 향해 올려다본 다음, 자유를 향한 듯 두 팔을 벌려 하늘에 몸을 맡기듯 허공 속으로 몸을 날리면…….

크! 왠지 한 멋짐 포즈인 듯한데 말이지.

“어디.”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모습이 꽤 멋들어지자 솔깃한 마음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난간 위에 발을 올려놓고 일어섰다.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밟고 서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니, 배를 걸치고 봤던 시선보다 높아지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곳에서 떨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건물이 54층이니 살 수는 없을 거야. 아니, 재수 좋아 산다고 해도 불구나 식물인간이 되겠지?

떨어지면 영화처럼 몸이 꺾일까? 아니면 납작하게 저 땅에 짓눌리듯 터지려나? 그것도 아니라면 머리가 으깨져 피가 흥건하겠지?

무엇보다 떨어지는 그 순간만큼은…….

‘아프겠지?’

“에이 미쳤지.”

머릿속의 엉뚱한 상상을 지우기라도 하듯 고개를 휙휙 저으며 내가 정말 정신이 나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죽어 봐, 그럼 분명 내일 신문에는 이렇게 헤드라인이 오를걸.

성북구의 남 모군. 일곱 번이나 여자에게 차여 비관 자살. 주변 친구들과의 인터뷰 등등.

이 무슨 쪽이란 말인가. 집안 망신이야, 집안 망신.

“내가 조금 정신이 나갔나 보네.”

아무래도 오늘의 쇼크로 내 머리가 약간 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기분이 다운됐다 해도 자살할 생각이 들다니, 문득 내 자신이 한심해짐을 느꼈다.

‘으쒸,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되겠어. 암울한 생각이나 하는 게…….’

덜컥―!

“응?”

바닥으로 내려서려고 슬쩍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내 옆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헉!”

나는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허거덩!’

바로 옆 건물에서 교복을 입은 누군가가 추락하는 게 아닌가?!

“?!”

“엇?!”

나의 존재를 의식했는지 떨어지는 사람의 얼굴이 내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눈과 마주쳐 버리고야 말았다.

마치 그것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과도 같았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스피드임에도 불굴하고 내 눈앞에서 추락하는 자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한눈에 포착되어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떨어지는 듯 보였다.

떨어지는 빗줄기가 추락하는 남자의 몸에 부딪쳐 작은 물방울을 튕겨 내는 장면도, 머리카락이 젖어 고이는 물방울도, 펄럭이는 그의 교복 셔츠도…….

그리고 서서히 움직여 나를 각인하듯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도 모두 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관심 없어 보이던 추락하는 사람의 눈동자가 나를 보더니 놀란 듯 눈동자가 커졌다.

“위험해!”

소리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건물을 울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를 잡기 위해 두 손을 벌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

닿을 수 없는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떨어지는 남자를 잡을 수가 있었다. 그를 잡았다는, 살려냈다는 안도감에 작은 한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은근슬쩍 마음 한구석에서 사람을 살렸다는 생각이 들자 뿌듯함을 느끼려는 찰나, 무뚝뚝한 말소리가 나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바보냐?”

“허걱!”

그의 말에 울컥하려는 나는 그의 말뜻을 깨닫고야 말았다.

내 발바닥에 닿았던 난간이 없음을,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으아아악!”

나의 몸과 녀석의 몸이 추락한다.

몸이 추락하는 공포감에 나는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기는커녕 더욱더 또렷해지는 것이 아닌 가!

차라리 심장마비라도 걸리게 해 달란 말이다!!

“거짓말이야아아아아아!”

죽을 생각은 해 봤지만 정말 죽을 생각은 없었던 나, 남도후.

결국 어리버리하게 내 생의 쫑을 내고야 말았다.

흑, 어무이!

이 불효자식이 먼저 저승에서 기다리겠나이다, 꺼흑!

***

아버지께.

우선 이렇게 어이없이 죽어 버린 못난 자식을 용해서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어요. 그냥 착한 일 한번 해 보겠다고 달려든 게 이리될 줄이야.

효도 한번 못해 드리고 가는 이 못난 자식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부지, 사랑합니데이!

그리고…… 중요한 사항이 있는데요, 가급적 비밀스럽게 꼭 처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 책상 뒤쪽과 침대 밑에 숨겨 둔 빨간 딱지의 책들은 어무이와 동생이 보지 않도록 재빨리 처분해 주시길 바라요(크윽! 아직 못 본 신간도 있는데). 또 책장 맨 아래 소설책을 빼 보시면 비디오도 두 개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자알 처리해 주세요. 그냥 아버지가 가지셔도 상관은 없지만 어머니 없는 곳에서 보시고, 만약 들키더라도 제가 주인이었다는 말은 절대 절대로 하지 마시고 감상하세요. 참고로 노 모자이크입니다. 흠흠!

그리고 어무이!

