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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3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형이 자랑할만 하네.

―당연하지. 샹그릴라는 게임계의 혁명이 될거야. 그나저나 잠깐만 기다려봐. 이렇게 빨리 네가 접속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아직 준비가 안됐어.

―응? 무슨 준비…….

―잠깐, 이제 곧 가동한다. 놀라지 마.

―응?

한규는 밑도 끝도 없는 형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바로 그때 눈앞에 펼쳐져 있던 풍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들판을 가득 채웠던 풀섶이 무너져 가라앉고, 나무니 바위 따위가 나락으로 추락했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새까만 어둠뿐이다. 디디고 있던 1미터 반경의 땅이 공중을 부유하고 있다.

―이, 이게 뭐야?

―잠깐만, 아직 만드는 중이야.

―그러니까…….

―됐다.

한상의 신호와 동시에 한규의 앞에 징검다리와도 같은 땅이 펼쳐졌다. 여전히 발밑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었고, 그 위에 돌인지 흙인지 알 수 없는 점점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걸 따라 가라는거야?

―그렇지.

한규가 눈쌀을 찌푸린다.

―뭐야! 그냥 한번 접속해 보라는 듯 말하더니…….

―하하, 그럴수야 없지. 지금까지 사내의 테스트에서는 제대로 작동했었는데, 임시등록한 일반 유저들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나 시험해 보려는거야.

한규는 뭐라 한마디 더 하려다 불평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형이 게임제작에 미쳐 있던 게 하루 이틀일도 아니고, 오히려 이 정도면 양반이다.

아무 대답 없이 한규는 1미터 가량 떨어진 바위위로 몸을 날렸다. 꿈속에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 그의 몸이 붕 떠올라 다음 바위에 무사히 내려섰다.

―어때? 움직이는게 자연스러워?

―으, 응? 뭐가 자연스러운건지는 모르겠는데, 현실에서 뛰는거랑 차이가 안느껴지는데?

―오케이, 계속 해봐.

한상의 말에 따라 한규는 몇 개의 허공에 뜬 바위를 뛰어 건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허공에서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 건너다보니 절로 식은땀이 났다.

그렇게 일곱여덟 개의 바위를 건너뛰고 나니 평탄한 땅이 눈앞에 펼쳐진다. 징검다리가 끝이 난 것이다.

―다음은 몬스터야. 가볍게 오거로 시작하자. 게임내에 비해서 동작이 느린 편이니까, 한규 네 반사신경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거야.

―뭐, 뭐야? 쉴틈도 안주는거야?

―하하, 너도 시간낭비하는건 싫잖아.

―그…….

한규가 반박을 할 틈도 주지 않고, 한상은 한규의 앞에 덩치 큰 남자를 소환했다. 어깨 너비만 2미터는 족히 될 듯한, 근육이 풍선처럼 부푼 괴물이었다. 나무 줄기 같은 몽둥이를 든 괴물이 한규를 보자마자 괴성을 내지른다.

“크아아아악!”

“시, 시끄러!”

한규는 괴물의 등장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굳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팔을 움직여 긴장을 풀고는 오른쪽 앞꿈치를 반보쯤 내밀었다.

오거의 날카로운 눈빛이며 사람 키의 한배 반은 될 듯한 덩치까지 위압적인 상대였지만 한규는 형이 한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독였다.

먼저 공격을 해 온 것은 오거였다. 오거의 움직임은 사람보다 조금 느렸다. 한규는 내민 발을 오른쪽 45도 방향으로 밀어 넣고 뒷발을 당겼다. 후웅―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곧바로 오거의 몽둥이가 가로로 짓쳐들어왔고, 한규는 몸을 뒤로 빼 공격을 피해냈다. 동작이 느리다고는 해도 워낙 리치가 길어 피하는 게 녹녹치는 않았다.

―어때? 할만 해?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오거를 상대하고 있는 한규에게 한상이 말을 건다.

―할만하긴 뭐가!

―심박수, 체온 전부 흥분상태야.

―당연하지!

―하하하, 기분 좋은 긴장 아니야?

한규는 한상의 지적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공포’보다는 ‘스릴’에 가까웠다. 만약 현실에서 저런 괴물과 마주쳤다면? 아무리 피할만한 공격을 해온다 하더라도 몸이 굳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샹그릴라의 프로그램 덕분인지,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감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교적 순순히 전투를 즐길 수 있었다.

한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 샌가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눈앞에 커다란 식탁이 펼쳐져 있다.

―어, 이게 뭐야?

―자, 마지막으로 보너스 스테이지랄까?

식탁에는 하얀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열 명이 둘러앉아도 넉넉할 듯한 원탁의 등장에 한규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때, 한규가 서 있는 방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규는 가만히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무슨 옛날 영화에 등장할법한 흑백의 하녀 복장을 한 여자들이 한 아름은 될 듯한 쟁반을 날아온다. 한명 한명 식탁가로 다가간 그녀들이 손에 든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곳에 담겨있던 것은 다름 아닌 요리들이었다. 팔뚝만한 로스트비프에서 과일이 맛깔스럽게 담겨진 접시, 노릇노릇 구워진 통닭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요리들이 계속해서 테이블에 차려졌다.

―사양 말고 먹어라. 하하.

채팅창에 한상의 말이 찍혔다. 한규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콧속 가득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허기진 감각까지 현실과 똑같다니…….

한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가까이 놓인 까나페를 들어 입안에 넣었다. 맛과 향이 입 안 가득 퍼지고, 한규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아, 정말 맛있다!”

이 접시, 저 접시로 자리를 옮기며 한규는 음식 맛을 보았다. 하나같이 현실의 맛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먹으면 먹을수록 배까지 점차 불러왔다.

―어때? 먹을만 하냐?

