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의 입구로 나온 나는 문득 늑대를 잡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리 잡을때마다 체력이 이렇게 줄어서야 사냥이 짜증날 듯 싶었다.
문득, 샹그릴라가 현실과 상당히 비슷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위력있는 기술들이 이곳에서도 어느정도 위력을 나타내지 않을까?
물론 근력이나 나머지 신체 능력은 수치료 표시되어 정해져있다. 하지만 그런 신체기술을 극대화 하는 것이 바로 무술들이다.
“야, 문블레이드.”
“어? 왜?”
“너 나한테 한번 맞아봐라. 어차피 여기 치료약도 있고 하니까.”
문블레이드는 내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야 그게?”
“기술 들어가나 보게. 그냥 때리는거랑 기술로 패는거랑 데미지가 같은가 한번 시험해 볼려고.”
“권법으로 때려보게?”
“어, 맞아.”
문블레이드도 게임속 세상에 꽤 적응이 되었는지 내 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플 것 같은데…….”
“별로 안아파. 아까 늑대에게 긁혀봤잖아. 그냥 살짝 꼬집히는 정도 느낌밖에 안들어.”
“알았어. 한번 해봐.”
문블레이드는 내 말에 두 팔을 벌려 가슴을 들이댔다. 나는 가장 자신있는 권법인 형의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발을 앞으로 살짝빼는 사륙보를 취한 후, 양 손바닥을 아래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문블레이드의 앞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돌아서라, 등짝을 패게.”
“어? 왜?”
“여자를 때리는 것 같아서 좀…….”
“하핫, 이 누님의 모습에 반했구나.”
“미칠려면 좀 곱게 미쳐라 응? 아무튼 돌아서 봐.”
문블레이드는 내 말에 순순히 몸을 돌렸다.
“능력치 창 열어봐.”
“응? 어, 했어.”
“피 얼마줄어드나 봐.”
문블레이드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앞으로 뻗었던 왼손을 단전으로 당기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동시에 왼발을 앞으로 내지르고 오른발을 당겨 붙였다. 근보다. 온몸의 힘이 어깨로, 팔꿈치 팔목으로 전달되며 주먹 끝에 모인다. 붕권이다.
비록 게임안의 세계였지만 근육 하나하나의 조임까지 제대로 느껴졌다.
퍼억―
“아얏!”
문블레이드가 가녈픈 비명을 지른다.
“뭐가 꼬집는다는거야? 아프잖아?!”
“쏘, 쏘리. 그래서 피 얼마나 날아갔어?”
등짝으로 손을 꺾어 쓰다듬으며 문블레이드가 나를 흘겨본다.
“42정도?”
“42라…… 가서 성수좀 등에 뿌리고 와. 다시 피 꽉 채우고 실험하자.”
“우씨, 이번엔 내가 할꺼야.”
“아, 그래. 나 지금 만피니까…… 기술쓰지 말고 그냥 한 대 때려 봐.”
하지만 문블레이드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다가왔다. 양 손을 턱밑에 붙였다가 번개같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는다. 더 볼것도 없다. 스트레이트다.
빡―
눈앞에 별이 번쩍이며 턱이 훅 돌아간다. 머리까지 어질, 뭔가 마음속에서 발끈한다.
“나 이 개색, 살살치라니까!”
그대로 손바닥을 뻗어 문블레이드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문블레이드가 컥 소리를 내며 쌍코피를 쏟는다.
“실험이라며!”
문블레이드가 빽 소리를 지르더니 잽을 날린다. 재빠르게 피하며 이번에는 오른팔을 옆으로 후려쳤다. 벽권에 이어 횡권, 문블레이드의 관자놀이에 주먹이 꽂힌다.
그 순간, 문블레이드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대로 아리따운 포즈를 취하며 바닥에 엎드린다.
“어, 어?”
육체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나고, 처음 게임에 접속했던 빛덩어리가 문블레이드의 몸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죽었냐?”
신전의 기사들이 다가와 바닥에 쓰러진 문블레이드를 둘러쌌다. 그들이 무어라 기도를 올리니 번쩍이는 금빛이 문블레이드의 몸을 감쌌다. 몸밖을 떠돌던 파란 문블레이드의 영혼이 다시 육체로 스며든다.
신전기사중 하나가 내 앞에 섰다.
“동료를 해치다니 제정신이십니까?!”
신전기사의 홧소리에 할 말이 없다.
“그게 아니고…….”
“처음이니 이번만큼은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일이 재차 벌어지게 될 경우 치안대에 신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정신을 차린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문기야 괜찮냐?”
“문블레이드라니까. 방금 그게 죽은거냐?”
“응, 설정상 그냥 의식을 잃은 것으로 처리하는 것 같긴 한데…… 그나저나 기분 어떠냐?”
문블레이드가 고개를 젓는다.
“더러워. 죽고나면 온몸이 저릿저릿해.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튼 다시 경험하기 싫다.”
난리를 피우는 통에 우리 모두 조금전 들끓었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나는 다시 시험으로 돌아가 내 스태이터스 창을 열어보았다. 체력이 25정도 깎여있었다. 문블레이드에게 얻어맞은 스트레이트의 데미지다.
