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뒤쪽으로 엄청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놀라 뒤를 돌아보니 붉은 머리의 검은 테의 안경을 쓴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여자 뒤쪽으로 우락부락한 세 남자가 나타나 쓰러진 여자의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며 으르렁거렸다.
“이년을 그냥!”
“살려 주세요! 꺄악!”
눈물을 흘리며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에 나는 슬쩍 인상을 찡그리며 세 놈을 향해 째려보았다.
어딜 가나 치안이 안 좋은 곳이 꼭 있지. 이래서 여자들이 제일 불쌍하다니까.
“뭐야, 넌?”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인상을 구기며 위협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다 내 얼굴을 보고는 구미가 당기는지 입맛을 다시며 쓰러진 여자의 머리카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오, 얼굴 꽤 반반한데? 왜, 너도 끼고 싶어?”
느끼한 인상을 지닌 남자가 큭큭 웃어대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 남자가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의 등을 발로 밟자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남은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클클거리며 입을 열었다.
“한번 맛 좀 보고 적당히 팔아 버리자. 저기 엘프도 꽤 인기 상품일 테니 말이야.”
그 세 놈을 보던 나는 이놈들을 그냥 넘기지 말자 다짐했다.
“이봐, 그 여자 풀어 줘.”
하현과 은호 사이에서 내가 세 놈을 향해 말하자 그런 내 말을 비웃으며 여자를 잡고 있던 남자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의 옷자락을 찢으며 징글맞게 그녀의 어깨를 혀로 핥는 게 아닌가!
“왜, 너도 나에게 당하고 싶어?”
옆쪽에서 큭큭거리던 놈이 미친놈처럼 아랫도리를 풀며 내게 다가왔다.
아, 어딜 가나 변태들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몬스터처럼 간단하게 베어 죽이자니 사람이라는 게 찝찝해서 그냥 몇 마디 충고하고 안 먹히면 두들겨 패 정신 좀 차리게 해 주자는 생각으로 우선 넌지시 타일렀다.
“이봐, 좋은 말할 때 그냥 그 여자를 놓고 가.”
“크크! 거, 계집이 더럽게도 말 많네.”
‘뭐야?’
나의 충고를 무시하며 깐죽거리는 놈의 말에 나는 발끈 화가 났다. 그리고 손가락질을 하며 녀석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이봐, 이 얼굴이 확실히 여자처럼 아름다운 건 인정해. 하지만 이 밋밋한 가슴이 안 보여? 잉? 네 눈은 동태 눈깔이야?”
납작한 가슴을 보여 주며 광분하는 나를 향해 세 놈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뭐야, 그럼 남자라는 거야?”
“당근, 남자야!”
‘절반은 여자이지만 어차피 나중에 남자의 몸으로 원상 복귀하니까 남자지!’
콧김을 뿜어내며 자신만만 남자라고 끄덕이는 나를 보며 세 놈은 자기들끼리 뭐라 주고받기를 시작했다. 색다른 취향의 돈 많은 상인들에게 팔면 된다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래의 여자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아래에 있던 여자가 세 놈의 말소리를 들으며 더욱더 안색이 파라졌으니까 말이다. 그러곤 여자는 나를 향해 간절히 눈물을 호소를 했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입 닥치고 있어, 넌!”
“꺄악!”
여자의 흐느낌이 짜증난다는 듯 깡패가 여자의 뺨을 때리며 나직하게 욕을 내뱉었다.
아무렇게나 여자를 마치 도구 취급하는 놈들을 보며 순간 나는 화가 나 그들을 말리려고 달려가려 했다.
“야! 너……!”
그때 내 어깨를 잡으며 하현이 짜증난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도후, 그냥 죽여.”
“하지만 사람을…….”
“저런 놈들은 죽어도 싸. 그냥 내가 할 테니 넌 여기 가만히 있어.”
“맞아요, 형. 형이 하기 싫으면 제가 대신 할게요.”
사람이라는 말을 하며 주저하는 나를 향해 싸늘한 눈으로 자신이 나서겠다는 하현이 검을 쥐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은호마저 흥분을 하며 석궁을 장전하기 위해 손에 쥐었다.
‘헉! 진짜 얘네 갑자기 왜 이런데?!’
정말 죽이려는 듯 정확하게 조준하는 은호와 스릉 검을 빼 들고 달려가는 하현의 모습을 본 나는 놀라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만!”
“……?”
“뭐냐, 저것들은?!”
나의 호령에 하현과 은호는 동작을 멈추었고 깡패들 역시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하현과 은호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것에 놀라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야, 도후?”
“으그, 둘 다 대기해. 내가 처리하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냐는 표정으로 보이는 하현과 은호의 모습에 나는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 슬쩍 나서서 다가오는 세 놈을 바라보았다.
“저런 것들에게는 비싼 무기가 아까워.”