―어, 어 맛있어. 정말 맛있는데? 게다가 배까지 불러와.

―대단하지 않냐? 샹그릴라.

―그러게.

―하하 웬일이냐? 네가 순순히 인정하고.

―그야…… 뭐 대단한건 대단한거니까.

오븐에 구워진 통닭의 다리를 뜯으며 한규가 대꾸했다.

―어때? 해보고 싶은 생각이 팍팍 들지 않냐?

한상의 물음에 한규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뭐…… 전보다는 조금 더 해보고 싶어졌지만…….

―좀만 기다려라. 완성까지 그리 멀지 않았으니.

형의 말에 한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형을 도와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 주었다. 그렇게나 동생을 부려먹더니, 한상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니 한규를 내버려두고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것도 캐릭터 테스트 공간 안에서 한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에게 나가본다는 말을 한 후, 한규는 샹그릴라라는 꿈에서 깨어났다.

다시 눈앞에 우윳빛의 헬맷 아이실드가 보인다. 손을 게임기의 장갑에서 뽑아 헬맷을 벗었다. 말 그대로 꿈을 꾸다 깨어난 듯한 감각이었다.

샹그릴라 콘솔용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뜨자마자 계속 게임을 한 탓인가? 몸이 조금 뻐근했다.

“잠시 몸이나 풀러 나갈까?”

한상은 트레이닝복을 몸에 걸쳤다. 샹그릴라 콘솔을 흘끗 바라보았다. 뭐라 딱히 짚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대단하다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장은…….

문 밖으로 나서며 한규는 샹그릴라 안에서 느꼈던 감각들을 한켠으로 밀어 두었다.

3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책로를 따라 한규는 가볍게 조깅을 했다. 평일 날 오전이라 그런지 안양천변 산책로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끔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달리는 자전거 부대가 만나는 전부였다.

몸이 조금 따듯해지자 속도를 높였다. 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스쳐 흐른다.

어렸을 때부터 우슈를 가르쳐준 슈퍼집 장씨 아저씨가 달리기만큼은 거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온게 떠올랐다. 술배 두둑한 장씨 아저씨는 여기저기 난립한 대형 마트로 매출이 줄어 요즘에는 오후 3시까지 증권 거래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러기 전까지는 새벽같이 일어나 자신을 데리고 근처 산으로 운동을 가곤 했다.

지금 한규가 체육특기생으로 있을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장 씨 아저씨 덕분이었다. 장씨 아저씨는 어렸을 때 인천 차이나타운 근처에 살았는데 문화혁명 때 중국에서 도망쳐 나온 권법가에게 우슈를 배웠다고 했다.

사실여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한규는 우슈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전액 장학금으로. 부모님이 안 계신 빠듯한 살림에 장학금은 제법 도움이 되었다.

30분 가까이 꽤 빠른 속도로 달린 끝에 한규는 넓다란 공터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한규는 장씨 아저씨가 가르쳐 준 호흡법으로 몸을 풀었다. 이름도 거창하니 ‘역근경’이다.

장풍이니 내공이니 하는 건 직접 본적 없어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몸을 뒤틀어가며 숨을 받아들이고 또 내보내면 몸 전체가 개운해진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온 덕분에 한규는 스타일 하나만큼은 모델들 부럽지 않았다. 헬스가 아닌 무술로 갈고닦은 몸이기에 두껍지 않은, 그야말로 균형 잡힌 몸매다.

달리기 덕분에 살짝 당겨오는 복근을 쓰다듬으며 한규는 물가로 다가갔다. 그때 멀지 않은 곳 다리 밑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남자애들이 눈에 띄었다.

“어 저건…….”

낯익은 교복차림이었다. 안북공고의 애들이 대여섯에 대림고등학고 애들이 나머지였다. 아홉시에 가까운 이 시간에 저리들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학문에 정진하는 쪽은 아닌 듯 했다.

호기심에 한규는 그 애들 근처로 다가갔다. 몇몇은 얼굴정도는 아는 애들이었다. 다들 자기들 학교에서 싸움 좀 한다는 애들이었다.

“야 이 XX!"

“뭐야 이 새X!"

가는 말이 곱지 않고 오는 말이 곱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주먹의 대화가 오갈 분위기였다. 20미터쯤 남겨두고 한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귀찮은 시비에 휘말릴까 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벌써 한규를 알아보는 애들이 있었다.

“어, 저거 한규 아냐?”

“한규가 누군데?”

“한큐 모르냐? 작년에 서고 짱이 덤볐다가 한방에 피박살났잖아. 그래서 애들이 한큐라 부르는데…….”

공자님도 세 명이 가면 말 많은 애 하나씩 있다고 말씀하셨다. 친절한 그의 설명에 고등학생들이 웅성거린다.

한편 한규는 낯간지럽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나 신경 쓰지 마. 그냥 운동 나온 거니까.”

말 많은 애가 하나 있는가 하면 꼭 앞 뒤 안 재고 큰소리치는 애도 있다.

“뭐야? 니가 그 한큐냐? 너 잘 만났다. 여기서 한판 뜨자!”

한명이 앞으로 나서며 시비의 방향을 한규에게 돌린다. 곤란한 표정으로 한규는 머리를 긁적였다.

“쫄았냐? 덤비라고.”

재차 도발한다. 한규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흔든다.

“관두자. 뭐 좋은 꼴 보겠다고 아침부터 쌈질이냐?”

“뭐 이…….”

기세 좋던 상대의 말끝을 지우며 다리 밑에 호각소리가 메아리쳤다.

“야 이 녀석들! 뭐야 아침부터!?”

“짭새다!”

애들 중 하나가 외치고 고등학생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리기 시작한다. 사복차림의 젊은 남자 하나가 후다닥 달려 나오더니 짭새라고 외쳤던 애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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