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이라 해 봤자 우리 일행인 치르윈, 란슬로, 지크얀, 카인, 도울과 가르보 백작, 라휀 그리고 마부와 가르보 백작의 경비병 둘, 이렇게 열 한 명이 전부였다. 의외로 검소한 걸 좋아하는(물어보니 저택은 가르보 아버님의 유산이었다고 한다) 가르보 백작은 더 이상의 인원은 필요 없다 생각했고 용병인 우리들이 있기에 치르윈 역시 짐꾼 겸 잡일로 경비병 둘을 더 붙였던 것이다.
짐을 풀고 점심 준비를 하는 일행을 두고 나는 라휀의 대련 연습을 위해 상대역을 고르던 중 큐링을 떠올리고 이놈들을 찾으러 온 산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던 것이다.
뭐, 다행히 찾았으니 망정이지만.
어느덧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고소한 팬케이크 냄세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뱃속에서 요란하게 울음소리를 내자 나는 서둘러 달렸다.
“아, 이제 왔어요?”
“오, 아리스. 딱 맞춰 왔네.”
치르윈과 펜케이크를 굽던 도울이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하고 웃음을 짓는다. 도울의 말에 옆에서 고기를 굽던 지크얀이 말을 건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카인은 백작과 체스를 두고 있었고(저놈 참, 백작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 찍찍해 대고!) 라휀은 란슬로에게 기본적인 몸동작을 배우고 있었다.
“뭐냐, 그건?”
라휀을 가리키던 지크얀은 나를 보더니 내 손 안에서 발버둥치는 큐링을 가리켰다.
“어라? 여긴 이거 몰라? 큐링이잖아? 애완용으로도 많이 사용된다는데?”
그의 물음에 나는 큐링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이 만물사전에는 애완동물 대신으로도 많은 인기를 누린다는데.
큐링이라는 나의 말에 체스를 두던 백작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 보았다.
“큐링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답니다. 그리고 애완용으로 기르는 곳은 하르포엔밖에 없습니다. 추운 지방 쪽에 주로 활동하는 몬스터거든요. 이런 더위 속에 그런 녀석들이 있다니 참 신기하군요.”
“에에? 몬스터가 애완동물?”
백작의 몬스터라는 설명에 라휀이 신기하다는 듯이 큐링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둥글하고 눈과 입만 보이는 이 녀석은 발이 없어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데 아이들이 꽤 좋아하는 유행이었는지 라휀도 상당히 마음에 든 듯한 표정이다.
“근데 큐링은 왜 잡아 왔어?”
“응, 네 대련 상대.”
“에? 이게 어떻게 내 대련 상대야?”
나의 말에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라휀이 말했다. 라휀의 말에 란슬로와 지크얀, 치르윈과 백작이 같이 응수를 해 주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오직 이 큐링을 겪어 본 우리만이 이해가 될 뿐이었다.
나는 우선 밥부터 먹기 위해 큐링을 밧줄로 묶어 근처 나무에 매두었다. 그리고 음식이 차려진 곳으로 가 앉으며 라휀에게 대략적으로나마 설명을 해 주었다.
“저 녀석들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저것만큼 딱 좋은 연습 상대는 없을 거다. 우선 음식이 다 되었으니까 밥부터 먹고 하죠.”
“아, 그렇군요. 식사합니다.”
자신의 아들의 일에 관련되어서인지 흥미를 가지고 쳐다보던 가르보 백작도 나의 말에 허허 웃으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치르윈이 마저 구운 팬케이크가 접시 위에 올라가자 가볍게 백작이 먼저 음식을 들었다. 이에 우리들도 서둘러 눈앞의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배부르게 식사를 한 뒤 지크얀과 도울이 설거지를 하러 가는 사이 라휀을 데려와 한쪽에 공간을 만들어 두고 큐링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우선 아까 란슬로에게 기초적인 발차기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거야. 그렇지?”
“응.”
“그럼 이 큐링을 이곳에 둘 테니까 배운 발차기로 이 녀석을 연속으로 때려서 맞힐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길러. 아마 이틀 정도만 열심히 하면 이 녀석의 움직임을 잡을 수 있을 거다.”
“이 귀여운 걸 어떻게 차?”
나의 설명에 라휀은 못하겠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나는 가볍게 녀석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한심하단 듯이 말해 주었다.
“얌마, 그럼 넌 어떻게 사람을 칠래? 대련하는 건 괜찮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이건 동물이 아니라 몬스터야. 이것도 한번 성질내면 무서운 거 모르지?”
“하지만…….”
“잡아 보고 나서 그런 말해라. 큐링은 다리가 없어 몸을 고무공처럼 이용해 통통 튀어 다녀. 하지만 자신의 몸으로 강약을 조종하기 때문에 뛰는 높이가 달라. 그걸 네가 이미지화해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우선 발차기로 연속해서 맞힐 수 있도록 내일까지 마스터해놔.”
나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라휀이 버럭 화를 내며 장담을 했다.
“날 뭐로 보는 거야.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래그래. 잘해 봐라.”
