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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24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오동나무였냐?!

새로 알게된 사실은 일단 접어두고 그 위쪽 기록을 살폈다. 그런데, 뭔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한큐 님이 스킬 ‘질뢰답무영’을 사용하였습니다. 15초간 이동 속도가 약간 증가합니다.

―스킬발동 ‘내공’이 부족하여 체력에 손상을 입었습니다. 체력이 5퍼센트 감소했습니다.

잠깐잠깐. 웬 질뢰답무영? 그건 무림비혈사에 나오는 기술이름이다.

한참이나 전투 기록을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본다 해도 답이 나올리 없었다.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스킬 탭을 눌렀다.

“말도 안돼!”

삼라일규(森羅一?), 질뢰답무영(疾雷踏無影), 청구연환삼식(靑丘連環三式)에 구규일극(九竅一極)까지. 비록 스킬 경험치는 전부 0이었지만 낯익은 이름 10개가 스킬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선을 먼저 구규일극으로 가져가 보았다. 어떤 설명이 떠오를지 궁금해서였다.

가장 윗줄에 ―게이머 오리지날 스킬―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아래 설명칸은 비어있다. 빈 칸에 눈을 가져가자 커서가 껌뻑거린다. 내용을 채워달라는 제스춰였다.

그 아래 스킬의 능력치가 써있었다.

―스킬 레벨에 따라 캐릭터의 최대 카르마 치가 증가하게 된다.

―스킬 1 최대 카르마 증가치 +15%

이, 이게…….

카르마는 샹그릴라 안에서 격투가나 검사 같은 신체능력쪽 캐릭터가 기술을 쓸 때 소모된다는 일종의 내공 개념 같은 거였다. 마법사 역시 카르마를 소모해 마법을 사용했다.

늑대의 공격을 피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무림비혈사의 ‘전부한큐’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누군가가 샹그릴라의 내 캐릭터로 옮겨놓은 것이다. 내가 한달간 접속하지 않은 사이에.

나는 가장먼저 형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형이라면 이런짓은 하지 않는다. 제작자로서 ‘공정함’을 늘 강조하던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장난으로 해 놓았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갑자기 조금전 엘베로스 라는 꼬마가 생각났다. 그 아이가 분명 ‘전부한큐’라는 게임속 닉네임을 언급했었다. 옮기느니 어쩌느니 하는 이상한 말도 했던 기억이 났다.

갑자기 엘베로사 라는 소녀의 정체에 의심의 불이 당겨졌다. 정말 어린아이인가? 혹시 해커라던가…….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서는 대답해 줄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질뢰답무영을 사용했음에도 GM으로부터 아무런 제제도 없는 것으로 보아 정식 능력으로서 인정까지 받은 모양이다. 스킬의 설명까지 이 세계에 맞추어져 있지 않은가?

생각을 멈추고, 삼라일규의 스킬을 활성화 시켰다. 만약 무림비혈사에서 있던 능력과 같다면 비록 1성 공력의 삼라일규라 할지라도 빠른속도로 체력과 내공, 아니지 카르마를 채워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발동을 시키는거지?”

샹그릴라의 모든 기술은 클릭한번으로 나가는 다른 게임과는 틀렸다.

아까 거벨룽과 함께 나무인형을 때렸을 때 처럼 얼마간의 조건에 충족되었을 때 ‘스킬화’작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매뉴얼에 의하면, 비슷한 행동을 하며 그 스킬을 떠올리면 흡사 궤도를 따라가듯 몸이 움직인다고 한다. 힘을 넣지 않아도 위력이 비슷하게 된다는게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문제는 이 스킬들의 발동 동작 같은 것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야 당연한 것이 내가 만든 스킬이 아니니까.

삼라일규를 포기하고, 나는 구규일극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구규일극이 무림비혈사에서 어떤 기술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구규라는 것은, 9가 상징하듯 모든 구멍이라는 뜻이다. 전신에 있는 콧구멍, 입구멍 같은 구멍은 물론이고 피부에까지 있는 모든 구멍으로 세상의 기를 흡수하는 내공심법이었다.

물론 그런게 있을리 없다. 게임에서 적당히 때려맞춘 설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샹그릴라도 게임 세계였다.

내공…….

나에게 우슈를 가르쳐준 장사부님은 내공이니 기 같은거에 딱 한마디 하셨다. 돈벌이용 체조. 해서 몸에 나쁠건 없지만, 장풍같은거는 안나간다는 말이다.

그런주제에 사부님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역근경(易筋經)’이었다. 만날 무협지에 소림의 절기로 나와서 내공심법 TOP3 자리는 맡아놓고 시작한다는 그거다.

전신송개(全身?開), 의수단전(意守丹田).

