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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18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그럼 오늘도 상점거리를 위해 퀘스트를 해볼까?”

검을 들고 경쾌하게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니 웃음이 나왔다.

“무슨 나와바리 관리하는 조폭같은 멘트다?”

“캭, 그런거 아냐.”

“누가 현실에서도 협객의 아들 아니랄까봐.”

말을 하며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롬로스 본성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깃발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이다.

혜나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건지…….

고개를 흔들며 문블레이드와 함께 나는 상점거리 안으로 향했다.

3

“팀장님, 저녁드시러 가셔야죠?”

늘어진 티셔츠에 펑퍼짐한 칠부바지.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줄 모습은 아니지만, 유채림씨는 천연덕스럽게도 그런 꼴을 하고 있다. 헝크러진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삼선 또렷한 슬리퍼는 반쯤 헤져있었다.

입사 첫해에는 그녀도 청바지보다 편한 바지는 입지 않았다. 구두굽도 최소 3센티미터는 되었다.

하지만 늘 날밤새는 나날이 한해, 두해 흘러 벌써 여섯해가 되었고, 지금은 인사이동 없는 ‘성한상’팀의 팀원으로서 완전히 동화되어있었다.

“또 거기야?”

한상이보다 4살 많은 프로그램 파트 기술자 이제동이 칸막이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유채림에게 매년 두 번씩 모두 열 두 번 프로포즈 했다 차인 남자로 더 유명했다. 올해도 상반기 행사(?)는 이미 치루었고, 하반기 작업을 준비중이라나 뭐라나.

“네, 거기에요.”

“가끔 보면 우리 팀장님은 매드사이언티스트 기질이 있다니까? 머리카락 한올로 가상공간에 캐릭터를 만들겠다니…….”

제동의 말에 채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팀장님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아니에요? 처음 샹그릴라 프로젝트를 기안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잖아요.”

“무슨소리. 팀장님과는 8년째 일하고 있어. 나는 반대하지 않았어.”

“전날 밤샘 코딩작업하고 회의시간에 코골았다죠?”

“그게 바로 전적인 신뢰 아닌가? 하하.”

“헛소리 그만하고, 나 팀장님 방에 갔다올게요. 또 방음문 닫아놓고 작업중인가봐요. 날도 더운데 그 방에서…….”

채림은 한상의 방이 있는 복도로 향했다. 어지럽게 놓여있는 선반위로 반쯤 열린 컴퓨터니 기판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서류뭉치 같은건 이제 이면지인지 정식문서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이번에 샹그릴라 팀에 신입을 다섯명 더 보충해준다한다. 아마 오자마자 청소 사역부터 해야 할테다.

아니나다를까, 팀장 성한상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무리 에어콘이 돌아간다고 해도, 그의 방에는 각종 컴퓨터들이 스무대는 놓여있다. 빼꼼 문을 여니 후끈한 바람이 주르륵 새어나온다. 채림은 눈쌀을 찌푸리며 문틈에 대고 조그맣게 한상을 불렀다.

“팀장님. 저녁 뭐드실래요?”

“어, 음?”

졸고 있었는지, 화들짝 놀라는 목소리다.

어느정도 뜨거운 바람이 빠져나오자 채림이 문을 활짝 열었다. 16진수의 문자들로 가득찬 모니터 앞에서 얼굴을 부비고 있는 한상의 모습이 보였다.

“좀 쉬면서 해요. 그리고 문은 열어놓구요. 에어콘도 부실한 방안에서 이러다가 질식사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아, 아, 채림씨.”

“뭐가 아, 아에요? 하여간…… 이러니까 내가 아직 시집을 못가는 것 아녜요?”

채림은 투덜대며 바닥에 떨어진 한상의 반팔 남방셔츠를 주워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제가 한주라도 여기를 비우면 팀장님은 굶어죽거나 질식해 죽거나 더러워 죽을 거에요.”

“하하, 결국 죽는건가?”

“안그럴 것 같아요?”

한상은 채림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에 과장은 섞였지만 완전 거짓말이라고 부인하기도 힘들었다. 말이 좋아 기획팀이지 채림은 샹그릴라 개발팀의 ‘엄마’였다.

