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유일하게 낙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감히 자기 앞에서 고개를 쳐들 자가 없다는 거였는데 그 낙마저 사라질 위기가 벌써 닥친 것이다.
“좋아. 자네 말이 맞다 치자고. 자네 종족이 원래 그렇게 오래 산다면 자넨 이제 장년기를 막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 셈이겠네.”
“그렇다고 해야지.”
“자네와 나는 종족이 다르니 예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될테고, 어디 비교를 해보자고. 자네는 이제 노년기에 막 접어들었고 나는 인간들 중에 역사 이래 최고 오래 산 사람일 것 같은데 누가 더 어른이겠는가?”
캬아 달천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자신의 머리가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미칠 듯이 좋아하고 있었다.
반대로 플래너는 당혹스러웠다. 가만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드래곤은 2천 살이 될 때까지 헤츨링으로 불리는데 인간으로 비교하자면 어린아이 아니겠는가. 그의 말대로 그가 220살이 맞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플래너는 드래곤답게 진실을 보는 눈이 있어서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속이 막히듯 답답해져왔다.
용케 이를 눈치 챈 달천이 못 이기는 척 합의점을 내놓았는데…….
“어차피 자네와 나는 종족도 다른 데다가 자네도 그다지 꽉 막혀 보이지는 않으니 그냥 앞으로 친구로 지내세나.”
달천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플래너는 눈앞의 이 인간이 분명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압도하는 실력을 갖추었고 보기보다 미련하지도 않으며, 어느 인간보다 술맛을 잘 이해한다는 점에서 친구라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좋아. 기왕 지금까지 서로 말을 놓았고, 자네는 내가 인정 할 만한 부분도 많이 있으니 그렇게 하기로 하세.”
친구…….
달천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 그 정도를 벗어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자신에게 언제 친구라는 존재가 있었는가. 철이 들 무렵부터 주위엔 오로지 사부 한 사람밖에 없었고, 인적 없는 깊은 산속에서 무예를 익히다가 잠시 세상에 나와서는 인간 같지도 않은 파천마교를 처단하기 위해서 날뛴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엔 다시 산속에서 홀로 수련을 했고…… 그에게 친구라는 단어는 너무나 생소하면서도 가슴 벅찬 단어였던 것이다.
플래너는 그런 달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수십 가지 표정의 변화를 보이며 만감에 사로잡혀 있는 달천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자신도 동화되어버려 그와의 만남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이것 보게, 친구. 우리 중원에선 말이야, 친구라 하면 필요할 때는 서로 목숨도 내놓는 관계이지. 물론 그뿐 아니라 친구의 말이라면 설사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해도 믿어준다네.”
남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다? 드래곤으로 태어나 철저히 자기 위주로 생활해온 플래너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는데 그 말의 여운에는 알 수 없는 감동이 숨어 있었다.
“난 그런 것은 잘 모르겠지만, 자네는 내가 인정한 친구인 만큼 자넬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은 약속하지.”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이 사실일까? 바로 어제만 해도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두 사람, 아니 한 드래곤과 한 인간은 은연중 자각하지 못한 사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대륙에 인간을 탄생시키고 온갖 생명체를 창조한 샤벨 신은 중간계의 지배자로 드래곤을 지목하고는 그에 합당한 능력을 주었다.
냉철한 이성과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지혜. 그리고 누구라도 응징할 수 있는 힘.
다른 종족에게 오로지 경외의 대상이었던 드래곤.
그러한 드래곤이, 아니 그중에서도 로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탁월한 드래곤이 한 개체로서 자신 외의 종족에게 자신과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제2장 또 다른 수련이 과연 필요할까?
1
소곤소곤.
분명 사내들로 보이는 둘이 마치 연애라도 하는 듯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무공을 익혔는데 완성을 해야지만 장가를 갈 수 있었다는 말인가?”
플래너는 달천의 이야기 중에서 해괴한 부분을 듣고 이렇게 물었다. 무공이라는 것과 장가가는 것이 어째서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으휴, 그래. 그것 때문에 이 나이 먹도록 무공만 익혔지 뭔가. 망할 놈의 영감탱이 사부. 이 순진한 나를 이리 골탕 먹이다니.”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 둘이 대화하는 모습이 어느 정도 친밀해 보였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달천의 과거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넨 그 나이까지 장가 한 번 못 가봤다는 거네?”
아픈 곳을 정곡으로 찔린 달천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이 사람이 지금, 누구 염장 지르는겨? 그래, 나 아직 장가도 못 가봤다, 어쩔래!”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뭘 그리 화를 내는가. 그리고 내가 이런점을 굳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네의 처지가 딱해서 중매라도 서볼까 해서 하는 건데. 으흠.”
번쩍!
