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큼 내뱉는 녀석의 말에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의 되물음에 눈앞의 녀석은 눈살을 찌푸리고서는 차갑게 다시 입을 열었다.
“살려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쓸데없이 왜 나서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허…… 참, 허허허…….”
뭐 이딴 놈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최소한, 아니 예의상이라도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기본 아닌가?
“쳇! 괜히 살려냈어. 죽겠다는 사람, 그냥 죽으라고 놔둘걸.”
“…….”
“이라고 말할 줄 알았냐?! 너, 나이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벌써부터 죽을 생각을 하고! 뭐 하자는 거냐? 너희 부모님도 참 힘드시겠다. 너 같은 아들 둬서.”
“닥쳐, 네가 왈가불가할 일은 아니니까.”
나의 빈정거림에 녀석이 사납게 나를 째려보며 이를 갈자 순간 내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을 들먹거리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뭣해서(솔직히 아직 화가 안 풀렸기 때문에 존심상 먼저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슬며시 떨어져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몇 걸음 걸었을까?
등 뒤에서 조용히 있던 녀석이 처음으로 먼저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너 이름이 뭐냐?”
고개를 홱 돌려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공격하듯 내뱉었다.
“너 몇 살이야!”
처음 반말할 때부터 기분 나쁘던 터였다. 나의 카리스마에 주눅이 든 것인지 녀석이 순순히 대답했다.
“하아, 그래. 열일곱 살이다.”
한숨을 쉬며 내뱉는 녀석의 대답에 기회는 이때다 싶어 따지듯 입을 열었다.
“나 너보다 한 살 위거든?”
그런데 녀석이 고개를 삐딱하게 들곤 지지 않고 말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좋아, 한발 물러나 주지.
“형이라 부를 필요는 없고 선배라 불러라.”
그런데 들려오는 녀석의 회심의 일격.
“관두자.”
“……!”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선배라 부르라는 나의 요구에 녀석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나는 슬며시 화가 솟아올랐다.
싸가지가 없어도 저리 없다니! 게다가 사교성조차 없는 저런 녀석을 내가 왜 미쳤다고 살렸을까?
‘뭐, 물론 얼떨결에 뛰어든 것이지만.’
투덜거리며 나는 슬쩍 녀석을 바라보았다. 자는지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의 태평스러움에 나는 슬며시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기에 나는 우선 이곳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저 녀석에게라도 물어봐야 하기 때문에 치사해도 내 쪽에서 먼저 굽히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녀석에게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남도후다. 넌 이름이 뭐냐?”
“하현.”
그냥 눈만 감고 있었는지 녀석의 입에서 바로 이름이 튀어나왔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아니.”
“우리 산 거는 맞지?”
“글쎄.”
“우씨! 야, 난 진지하다구! 생각 좀 하고 대답하란 말이야. 뭐가 그리 건성건성이야?”
하현의 말투에 열이 받은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어둡기만 하고 전혀 어디인지 모를 곳에 툭 떨어져 불안했기에 짜증은 배로 솟구쳤던 것이다.
그런 내 기분을 이해했는지 어쨌는지 하현은 누운 채로 씩씩거리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짤막하게 대답해 주었다.
“죽었다고 치기엔 몸이 멀쩡하잖아?”
“……그건 맞아.”
하현의 말에 씩씩거리던 나는 하현의 몸과 내 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계속 남아 있어 마음은 그리 개운하지 못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땐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니 꼭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아무래도 지금 있는 이곳이 낯설어서인 듯싶었다. 역시 여기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도 아니요, 독서실 건물 아래는 더더욱 아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구!
“근데…….”
“응?”
혼자서 이곳이 어디일까 추리하는 나를 녀석이 조심스레 부른다.
“왜 날 살리려고 달려들었지?”
하현은 잠시 주저하다 이내 재빨리 말을 내뱉었다. 녀석의 질문은 예상 밖이라 나는 잠시 당황했다.
“아니, 그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그때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봐도 나 역시 의문이다. 내가 왜 뛰어 들었을까. 그 이유를 나조차도 모르는데 어찌 설명을 할까. 그때의 상황을 되새기며 적당한 이유를 찾으려던 나에게 하현이 슬금슬금 걸어왔다.
