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학생이 담배질하는게 뭔 자랑이라고.”
“이 형님은 스무살이니라.”
“2년 꿇은건 자랑이고?”
“네, 네. 한큐선생 오늘따라 왜이리 까칠하게 나오실까?”
한규는 고개를 들어 문기를 보았다. 자기보다 두 살많은 문기는 고등학교에 와서 만난 친구였다. 같이 어울린지 이제야 1년 남짓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제법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문기 너, 진짜로 건달이 될 생각이냐?”
“응? 아아, 그거?”
문기는 교복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버릇처럼 익숙한 손짓이다. 하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건달이라는 말은 인도의 간다르바에서…….”
“개소리 치우고.”
“하하, 그야 별수있냐. 아빠도 깡패요, 엄마도 깡패요, 형도 깡패에 삼촌까지 깡패인데.”
문기는 체념섞인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게 뭔상관이야? 요즘같은 시대에…….”
“몰라,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는 나한테 손대지 않겠다고 했는데…… 콩심은데 콩난다고, 벌써 학교도 한번 갔다오고.”
기지개를 켜며 문기가 투덜댄다.
“아주 엘리트 나왔다고 꼰대가 쌍수들고 환영하더라. 엄마라는 여자는 멧돌로 콩을 직접 갈아서 수제두부를 만들고 있고. 평생 요리라고는 해본적도 없는 주제에. 그때 이미 반쯤 포기했다.”
한규가 중얼중얼.
“하여간, 교육환경이 이래서 중요하다니까. 이러니까 강남열풍이 사라지질 않는거야. 21세기가 된지 20년이 흘렀는데.”
문기가 쨍알쨍알.
“어쭈, 간만에 뉴스좀 봤냐? 어울리지 않게 어려운 소리를 하네.”
주거니 받거니 시시한 대화를 나누던 둘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구름일테다.
“졸업하기 전에 뭔가 커다란 일을 한번 해보고 싶은데…….”
문기가 하늘에 대고 말한다.
“깜빵 한번 더가게?”
“그런거 말고. 졸업하고 나면 뻔질나게 드나들텐데 뭐하러.”
말을 하던 문기가 팔꿈치까지 옷을 밀어올리며 긁적거렸다. 용의 꼬리가 슬쩍 보인다. 그게 싫어 문기는 새삼 소매를 끌어내렸다.
“학생다우면서도 대단한 그런거 있잖아. 나이야 스물이나 처먹었지만, 고등학생이니까.”
“그런게 어디있겠냐? 인생이 오죽 시시하면 다들 게임속으로 숨어드는거 아냐?”
문기가 한규의 어깨를 툭 친다.
“니가 할 말이냐? 너도 무슨 장풍쏘는 게임 하고 있다며?”
“그야 형이 시켜서…….”
“핑계좋다. 꽤 빠져있으면서.”
한규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나도 온라인 게임이나 해볼까? 그 뭐냐, 너네 형이 지금 개발하고 있다는 샹그릴라인가 하는 게임 말이야. 그건 테레비에서도 맨날 나오고 하던데. 거기서 최고자리 먹으면 나름 뭐 하나 이뤘다는 기분 들까?”
문기의 말에 한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답잖게 뭔소리야?”
“하도 답답해서 그런다. 게다가 뭐, 나랑 상관없는 분야라 그렇지, 나름 그쪽에서도 지존이니 뭐니 해가면서 게임가지고 뻐기고 그러잖아. 망한다느니 안될꺼라느니 해가면서 E스포츠도 벌써 20년 인기 끌고 있고.”
비웃음섞어 한규가 말한다.
“차라리 고교 스트리트 파이팅 전국구 짱을 먹어라. 고등학생중에 싸움 제일 잘한다는 타이틀이 더 그럴 듯 하지 않냐? 게임 캐릭터로 최고가 되는것보다.”
문기가 웃는다.
“하하, 그런가? 니가 도와준다면 못할것도 없겠지만.”
“왜이러세요. 저는 싸움같은거 안하는 착한 소년입니다.”
“미친 한큐. 작년에 너한테 맞아 부러져 엇붙은 내 4번 갈빗대가 맹렬하게 이의를 제기하는데?”
“왜 이래 치료비까지 뜯어가놓고, 새삼 이제와서…….”
갑자기 문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운동장으로 소리를 친다. 손나팔까지 만들어 고래고래―
“세상사람들! 한큐가 싸움을 안한데요!”
“뭐 해 이 미친놈아!”
한규도 따라 일어나 문기의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세상 사람들!”
“그만하라고!”
“성한규가!”
한참이나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다 슬슬 재미가 떨어졌는지 문기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튼, 나 갑자기 온라인 게임이 해보고 싶어졌다. 너 어차피 나중에 형 때문이라도 샹그릴라 시작할거 아냐? 나도 그때 같이 하자. 개발팀장 동생이니까 뭔가 떨어지는게 있을거 아냐.”
한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하게 되겠지. 알았어, 같이 하자.”
“나는 최고장비로 부탁한다.”
“헛소리. 개발자라고 해도 막 게임 데이터에 손대지는 못해. 나 지금 하는 게임도 맨바닥에서 컸어.”
“쳇, 그러냐?”
실망이라는 듯 두 팔을 목뒤로 빼며 문기가 혀차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이 형아가 많이 키워주마. 이래뵈도 무림비혈사 게임에서는 서버최고수로 통하고 있으니까.”
“형아는 무슨, 두 살이나 어린게.”
