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와 문기가 걷는 길은 유난히 한가했다. 학교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중 하나였지만, 그 두 사람이 걷는 공간만큼은 아무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장막이 쳐져있는 것 처럼.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야? 인터넷 신문에서는 수면을 이용한 플레이라고 하던데…….”
문기의 물음에 한규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나도 한 두 번밖에 해본적은 없어. 헬맷이랑 장갑, 장화 같은걸 끼고 있으면 최면 비슷한거에 걸려. 몸은 수면상태와 마찬가지가 되고, 뇌 활동만으로 플레이 하는거지. 그냥 꿈꾸듯 놀면 되는거야.”
“그럼 낮에는?”
“낮에도 마찬가지야. 낮잠이라 생각하면 돼. 게임을 하기위해 따로 깨어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컨셉인데, 아마 하루 종일 게임하는 놈들 분명 생길걸? 그래서 하루 최대 플레이 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얘기도 있고…….”
한규의 설명에 문기가 으음, 하고 신음을 삼켰다.
“그럼 꿈이니까 자기 마음데로 할수 있는거 아냐?”
“그 부분이 핵심기술겠지. 꿈을 게임기로 컨트롤 할수 있는거니까. 게다가 어차피 게임을 위한 데이터들은 게임회사의 서버에 저장되어 있을테고, 거기서 벗어난 행동은 할수 없을거야. 유도 수면에 유도 꿈 이라던가?”
“그래도 자기 마음데로 할 수 있는게 엄청 많겠다.”
“자유도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게임보다도 뛰어날거라 하긴 하더라.”
바로 그때, 골목에서 거뭇한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문기와 한상이 사이로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어깨에 동시에 부딪힌다. 하지만 퉁겨나간 것은 오히려 상대였다. 털썩 엉덩방아를 찢고는 두 사람을 올려다본다.
그는 여자였다. 세라복 칼라 상의에 녹색계통의 줄무늬 치마다. 한규와 문기도 잘 알고 있는 학교의 교복이었다. 두블럭쯤 큰길쪽에 있는 여자 중학교의 교복.
동그란 안경을 낀 단발머리의 그녀가 물끄러미 두 사람을 올려다 본다. 곧바로 뒤따라 양복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남자 둘이 골목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느모로 보나 이 소녀를 쫓아온 사람들이다. 짧은 소매 아래로 드러낸 팔뚝이 심상찮게 두껍다.
두 사람은 소녀를 사이에 두고 한상과 문기 정면에 섰다. 잠시 두 학생의 눈치를 살피더니 성큼성큼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양복바지의 남자가 소녀의 팔뚝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문기가 그의 팔목을 꽉 쥐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남자가 눈을 찡그리며 문기를 쏘아보았다. 꽤 험악한 눈빛이다. 그 순간 또 다른 양복바지의 남자가 자신의 동료를 제지하고 나선다.
“손 놔봐.”
무슨 일이냐며 소녀의 팔에서 일단 손을 떼자 문기도 약속이나 한 듯 그의 손목을 놓았다.
제지하고 나섰던 남자가 문기 앞에 허리를 굽힌다.
“큰어르신댁 막내도련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일번가 쪽에 있는 조그마한 흥신소 직원입니다. 도련님 앞에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아, 태창 숙부가 하신다는 거기?”
허리를 숙인채 그 남자가 대답했다.
“예.”
소녀의 팔을 잡았던 남자도 분위기에서 감을 잡았는지 함께왔던 남자뒤에 서서 허리를 수그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무리 말세라지만, 등교시간에 깍두기들이 여중생을 붙잡아 가면 좀 그렇잖아?”
“죄송합니다. 도련님이 다니시는 학교 근처인지 몰랐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잖아.”
“그냥 채무관계 때문입니다. 얘 아버지가 조금 빚이 있는데, 며칠전 잠수타버렸습니다.”
문기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상이가 여자아이를 들어 일으켰다. 안경낀 소녀는 한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그럼 애비를 찾아. 이런 어린애들이나 겁주지 말고. 그리고 빚지고 튄 놈이 딸을 잡는다고 나타날 것 같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는 문기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문기가 툭하고 말을 던진다.