솔직하게 대답 안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날카로운 눈초리를 마주하자 나는 저절로 딸꾹질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거짓말 따위를 구별하는 건 쉽다는 듯한 날카롭고 위압적인 하현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 것이었다. 그 눈빛에 절로 기가 죽은 나는 대충 변명을 하자고 결론을 지었다.
“그냥…… 저……게 뭐야?”
“……?”
난감한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애써 변명을 지어 내려던 나는 하현의 등 뒤쪽에서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말았다.
나의 놀란 눈빛을 본 하현도 내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고는 이윽고 나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새카만 어둠이었다.
주변과 같은 어둠이지만 내 눈에 잡힌 어둠은 다른 어둠보다 더욱더 짙고 어두웠다. 그냥 어둠이라 할 수 없는, 마치 안개와도 같은 그 짙은 어둠이 나의 눈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섬뜩하리만치 새하얀 무언가가 서서히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그 하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 그것이 다섯 개의 손가락이란 것을 알게 될 때쯤에서야 서서히 손이 빠져나와 팔, 그리고 우리와 같은 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얼굴이 드러났다.
설마 얼굴만 뎅강 잘려 나오는 건 아니겠지 하는 끔찍한 상상으로 살짝 눈을 찌푸렸지만 나의 상상과는 반대로 얼굴에서 목, 가슴, 그리고 다리가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마치 먹었던 것을 토해 내듯 천천히 내뱉던 어둠은 사람의 몸이다 빠져나가자 스르륵 주변의 어둠과 동화되듯 옅어져 갔다.
어둠이 사라지고 허공에 가만히 떠 있던 사람은 마치 몸에 걸린 실들이 끊어진 인형처럼 투둑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다 정신을 차린 우리는 서둘러 달려갔다.
역시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선 우리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다.
“깨워.”
자신은 그저 지켜보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거만스레 하현이 말했다.
‘캬! 저놈의 싸가지.’
싫다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쓰러져 있는 사람을 들어 아까 하현을 깨울 때처럼 등을 다리로 버티며 일으키고는 조심스레 어깨를 흔들었다.
“이봐, 일어나. 일어나아!”
“으음…… 누구……?”
잠에서 깨어나듯 살포시 인상을 찡그리고 눈을 뜨려는 모습이 마치 아이돌 여자 연예인처럼 귀여웠다. 하지만 밋밋한 가슴으로 추리하건대 남자임이 분명하다.
으음, 저놈의 싸가지도 엄청나게 잘생기고, 이 소년도 엄청나게 예쁜데, 애 나만……. 아니지, 나도 여기에 꼈다는 건 나 역시 미소년이란 소리렷다?
쿠쿠쿡! 맞아, 나도 미소년이지.
“으음…… 누구……세요?”
정신을 차린 소년은 나의 얼굴을 보며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내가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싸가지가 나와서 차갑게 딱 잘라 소년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넌 뭐냐?”
“전…… 저기…….”
위협적으로 째려보는 하현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는지 소년(나도 소년이지만 얜 더 어려 보인다. 게다가 왜 이렇게 예쁘냐!)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 자신의 옷자락만 잡고 있었다.
두 사람 간의 침묵으로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역시 내가 나서야 되겠구나 생각하고 다정한 말투로 소년에게 내 소개를 먼저 건넸다.
“아, 난 도후라고해. 열여덟(하현을 슬쩍 보며 강조) 살이고, 쟤는 하현이라고 열일곱(아예 얼굴을 돌려 눈을 마주친 뒤 더욱더 강조!) 살이야.”
“아, 전 은호예요. 열일곱 살이고요.”
“그렇구나.”
역시 이 아이는 저 싸가지하고는 다르구나.
나에게 존댓말을 쓰며 소개하는 은호라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역시 남자네.’
나의 다정한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은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여긴 어디죠?”
은호의 질문에 나는 슬며시 불을 긁으며 난감한 표정을 기었다. 대답할 말이 궁핍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레짐작으로 말하자니 내가 짐작한 장소(병원)와는 너무 판이하게 달랐다. 결국 나는 사실대로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도 죽은 게 맞는 거겠네요.”
“……?”
내가 설명을 잘못 했나? 왜 저런 결론이 나오는 건데.
무슨 소리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향해 은호는 섬뜩한 말을 내뱉었다.
“저도…… 자살했어요.”
“뭐?”
은호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어젯밤에 손목을 긋고 자살했는데…… 왜 살아 있을까요?”
“자……살?”
