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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5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아이고, 나으리…… 제발 우리 마을을 구해 주십시오.”

“알겠으니 말을 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영웅 나으리. 저희 마을은 송곡촌으로 이곳 항주 남쪽 30리 거리에 있사옵니다. 오래전부터 근방에 죄수들의 감옥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강호인들을 가두어 두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전에 장삼뿡과 나누었던 새로운 패치에 대한 대화가 떠올랐다.

“그저 전설로만 치부하여 신경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그곳에서 왔다며 밥을 구걸하는 낭인 하나가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피골이 상접해 있던 그가 불쌍하여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며칠간 상처를 돌보아 주었습죠. 오래잖아 그는 기운을 차렸습니다만…….”

“은혜를 잊고 마을을 공격한 것이냐?”

“그렇습니다요, 나으리.”

가야금인지 거문고인지 모를 악기로 연주한 짧막한 효과음과 함께 퀘스트 창에 불이 켜진다. 기껏 역할수행을 강조하며 대화방법도 그대로 할 것을 요구하는 주제에 ‘퀘스트’라는 메뉴가 생뚱맞다.

퀘스트 명 : 송곡촌의 탈옥고수 귀노자(鬼奴子)

수행 레벨 : 100레벨

권장수행인원 : 5인

송곡촌은 항주 남쪽 ……<하략>…….

퀘스트의 내용을 훑어본 후, 나는 최종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때 좌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어, 저 사람 전부한큐 아냐?”

“송곡촌에 갈 모양인데?”

“오전에 한번 가봤는데, 내 장비로는 도저히 무리더라.”

사람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송곡촌은 흡사 유령의 집 처럼 변해있었다. 게임시간으로 한낮이건만 필드에 들어서자마자 하늘이 어둑하게 변했다.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건 강시로 변한 마을사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만렙 3인퀘스트 답게 엔피씨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소혼강시대법(消魂彊屍大法)을 써서 만든 강시들은 하나같이 내공이 3갑자(甲子) 이상에 체력도 5만을 넘겼다.

뭐 그래봤자 크리티컬로 세 번 정도 공격하면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지기 바빴지만.

각 집들 하나하나가 인스턴트 던전처럼 되어 있었다. 보스인 귀노자(鬼奴子)는 그 인스턴트 던전들중 하나에 무작위로 등장하는 모양이었다.

송곡촌에는 나 말고도 세네명씩 파티를 이룬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굳이 상대할 필요를 못느꼈기에 나는 사냥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천리전음―귓속말―을 걸었다.

―어, 한큐님, 아까 로그아웃 하시더니…….

장삼뿡이었다.

―아, 오늘 개교기념일이라서 집에서 놀고 있거든요.

―아하! 송곡촌 계시네.

―넹.

―아까 한큐님 로갓(로그아웃)한 사이에 패치됐어요. 우리 혈맹원 하나 데리고 갔다가 떡실신! 하핫

―쎄긴 쎄네요. 몹들이.

―하하하.

채팅을 하며 몹을 상대하다보니 조금이지만 강시들에게 맞는 경우가 생겼다. 특히 자폭을 하는 혈폭강시같은 경우에는 방어력, 회피도 모두 무시한 공격을 하고 있었는데, 체력에 능력치 배정을 안한 내 경우에는 피해가 막심했다. 다행히 들어오는 데미지를 줄여주는 금강부동신공은 제대로 작동했지만, 그래도 한번에 피가 2퍼센트씩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그러고보니 한큐님 다른 게임 뭐 하시는거 있으세요?

장삼뿡이 묻는다.

―아뇨?

―아하, 전 샹그릴라 나오면 한번 해보려구요.

뜨끔―

―샹그릴라요?

―아시죠? 지금 개발중인 4세대 게임.

아마 너보다 몇배는 잘 알고 있을거다. 하지만 내색않고 딴청을 피웠다.

―아, 네. 들어본적 있어요.

―히히, 무림비혈사는 깨어있을 때 하고, 샹그릴라는 자면서 하고. 24시간 게임만 하는 인생도 꿈이 아니게 됐죠.

