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상하게 나의 말에 젊은 여관 누나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되묻는 게 아닌가?
“삼 인실이요. 없나요?”
“아, 아니, 그게…….”
내가 확인 차 다시 묻자 이번엔 이 누나가 얼굴이 빨개지며 우리 셋을 번갈아 보는 게 아닌가.
아니, 이 누나가 왜 이러나?
우리를 슬쩍 훔쳐보듯 바라보는 여관 누나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나는 그녀에게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시죠?”
“저, 저기…… 여자 분은 따로 방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남자 둘과 같은 방에서 자는 건 위험해욧!”
비틀―!
뭐, 뭔 소리냐, 이 여자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며 결심한 듯 단호히 하는 여자의 말에 다리에 힘이 빠진 나는 은호가 여자처럼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여관 누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저기 엘프는 남자인데요?”
“압니다! 아무리 선이 가늘다 하더라도 저 엘프님의 골격은 완벽한 남자인걸요.”
은호를 손가락질하며 남자임을 강조하자 젊은 여자는 내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 년 사이에 은호의 모습은 많은 변화를 보였다.
처음에는 앳된 모습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지만 일 년 사이에 확실하게 남자라는 확신이 들 정도의 골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흠흠, 그래도 역시 여자보다 더 아름답고 귀엽지만 말이야. 키도 아직은 나랑 비슷하다구! 그럼 설마 하현을 보고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여관 누나에게 입을 열 찰나, 내 눈앞에 여관 누나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말한 건 당신이라구요.”
“에엑?!”
은호를 가리키던 손가락으로 나를 다시 가리키며 반문하자 여관 주인은 하현과 나를 번갈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이봐, 이봐, 아가씨! 왜 하현과 나를 번갈아 보며 얼굴을 붉히는 건데!
‘그나저나 내가 여자라고? 아직 중성이긴 해도 여자처럼 생긴 것 같지는 않은데, 여자라고 오해받을 정도라는 건……?’
그러고 보니 이 몸으로 눈을 뜨고 나서부터 나는 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관 누나에게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하지만 거울을 볼 수 있나요?”
가만히 침묵을 고수하던 내가 부탁을 건네자 여관 누나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감사…… 허거!”
살짝 웃으며 손거울을 건네받은 나는 바로 내 얼굴을 비춰 보고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거울 안에 보이는 얼굴이 누구인가 할 정도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나의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뽀얗고 새하얀 얼굴에 도드라지듯 물빛 눈동자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빛의 각도에 따라 푸르게 짙어지는 코발트빛의 바다색 눈동자가 익숙해질 무렵 연한 하늘빛 물색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자연스럽게 새하얀 얼굴을 감쌌다.
여관 누나가 오해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거울에 보이는 내 모습은 완전히 여자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남자의 눈을 홀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입술이 움직이고 눈의 표정이 바뀔 때마다 얼굴의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살짝 눈가를 내리며 천진스러운 천사의 표정 그대로였고, 살짝 인상을 찡그려 눈꼬리를 올리면 천사 같은 해맑은 얼굴은 사라지고 아름답긴 하지만 사악한 분위기를 풍겼던 마스테마 같은 마족적인 분위기도 흘러나왔다.
“헐!”
내가 상상했던 나의 이미지는 어디 갔는고?
작긴 하지만 잘생기고 호감이 가는 얼굴과 함께 미워할 수 없는 장난기가 가득 담긴 얼굴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원래 카리스마적으로 잘생긴 하현과 귀엽고 아름다운 은호가 있다면 나머지 한 명의 배치 구조는 모든 판타지 주인공 리스트에 나오던 전형적인 모험형 스타일이 한 명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
“아니지! 큭큭.”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나는 슬며시 입술 끝이 올라가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려보냈다.
그런 내 모습에 하현과 은호는 드디어 내가 미쳤다고 생각을 했는지 내 이마를 짚어 보기도 하고 열을 체크하며 정신차리라는 듯이 어깨를 흔들었다.
“나, 안 미쳤어.”
내뱉던 웃음소리를 멈추고 하현과 은호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걱정하던(왜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관 누나에게 손거울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거울 감사요.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지금 뭐…… 어머? 어머머멋!!”