총 체력이 98중 1/4정도가 날아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정도 체력이 찼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붕권 한방의 위력이 스트레이트보다는 위쪽이다. 즉, 기술에 따라 데미지가 틀리다는 말이다.
그점까지 알아낸 나는 늑대와의 싸움에 어느정도 자신이 붙었다.
“그럼 피 다시 채우고 늑대 잡으러 가자.”
성수를 퍼 얼굴에 끼얹은 후, 문블레이드와 함께 다시 동문쪽으로 향했다. 숲에 들어선 문기는 도중 나뭇가지를 하나꺾에 손에 들었다.
“뭐냐?”
“응? 아, 나 검사할거거든.”
문블레이드는 손에 든 검을 훙소리가 나도록 휘둘렀다. 현실에서도 문기는 검도 3단이다. 그 위력이 게임안에서 얼마나 발휘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가 볼까?”
“오케이!”
우리 둘은 동쪽 숲의 늑대를 잡기 위해 숲안으로 힘찬 걸음을 딛었다.
제4장 오픈 베타 테스트
1
“아 형, 제발 좀.”
한규의 부탁에 한상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무리 너라해도 안돼.”
“왜 안되냐고.”
“그야 혜나 부모님과의 약속이니까. 물론 혜나 부모님도 네가 혜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을거라는걸 알고 있지만, 계약은 계약이야.”
단호한 형의 말에 한규는 짜증을 냈다.
“뭐야, 형은 벌써 혜나 누나랑 만나봤을거 아냐.”
“비밀이야.”
“뭔 비밀은 비밀? 아 진짜 치사하다. 그나저나 오픈베타는 언제야? 이렇게 된 이상 정말로 캐릭터 제대로 키워서 공작이고 재상이고 되어 줄테니까!”
“하하, 그 실력으로 언제? 너 아직도 6렙이라며? 클로즈 베타 시작한지 20일이 지났는데.”
“그, 그야…….”
어떻게 하다보니 3번가 상점거리와 인연이 얽히고 섥혔다. 퀘스트……랄까 상점거리 사람들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 레벨업에 도움도 되지 않는 퀘스트만 계속 하고 있었다. 장비도, 늑대가죽에서 곰가죽으로 업그레이드 된 정도다.
서버 최고수가 27렙, 클로즈 베타 테스트 최고렙으로 설정된 30렙까지 코앞인 지금까지 6레벨에 머물러 있는 이유였다.
“그러길래 누가 그렇게 리얼하게 만들래? 불쌍해서 버릴수가 없잖아, 3번가 상인들…….”
최고의 돈벌이 코스인 대형마트 퀘스트는 이제 그곳과 사이가 나빠질데로 나빠져 받을수도 없었다. 다른귀족들과도 그리 사이가 좋은편이 아니었다.
“하하, 그치만 그게 꼭 나쁜건 아니야. 평민들과 사이가 좋아지면 나중에 도움받을일도 있을거야. 게다가 돈이 적게벌리긴 해도 돈 쓸 일이 거의 없잖아. 전형적인 서민이지. 하하하.”
한상이 말로 한규를 자극한다.
“아, 몰라. 나 오픈베타 시작하면 캐릭터 지우고 다시키울거야. 어차피 능력치는 초기화 된다며? 나도 그냥 대형마트에서 키워야지.”
한규의 말에 한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 정말 그쪽도 좋다니까. 시작이 틀려서 그렇지, 나중에 고렙이 되면 너처럼 키운 애들이 훨씬 유리해 져. 아차, 지금 내가 한 말은 비밀이다.”
“우씨, 비밀도 많다.”
“아무튼 학교나 빨랑 가거라. 너 요새 너무 게임에 빠져산다.”
“내비 둬. 샹그릴라야 어차피 자면서 하는 게임이잖아. 형이 내내 자랑한 것 아냐.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게임! 하면서.”
“그야 그렇지만…….”
벌써 게임기 판매 대수가 100만을 넘어섰다. 게임을 할수 없는데도 말이다. 회사는 천문학적인 매출에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게임기의 생산공장은 밤낮없이 돌아가고,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7개 나라와 계약을 체결했다.
한상이도 지금 밤낮 구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자 간담회를 계기로 조금 한가해질까 했더니 곧바로 샹그릴라 제 2계, 즉 2시즌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상이의 급료가 300퍼센트 인상되었다는 점 정도다. 정작 자신은 쓸데가 없었지만, 이제 곧 이 낡은 임대아파트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 학교갔다올게.”
“그래, 학교생활도 충실히 해. 아무리 특기생이라 해도, 공부에서 완전히 손 놓으면 안된다.”
“알았어. 그래도 중간은 가.”
한규는 가방을 어깨에 걸며 현관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고, 아파트의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소리가 잦아지며, 한상이는 현관 문을 걸어 잠궜다.
“한규야…… 혜나는…….”
알 수 없는 한마디를 중얼거리고는 머리를 턴다.
이상혁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