어리둥절해진 나와 하현에게 은호는 조심스레 어젯밤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분명 자신은 자기 전에 자신의 방에서 손을 그었다고.
뭐야, 그럼? 우린 셋 다 죽은 거야?
그럼 여긴 어디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머리를 싸매던 나는 순간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곳에서 벗어날 거다. 사실 병원에 누워 있는 우리 셋의 영혼이 만난 거다.
생각남 김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하현과 은호에게 말했다.
“혹시 우리 셋 다 병원에서 혼수상태인데 영혼만 빠져나온 거 아닐까?”
“영화 찍냐?”
“그건 좀…….”
“윽!”
나의 말에 한심스럽다는 듯이 하현이 나무란다.
나쁜 놈! 저는 아무 생각도 안 하면서 뻔뻔하게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리고 난 네 은인이라구!
불만을 가득 안은 표정으로 하현을 째려보자 은호가 나서서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근데 이곳은 어둡네요.”
“내 말이! 이거 정말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다른 존재라도 나올 법한 분위기인데 말이지.”
은호의 말에 나는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생각을 신난 듯이 내뱉었다.
인원이 한 명 더 늘자 왠지 안심이 된 나는 편하게 생각하자는 ‘망상의 버릇’이 나온 것이다.
솔직히 다시 살아난다면 얼씨구나 좋을 일이지만, 분명히 나는 죽었기 때문에 그런 작은 바람이 무참히 깨지면 슬플 테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는 다짐이 마음속에 들었던 것이었다.
이젠 죽었다는 게 확실하니 편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저승사자나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뭐, 저승사자가 알아서 환생이든 뭐든 시켜 주겠지.
나의 여유로움이 기분 나빴는지 하현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뭐가 그리 즐거워?”
“아니, 그냥…….”
하현의 질문에 나는 슬쩍 눈을 돌리며 말끝을 흐렸다.
뭐, 저놈을 살렸으니 지옥에 가진 않겠지.
“여기 계속 있어야 하는 건가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은호 네가 올 때까지 우린 여기서 계속 있었거든.”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은호는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저기…… 하현 씨랑 아는 사이인가요?”
하현의 눈치를 살피며 은호가 묻자 나는 무슨 말도 안 되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리고 재빨리 저런 싸가지 따위 당근 몰라! 하고 말하려는 찰나, 나보다 먼저 빠르게 하현이 은호에게 딱 잘라 말했다.
“알 필요 없잖아.”
“…….”
‘어휴! 저런 싸가지!’
“하하! 은호, 하현의 말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쟤 성격이 원래 그래 보이니까.”
“그런……가요.”
재수 없게 틱틱대는 하현을 재빠르게 나무라는 눈빛으로 바라본 뒤 상처받을 은호를 다독여 주었다. 하현의 말에 움찔거리며 겁을 먹던 은호가 침울하게 말하자 나는 강하게 은호에게 안심의 눈빛을 쏘아 주었다. 나의 눈빛을 보고 읽어 줘, 은호!
‘그럼! 저런 싸가지는 안 봐도 뻔히 알잖아.’
은호가 나의 눈빛의 뜻을 이해했는지 슬며시 웃음을 짓자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하현이 빈정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밉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은호에게 입을 열었다.
“아는 사이냐고 물었으니 대답해 주지. 나 좋다고, 나 죽는데 따라서 뛰어들어 죽은 애가 도후다. 나머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커억―!”
“……!”
저런 나쁜 놈을 봤나! 생명의 은인을 변태로 만들어? 확 한 대 쥐어박아 줄까 보다.
하현을 향해 무시무시하게 째려본 나는 은호가 이상한 오해를 할까 봐 재빨리 웃으며 강하게 부인을 했다.
“아냐, 은호. 아까 설명한 대로 하현이 떨어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살리겠다고 뛰어들었는데, 내가 있던 곳도 건물 옥상이거든. 그래서 같이 떨어지게 된 거야.”
믿어 줘! 진짜야, 은호. 흑흑, 난 변태가 아니라고!
“아!”
필사적으로 설명하며 진실된 포스를 발하는 나의 말이 믿음직스러웠는지 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남을 살리겠다고 뛰어들다니 도후 형, 정말 대단해요!
“아……헤헤, 그래?”
은호의 칭찬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민망함에 뒤통수를 긁어 댔다. 그런 나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하현이 또 툭 하니 밉살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류현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