“크크크.”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린다. 하지만 둘 모두 자리에 붙은 엉덩이를 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2
방과후.
문기와 헤어진 한규는 불이 켜져있는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향기로운 카레냄새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확 퍼져나왔다.
“어? 형?”
한규가 목청높여 부르는 말에 부엌에 있던 형 한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피곤에 푹 절여저있는 얼굴이었지만 한줄기 화색이 돈다.
“왔냐?”
“웬일이야? 이렇게 이른시간에?”
“하하!”
대답을 대신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며 형은 웃었다. 한규가 다그치듯 묻는다.
“설마 샹그릴라 끝난거야?!”
“클로즈베타 일정 잡혔다.”
“오오! 정말로?”
한규는 책가방을 현관에 집어던지며 형에게 다가섰다.
“그래 임마. 6월 27일날부터 일반인에게 공개 시작이야.”
“한달쯤 남았네?”
“응. 자잘한 버그들 잡아내고, 좀 더 정리 해야 하겠지만, 샹그릴라 첫 번째 시즌 개발은 이제 끝!”
형 한상은 정말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한규도 기분이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게임으로서의 샹그릴라에는 큰 관심 없었다.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무림비혈사에 흠뻑 빠져있던 덕이다.
하지만, 세계로서의 샹그릴라에는 한상이 못지 않은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형의 일이 한고비 넘겼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들어 먹을것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점점 말라가는 형이 안스러웠으니 말이다.
“한번 접속해 볼래? 어제처럼이 아니라 정식으로 접속할수도 있어. 지금은 샹그릴라 세계 제 1계 맵 전체가 열려있고, 몬스터들의 배치도 모두 끝이 났으니까.”
한규는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품었다가 도리질을 쳤다. 아직 혜나가 접속하고 있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해파리 촉수사이로 머리손발을 넣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중에. 클로즈 베타 때 쯤에나 해볼게. 형이 한가지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이라는 단서까지 붙여서.”
한상이는 한규의 단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로얀 왕국의 국왕.”
“응?”
“샹그릴라는 그로얀 왕국과 케세린 공화국으로 양분된 세계야. 거기서 혜나는 그로얀 여왕 전하라는 엔피씨가 될거야.”
“정말?!”
한상이 달려붙는 동생을 떼어내며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곳에서 만큼은 부족한 것 없이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아야 할 것 아냐. 일국의 왕자리 정도는 시켜줘야지. 혜나 말고도 많은 엔피씨들이 전신마비로 병원에 있는 사람들로 채워질거야.”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들이구나.”
“그렇지.”
한규가 형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마디 했다.
“그래서 게임안에 AI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구나.”
혼잣말을 하는 사이 한상의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한규는 자신의 말에 빠져있느라 형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 아무튼 이번주 토요일 오후에 샹그릴라 기자간담회가 있는데, 너도 참석할래? 일반인에게도 초대권이 발송되거든. 주로 파워블로거들이 대상이지만…… 원한다면 표를 몇장 줄게.”
“뭐 됐어.”
“꽤 맛있는게 나올 모양이던데?”
흥미없다던 한규의 얼굴이 180도 바뀌었다.
“콜! 2장 줘. 문기도 샹그릴라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오케이.”
다음 날.
학교는 하복 일색이었다. 등교도중 그것을 눈치챈 한규는 할 수 없다는 듯 자켓을 벗어 가방에 걸치고는 팔을 거둬올렸다.
“뭐야, 불량학생. 오늘부터 하복이라는걸 까먹은거냐?”
문기였다. 골목길 저편에서 불량학생! 하고 소리를 치더니 성큼걸어 한규에게 다가왔다.
“그런 너는?”
자켓을 벗고 팔을 올리는 한규는 그나마 노력하는 기색이나 있지, 문기는 그냥 동복차림 그대로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기는 하복을 입지 않았다. 좌청룡 우황룡이 용트림하며 올라가 목덜미에서 으르렁거리는 문신을 훌렁 드러내고 다닐수는 없는 일이었다. 감옥 출소 기념 선물로 아버지가 새겨줬다니 참 알만한 집안이었다.
문기는 하복뿐 아니라 체육복도 입지 않았다. 그의 등짝에는 인도의 여신인듯한 반라의 여인이 칼춤을 추고 있었다. 팔에서 목덜미에 이르는 용이 아버지의 취향이라면, 등 한복판의 여신은 문기의 취향이었다.
어차피 버린몸, 이쁘게라도 만들겠다고 자진해서 하나 더 새겼다나 뭐라나.
“슬슬 덥기는 하다. 이제 6월이니…….”
문기가 손부채를 부친다. 한규는 팔을 마저 접으며 문기의 말에 대꾸했다.
“아침부터 이러니, 정말 지구 온난화는 문제라니까.”
한규는 이야기를 하다 문득 어제 일이 떠오른 듯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어이, 이번 토요일 시간 있냐?”
“응? 데이트 신청이냐?”
“개소리 치우고. 형이 어제 샹그릴라 기자간담회 표를 줬거든. 가고 싶다면 같이 가자고.”
문기는 한규의 손에 들려있는 표를 낚아챘다.
“그거 좋지. 너랑 나랑 둘이서 샹그릴라 세계를 잡는거야.”
“그게 되겠냐? MMORPG에서 캐릭터 하나의 힘이야 뻔한데.”
“애무알피? 그게 뭐야?”
“니가 말하는 온라인 게임 말야.”
“아아!”
이상혁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