귀가 쫑긋해진 달천은 무공의 달인답게 순식간에 플래너의 코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아니, 그게 정말인가? 설마 내가 이런 처지라고 놀리는 건 아니겠지?”
얼마나 장가가 가보고 싶었으면 저런 경망된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한데 좀 문제가 있네.”
“그럼 그렇지, 자네같이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드래곤이 순순히 나 잘되는 일을 할 리가 없지. 쳇!”
“어허, 이 사람이 오크 머리통을 이식했나 왜 이리 단순해? 말이라는 것은 끝까지 들어봐야 내용을 알 것 아닌가, 이 인간아. 확 성질나면 신경 쓰지 말까 보다.”
아마 평소의 플래너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쯤에서 게거품을 물었을지도 모른다. 근엄함의 상징이며 사려 깊고 지적인 드래곤으로 소문난 플래너의 말투가 어찌 이리 천박해질 수가 있을까.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달천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앞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미안하이. 내가 혼자만 살다 보니 대화가 서툴러서 그러는 것이니 자네가 이해해주게.”
무엇인가 켕기는 기분이 들었던지라 슬며시 꼬리를 내리는 달천이었다.
“자네의 문제는 대화가 서툴다는 것, 바로 그것이네. 우선 지금 자네와 나는 나의 위대한 마법의 힘으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이 되고 있지만 라켄 대륙의 다른 인간들과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게.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다면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허억! 듣고 보니 그렇군. 아까 자네가 설명해준 대로라면 자네와 내가 지금 대화가 가능한 것은 소통마법 때문이라 했지? 그럼 말이야, 그걸 어떻게 변형시켜서 다른 사람하고도 대화할 수 있게는 못 하겠는가?”
플래너는 아무리 다른 차원에서 왔다지만 너무나 아는 게 없는 달천이 답답하기만 했다.
어떤 방법을 써야 그의 의사소통이 편해질까 하는 생각으로 골몰해 있던 바로 그 순간! 2천 년 전인가, 시간 죽이기로 연구했던 비법이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아닌가.
“어험, 자네는 이 세계에 와서 날 만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게나. 만약 다른 곳으로 떨어져서 날 만나지 못했으면 자네의 앞길이 캄캄했을 거야.”
갑자기 목에 힘을 팍 주며 큰소리를 땅땅 치는 플래너의 모습에 달천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때가 때인 지라 꾹꾹 눌러 참았다.
“자네 혹시 좋은 수라도 생각났는가?”
“나만 믿게나. 일단 의사소통 문제는 내가 만든 걸작으로 해결이 될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려보게.”
말을 마치며 일어난 플래너는 미로 같은 자신의 레어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는 마치 바가지 몇 개를 겹쳐 놓은 듯한 해괴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그게 뭔가?”
“이것이야말로 자네를 간단히 언어의 장벽으로부터 탈출시킬 나만의 걸작이지. 으하하하!”
생긴 것으로 봐서는 전혀 미덥지 않았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있은 것도 아니었기에 달천은 플래너가 그것을 머리에 씌울 때도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러자 플래너는 주문 비슷한 것을 중얼거리며 요상한 자세를 취했다.
“전능하신 샤벨 님이시어, 당신의 자랑스러운 창조물이 원하나이다. 불쌍한 영혼에게 살아 있는 지식을 전수하게 도와주시옵소서. Ϛϊνύ ζϓζγϣ Ϛϣϑφε!”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동안 꿈결같이 몽롱한 기분으로 헤매던 달천은 갑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커다란 음성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머리야.”
“기분이 어떤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더러운 기분이야.”
“됐네. 다행히 성공일세. 축하하네, 친구.”
플래너의 말에 달천이 어리둥절해하자 플래너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방금 자네에게 의사소통 마법을 전혀 쓰지 않고 육성으로 말한 것이네. 그런데도 자네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곳의 공용언어로 대답하고 있지 않는가. 다른 지식까지 제대로 전수되었는지는 시간이 흐르며 지켜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의사소통은 이제 편하지 않는가. 역시 나는 너무 위대해. 어허허허!”
“그래, 너 잘났다. 그건 그렇고, 그럼 이제는 참한 신붓감을 소개해줄 텐가?”
속으로는 기분이 너무 좋았지만 잘난 척에 푹 빠진 플래너의 모습에 심술이 난 달천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필요 없이 자신의 지상 최대 과제는 장가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 사람이 돼지가 소리 지르는데 오크 뺨 때릴 사람일세그려.”
“그게 무슨 뜻인가?”
“너무 앞서서 성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네.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인데 미리 다 끝난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지. 의사소통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자네는 그 외에도 문제점이 너무 많다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다른 문제점이라니. 자네가 보다시피 난 신체는 너무 건강해서 탈이고 나이는 좀 들었지만 아직도 얼마든지 더 살 수 있을 만큼 팔팔하다네.”