두 손을 깍지를 껴서 관절을 풀며 나는 놈들을 향해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뭐야? 애들아, 저 파란 머리는 그냥 남창에다 팔아 버리자.”
“큭큭, 좋아.”
음, 날 말하는 소리였군. 그래서 은호와 하현이 화를 낸 것이었구나. 자식들, 그래도 동료라고 챙겨 주기는. 세 놈의 대상이 나라는 것을 알고 내 대신 화를 내 준 두 동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깜찍한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세 놈에게 한마디 던져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심스러운 놈들.”
자기들보다 한참 어린 나이의 내가 그리 말을 하자 기분이 상했는지 세 놈은 얼굴이 빨개지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한 놈이 먼저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흥! 그런 느려 터진 주먹에 누가 맞아 주기나 한 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깡패의 주먹질을 가볍게 피하면서 나는 이죽거렸다.
“뭐야?”
종이 한 장 차이로 살짝살짝 피하는 나의 행동에 깡패들은 땀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
두 놈이 보다 못했는지 동시에 달려들어 3대 1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역시 이들의 몸동작은 답답할 정도로 느려 터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만큼 나의 신체가 뛰어나다는 것이겠지만.
‘역시 내 몸은 괴물이라고 해야 하나?’
“느려, 느려.”
겉으로 세 깡패의 주먹과 발길질을 피하며 혀를 내밀면서 약을 올렸지만 마음속으로 씁쓸함이 생기는 건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세계에서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행운을 준 게 마족이고, 대가로 그의 요구 조건을 들어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게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딴생각하는 것도 모른 채 세 깡패는 점차 지쳐 가는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씩씩거렸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한번 맞아 줄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들었다.
‘그래, 한번 맷집의 강도를…….’
“이익―!”
한 번이라도 때리겠다고 주먹질하는 놈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나의 얼굴로 날아오는 놈의 주먹을 끝까지 보고 피하다가 움직임을 멈추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주먹에 좀 더 맞기 쉽게 각도를 맞추었다.
퍼억―!
경쾌한 타격 소리가 울려 퍼지며 드디어 나를 때렸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의 깡패 얼굴이 보였다.
“흐흐.”
“음, 역시 맷집도 괴물 급인 건가?”
보를 짓누르는 녀석의 주먹은 확실히 눈으로 확인할 때는 보통의 어른 남자의 힘보다 세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의 몸이 근육으로 뭉쳤기 때문에 나름대로 근력이 붙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의 주먹을 맞아 보니 그냥 가볍게 손바닥으로 뺨을 툭 친 정도의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도후!”
“아, 괜찮아. 그냥 한번 맞아 봤어.”
내가 얼굴을 맞아 걱정하는 하현에게 먼저 잽싸게 얘기해 주었다.
“별로 안 아파.”
나의 말에 안심한 듯 하현은 뛰쳐나오려던 발을 멈추고 짤막하게 끝내라고만 대답해 주었다.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휘젓고 나서 게 깡패를 바라보자 깡패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주머니에 매달린 작은 나이프를 꺼내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나이프를 손 안에서 가지고 노는 깡패들을 보며 나는 가소로움에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깡패 하나가 이를 가며 인상을 썼다.
“뭐야, 그 표정은?”
“아니, 뭐…… 참 가지가지 한다는 말밖에…….”
슬며시 약을 올리듯 말하는 나의 행동에 드디어 화가 꼭지까지 돈 깡패들은 성난 멧돼지처럼 내 쪽으로 돌격해 왔다.
“엇차!”
퍼억―!
맨 앞으로 달려든 한 놈이 나의 옆구리를 찌르며 하자 슬쩍 놈의 머리 위로 몸을 날렸다. 그런 다음 발뒤꿈치로 뒤통수를 가격해 정신을 잃게 만들어 쓰러뜨렸다.
“죽어!”
이내 착지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옆쪽에서 칼을 휘두르며 또 한 놈이 튀어나왔다.
“흠!”
휘두르는 녀석의 손을 겨드랑이 쪽으로 막아 놈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팔이 움직일 수 없자 나의 힘에 놀란 녀석이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치자 움직임을 봉쇄한 손을 들어 녀석의 턱을 손바닥으로 눌러 바닥으로 처박았다.
쿵―!
“끄엑!”
엄청난 힘에 눌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깡패가 귀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비명을 지르자 슬며시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살짝 잘근잘근 녀석의 배를 밟아 주었다.
“시끄러.”
“이년이!”
“놈이래도!”
마지막으로 맨 뒤에서 기회만 노리던 한 놈이 욕을 뱉으며 어디서 주워 왔는지 나무 방망이를 들고 휘둘렀다.
“어쭈? 죽을래?”
콰직―!
나를 향해 날아오는 나무 방망이를 손바닥으로 막아 잡고 내 쪽으로 힘차게 잡아당겨 뺏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보란 듯이 가볍게 절반으로 부러뜨리고 녀석의 눈앞에다 아무렇게나 던져 주었다.
