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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 이계정복기] 2화

달천 이계정복기 표지
달천 이계정복기 표지
[데일리게임]

“세상에 이런 악질이 있나. 호의를 다 하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검을 휘둘러? 너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났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오는 역사적인 시점이라서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너 같은 악질은 혼내주지 않을 수 없구나.”

누가 촌철살인이라 했던가? 그야말로 입으로 사람을 죽인다면 당할자가 없을 만큼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순식간에 이렇게 떠들던 달천은 연속해서 열 번의 발길질을 해대는데, 날카로운 쇠로 이루어진 칼과 연약해 보이는 육질로 이루어진 발바닥이 부딪치는 순간 놀랍게도 ‘뎅강’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부러지고 말았다.

어이없는 이 일련의 사태에 기겁한 것은 플래너였다. 비록 중 검에 비해서 무거운 맛은 덜하지만 날카로움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신의 검은 드워프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는 명검이고, 그 재질을 말하자면 검의 재료 중에 그 강도가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미스릴인 것이다.

그런데 같은 미스릴 검도 아닌 단순한 발길질에 부러지고 말았으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마나까지 잔뜩 머금은 미스릴 검을.

“너의 정체는 대체 뭐냐?”

순간 플래너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종족들이 드래곤 앞에서 경배하며 엎드리게 만드는 그 기운은 바로 드래곤 피어였다. 자신이 드래곤임을 드러내는 이 기운을 맞이하게 되면 종족을 불문하고 고개 숙이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플래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드래곤 피어를 발산하며 드래곤의 수장 자리인 로드 취임식 때보다도 근엄한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짜악!

헛,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분명 누군가 볼따구니를 맞는 소리 같은데.

드래곤 피어의 영향으로 사방 나무나 꽃들까지도 누렇게 말라버리는 이 살벌한 현장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소리의 정체는?

“이……이……이…… 이노무 시키가!”

그것도 촉망받는 헤츨링 시절부터 이날까지 감히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는 자가 있을 줄은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던 플래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따귀를 맞고 얼이 빠지다 못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생애 최초로 말까지 더듬고 말았는데…….

슈우욱.

퍼퍼벅! 두두둑! 팡팡팡!

그것이 시작이었다.

라켄 대륙이 존재한 이래 있을 수도,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드래곤 구타 사건은.

플래너는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았고 또 오늘 우울한 기분 탓에 너무 피곤해서 잠깐 졸다가 꿈을 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꿈 치고 너무나도 생생한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니 고통정도가 아니라 눈이 뒤집힐 정도로 무지막지 하게 아픈 것이 결코

이 상황이 꿈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어르신이 2백 년 만에 출타를 하시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겁도 없이 어른한테 대들더니, 그것도 모자라 칼부림까지 해? 너 이놈, 오늘 정신 좀 제대로 차려봐라.”

이건 아예 무공이고 뭐도 아니었다. 씨근덕거리며 마치 미친놈 발작하는 몸짓으로 사정없이 상대를 패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그런 달천의 눈 깊숙한 곳에는 지금 이런 행위가 너무나도 즐겁다는 표정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흐흐, 그놈 예뻐 죽겠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가슴이 마구 뛰는데 모처럼 몸 풀 기회까지 주다니. 앞으로 듬뿍 귀여워해줘야지.’

이런 음흉한 달천의 속셈도 모른 채 플래너는 맞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휘두르는 막무가내식 손짓, 발짓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흑, 대체 이 황당한 놈의 정체가 뭐지? 마족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이리 강하다니, 혹시 창조신 샤벨 님의 현신이라도 되는 것일까? 아이고, 이러다 사람, 아니 드래곤 죽겠네.’

“야! 이놈아, 잠깐 스톱…… 스톱.”

마침내 플래너는 두 손을 지닌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보디랭귀지인 손 좌우로 휘두르기로 멈출 것을 요청했다. 여기서 더 패면 혹시 이 귀염둥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달천은 그 신호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뚝 멈추었다.

“흠, 그래.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냐? 자고로 옛날부터 어른한테 버릇없이 굴면 죽도록 맞아야 한다 했느니라. 험험.”

이런 뻔뻔스러운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는 플래너는 녹초 상태에서 숨을 고르자 다행히 드래곤 본질의 냉철한 이성이 돌아왔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하찮은 인간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플래너는 반 존칭을 사용하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달천에게서 돌아온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으…… 나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보기만 해도 열 받는 저 표정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정말 돌겠네.’

번뜩!

왜 이런 생각이 이제야 나는 건지, 그 타이밍에 문득 언어소통 마법이 생각난 플래너. 쯧, 어떻게 보면 이런 드래곤이 어떻게 로드 자리를 꿰찼는지 이해가 안 간다.

“당신은 누구요?”

시시각각 변하는 상대의 표정을 마치 귀여운 어린애를 바라보는 할아버지라도 되는 양 나름대로는 인자한 표정으로(실컷 패놓고 가증스럽게) 플래너를 바라보던 달천의 귀에 언어 같지는 않은데 뜻이 통하는 묘한 울림이 울렸다.