플래너가 계속 딴죽을 걸자 달천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 지금까지 아가씨와 대화해본 적 있는가?”
어차피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설득이 될 리 없기에 플래너는 차분히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했다.
“음, 당연히 있…… 아니, 없지…… 킁.”
“그럼 아가씨가 어떤 대화를 좋아하는지 알기나 하는가?”
“물론…… 모르지.”
“그것 보게. 아가씨랑 어떤 대화를 나눌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꾀일 건가? 설마 힘으로 들쳐 업고 냅다 뛰기라도 할 텐가?”
“에이, 그게 무슨 소리…… 난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이 아닐세.”
‘드디어 걸려들었군.’
회심의 미소를 짓는 플래너의 표정엔 은근히 승자의 기쁨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그렇다면 자네의 그 늙은이 같은 말투나 촐랑거리는 태도 그리고 매너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행동들로 아가씨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플래너가 꼬집어 말하자 그동안 무공만 익히면 다른 조건들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착각했던 달천은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자신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아가씨를 꾀일 것인가. 중원에 있을 때 그는 무공만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알아서 모일 줄 알았다. 그럼 그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여자를 선택만 하면 만사 끝일 줄 알았건만,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 이보게. 자네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겠지?”
“음,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네만…….”
“그게 무엇인가. 뭐든지, 내 목숨을 포기하라는 것 말고는 다할 테니 제발 방법 좀 알려주게.”
이 모습이 과연 얄미울 정도로 당당하게 드래곤과 맞서 싸우던 인간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달천의 지금 태도는 비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난을 하기에는 그의 긴 인생행로가 너무 답답했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내가 자네 몸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탐색해보니 놀랍게도 자네는 인간의 육체를 완전히 초월해 있었네. 나도 잘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과 자네가 지니고 있던 엄청난 마나가 융화가 되어서 그렇게 된 듯하네. 쉽게 설명하자면 자네의 수명은 놀랍게도 천 년 이상은 족히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이네. 즉 자네는 시간이 많다는 말이지.”
“지금 이 문제와 시간이 많다는 게 무슨 상관인가?”
달천의 기분은 지금 오래 산다고 좋아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평소 그의 지론대로라면 사람은 굵고 짧게 살아야 맞는 것인데 자신은 2백 년이 넘도록 무공 하나 빼놓고는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건만 이제
그야말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제부터 자네는 자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와 함께 지금까지 자네가 해왔던 수련과는 또 다른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것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수련을…….”
2
오늘따라 날씨가 더욱 따스하게 느껴졌다. 사방에 피어오른 각양각색의 꽃들이 마치 자신이 가는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반갑게 인사하는 듯해서 아이미는 봄바람에 바람난 처녀처럼 마구 가슴이 설렘을느꼈다.
“어머, 너무 예쁘다.”
쪼로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람쥐처럼 생긴 예쁜 짐승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 대하듯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다가와 품에 폴싹 안겼다.
“너도 심심해서 나왔니?”
입술 끝에서부터 번져 나가는 그녀의 미소는 절로 감탄사가 나올만큼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한마디로 ‘사랑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머니께선 너무 오래 밖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하시지만 자연이 나를 부르는데 어떻게 집 안에만 있을 수 있겠니.”
천진난만하게 이야기를 하던 그녀의 눈에 얼핏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어여쁜 레이디시여.”
훤칠한 키에 편안해 보이는 여행자 복장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아이미는 살짝 웃으며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어디 여행 중이신가 보네요.”
보통은 낯선 사람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면 놀라거나 잔뜩 경계심으로 웅크려들기 마련인데 이 소녀는 왠지 남달랐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모든 사물을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였다. 아무튼 그녀만의 특별함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저, 실례하지만 혹시 이 근처에 사십니까?”
“네, 저희 집은 여기에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어요.”
“아, 네. 실은 오랫동안 산을 헤매고 다녔더니 너무 지쳐서 그러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집에서 하루 쉬었다 갈 순 없을 까요? 창고 같은 곳이라도 괜찮습니다만.”
“아, 그건 죄송하지만 어머니께 여쭤보아야 할 것 같네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여쭤보고 와서 말씀해드릴게요.”
“그러시면 너무 폐가 안 될까 모르겠군요.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여행자는 입가에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뵐게요.”
사뿐사뿐.
말을 마치자마자 사슴 한 마리가 뛰어가는 듯 소녀는 사뿐히 뛰어갔다. 품에는 아까의 그 귀여운 짐승을 꼭 안은 채.
그런데 그녀가 시야에서 멀어지고 나자마자,
“우와! 드디어 찾았다, 내 이상형. 워우.”
홀로선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