온 몸의 힘을 빼고, 의식을 단전에 집중한다. 내공을 익히는 그 첫 번째 단계다.

몸에 힘을 빼며 나는 샹그릴라라는 게임의 리얼함에 다시한번 놀랐다. 몸 밖의 모습은 물론이고 몸 안의 느낌까지 현실과 똑같았다. 온몸의 근육을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펴는것도, 단전에 의식을 모으는 것도, 흡사 현실에서 수련을 쌓을때랑 완전히 똑같았다.

첫 번째 행법(行法), 위타헌저(韋馱獻杵). 흰두교의 신이라는 위타천(韋陀天)이 절구공이를 바친다는 뜻의 동작이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온몸의 힘을 더더욱 뺐다. 그리고, 천지의 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기분으로 동작을 취했다.

사실 별 기대 않고 한 동작이었다. 어쨌거나 내공심법은 기술에 있고, 기는 모아야겠고, 알고 있는 기체조라고는 역근경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지독하리만치 묘사한 샹그릴라에서 현실과 다른점이 딱 하나 있었으니…….

여기엔 정말로 ‘기’가 있었다.

반개(半開)한 눈으로 빛알갱이가 보였다. 처음에는 햇빛에 반사된 먼짓가루 같이 떠돌더니 이제는 제법 또렷히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빛의 알갱이들이 시야를 가릴정도로 주위를 가득채웠다.

기의 알갱이가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억지로 구규일구를 흉내내보았다. 어디까지나 이미지한 것 뿐이다. 온 몸에 뚫린 땀구멍을 통해 기를 받아들이는 흉내다.

그런데 정말로 아주 적은 양이기는 했지만 그 빛의 알갱이들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니 재미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에는 그 빛의 알갱이들을 단전으로 보낼 차례였다. 몸안에 흡사 커다란 강줄기가 있다는 듯 상상을 했다. 하지만 아직 흐름이 원할하지는 않았다. 그 빛의 알갱이 하나하나가 찔끔찔끔 움직이다가 이내 사그러들었다. 수천만은 될듯한 빛의 알갱이들중 단전까지 닿은 것은 하나나 둘이 될까 말까였다.

위타헌저의 동작들이 끝이 나고, 적성환두(摘星換斗)로 옮겨갔다. 그러다 문득 게임안에서 우스깡스러운 기체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차라리 뒷산 약수터에서 이짓을 하면, 아 태극권하나보다 하고 넘어갈텐데…… 인기척 없는 엘프의 숲에서 역근경의 한쪽팔을 올렸다 내렸다, 앞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오무리는 짓을 하고 있다니…….

집중이 깨어지고, 희미했던 눈앞이 맑아지며 빛알갱이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런이런…….”

나는 머리를 흔들며 곧바로 전투로그를 확인해 보았다. 씩 미소를 띄웠다.

―한큐 님이 스킬 ‘구규일극’을 시전하셨습니다.

―‘구규일극’ 스킬의 경험치가 1 증가하였습니다.

생각했던데로다.

누가 내 몸에 이런 스킬들을 옮겨 놓은건지, 이 기술이 얼마나 쓸모 있을지 전혀 아는바는 없었다.

하지만, 무협 게임의 세계관이 훨씬 더 좋은 나로서는 오히려 좋은 기회다. 이것들뿐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 내게 될 기술들도 전부 무협지의 느낌으로 할 생각이 들었다.

샹그릴라 세계에 떨어진 무협 고수.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형이 저렇게 된 지금 재미를 말한다는게 사치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규는 애써 샹그릴라에 있는 것이 형과 함께 있는 것이라 자위하며 우울한 생각들을 지우려 애썼다.

제6장 호접지몽(胡蝶之夢)

1

“어? 정말로 게임 다시 시작했어?”

문기의 물음에 한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우, 잘생각했네. 그런데 설마 너 3번가 상점거리를 버린건 아니겠지? 꽃집 엘리제가 가끔 니 안부를 묻는데, 참 마음아프더라.”

체육복 차림을 한 한규와 교복을 입고있는 문기가 운동장 한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반이 틀렸지만 오늘은 합동체육이 있는 날이었다. 남, 녀 학생들 모두 반대항 구기종목들을 하기로 되어있었지만, 한규도, 문기도 학교수업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한규는 비록 체육특기생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슈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올랐던 전적 때문이었다. 구기종목 같은 것은 한규의 관심 밖이었다.

체육복마저 입지 않은 문기야 더 말할필요도 없었다.

보다못한 체육선생이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야, 너희들!”

한규와 문기가 눈을 돌려 그녀를 본다. 24세, 한가희. 아시안게임 마루운동 은메달리스트 가 그녀의 프로필이었다. 서안 고등학교 체육교사이자 학교 체조부의 감독이기도 했다.

