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라휀, 카인과 도울 이 넷은 말을 탈 줄 모르기 때문에(물론 라휀은 나이가 어려 장시간 말을 타면 힘들기 때문에)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럼 가자.”
백작의 출발 명령과 함께 마부가 가볍게 채찍으로 말의 엉덩이를 때렸다.
스윽 하며 마차가 움직이자 이어서 마차 주변에 있던 일행을 태운 말들이 움직였다.
아직도 힘이 드는지 라휀은 땀을 닦지 않고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혀를 차며 억지로 라휀의 허리를 곧게 세워 주고 숨을 들이켜도록 유도해 주었다.
“숨 쉬어, 숨. 크게 심호흡으로 이렇게 쓰읍! 하아아! 해 봐.”
“허억, 쓰으읍…… 하아아아!”
“좋아, 숨 쉬기 편할 때까지 계속해.”
“쓰으읍! 하아아아!”
숨 고르기를 가르쳐 주자 제법 편해졌는지 들썩거리던 라휀의 어깨가 많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온몸이 후들거려 땀을 닦기 귀찮은지 가만히 늘어져 있자 라휀의 모습을 보다 못했는지 도울이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 주었다.
“고마워요.”
“아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라휀은 이내 피곤함에 못 이겨 잠을 자려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재빨리 나는 억지로 라휀을 깨우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그런 내 행동에 귀찮았는지 라휀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나는 한술 더 떠 인상을 쓰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지금 자면 너 일어났을 때 온몸이 저리고 땅겨서 아파 죽을려고 할걸. 일어나.”
“하지만…… 힘든 걸…….”
“이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그냥 때려치워. 겨우 조금 몸을 움직인 거 가지고 생색내?”
“그렇지만…….”
나에게는 투정이 안 먹히는 걸 알기에 라휀은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며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쏘아 보았다. 하지만 주변이라고 해 봤자 마차 안.
마차 안에 있는 인물은 나보다 더 독한 카인과 다정하긴 하지만 내 말에만 고갤 끄덕여 주는 도울만 있을 뿐이었다.
“스트레칭 가르쳐 줄 테니까 그거나 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야.”
투덜거리는 라휀의 앞에서 나는 앉아서 간단하게 몸을 풀 수 있는 스트레칭 법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죽도록 하기 싫은 표정을 짓던 라휀도 차츰 찌뿌듯하던 몸이 나아지니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녀석의 단점이 있었으니.
“너 유연성 진짜 없다. 암튼 오늘 하루는 죽도록 뛰어 봐.”
“…….”
내 말에 라휀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다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스르륵 도울의 어개에 머리를 기대어 잠이 들었다.
“으아, 저기…….”
자신이 어깨에 기대어 자는 라휀을 본 도울은 슬쩍 나를 바라보며 깨워야 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모습에 피식 웃어 주면서 고개를 저어 그냥 곤히 잠들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재워도 돼.”
“응.”
다각―! 다각―!
마차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며 밖에서 란슬로와 지크얀이 경비병들과 시끌벅적하게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에 창문을 열까 했지만 시끄러워 라휀이 깰 것 같아 우리는 그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카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리스.”
“응?”
“내가 자유 토너먼트에 참가할 테니 넌 용병 쪽에 참가해.”
“바꾸면 안 될까? 그 왕자라는 사람이 나오면 한번 겨뤄 보고 싶은데…….”
“그냥 그렇게 해.”
“치……!”
카인의 말에 나는 뾰로통해져 입술을 쭉 내밀었다. 하지만 용병끼리 싸워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든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할 말을 마친 카인은 자신의 짐에서 마스테마가 준 수정 구슬을 꺼냈다.
“어라? 그건 왜 꺼내?”
“보고하라 명령했으니 이후 계획을 말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아!”
카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 구슬을 건네주며 계획이 생기거나 무슨일이 생길 때 꼭 자신에게 먼저 말을 해 주라는 마스테마가 생각났던 것이다.
“하지만 라휀이 있는데…….”
“그렇군.”
카인의 말에 도울이 조심스레 라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울의 말에 카인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통신 구슬을 짐 속에 넣었다.