거울을 건네주며 웃자 같이 웃으며 거울을 받으려는 여관 누나의 손을 잡아 내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내 행동에 당황해하던 여관 누나는 비명을 지르다 말고 자신의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 한번 웃어 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보여도 남자예요. 삼 인실 되죠?”
“아, 네.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세 명 다 남자라는 사실에 안심하면서도 내가 남자라는 것에 무안했는지 여관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우리들을 향해 따라오라며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배정된 방에 들어온 나는 짐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놓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며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캬아! 좋다.”
부드러운 침대 커버에 얼굴을 부미며 데굴거리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재빨리 다시 방 안에 배치된 거울을 향해 달려갔다.
역시나 조그만 거울에서 보았던 나의 느낌과 다르지 않게 큰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엄청나게 아름다웠다.
“클클클!”
내가 왜 그걸 깜빡했을까?
요즘은 근육형의 미남이 아닌, 카리스마를 자랑하나는 하현의 잘생기고 조각 같은 외모가 아닌 은호와 나처럼 미소년의 외모가 대세라는 것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나는 연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내 얼굴에서 어떻게 요리도 예쁘게 바뀌었을꼬.
아쉬운 것은 한국에 있을 때의 외모가 이 얼굴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이다. 그럼 내 이상형의 여친을 갖는 건 기본이고, 이참에 연예계로 진출해서 오빠 부대는 물론 한류 열풍까지 끌고 갈 만한 외모일 텐데 말이야. 그래, 지난 일을 생각해서 무엇 하리오. 이곳에서 내 이상형의 여인을 만나 알콩달콩 살면 되는 것을!
우선 이 외모를 잘 활용해…….
“뭐 해?”
“아니, 그냥.”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음흉한 생각을 하던 나는 하현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각자의 짐을 푸는 모습에 나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깨닫고 서둘러 하현과 은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선 임무를 수행하는 척하면서 주변을 좀 돌아다녀 보는 건 어떨까?”
“네?”
“그렇잖아, 일 년 넘게 죽어라 사냥만 했는데 조금 돌아다녀 보면서 쉬어야지.”
놀란 듯이 묻는 은호의 질문에 나는 땡땡이를 부리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 나의 말에 은호가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마스테마 님이 알게 되면…….”
“걱정 마, 걱정 마! 정보를 위해 돌아다녔다고 하면 되지.”
은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낙천적으로 내가 변명거리를 준비하자 은호는 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형이 하는 대로 따라갈게요.”
“으히! 하현, 너는?”
하현을 바라보자 하현은 뜻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해. 우선 식사나 하러 가자.”
“좋아, 마침 배도 고팠으니까. 바로 옆이 식당이던데 그리고 가자.”
“네.”
여관 게단을 지나 식당으로 이어진 문을 통해 들어서니 식당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
음식을 나르다 손님이 오는 것을 보고 달려와 반갑게 입을 열던 소녀가 인사를 하다 말고 멍한 얼굴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잘생긴 하현과 귀엽게 생긴 은호, 그리고 아름다운 미소년인 내가 문을 열고 등장하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아짐을 느꼈다.
‘푸하하하! 내가 원하던 것이 바로 이거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창가 쪽의 빈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따가운 시선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나는 혼이 빠진 듯 쫓아오는 점원에게 다정스레 말을 건넸다.
“오늘 추천 메뉴가 뭐죠?”
“아, 오늘의 추천 메뉴는 바다 가재 요리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점원이 우리 셋을 번갈아 보며 머릿속에 암기되어 있는 듯한 메뉴를 소개해 주었다.
“흠, 너희들은?”
“그걸로 하지.”
“저도요.”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추천 메뉴를 먹겠다는 하현과 은호의 말에 나는 씩 웃으며 점원에게 주문을 했다.
“그럼 추천 요리 삼 인분으로 주시고요, 시원한 맥주 한 잔 주세요.”
“두 잔.”
“세, 세 잔이요!”
꼭 한번 마셔 보리라 다짐했던 맥주를 주문하자, 하현이 나직하게 두 잔을 요구하고 이어서 은호도 주먹을 쥐며 자신의 몫도 요청했다.
자식들! 너희들도 맥주가 그리웠구나.
나는 웃음을 참으며 둘을 바라보다 이내 몇 가지 더 주문을 했다.