“불복하냐?”
“아닙니다. 말씀하신데로 하겠습니다.”
두 남자가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다. 텅빈골목에 한상이와 문기, 소녀 세 사람만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올리고 한상과 문기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골목 저편,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떼었다.
한상과 문기는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쫓다가 다시 학교로 향했다. 한참동안 말없이 걷다가 문기가 입을 연다.
“왜 방금전 일에 대해서 말이 없냐?”
“그러는 너는?”
“그야 네놈이 뭐라도 물어볼줄 알았지.”
“나도 니가 먼저 말할줄 알았지.”
바보같은 대화에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아까 그 애 있잖아.”
문기가 말문을 텄다.
“왜? 한눈에 반했냐?”
한상의 묻는 말에 문기가 혀를 찬다.
“헛소리 말고. 보통 그런 상황이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하지 않냐?”
“안해줘서 섭섭했냐?”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맺힌게 많은 애들은 솔직하지 못한 법이란다.”
한상이가 노인네 같은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두 사람은 그리 오래지 않아 그녀를 다시 만나게된다.
3
토요일 오후.
수도권의 교통난은 벌써 수십년째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자가용에 붙는 환경세는 나날이 오르는데도 그 숫자는 줄질 않는다.
한상이와 문기가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선잠으로 때우는 동안 송도 국제도시는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었다.
송도 국제도시의 한 회의실에서 열리는 샹그릴라 기자 간담회는 IT업계 최대의 이슈였다. 각 외신 및 공중파 방송 관계자는 물론 IT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각 신문, 케이블 TV 방송사의 기사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게다가 100명의 파워 블로거들과 200명의 헤비 게이머, 프로게이머들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1천석 가까운 회의장은 만석이었다.
그밖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홍보부스가 회의장 밖 공터에 마련된 덕분에 2만명 이상의 인파가 집결하는 중이었다. 행사 도우미들이 이미 언론에 발표된 몇몇 게임내 엔피씨 복장으로 전단지를 돌리고, 벌써부터 캐릭터 피규어 따위를 판매하는 부스도 있었다.
게임업계가 불황이니 호황이니 하는 소리가 몇번 오갔지만 샹그릴라에 대한 관심만큼은 뜨겁기가 그지 없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한상이와 문기도 그 열기에는 혀를 내둘렀다.
회의장 입구에는 표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한상이와 문기는 표를 건내주고 대신 명찰과 팜플렛을 받았다. 샹그릴라의 타이틀로고와 여검사, 18세기즘의 신사복 차림 남자의 일러스트가 좌우로 그려져 있는 포스터도 있었다.
문기는 일러스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꽤 이쁘네.”
“그야 그림이니까.”
“할 말 없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일렬로 늘어선 극장형의 의자가 장내를 가득 채우고, 가장 앞열에는 TV용의 카메라가 십여대가량 늘어서 있었다. 양복차림의 남자들도 앞쪽에 있었는데 노트북을 열고 수첩을 들고있는 것으로 보아 기자단인 듯 했다.
그 뒤쪽으로 남녀노소의 자유분방한 복장의 사람들이 있었고, 한쪽은 프로게이머들로 이뤄진 무리가 있었다.
한상이와 문기의 자리는 헤비게이머들의 좌석인 듯 했다.
한편, 회의장 무대단상에는 개발자들을 위한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다. 사회자의 좌석인 듯 보이는 단상도 무대의 구석지에 있었다.
아직 회의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어 샹그릴라의 홍보용 동영상이 시연되는 중이었다. 샹그릴라 세계의 지도가 떠오르고 몇가지 이미지 일러스트레이션에 이어 정밀한 3D로 구현된 세계 각처의 지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와, 영화같네!”
이런쪽에 익숙한 한상이와는 달리 문기는 접하는 모든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단단한 몸에 날카로운 눈빛, 반팔 티셔츠 아래로 용의 꼬리가 살짝 보이는 녀석이 게임 동영상에 놀라는 모습을 보자니 한상이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저런 곳을 돌아다닐수 있다는거냐? 게임을 하면?”