“그나저나 뭐 그리 연구할게 있다고, 요즘들어 점점 더 방구석폐인이 되가는 느낌이에요, 팀장님은.”

“아아, 그냥…….”

채림은 한상의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복잡한 프로그램 언어로 가득찬 다른 모니터와는 달리 하나만은 간단한 채팅창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짧막한 기계음과 함께 채팅창에 글자가 적힌다.

―누구?

한상이 모니터로 눈을 돌리곤 답을 적었다.

―유채림씨.

―알아.

한상의 대화상대가 답하고 채팅창 위로 사진을 띄웠다. 다름아닌 채림의 사진이었다. 하지만 정식 사진은 아니고 CCTV의 캡쳐화면이었다. 찍은 날짜와 시간 따위가 화면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나 저녁먹고 올게.

한상이 채팅창에 이런 글자가 적히자 상대가 머뭇거린다.

―…… 어떻게 말해야 해?

―잘먹고 와, 그러면 돼.

―응, 잘 먹고 와.

짧막한 그들의 대화를 보며 채림은 묘한인상을 받았다. 대화 상대가 흡사 두세살의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상이 두 살짜리 어린아이와 채팅을 할 이유가 없다.

“뭐에요 저건?”

채림이 묻는 말에 한상이 또박또박 답한다.

“내 팬. 팬레터를 보내와서 알게됐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한국말에 익숙치 않아.”

채림은 한상의 대답이 어딘가 준비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캐묻기도 뭣했다.

“아무튼, 그래서 저녁은 뭘 드실거냐구요? 시켜먹을까요? 아님 간만에 외식할까요?”

한상이 채림의 얼굴을 쳐다본다. 채림은 왜?라는 물음표를 띄우고 한상의 눈을 맞응시했다. 그렇게 서로를 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채림은 조금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요?”

“아아, 아니. 머리상태를 보니 3일째 집에 못들어간 모양이구나 싶어서.”

채림이 얼굴을 붉힌다.

“떡져서 미안하네요.”

“아냐아냐, 내가 더 미안하지. 좋아 회식하러 가자. 전에 사장님이 주신 회식비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니까. 등심이나 구워먹으러 갈까?”

“오, 찬성!”

채림은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조금만 더 고생들 해. 내가 깜짝 놀랄걸 보여줄테니까.”

한상의 은은한 미소에 채림은 귓볼이 빨개졌다. 목덜미에 소름까지 돋았다. 그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지금까지 딱 한번 보았다. 꿈 속 게임세계에 처음으로 접속 성공을 했던 그 날 아침의 웃음이다.

이 사람은 또 얼마나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낸걸까?

채림은 가슴이 가볍게 뛰는 것을 감추려 한상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등심 2인분이에요.”

“채끝이고 치맛살이고 먹고싶은거 다 먹어.”

한상에게 보고를 마친 후 채림은 회식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막 방을 벗어나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조금전 한상의 모니터에서 본 채팅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여자의 육감이라 해도 좋았고, 한상과 오랜 세월 일을 하며 생긴 느낌이라도 좋았다. 무언가 간질거리는 것이 목 끝에 걸려 계속 신경이 쓰였다.

채림은 고개를 털었다. 한상의 비밀주의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때가 되면 답이 나올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팀원들은 그 천재의 뒤를 조용히 받쳐주면 된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채림이 모두에게 외친다.

“저녁은 소고기 회식이랍니다!”

모두의 비명섞인 환호성에 채림은 조금전 느꼈던 껄끄러운 감정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왁자지껄, 샹그릴라팀의 회식으로 한우구이집은 간만에 한층을 통채로 채울 수 있었다. 처음 열명 가량으로 출발한 한상이의 프로젝트 팀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 이제 거의 40명에 육박했다. 이제 곧 유료화로 넘어가고 나면 운영진까지 합쳐 JK소프트의 직원 거의 대부분이 한상의 지휘를 받게 될 것이다.

영업파트 직원이 한상의 곁에 붙어 소주를 따른다.