“가희씨다.”

문기의 말에 한가희 선생이 눈을 치켜뜬다.

“선생님이라그래.”

한규가 웃으며 말한다.

“가희 누나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너, 한규 너! 개학하고 열흘이나 학교를 안나오다가 오늘 등교해서는!”

말을 하던 가희가 아차 하는 얼굴을 짓는다. 참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화난 얼굴이 울상으로 바뀌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뭐 그야 어쩔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곤 하지만…….”

“괜찮아요. 신경쓰지 말아요.”

한규가 오히려 위로를 하고 나섰다.

“그래요, 가희씨. 울지 말아요.”

가희가 또 한번 문기를 노려본다. 다시 화난 얼굴이다.

젊은 처녀 선생 이라는게 남학생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가희는 문기가 놀리는 말에만큼은 반항하기가 힘들었다. 문기의 배경이나 문기라는 캐릭터 때문은 아니었다. 예전에 은혜를 입은 탓이다.

“아무튼,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불러.”

“응? 학교 밖에서는 가희씨라 그래도 괜찮아?”

“그것도 안돼!”

“그럼 나도 싫어.”

한규는 문기와 가희 사이의 촌극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소는 금새 사그러들었다.

형이 그렇게 된 후로는 감정이 자꾸 막힌다.

그런 점을 인식하며 한규는 고개를 털었다.

“한규야, 사는건 괜찮은거야?”

“네? 아, 그야 뭐…….”

“나는 네 담임이잖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게 말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하는데까진 해볼테니까.”

“가희누나…….”

“선생님이라니까!”

“고마워요.”

한규는 가희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희가 다시 울쩍한 표정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듯 무서운 얼굴로 변했다.

“너희 둘, 체육 안할거면 저쪽 스탠드로 가. 딴애들 경기하는데 방해되니까.”

한규와 문기는 가희의 말데로 스탠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기가 하던 대화로 돌아갔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거야? 3번가 상점거리에서는 네 소문 못들었는데.”

“응? 아 그게…….”

한규는 대답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미스테리에 쌓인 스킬이니, 엘베로사라는 이상한 소녀이야기까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현실에서 문기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게임에서까지 손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비밀.”

“응? 왜?”

“그냥. 너도 한번 혼자 키워 봐. 그래야 인맥도 생기고 할 것 아냐. 지금 몇렙이냐?”

문기는 한규의 말에 더 캐고묻지 않았다. 잘잘한것에는 원래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다. 단 하나, 사사건건 부딪혔던 그 유이라는 여자애를 제외하고는.

“나? 17레벨.”

“어? 벌써? 저번보다 빠르네.”

“아아, 많이 익숙해져서 그렇지. 게다가 3번가 상점거리가 조금씩 번창해 가면서 쓸만한 퀘스트들도 꽤 나오기 시작했고. 다들 건너편 대형마트랑 친하게 지내잖아. 그래서 그놈들과 상대되는 퀘스트들이 많이 나와서 퀘스트가 풍부해.”

한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겠구나.”

“그리고 스킬도 잘 이용하니까 좋더라. 너랑 할 때는 스킬 안만들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스킬부터 쫙 만들고 시작했거든.”

“오오, 검도로?”

“당연하지. 여검사 문블레이드니까. 아, 나 전직했다. 이제 클래스 검사야. 카르마인가 하는것도 생겨서, 칼에서 빔같은것도 나간다.”

문기의 설명을 듣던 한규가 문득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아참, 그러고보니 너 단전호흡도 배웠지?”

“응? 어. 배웠지.”

“그거 한번 게임에서 해봐. 기, 그러니까 카르마를 기 라고 생각하고, 그게 정말 있다고 이미지하면서.”

문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뭐가 되냐?”

“아무튼 한번 해 봐. 재밌는걸 보게 될거야.”

“그렇구만.”

문기가 기억해두겠다는 듯 한규의 말을 머릿속에 대뇌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규의 어깨를 툭 친다.

“너 거의 회복됐구나.”

“응? 무슨말이야.”

“형의 일 말이야.”

“아…… 하하. 다들 그러잖아. 세월이 약이라고.”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지. 게다가 한상이 형, 아직 죽은게 아니잖아. 가끔 있다더라. 뇌사자들이 갑자기 의식을 차리는 일들 말이야.”

한규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럴거야. 아니 그래야지. 그때까지는 문기야, 신세좀 질게.”

“임마, 서운하게 신세라 그러지 마.”

문기도 한규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게임속에서는 서로 만렙찍으면 다시 만나기로 하자.”

“크크, 나중에 다시 만나면 아마 놀랄 것이다.”

한규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문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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