그러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슬쩍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도울도 그냥 멀뚱히 있는 것이 힘들었는지 슬쩍 라휀에게 기대어 두 눈을 감았다.
나 역시 혼자 멀뚱히 있기도 그래서 에라 하는 심정으로 카인처럼 의자에 몸을 묻고 슬쩍 눈을 감았다. 간간이 들려오는 규칙적인 라휀의 숨소리와 마차의 바퀴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까지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가르보 백작은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짐을 풀고 치르윈과 경비병들이 식사를 만드는 중에도 나는 오늘은 쉬고 싶다며 떼를 쓰는 라휀을 끌어다 큐링을 묶고 다시 훈련을 하라 명령을 했다.
내 예상대로 자고 일어난 라휀은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로 근육통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했다.
“날도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좀 쉬면 안 될까? 응, 아리스?”
“어두워? 잘 안 보여?”
주변을 둘러보며 묻는 나의 말에 라휀은 안 움직이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설프게 보이긴 하는데 이런 데서 눈을 많이 쓰면 눈 나빠지잖아.”
“그렇군. 치르윈!”
“여기 라이트 구 좀 몇 개 만들어줘, 라휀이 어둡다네.”
“!!”
“그러시다면야, 라이트!”
치르윈은 싱글싱글 웃으며 라휀의 머리 위쪽으로 커다란 라이트 구를 만들어 주었다. 꽤나 큰 마력이 들어갔는지 보통의 라이트 구보다 한 뼘이 더 컸으며 눈이 부실 정도로 주변이 밝아졌다.
“자, 됐지? 우선은 밥 먹기 전까지 큐링 좀 쳐.”
“힝……!”
어설픈 변명은 안 통한다는 나의 행동에 라휀은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라휀의 모습에 나는 씩 웃어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까지만 힘들면 돼.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기술을 가르쳐 줄 테니까 우선 어떻게 하면 이 큐링들을 연속으로 쉽게 따라잡으면 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해. 무턱대고 달려든다고 맞는 건 아니니까.”
“응.”
내 말에 조금 깨달았는지 라휀은 고개를 끄덕이며 통통 튀는 큐링을 바라보며 궁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엔 제대로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나는 라휀 혼자 연습하도록 내버려 두고 치르윈이 식사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걸어갔다.
스프를 끓이는 치르윈에게 다가가 뭔가 도와줄까 물어보려던 나는 건너편 숲 쪽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몬스터다!”
어느새 알았는지 카인이 내게 다가오며 무기를 건네주었다.
“헤, 간만의 몬스터인가? 그러고 보니 여기에서는 처음이군.”
“응? 무슨 일이죠?”
카인이 건네주는 두 개의 도를 받고 말을 주고받는 내 모습에 스프를 휘젓던 치르윈이 놀라 물어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먼저 가는 카인의 뒤를 따르며 치르윈에게 일러두었다.
“몬스터가 온 듯한데 카인과 해결하고 올 테니 치르윈은 란슬로와 지크얀을 데리고 경비병 아저씨랑 여기서 지키고 있어요.”
“아리스 형?”
“도울, 넌 여기서 다가오는 놈 있으면 처리해.”
“아, 네!”
낌새를 느꼈는지 도울이 따라오려 하자 나는 도울에게 지시를 내리고 재빨리 수풀 속으로 달려들었다.
“키에엑!”
“엥? 웬 트롤?”
눈앞의 수풀을 뚫고 나오니 먼저 도착한 카인이 트롤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섯 마리의 트롤이 눈에 들어온 나는 도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카인이 먼저 트롤의 목을 베어 버리고 쓰러지는 녀석의 심장 부위에 검을 박아 넣었다. 재생 능력이 강한 만큼 트롤 같은 경우 목이 분리되어도 심장 안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심장이 죽지 않는 한 30분 정도를 더 움직이기 때문에 빠르게 숨통을 끊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 역시 나에게 덤벼드는 트롤의 목을 두 개의 날을 교차해 베어 버렸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고 서서 버티는 트롤의 심장 쪽을 있는 힘을 다해 베어 버렸다.