적당히 해라 임마.

―하하, 몸상합니다 그러다가.

―그러고보니 제가 자주가는 게임사이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요?

―샹그릴라, 제작하고 있는게 제작진이 아니라 AI라고요.

금시초문이었다. 샹그릴라 제작팀 팀장을 맡고 있는 형도 한적 없는 얘기였다.

―AI라니요? 인공지능 말이에요?

―예. 진짜로 생각할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어서,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샹그릴라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더라고요.

뭐 그런쪽으로 아는게 많지는 않지만, AI가 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전기 밥통에도 달린 기능이니까. 물론 제대로된 살아있는 컴퓨터는 아니지만.

장삼뿡이 다시 자신이 한 말을 뒤집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라서 100프로 믿을수는 없지만요.

―하하, 워낙 사람들의 관심이 높으니까요.

―아무튼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동감이었다. 그래야 형 얼굴도 보고 살지. 형제 단둘인데 얼굴볼일이 거의 없으니 좀 그렇긴 하다.

그 순간 사운드가 바뀌었다. 가냘픈, 그래서 슬픈 음색의 배경화면에 강렬한 비트가 들어가며 급박한 음조를 띄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보스 귀노자를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삼뿡님, 귀노자 떴네요. 얘 좀 잡을께요.

―아, 네, 즐겜요.

좁다란 복도 저편에서 아지랑이와 같은 진보라색 기운이 넘실거린다. 느릿한 걸음으로 빼빼마른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늘어진 도포가 나무복도를 쓸고, 시뻘건 귀기를 내뿜는 눈은 사람같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장 먼저 누른 스킬은 질뢰답무영이었다. 20초간 회피력과 이동속도를 200퍼센트 올려주는 기술이다.

귀노자가 갑자기 양 손을 내뻗자, 해골이 어릿하게 녹아있는 검은색 기의 덩어리가 내개 날아왔다. 피하며 동시에 돌진! 키보드와 마우스를 빠르게 조작해 다음 기술 청구연환삼식을 날렸다.

인간형의 보스였기에 익숙한 급소에 클릭을 했지만, 전부 통상공격 판정이었다. 혈도의 위치가 바뀐 모양이다. 아니면 나와 마찬가지로 금강불괴 계열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곧바로 다음 무공을 펼쳤다.

“천여시일(千如始日)! 낙수관암(落水貫巖)!”

흔히 줄여서 천낙이라 부르는 장법이었다. 천여시일은 심법이요, 낙수관암은 초식이었다. 방어도 무시에 내부에 직접 타격을 주는 무공이다. 특히 외골격의 요수(妖獸)들이나 외문무공을 익힌 강호인들에게 효과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크리티칼이다! 한번에 1만데미지가 떴다. 하지만,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 체력 게이지는 눈꼽만치 줄어들었다.

지루한 공방(攻防)이 이어졌다. 내가 쓸만한 스킬은 천낙 정도였고, 귀노자도 나한테 이렇다할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5분동안이나 공격을 퍼붓는 사이, 구규일극의 내공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삼라일규―!”

지금까지 한번도 누르지 않았던 기술을 클리했다. 내 몸 주위에 기운이 소용돌이 치며 천천히 내공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귀노자의 피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체력이 20퍼센트 이하에 접어들자 귀노자가 괴이한 술법을 외웠다. 피부색이 검은색으로 바뀌면서 종족도 인간에서 요괴로 바뀌었다. 강시가 된 것이다.

원거리 위주의 도술 술법에서 철저한 근접공격으로 공격 방식도 바뀌었다. 1분에 둘씩 강시들도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꿈쩍도 않던 내 체력도 서서히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아차하는 사이에 피가 1/3이나 날아간다.

“꽤 쎄네…….”

한마디 중얼거리며 고려인삼을 하나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급박한 상황에 주머니에서 인삼을 꺼내 씹다니…… 게다가 인삼을 먹자마자 체력이 쭉쭉 차오르는건 무슨 조화일까?