“그 얘기 아십니까?”

술병을 받아 술을 되돌려주며 한상이 되물었다.

“응? 뭐 말인가?”

“슬슬 샹그릴라 콘솔 200만대 돌파입니다.”

“며칠전에 100만대 넘었다더니?”

“공장 세곳을 추가로 돌리고 있잖아요. 생산공장에서는 아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답니다.”

또 다른 직원 하나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다.

“콘솔 가격을 저가로 책정한게 주효했어요. 그 정도 시스템에 40만원이라니, 완전히 공짜나 다름없다고요. 요즘 가정용 게임기도 그정도 가격은 하는데…….”

한상이 소주를 반배하며 답했다.

“그야 처음부터 그럴계획 아니었나? 어디까지나 우리는 정액요금으로 이익을 남길 생각이었으니까. 게임기 자체의 가격이 올라가 게임을 즐길수 있는 인원이 줄어들면 세계의 활성화가 그만큼 늦어지게 되잖나.”

“예, 그만한 숫자의 사람들이 즐겨야 매력이 나올 게임이니까요.”

“최종목표는 한국서버에서 천만이네. 그때까지는 영업팀들도 고생좀 해 줘.”

“여부가 있습니까? 그나저나 서버는 괜찮은겁니까? 지금추세대로라면 오픈베타 시작하자마자 동접자 100만 정도는 예상해 두셔야 할 것 같은데요? 원활하게 돌리려면 200만 정도는 확보해둬야…….”

“그걸 위한 네트워크 팀 아닌가? MMSRD같은 신기술도 도입했고, 게다가 샹그릴라는 사람의 뇌를 서브컴퓨터로 쓴다고 생각하면 될걸세. 의외로 데이터의 송수신량은 그리 많지 않아. 보통의 다른 온라인게임들과 비교해서도 차이가 미미한 정도니까. 현재 확보한 회선만으로도 그 정도 선은 커버가 가능하네.”

“여기와서까지 일 얘기에용?”

스물 다섯, 대학졸업후 첫 직장으로 JK소프트를 택한 샹그릴라 팀의 최고미녀 구미영이 한상이 옆자리에 불쑥 끼어들며 술잔을 내민다.

“팀장니임! 저도 한잔 따라주세요.”

콧소리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영업팀 직원들의 표정에 화색이 돈다. 한상이 미영의 술잔을 그득채워준다.

“또 너무 취하지 말아. 미영씨는 다 좋은데 주사좀 있으니까.”

“네넷, 주의하겠습니다.”

왼손으로 경례를 한다. 하지만 오른손은 벌써 잊은 모양이다. 소주 한잔을 탁하고 입에 털어넣고는 한번에 꿀꺽 삼킨다.

“그런데 팀장님! 이건 여자의 감인데…… 요새 우리 서버 누가 엿보는거 같은데 혹시 아세요?”

“무슨 말이야? 국내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방어벽을 구축한 샹그릴라 서버인데.”

한상의 말에 미영이가 고개를 젓는다.

“증거는 없어요. 그러니까 감이라는거에요. 자꾸 누가 쳐다보는 기분이라…….”

그때, 미영과 같은 프로그램 팀의 제동이 말한다.

“아, 그거 말이야? 동철씨구만.”

“네? 동철씨요?”

미영이 갸웃거리고, 주위의 동료 몇이 고개를 외면했다. 고개돌린 직원들의 얼굴은 웃음을 참으려는 기가 역력했다.

“아, 초기에 있던 친구인데, 과로사했어. 미영씨 입사하기 2년쯤 전 일인데 신문 못봤나?”

“에이, 뭐야. 놀리는거죠?”

“놀리기는 뭐를. 샹그릴라 개발 사무실에서는 유명한 얘긴데. 너두 알지?”

한 직원에게 손가락질을 하니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동철이 형, 말은 험했지만 좋은사람이었죠.”

“제동 선배 미워!”

미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들이 모인 쪽으로 옮겨간다. 자리에서 웃음이 터지고 한상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제동이 한상이 곁으로 바짝 다가앉아 묻는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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