“……!!”
가슴 절반까지 베인 트롤의 몸에서 검이 빠져나오지 않자 나는 뒤쪽에서 내 몸을 노리는 트롤을 보고 재빨리 뒷발을 날려 차 버렸다. 나에게 차인 트롤은 쓰러지자마자 카인의 날카로운 검에 심장이 박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나머지 두 마리는 꼼짝없이 한칼에 죽는 자신의 동료를 보더니 허둥대며 어둠 속으로 도망을 쳤다.
“쫓아갈까?”
“놔둬. 당분간은 안 나오겠지.”
“하지만 트롤은 무리 지어 살지 않나? 게다가 도망간 것도 제 동료 부르러 간 것일 수도 있잖아.”
“오면 그때 죽이면 돼.”
쫓아가자는 식으로 말을 하자 카인은 자신의 검에 흐르는 피를 떨쳐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특유의 말투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행에게 가자고 등을 돌렸다. 그러다 내가 뛰쳐나온 수풀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란슬로가 나타나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헉! 뭐야, 저건?!”
“뭐긴 뭐야, 트롤이잖아.”
우리의 발밑에 있는 잘린 트롤의 시체를 보며 란슬로가 놀라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 주었다. 란슬로는 깜짝 놀라 내 옆쪽으로 걸어오더니 트롤들을 발로 건드리며 쳐다보았다.
“으아! 아주 절단을 냈네, 절단을. 이걸 너희 둘이 처리한 거란 말이야?”
왜 저리 놀라나?
두 눈이 똥그래지며 질문을 하는 란슬로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늘 베었던 놈들이니까. 몇십 마리도 아니고 다섯 마리뿐이었는걸.”
“헉! 다섯 마리??”
나의 말에 깜짝 놀란 란슬로는 고개를 젓다 이내 나의 어깨를 잡았다.
“우선 식사 다 되었으니까 밥부터 먹자. 가자, 카인.”
“응.”
“…….”
란슬로를 따라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 치르윈이 차려놓은 음식 앞에 동그랗게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라휀도 이번에 큐링과의 달련에서 잘했는지 나에게 자랑을 하며 5번이나 연속으로 찼다 말했다. 거의 식사가 끝날 무렵 각자에게 커피 잔을 나눠주던 란슬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카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리스, 카인, 그리고 도울. 너희들은 어디서 왔어?”
건네받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신 나는 갑작스레 묻는 란슬로의 질문에 잠시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에? 섬이긴 한데…… 어느 섬인지는 모르겠어. 왜?”
“꼬치꼬치 캐묻는 것 같지만 너희들…… 도울은 그렇다 쳐도 카인과 아리스 너희 둘은 어느 곳에서 살았는지 무척 궁금해서.”
란슬로의 말에 우리 셋은 물론 같이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특히나 항상 싱글거리며 백작과 얘기를 나누었던 치르윈도 예전 처음 만났을 때 지었던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순간의 정적과 함께 말할 기회를 놓친 나로 인해 주변이 어색해지자 조용히 있던 카인이 나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린 기억을 잃어서 어디에서 살았는지 몰라.”
“그럼 기억 잃을 당시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어?”
“그건 왜 묻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기색을 내비치는 카인의 말에 란슬로는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 모습에 짜증이 났는지 카인이 결국 인상을 찡그리며 차갑게 되물었다.
그런 카인의 모습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듯하자, 지크얀이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며 란슬로를 말렸다.
“이봐, 란슬로. 갑자기 왜 그래?”
“지크얀, 너 트롤 다섯 마리를 만났다면 어떻게 할 거야?”
“트롤? 트롤은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그것도 다섯 마리라면…… 혼자라면 죽어라 뛰어야지.”
“그렇지? 나도 그래. 두 마리라면 어떻게 해 보겠지만 다섯 마리라면 벅차기 때문에 도망이 우선이지.”
지크얀의 말에 란슬로가 나와 카인을 바라보며 지크얀의 말에 응수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게 왜, 란슬로?”
“카인과 아리스 둘이서 트롤 다섯 마리를 한 번에 한 놈씩 목을 베어 쓰러뜨렸어.”