평소 체력이 닳는 일이 드물었기에 이 인삼은 무림비혈사 내부 시간으로 1년 넘게 가지고 다니던 것들이다. 냉장고도 아니고, 면으로 만든 포대자루에 1년이나 방치해둔 인삼…… 그것도 그 안에는 가끔 사람의 수급(首級), 다시말해 잘라낸 머리통이니, 괴물의 앞다리니 하는것도 같이 보관했다.

먹으면서도 이거 진짜 괜찮은거냐?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느순간 갑자기 ―인삼이 팍 상했습니다. 폭풍설사로 체력이 반으로 줄어듭니다.―하는 메시지가 뜰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인삼빨로 버티고 버텨 귀노자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크으윽― 이놈 전부한큐…….”

귀노자와 나, 전부한큐 사이의 자동 대화가 시작된다.

“귀노자! 너의 음모는 여기서 끝이다!”

“크크크,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뭐라고?”

“이미 내가 만든 3천 강시들이 무저옥경으로 출발했다. 1천년동안 우리들을 감시해 온 감옥지기들도 그들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럴수가!”

라고 전부한큐가 말했지만 나는, 뭐 이런 조그만 마을에 3천명이나 살고있냐? 게다가 며칠전이라며? 공장에서 찍어내도 그것보다는 느리겠다,라고 중얼거렸다.

“크크, 기대해라. 무저옥경의 문은 이제 곧 열릴테니…….”

말과 동시에 강시로 변했던 귀노자가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품에서 포대주머니가 데굴 굴러나왔다.

“무저옥경이라니…… 그 전설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전부한큐의 의미심장한 대사를 한귀로 흘리며 나는 주머니를 부지런히 클릭했다. 뭐가 나오려나?

보상품 창이 열리며 몇 개의 아이템이 떴다. 알아보기 힘든 무저옥경의 지도, 귀노자의 수급 이 두가지는 퀘스트 아이템이었다. 금 30냥이라는 돈―고려인삼 한뿌리가 은 20냥이고, 은 100냥이 금 한냥이었다― 그리고 아직 감정이 되지 않은 무기하나와 방어구 하나가 나왔다.

만렙 파티보스니 제법 괜찮은 장비들일테다. 퀘스트도 깼겠다 나는 곧바로 귀환부적을 썼다.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촌로와 만나 퀘스트를 완료했다. 무저옥경의 지도가 읽을수 있게 변하고, 귀노자의 수급이 사라지며 금 20냥을 퀘스트 보수로 받았다.

그리고 향한곳은 전당포. 무기를 감정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는 장인급의 왜검(倭劍)이다. 카타나처럼 생긴 검으로 경매장에 올릴만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급의 여성용 상의였는데, 그냥 상점에 금 50냥 받고 팔아 넘겼다.

4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한규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5시다.

“하여간 온라인게임은 문제가 있다니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규는 뻐근한 몸을 풀려 기지개를 켜고 방안을 두리번 거렸다.

엉망진창이다. 대충 벗어놓은 옷이며 책들. 어제 돌아와 벗어 던져둔 책가방까지 개집도 여기보다는 깨끗할 듯 했다.

옷가지를 집어 옷걸이에 걸고, 책은 책꽂이에. 간단히 정리를 마친 후, 한규는 거실로 나왔다. 샹그릴라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한규는 샹그릴라 의자에 몸을 푹 눕혔다.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날 이후지 아마…….”

한규는 8년쯤 전의 그 날을 떠올렸다. 형 한상이 전문대를 졸업하고 특채로 게임회사에 취직한 그쯤이었다. 자신이 아직 열살이었던. 3년간 부모님의 목숨을 잇던 그 수많은 튜브와 전기장치들을 그분들에게서 분리했던.

형 한상은 그 날 한 여자를 만났다.

한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나 누나나 만나러 가볼까.”

한규는 욕실로 가 머리를 감았다. 양치도 새로 했다.

다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너저분한 꼴을 하긴 싫었다. 살짝 긴 머리는 오래간만에 빗질까지 했다.

거울을 보았다. 훗, 어디가서 떨어지는 얼굴은 아니지. 한마디 낯부끄러운 소리를 떠올리고는 외출준비를 마쳤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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