“그렇지. 그것도 모니터를 통해 보는게 아니라 진짜로 경험하는것처럼 즐길수 있어.”
“너네 형, 그렇게 안봤는데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어떻게 저런걸 만들 수 있지?”
한상이가 미소를 띄었다.
“그야 뭐, 저쪽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천재로 통하고 있으니까. 근데 다른 사람이 보면 너네 형도 만만치 않아.”
문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석대기 하면 일단 뒷골목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 평생 싸우기도 전에 졌다는 느낌이 든 사람도 너희 형 정도야.”
한상은 작년에 문기의 형과 만났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형 대기는 문기보다도 작아 170을 조금 넘기는 키였다. 덩치가 그리 큰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상이는 대기를 보는 순간 위압감에 주눅이 들었다.
“형은 괴물이야 그냥.”
문기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넘기며 다시 동영상으로 눈을 돌렸다. 지형소개에 이어 몬스터들의 모습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들과 싸우는 캐릭터의 모습도 흘끗흘끗 나왔다. 조금전 포스터 일러스트에 나왔던 여검사가 한참동안 소머리의 괴물과 공방을 주고받는다. 문기는 열중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회의장 기자석쪽의 불이 꺼지고, 무대에 불이 켜졌다. 밝혀진 빛에 동영상이 흐릿해지고, 사회자가 먼저 무대에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의 게임 팬 여러분!”
관람석에서 일제히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오늘 샹그릴라의 제작발표 및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주신 많은 기자여러분, 유저 여러분들에게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사회를 맡는 저는 개그맨 박유철입니다!”
또 한번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성급한 카메라맨들의 플래쉬가 정면을 어지럽혔다.
“모두들 새로운 형식의 게임 샹그릴라에 거는 기대가 크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오랜 시간 기다리셨습니다! JK소프트웨어 사의 신작 게임, 샹그릴라의 제작팀입니다!”
수백명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천둥소리같이 박수소리가 장내에 웅웅 울리고, 다섯명의 남녀가 무대위로 올라왔다. 무대 끄트머리 나란히 선 그들의 한 가운데에는 한규의 형 한상이 있었다.
한규는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칼로 도마나 두들기던 형이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플레쉬 세례를 받고 있다. 어딘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럼 개발자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죠. 3년전 무림비혈사라는 MMORPG게임을 성공리에 개발해 지금의 JK소프트를 만들었다고 이야기되어지고 있는 천재 프로그래머! 미국 모 사의 천문학적인 금액의 스카웃 제의를 물리치고 샹그릴라 개발에 몰두, 열악한 국내 제작환경을 이겨내고 결국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성, 한, 상!”
한상이 어색하게 손을 들어올리고, 사람들의 박수가 다시한번 휘몰아쳤다. 카메라 플래쉬는 멈출기색이 없다. 한상은 들었던 손을 한참이나 있다 간신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뒤이어 소개해 드립니다. 프로그램 팀의 팀장입니다…….”
사회자는 계속해 프로그램팀장, 홍보팀장, 기획팀장, 의학자문팀장을 소개했다. 프로그램팀장과 기획팀장, 홍보팀장은 JK소프트의 직원이었고, 의학자문팀장은 서울 모 대학병원의 뇌의학과 교수였다.
긴 소개의 시간이 끝난 후, 개발자들이 착석하고, 수순에 따라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중부신문사 문화부 김대현입니다. 먼저 게임 개발을 성공리에 마치신것에 축하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기자의 말에 한상이 마이크에 대고 대답을 한다.
“감사합니다.”
“샹그릴라는 키보드와 마우스, 모니터라는 수십년동안 이어져 온 전통적인 컴퓨터 입출력 시스템을 거부하고 최면 가수면이라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방식으로 게임을 설개하셨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저명하신 뇌의학 교수님의 팀까지 자문으로 초빙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말 안전합니까?”
이상혁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