흑흑, 전날 밤 못되게 군 거 죄송해요. 하지만 알죠? 제가 어머니를 제일 사랑하는걸요. 어무이밖에 없어요!(제 얼굴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제가 없어도 너무 낙담하며 살지 마세요. 우리 어무이 몸이 약해서 걱정인데, 제가 다 가지고 갈 테니까 항상 건강하셔야 해요. 아셨죠? 사랑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난이 내 동생 도희야.

미안하다. 내 대신 네가 부모님 잘 챙겨 드리고 건강하게 살아라.

에, 너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한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 오라비가 죽었잖니? 떼어먹을 생각은 결단코 없었단다. 정 안 되면 그냥 내 바이크 친구에게 부탁해서 팔아 쓰고, 필요하면 내가 소장한 CD와 게임기 다 네가 가져라.

대신 컴퓨터 D드라이브에 보면 건강 폴더가 있는데, 그 안에 18금 게임은 꼭 삭제해 주길 바란다. 친구들이 뒤지기 전에 꼭 먼저 삭제 바란다. 꼭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데 말이야. 이 오라비, ‘그놈’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져 죽은 거지 절대로 그놈과 러브러브 관계 때문에 비관해서 동반 자살했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길 바란다. 알간?

나까지 너의 그 이상한 취향에 집어넣지 말고. 이 오라비는 선을 위해 희생한 것이니 나의 죽음을 더럽히지 말지어다.

이 오라비는 여자가 좋단다.

“그렇지. 쭉쭉 빵빵한 여자가…… 음?”

나름대로 사귀고 싶었던 이상형을 그리며 입맛을 다시던 중 잠에서 깬 것처럼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얼레?”

눈을 떠 보니 주변이 온통 어두움에 깔려 사물이 보이질 않았다.

상체를 일으키고 눈을 찡그려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부릅뜨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며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생각을 해 봐도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하나는 기억했다. 그것도 중요한 것, 바로 내가 건물에서 떨어져 생(生)과 이별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나, 죽은 게 아니었나?”

‘분명히 난 그놈 살리겠다고 54층에서 뛰어내렸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 상태를 훑어보았다.

떨어진 것치고는 어딘가 부러지거나 깨지(?)거나 피가 흐르지도 않았다. 하나하나 내 몸을 체크하며 이상한 점을 찾아봐도 없고 멀쩡한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몸이 가벼웠다.

“설마 꿈인가?

하지만 실제임을 증명하듯 옷들은 비에 젖어 있는 상태였다.

“아참! 그놈은?”

우선 같이 떨어진 놈이 퍼뜩 생각이 났다.

내가 살린(설마 그놈만 산 건 아니겠지?) 놈을 찾아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으리란 생각에 나는 그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둠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구변이 워낙 어두워 사물을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는 어두운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으음……!”

살며시 다가가 보니 숨을 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안쓰러운 모습으로 신음을 내뱉고 말이다. 그런 모습에 나는 재빨리 녀석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며 불렀다.

“여보세요, 일어나세요!”

“으윽!”

몸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깨우는데도 녀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 뿐 눈을 뜨지 않는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가위라도 눌렀나 싶어 억지로 일으켜 앉히고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 주며 다시 깨우기 위해 양 볼을 잡고 흔들었다.

“어이! 일어나라구!”

“헉!”

놈이 눈을 뜨는 것을 확인한 나는 얼굴을 잡았던 손을 놓고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깼군.”

“…….”

‘어쭈?’

나의 몸에 안겨(어감이 이상하군. 암튼 오해하지 말라구!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면 뭔가 받침대가 필요한 것 같아서 받쳐 준 것뿐이야!) 정신을 차린 원흉은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무뚝뚝한 무표정으로 돌변하고는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넌 뭐야?”

‘뭐야? 고얀 놈!’

싸가지 없는 물음에 나는 슬쩍 이마에 힘줄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내가 누구냐고?”

눈앞에 있는 놈을 당장이라도 패대기쳐 처박아 주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억누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녀석의 팔을 잡던 양손을 항복하듯 들고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 은인이다.”

콰당―!

한마디 툭 하고 내뱉으며 일어나자 녀석의 몸을 지탱해 주던 것들이 사라져 자연스럽게 몸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꽤 큰 소리로 쓰러졌는데도 녀석은 신음 소리 한번 내뱉지 않고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 내며 나지이 투덜거렸다.

독한 놈일세.

“……?”

뭐라고 중얼거리는 듯한 녀석의 모습에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녀석은 이번엔 좀 더 소리를 크게 내었다.

“너 바보냐?”

“컥―!”

‘이놈이 다짜고짜―!’

눈 뜨고 은인을 봤으면 이 은인에게 살려 줘서(?) 고맙다, 무릎 꿇고 같이 죽어 죄송하다며 빌지는 못할망정 뭐가 어쩌고 어째?

도대체 뭐가 그리 잘났다고 큰소리 뻥뻥이냐?!

부글부글 꿇는 마음에 나는 검지를 치켜세우며 녀석의 면상을 찍고 두 눈을 부라리며 따지듯 물었다.

“야, 너! 살려 줬으면 살려 줘서 고맙다고 하는 게 도리 아냐?”

“살려 달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뭐?”

판타지

류현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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