“어라? 너 소림무공 배웠냐? 어떻게 혜광심어를 쓰지?”

그렇다. 사람의 마음속으로 뜻을 전할 수 있는 무공은 그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소림의 혜광심어뿐이다. 만일 플래너가 소림의 무공을 배웠다면 이건 조금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사부의 절친한 친우가 소림의 성승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소림 승들과

의 친분이 두터웠던 까닭이다.

여기서 더 오리무중이 된 것은 플래너였다.

“쇼링? 그게 무슨 소리지요? 난 드래곤들의 수장인 플래너라 합니다. 당신도 신분과 이름을 밝히시지요.”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네. 드래곤은 무슨 소리이고,

또 그 유명한 소림사를 모른다고 잡아떼? 게다가 나도 익히지 못한 혜광심어를 사용하면서? 너 오늘 진짜 죽도록 맞아볼래?”

화들짝!

체면으로 살아온 플래너는 맞는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치고 말았다.

그리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 결과 눈앞의 이 요상한 인간은 결코 샤벨 님의 현신은 아니라는 결론을 지었다. 아무리 샤벨 님이 유희를 위해서 혹은 세상을 시찰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한다 할지라도 저렇게 모자라 보이고 얄미워 보이는 모습으로 다닐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인 달천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몸매는 그래도 봐줄 만했다. 당연한 것이 누구라도 2백 년 동안 물좋고 공기 맑은 산속에서 무공을 연마하다 보면 설사 뒹굴어 다니던 돼지였어도 날씬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고, 키야 보통만 돼도 봐줄 만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천하에 다시없는 못난 얼굴이냐 하면그렇지는 않았고 전체적으로 보통 수준은 된다 할 수 있었는데, 해괴망측하게 생긴 그놈의 눈이 말썽이었다.

웃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모양이 반달에 가까워지긴 하지만 어찌 된 것이 이놈은 화낼 때나 웃을 때나 울 때나 오만가지 인상을 쓸 때도 눈 모양이 반달로 고정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라. 누군가를 씩씩대며 패는 사람의 눈모양이 반달이라면?

맞는 것도 서러운데 하필 때리는 놈이 어딘지 모자란 놈이라는 생각이 들 게 분명하지 않겠는가. 이러니 그런 인간한테 쥐어 터지고있었던 플래너의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생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저자의 정체는 뭘까? 드래곤도, 마족도, 신도 아니면서 아무리 폴리모프한 상태라 해도 명색이 드래곤 수장인 나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고 팰 수 있다? 7천 년을 살아오면서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해왔건만, 이런 수수께끼에 봉착하다니. 으음.’

“쇼링은 그렇다 치고 당신은 어째서 드래곤의 존재도 모르는 거요? 설마 다른 세상에서라도 온 것이란 말이요?”

너무나도 진지한 플래너의 표정. 사실 쥐어 패느라 자세히 못 봐서

그렇지 가만 보니 상대는 전설 속에서나 나올 만한 미남 형 얼굴이었고, 머리색은 특이하게도 금빛인 데다가 놀랍게도 눈빛까지도 금빛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달천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너무 오랜 세월을 홀로 지내서 그렇지, 결코 그의 머리는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바보라면 어찌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혔을 것이며 천하를 도모하려 했던 파천마교를 박살낼 수 있었겠는가.

“어이. 이봐, 아이야. 여기가 대체 어디냐?”

아이라는 부름에 기가 막히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일단 궁금증에 못 이겨 대답하는 플래너.

“당신과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라켄 대륙 북동쪽에 있는 칼슨 산맥의 북쪽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오. 인간들의 나라로 경계를 그려보자면 슬리버 왕국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소. 또한, 슬리버 왕국의 영토 중에서 가장 험한 곳으로 알아주는 곳이라 할 만

하오.”

달천은 아무래도 저놈이 살짝 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명제국의 산하에서라…… 어쩌고저쩌고 해대며 이해할 수 없는 말만 지껄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때,

두두두두두.

꺄아오! 크르렁!

갑자기 지축이 울리며 괴성이 들리는 게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 소리의 근원지를 눈으로 좇던 달천은 그대로 멍해지고 말았다.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무시무시하게 달려드는 것은 무려 4미터가 넘는 덩치에 인간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온몸의 빛깔이 초록색인 괴물이 아닌가.

어이가 없기는 플래너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인지는 몰라도 괴상한 놈을 만난 것도 모자라 감히 자신의 성스러운 영역에 미친 오우거까지 난입해서 날뛰어대니, 정말 기가 막히다 못해 이젠 알 수 없는 분노까지 치솟아 올랐다.

“파이어 볼!”

치솟는 분노와 함께 그의 입에서 짧은 용언이 튀어나와 한눈에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불덩어리가 날아가더니 오우거를 덮쳤다. 순식간에 잠시 배고픔으로 살짝, 아주 살짝 돌았던 그 불쌍한 오우거는 이렇게 허무하게 생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난데없이 등장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불쌍한 오우거.