“그럼 추천 요리 삼 인분,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 샐러드 되나요? 되면 그것으로 주시고요. 음, 시원한 맥주 세 잔하고 맥주랑 같이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요리 한 가지만 추가해서 가져다주세요.”
“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요리사의 목소리에 좀 더 있으려던 점원은 하는 수 없이 최대한의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달려갔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나는 슬쩍 우리들을 훔쳐보는 식당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이쪽 마을 사람들인지 옷차림이 비슷했다. 몇몇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있기도 했지만 특별하게 값이 나간다고 생각되는 차림의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길가에는 드워프나 엘프들도 간간이 보였지만 식당 안에는 사람들뿐이었다. 훑어보듯 사람들을 쳐다 보다 이내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흐음! 어떻게 해야 마스테마를 소환해 사람을 찾나…….’
겉으론 그냥 놀자고 생각하고 있지만 혼자 생각에 잠기게 되면 마스테마가 시킨 명령으로 고민이 되었다.
마스테마의 설명으론 자신은 일반 마족이 아니므로 엄청난 집념의 소유자가 아니면 자신을 불러내기란 힘들다고 했으니 독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아니면 일반 마족을 부르게 해 마왕을 다시 소환하게 꼬시는 방법. 이 두 가지였다. 문제는 마왕을 우리가 소환시키도록 유도하고 그 마왕을 다시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무찔러야 한다는 점이지만.
‘만약 마스테마를 소환하게 하면 그가 알아서 마왕을 소환하도록 유도할 테니 그저 세상을 구하는 선의의 용사로서만 신경을 쓰면 될 테고, 만약 후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생각 해?”
“응?”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향해 하현이 말을 건넸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젓다 이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니, 마스테마의 일 때문에 잠시…….”
“흠, 우선 이곳 상황부터 알아본 다음에 방법을 모색하는 게 좋을거다. 지금 무턱대고 생각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 한 단계씩 차근히 밟고 올라가는 게 제일 좋아.”
“응. 그렇지.”
하현의 말대로 지금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나면 뭔가 틈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기다려 보는 거다. 결론은, 우선은 놀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 나는 마음을 놓고 어느새 가져온 식사에 손을 가져갔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점원에게 물어봐 옷을 파는 의상실을 다음 목적지로 삼았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상당히 값비싸 보이는 옷감에 왕족이나 귀족이 입을 법한 호화로운 색깔과 디자인이어서 돌아다니는 데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용병 같은 평범한 복장으로 갈아입기로 한 까닭이었다.
뭐, 얼굴 때문에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훗!
당장 입을 옷과 여벌의 옷을 사고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시장을 돌아다니니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이 사는 곳, 특히 시장은 활기차 보였기 때문에 절로 기분이 났다.
하현은 물품들을 사며 슬쩍 한두 마디씩 이곳 포르네이야 국의 정치라든지 기본적인 상식들을 물어보며 정보를 모았다. 물론 나도 옆에서 덩달아 여러 가지 사항을 물어보았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일반 시민이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나라 돌아가는 상황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이렇다 할 수확은 건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필요한 물품들을 들고 다시 여관으로 향하면서 나는 하현에게 의견 하나를 제시했다.
“저기, 우리 용병일 하는 건 어떨까?”
“용병?”
“그래, 용병. 보통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뽑히면 일정한 보수를 받고 일해 주는 거거든. 음, 대개 보디가드 같은 역할도 하고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것 같은 일들이야.”
“그건 왜요?”
“용병을 쓴다는 건 돈이 있는 자들, 즉 귀족이나 상인들이니까.”
“흠, 그렇군. 귀족들이 확실히 물욕들이 많으니 조금만 찾아보면 소환에 적합한 자는 금세 찾을 수도 있겠군.”
내 생각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 하현이 씩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흩트리듯 쓰다듬어 주었다.
“으윽! 내가 너보다 나이 많다. 하현.”
“지금은 내가 훨씬 많아 보인다는 건 알지 않나?”
“윽!”
불만감을 가지고 투덜거리는 나를 향해 하현이 씩 웃으며 다시 한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모습을 은호가 바라보자 나는 서둘러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용병 자리나 알아보자.”
“헤헤. 네.”
내 손길에 기분이 좋았는지 은호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여관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을 붙잡는 게 있었으니.
“꺄아아악!”
“……?”
쿵―!
류현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