자신감을 가진 라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쳐 주며 내 손에서 발버둥 치는 큐링을 잡아 녀석들이 좀 더 움직이기 쉽도록 줄을 꼬리에 묶었다. 그리고 너무 멀리 튀어 나가지 않도록 삼 미터 정도의 길이로 나무 기둥에 묶어 두었다.
그리고 라휀에게 시범을 보여 주기 위해 큐링 앞에 섰다.
“기본만 잠깐 보여 줄 테니 잘 봐.”
“응.”
라휀에게 조금 떨어지라 말한 뒤 눈앞의 녀석들을 살짝 발로 찼다.
살짝 찼음에도 두 마리의 큐링은 놀라 도망을 치기 위해 미친 듯이 지면을 차며 뛰어다녔다.
심한 것은 내 얼굴까지의 높이까지 뛰어오르자. 그 모습에 놀라는 라휀을 보며 나는 요령을 가르쳐 주기 위해 다시 한 녀석을 살짝 찼다.
그리고 옆의 녀석이 다른 쪽으로 뛰어가자 빠르게 스텝을 밟아 연속으로 붙어 발로 차 주었다. 거의 벽을 향해 공을 차는 것과 같은 모습에 라휀은 쉬울 것이란 표정을 짓고 의욕적으로 내 쪽으로 뛰어 들었다.
“내가 할게.”
“좋아.”
라휀이 하겠다고 달려들어 슬쩍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치르윈이 백작을 위해 후식으로 자른 과일을 빼앗아 입 안에 넣으며 라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과일을 먹던 백작도 내 훈련 방법이 재미있는지 자신의 옆에 있던 경비병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하얏!”
잔뜩 기합을 넣으며 라휀이 자신의 앞에서 퉁퉁 뛰어다니는 큐링 하나를 발로 찼다.
“큐링!”
“으악!”
내가 했던 포즈 그대로 발로 차자 녀석의 어설픈 모습에 도망 다니기만 하던 한 녀석이 라휀의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큐링의 모습에 라휀은 놀라 재빨리 얼굴을 가리고 쭈그려 앉았다. 그 모습에 일행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고 나 역시 통쾌하게 웃어 주었다.
“하하하! 큐링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라휀. 게다가 가끔 가다 먼저 공격하는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이씽!”
놀리듯 웃어대는 우리의 모습에 얼굴이 빨개지며 라휀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까의 건성인 듯한 눈빛을 지우고 진지한 눈빛으로 큐링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직은 무리였는지 라휀은 녀석의 움직임을 잡는 데만 급급해 제대로 발차기다운 발차기를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오늘 하루가 지나 어느 정도 발차기를 연결하게 되면 자세를 교정해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열흘 정도의 시간은 기초를 가르쳐 자세를 잡아 기술 방식을 알려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차라리 우리가 15단계의 던전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싸운 것처럼 실전으로 흐름을 몸에 익히게 한 다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꼬집어 가르쳐 주고, 필요에 맞게 기술이라든지 자세를 잡아 주면서 진행하는 게 빠르게 습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큐링을 잡아 온 것이다.
비록 4년 전부터 왕자의 모습에 현혹되어 아버지 몰래 경비병들의 훈련을 훔쳐보면서 연습했다 하더라도 이제 겨우 12살인 라휀의 실력은 형편없다 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했다.
기본기조차 없었고 체력도 부족했으며. 그렇다고 몸동작이 유연하게 날렵하거나 힘이 센 것도 아니었다.
‘처음 저 녀석이 실력을 보인답시고 깝죽거릴 때 놀랐던 걸 생각하면.’
자신도 한 실력 한다고 말하기에 꽤 연습했구나 생각해서 어느 정도만 도와주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던 나였다. 하지만 연무장에서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그때의 모습이 생각나자 살짝 인상이 찡그려졌다.
우선 이번엔 녀석이 지칠 때까지만 해서 체력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줘야 돼.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며 라휀을 바라보니 벌써부터 지쳤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보다 이내 자신의 아들을 구경하고 있는 백작에게 고개를 돌려 언제 출발하는지 물어 보았다.
“가르보 백작님, 언제 출발해요?”
“글쎄, 언제 출발할까요?”
“음, 보아하니 삼십 분을 못 넘길 것 같아 보이는데요. 지쳐 쓰러지면 그때 가죠.”
“그러도록 하지요.”
나의 말에 자신의 아들의 상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가르보 백작은 경비병들에게 짐을 채겨 두라 말한 뒤 다시 카인에게 체스를 두기 위해 걸어갔다.
란슬로와 지크얀 역시 빈둥빈둥 주변 나무 그늘에 앉아 쉬며 라휀을 바라보았다.
“저거 꽤 힘들겠네.”
“흠, 기본이라도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냐, 아리스?”
조금 걱정이 드는지 란슬로가 내게 묻는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란슬로의 옆자리에 앉아 도울이 건네주는 시큼한 오렌지를 베어 먹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내일. 오늘은 죽어라 몸을 움직여서 한번 근육통에 시달리게 해 줘야지.”