달천은 생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생물이 나타났다가 재로 화해 사라지자 잠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게 뭐였지?”

“오우거라는 몬스터입니다.”

“오우거? 이름은 그렇다 치고, 저게 어디서 나타난 거지? 난 처음보는 생물인데…….”

“정말로 오우거도 모른단 말입니까?”

플래너는 이즈음에서야 드래곤 로드답게 두뇌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일단 그는 다음과 같이 이상한 점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첫째, 드래곤인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허공에서 알몸뚱이로 떨어졌다는 것.

둘째, 머리와 눈동자색이 이 대륙에서는 폴리모프한 블랙 드래곤 말고는 나타날 수 없는 검은색이라는 것, 그리고 머리 스타일이 미친년 산발한 것처럼 치렁치렁하다는 것.

셋째, 오우거는 물론이요, 드래곤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태도. 이상의 사실들로 유추해볼 때 저 괴상한 인간이 하는 말들은 거짓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게 된 플래너였다.

“사태 파악을 위해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직은 정확한 정체가 파악이 안 되는지라 플래너는 제법 정중히말을 건넸다. 달천도 이 시점에서는 궁금한 일이 너무 많았기에 고분고분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뭐든 물어봐.”

“우선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말해주십시오.”

“내 이름은 달천. 중원의 아름다운 무이산에서 무공수련을 막 마치고…….”

본능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달천은 이곳에 나타나기 이전 상황을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음, 달튼 씨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달튼 씨는 다른 차원에서온 것 같군요.”

“이 인간이 귀가 잘못됐나. 달튼이 아니고 달천이야, 내 이름은.”

“이름이야 어쨌든 그렇다면 달튼 씨는 결국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부르르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플래너의 몸과 옷자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상대의 능력이 너무 괴이해서 혹시 샤벨 님의 현신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어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본체로 바꾸지도 않고 참고 있었는데 결국 알고 보니 다른 차원에서 얼렁뚱땅 날아온 인간이었다니.

평소 하찮게 여기던 인간한테 맞았다는 그 사실 하나로 플래너의 이성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으드득, 결국 너는 인간이란 말이지?”

갑자기 돌변하는 플래너의 모습을 보며 달천은 어이가 없었다.

“이놈이 평소에 팔색조 고기만 처먹나 왜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태도가 자꾸 바뀌는 것이야.”

“으흐…… 어리석은 인간아, 드래곤을 화나게 하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당해봐라. 물론 당하는 그 순간이 네 마지막 날이 될 테지만 말이야.”

드디어 분노가 폭발한 플래너는 폴리모프를 풀어버렸고, 그러자 드래곤들 중에서도 출중하다고 평가받던 그의 눈부신 황금빛 본체가 드러났다.

구름이 땅을 덮듯 거대한 양 날개를 펴고 서서히 떠오르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분노에 젖은 황금빛 눈알은 얼마나 번들거리는지 으스스한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켁! 저…… 저…… 저것이 무엇인고?”

아무리 천하의 달천이라 해도 이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도 코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인간이 갑자기 저렇게 거대한 존재로 변신했으니 더더욱 놀랄 수밖에…….

“사람인 줄 알았더니 괴물도 보통 괴물이 아닐세그려. 저게 혹시 전설 속에서나 등장한다던 용이 아닐까?”

놀람도 잠시, 달천은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생물을 보며 자신이 이제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용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의 간은 붓다 못해 단단히 고장 난 게 틀림없었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위대한 존재인 나를 화나게 한 너의 무지를 원망하여라. 잘 가거라. 파이어 볼!”

외침과 동시에 조금 전 오우거를 재로 만들었던 파이어 볼이 다시 재현되었다. 폴리모프 상태에서 만들어졌던 파이어 볼은 지금 나타난 파이어 볼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라 느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불덩어리가 달천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한 파이어 볼은 인근 주변을 완전히 집어 삼키고 말았다.

“으하하하, 가련한 놈. 그러기에 감히 드래곤을 희롱해?”

아아, 불쌍한 달천. 어쩌자고 통구이로 생을 마감하는 길을 선택했는가.

통쾌하게 웃던 플래너는 한편으로는 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원을 달리해 이동해온 존재이니 만큼 연구할 가치가 무궁무진했는데 너무 쉽게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후회도 생겼다.

“아깝긴 하지만 종족의 위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지상을 바라보던 플래너는 자신의 레어 근처인 이 숲이 번져가는 불로 다 타버릴 것을 염려해서인지 다시 한번 용언을 중얼거렸다.

“아이스 피싱!”

그와 동시에 사나운 기세로 숲을 향해 달려가던 화마가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만족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플래너는 잠시 후 헛바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파이어 볼이 정통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무려 5미터 이상 파였던 중앙지점에 시체로 널브러져 있어야 마땅한 달천이 부스스 일어나는 게 아닌가!

홀로선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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