“괴, 괴물?”
“너보다 힘세면 다 괴물이냐?”
퍼억―!
“으아악!”
덜덜 떨며 뒷걸음질하는 녀석의 말에 코웃음 치며 나는 간단하게 녀석의 머리를 한 대 후려갈겨 주었다. 약하게 친다 해도 엄청난 엄살쟁이인 이놈은 온몸이 부서지기라도 한 듯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 모습에 한심한 나머지 조금 더 정신 차리게 몇 대 때려 줄까 생각했지만 이내 관두고 바닥을 구르는 녀석을 발로 톡톡 찼다.
“저놈들 데리고 꺼져.”
“흐으윽……!”
내가 무서웠는지 얼굴도 들지 못한 채 남자는 주변에 쓰러진 놈들을 주섬주섬 일으켜 재빨리 골목 쪽으로 도망갔다. 사건이 일단락됐다는 기분으로 나는 가벼운 숨을 몰아쉰 다음 쓰러져 울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는 소녀의 모습이 측은한 나는 슬쩍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이 닿으려는 곳이 옷이 찢어져 맨살이 드러나 있어 내밀던 손을 슬쩍 집어넣었다.
“저기…… 괜찮아요?”
“다…….”
“……?”
부르르 몸을 떨어 고개를 들려는 여자의 반응에 나는 그녀가 안심이 되어 다시 울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이래봬도 여동생을 둔 덕에 난 여자의 눈물에 엄청 약하단 말이야!
하지만 나의 예상했던 반응과 반대로 소녀는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행복에 겨워하는 표정으로 기쁜 듯한(?)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닌가!
“어머, 당신 너무 멋있어요! 캡이야!”
“네……?”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내게로 후다닥 달려와 나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새하얀 볼을 감쌌다. 갑작스레 여자의 얼굴을 만지게 되어 버린 행동에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그런 나의 반응에도 상관없이 여자는 그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자신의 볼로 부비부비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어머! 흥분했나 봐. 어떻게 그리 아름다운 얼굴로, 몸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몸동작으로 못생긴 놈들을 그렇게 쉽게 깔끔하게 처리하다니!”
‘이, 이 여자가 아까 그 여자가 맞나?’
“이봐요, 당신. 이름이 뭐예요?”
“네?”
갑작스레 묻는 질문에 나는 당황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나의 행동이 더 마음에 든다는 듯 여자는 나의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는 게 아닌가!
‘엄마야!’
탁―!
놀라 굳어지는 나를 구원해 주듯 어느새 다가온 하현이 검집으로 내 손을 잡은 여자의 팔을 쳐 떨어뜨려 주었다.
“그 손 치워.”
“어머?!”
“하현!”
‘사, 살았다!’
그녀의 입 안으로 들어갈 뻔한 내 손을 사수하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의 손끝을 보며 상당히 아쉬운 표정을 짓던 소녀를 향해 하현이 위협적으로 입을 열었다.
“너 뭐냐?”
하현의 물음에 놀란 듯 동그랗게 눈을 뜨던 여자는 피식 웃으며 귀여운 척 앙증맞은 목소리로 온몸을 비비꼬았다.
“어머! 그냥 지나가다 운 나쁘게 동네 질 나쁜 사람들에게 걸린 가여운 처녀인데요?”
얌전을 떨며 귀여운 척 표정을 지어 봐도 이미 다 늦었어!
가증스러운 여자의 모습에 나는 얼굴이 뻘게져 빽 소리를 질렀다.
“누, 누가 그걸 믿겠어? 아까의 그 가련하고, 겁을 먹으며 울던 사람 맞아?”
“어머! 못 믿으시겠어요? 다시 한번 보여 드릴까나? 제가 우는 연기 하난 기가 막히게 잘하죠.”
“거짓말쟁이.”
“어머, 어머! 순진도 하셔라.”
속았다는 마음에 분한 나머지 입술을 깨무는 나를 보며 여자는 두 눈을 반짝이며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흘렸다. 왠지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 같은 불쾌감이 기분이 상해 볼을 부풀이며 반박을 하려 하자 그런 나를 팔로 제지하고 다시 한번 하현이 위협하듯 입을 열었다.
“넌 뭐냐 물었다.”
“어머? 잘생긴 미남이긴 한데 너무 쌀쌀맞은 거 아닌가요?”
“묻는 말에 답이나 해.”
어깨를 으쓱거리며 귀여운 척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하현이 어떤 놈인데 미인계가 통할까(뭐,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하현은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말투로 투덜거리는 여자를 향해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보통의 여자라면 저런 하현의 표정과 말투에 지레 겁을 먹거나 눈물을 흘리기 마련인데 눈앞의 여자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대담하게 하현의 앞에서 약 올리듯 말장난을 하는 것이었다.
류현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