“에? 그건 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을 거 아냐. 자신이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원래 수련이란 자신의 무력함을 알아야 이해 능력이 빨라지고 적극성이 좋아지거든. 한 번도 격하게 몸을 움직여 본 적이 없는 듯싶어서 오늘 하루는 우선 지칠 때까지 몸을 움직이도록 하려고.”
“흠, 일리 있군. 확실히 자신이 부족한 게 많다 생각되면 뭐든 가르쳐 주는 것을 빨리 습득하려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건 맞아.”
내 말에 지크얀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곤 신기하다는 듯이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아리스, 어떻게 잘 알아? 어제 보니까 격투술도 꽤 할 줄 알던데.”
“아, 예전에 흥미가 있어서 달려든 적 있었거든.”
지크얀의 질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지금의 몸이 아닌 도후였을 때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 나 또한 이런 식으로 사부님에게 태권도를 배웠기 때문이다.
발차기든 품세든 절대로 먼저 가르쳐 주시는 일이 없었다. 국기원에 가 품 띠를 받아 유단자가 될 때까지 사부님은 자신이 알고 싶으면 선배들의 움직임을 훔쳐서 배우라는 유별난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던 것이다.
특히 나에겐 발차기도 제대로 안 가르쳐 주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선배들의 움직임을 보고 재빨리 훔쳐 겨루기에 써먹을 정도로 나의 감각은 타고났었다. 그렇다고 사부님이 그냥 우리들을 안 가르쳐 주신 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내가 배워 써먹었다는 듯이 사부님에게 보이면 사부님은 제대로 보고 배웠는지 감정을 해 주시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제야 자세를 잡아 주셨다.
‘그때의 기쁨이란 말할 것도 없었지.’
쿡쿡 웃으며 옛날 일을 잠시 회상한 나는 도울의 질문에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근데 형, 정령은 어떻게 다뤄야 하죠?”
“글쎄다.”
도울의 질문에 나는 잊고 있었던 중요한 문제점을 기억해 냈다. 아직까지도 정령만 부를 뿐 전혀 명령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치르윈이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백작과 즐거운 듯이 얘기를 하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치르윈.”
“어머, 왜요, 아리스?”
“잠시만…….”
나의 부름에 치르윈은 다소곳한 미소를 지으며 백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잠시만…….”
“혹시 정령사에 대해 아는 거 없어?”
“정령사요?”
“응. 다름 아니고 도울이 정령사거든.”
“흠.”
나의 말에 치르윈은 내 옆에 서 있는 도울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의 안경 너머 눈빛을 본 나는 재빨리 도울의 문제점을 말해 주었다.
“근데 전에 말했다시피 우리 셋은 기억을 잃었다고 했잖아. 도울도 그래서인지 정령은 소환할 줄은 아는데 명령을 부려 싸우거나 시킬 줄을 몰라.”
“어머, 그런가요?”
“아, 네.”
치르윈이 도울을 향해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어보자 도울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런 모습에 치르윈은 흐음! 하고 턱을 괴며 고민을 하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며 방법을 모색해 주었다.
“우선 저는 마법사이긴 해도 정령 쪽엔 무지해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대신 수도에 가면 제 친구를 만날 수가 있는데 그 친구의 형제가 정령사라 정령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그 친구를 만나 얘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 방법이 낫겠네.”
“아, 감사합니다.”
“어머! 무슨 말씀을요. 도울.”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도울에게 치르윈은 활짝 웃으며 다시 백작을 향해 걸어갔다. 도울도 수도에 가면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치르윈의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슬쩍 란슬로와 지크얀 쪽으로 가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러다 카인은 뭐 하고 있는가 생각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카인은 백작과 체스를 끝낸 뒤 조용히 한쪽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자, 그럼 정리하고 가지요.”
벌써 시간이 흘렀는지 경비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작에게 말하자 백작은 나를 바라보았다. 백작과 눈이 마주친 나는 슬쩍 라휀을 바라보았다.
꽤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었는지 라휀은 아직까지 큐링을 때리고 있었다. 단지 몇십 분 동안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 까닭에 눈에 보일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리며 거칠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나는 백작을 향해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해 준 뒤 라휀에게 다가갔다.
“헥헥, 헥헥…….”
“그만.”
“아, 헥헥헥헥, 헥…… 죽을 것…… 같아…….”
“수고했어.”
그만 하라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라휀은 쓰러지듯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큐링도 지쳤는지 라휀이 쓰러지자 나를 피해 나무쪽을 몸을 숨기려 들었다. 란슬로에게 큐링을 부탁하고 나는 가볍게 라휀을 안아 올렸다.
“으앗! 내, 내려 줘.”
“시끄러워.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어차피 오늘 한 번뿐인 서비스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가볍게 자신을 안아 올리자 내심 부끄러웠는지 라휀이 얼굴을 붉히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가볍게 묵살하고 마차 안으로 녀석을 들여보낸 다음 마차 안에 올라탔다.
류현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