“헉!!”
“어머!”
“호오, 그게 정말입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란슬로의 말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리 둘을 주시했다. 그 모습에 나는 뭔가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에 인상을 찡그리며 란슬로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다섯 마리 아냐. 세 마리라구. 내가 한 놈, 카인이 두 놈, 나머지 둘은 도망쳤단 말이야.”
“아리스, 도망친 두 놈이 있었더라도 장담하건대 아마 한칼에 베어 넘겼을 걸. 너나 카인이라면.”
“당연하지. 트롤 하나 잡는 데 뭐가 어렵다고 그래?”
란슬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받아쳐 주었다. 트롤 잡는 게 뭐가 어렵다고 저러는지 솔직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에 백작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 카인과 내게 물었다.
“한칼에 베었다고 란슬로 님이 그랬는데 사실입니까?”
“그래. 그게 어려운 건가? 트롤은 재생 능력 빼고는 일반 몬스터와 비슷한데 뭐가 문제지?”
카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가르보 백작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설명을 했다.
“트롤이란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라고 생각하면 되지. 말이 재생능력이 빠르기 때문에 까다롭다 생각하겠지만 그건 상처를 냈을 경우잖아? 팔을 베어 버린다고 하면 새 팔이 생기기까지 아무리 재생이 빠른 트롤이라 하더라도 몇 십 분은 넘게 소요되지. 팔을 잘라 놈들에게 겁을 주느니 목을 베어 움직임을 굼뜨게 해 녀석들의 핵심인 두 번째 심장을 찌르면 죽는데, 그렇게 하기가 그리 어렵냐?”
카인의 말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란슬로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재빠르게 맞받아쳤다.
“아냐, 카인. 내가 놀란 건 너희들의 몸놀림과 완력이라고. 솔직히 백작이든 나든 지크얀이든 트롤의 목을 베는 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게 쉬울 것 같아? 대부분 뼈에서 한 번 걸리고 그 뼈를 베어 버리는 데 다시 힘을 주어야 하지. 즉 중간 단계에서 다시 한번 힘을 줘야 한다는 소리야. 그런데 너희들은 트롤을 잡을 때 어땠는지 알아? 그냥 나무토막 자르듯이 가볍게 손 한 번 휘둘렀는데 목이 베였다고. 게다가 속도는 어땠는데? 우리와 대련했을 때보다 더 빨랐어.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인 게 말이 안돼. 아무리 속도를 늘렸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그 정도의 빠르기는 무리야. 그리고 너, 아리스. 너의 그 가냘픈 체구로 트롤의 목이나 가슴 절반까지 베어 내는 게 쉬울 것 같아? 검도 검 나름이야. 아무리 날카롭고 예리한 검이라 해도 베기 기술에서 적당한 요령이 없으면 목을 벤다는 건 쉽지 않다고. 너처럼 나이도 어린애가 보통 용병들이라 해도 까다롭게 생각하는 저 트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손쉽게 상대해서 베어 넘긴다는 거, 난 그 점이 궁금하단 말이야. 대체 어디서 생활을 했기에 그런 실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숨도 안 쉬고 말하는 란슬로의 말에 모두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란슬로의 지적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수익족이고 마스테마의 능력으로 키메라가 되어 엄청난 힘과 스피드를 얻었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단지 18살의 여자보다 가늘어 보이는 체구의 소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18살밖에 안 먹은 나이의 소년이 아무리 천재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완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며 스피드 역시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닌 것이다. 끊임없이 며칠, 몇 년 죽어라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능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나는 아무렇지 않게 쓰니 당연히 일반 사람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면 놀랄 수밖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리는 것을 느낀 나는 하는 수 없이 약간만 사실을 섞어 주기로 결심했다. 어느 정도 얘기를 내뱉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침묵을 하다 이내 침울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기억을 잃고 섬에 도착하기 이전에 몇 년간 산 곳이 있어.”
“아리스!”
나의 말에 카인과 도울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 말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라는 눈빛을 둘에게 보여 준 뒤 나는 다시 모두에게 그때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류현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