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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 이계정복기] 11화

달천 이계정복기 표지
달천 이계정복기 표지
[데일리게임]


사이먼 후작이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바로 그때,

“아이미 양, 저 번쩍번쩍하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기사라 불리는 작자들이오?”

“네, 맞아요. 복장으로 보아하니 한쪽은 왕실 소속기사단 같아요.”

긴장감이 넘치는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 이상한 것은 거리도 상당히 있어 보이고 말소리도 작은 듯한데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저기 콧수염 아저씨는 어째 내가 그동안 상상하던 기사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가 않네. 얍삽하게 생겨도 기사 작위는 주나 보네요?”

“달튼 씨, 아직도 사람 외모만 보고 판단하시면 어떻게 해요? 얍삽하게 생겨도 실력은 제법 있나 보죠.”

콧수염…… 아저씨…… 야압삽…….

저 수식어가 설마 자기를 지칭하는 말?

사이먼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미친 남녀가 지나 가다가 발작을 했는가? 설마 아무리 미쳤어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사이먼이었다.

4

달천과 아이미가 이곳에 나타나게 된 것은 순전히 아이미 때문이었다. 칼슨 산맥에서 카운티 영지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처음에는 달천이 기왕이면 마을들을 거쳐서 가자고 해서 둘은 각 마을들을 구경삼아 지나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달천이 마을을 지날 때마다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하는 게 아닌가. 이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그나마 처녀들한테만 치근거리면 나을 텐데 그는 어찌 된 게 유부녀한테까지 찝쩍거렸으니.

처음에는 아이미도 사람 사는 마을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달천의 일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천이 각종 사고를 치는 데다가 사고 뒤치다꺼리까지 하려다 보니 착하디착한 아이미도 결국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달튼 씨, 이제부터는 외곽도로를 따라서 가요.”

“넷? 외곽도로라니요. 어차피 여행하는 것인데 마을 구경을 하면서 다니는 게 낫겠다고 아이미 양도 동의했잖아요.”

“시끄러워욧. 내일부턴 외곽도로로 갈 거니 잔말 말고 그렇게 알아요.”

아…… 아름답고 정숙한 여성의 표본이었던 아이미 양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누군가가 그랬다. 검은색과 같이 있으면 흰색만 검은 물이 든다고. 몇날 며칠을 검다 못해 새까만 달천과 다니다 보니 어느새 안 좋은 면을 닮게 된 듯했다.

아무튼 이렇게 되서 둘은 한적하지만 길은 뻥 뚫린, 슬리버 왕국이

오랜 세월 닦아놓은 자부심 어린 외곽도로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잠시 어리벙벙하게 있던 사이먼은 화가 슬슬 치밀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같은데 조용히 지나가거라. 입을 잘못 놀리면 화가 이르는 법.”

제 딴에는 기사답게 화를 억누르며 자비라도 베푸는 듯이 말했다.

“음. 아이미 양, 가까이서 보니 어째 제비 같다는 느낌도 드는군요. 요즘 제비들 유행이 콧수염이라던데.”

“하긴, 저희 어머니께서도 세상에 나가서 제일 조심해야 할 인상이 콧수염 기른 얼굴이라고는 하더라고요.”

죽이 척척 맞았다. 그리고 이때쯤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생각이 일치했다.

‘제대로 미친 한 쌍이네. 죽을 곳이 그리 없었을까. 에구, 불쌍해라. 쯔쯔.’

심지어는 자신들의 처지도 그리 좋지 않은 왕자 일행까지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봐요, 두 분. 어서 도망가세요. 보아하니 약간 병이 있으신 듯 한데 저쪽 분은 제가 어떻게 설득해볼 테니 빨리 가세요.”

1왕자로 불리던 소년이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라, 고놈 참 귀엽게 생겼네. 동생 삼으면 딱이겠다. 너 이름이 뭐지? 이참에 내 동생 할래?”

기껏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려는 왕자를 보고 동생 하잔다.

“이런 무엄한 놈 같으니.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죽고 싶은 게냐?”

이스턴은 사이먼을 향했던 검을 달천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이스턴 경, 참으세요. 정상인도 아닌 것 같은데.”

“왕자님, 그래도 너무 무례합니다. 이런 놈은 혼이 좀 나야 합니다.”

“정신병 때문에 실수한 걸로 사람을 해치면 내가 뭐가 되나요? 나한테는 다 소중한 왕국민입니다. 참으세요. 두 분은 어서 도망가시라니까요.”

안타까운 눈초리로 둘을 걱정해주는 왕자였다. 하지만,

“흐흐, 이미 늦었다. 이 쥐새끼같이 생긴 연놈들이 감히 날 희롱해? 내 거룩한 콧수염을 보고 제비라 했겠다?”

실실 쪼개며 반달눈으로 웃고 있는 달천을 보고 사이먼은 이미 이성을 포기했다.

“아이미 양, 저 늙다리는 또 왜 저러지요? 여기에 콧수염이 자기 하나인 줄 아나 보네.”

“그러게요. 제가 보기에 최소한 네댓은 있는 것 같은데요?”

“맞다, 저 늙다리가 자기가 정말로 제비이다 보니 찔려서 저러는 건가봐.”

좌중은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잊고 일제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크허헙…… 크크큭.”

“으으으! 이런 쳐 죽일 연놈들이!”

얼굴이 새빨개진 사이먼이 급기야 칼을 꺼내 들었다.

“후작님, 고정하시옵소서. 저런 정신병자들의 피를 후작님 손에 묻힌다는 건 저희들이 참을 수 없습니다. 저희가 혼내주겠습니다.”

발작 일보 직전에 자신의 부관이 나서자 사이먼은 간신히 칼을 거 두었다.

“죽이진 말고 반병신을 만들어서 감히 내게 무례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어라.”

본래 사이먼 후작이 이렇게까지 독종은 아니었는데 이때만큼은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다들 들었는가! 어서 후작님의 명을 받들어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후작의 기사단에서 네 명의 기사가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후작, 당신이 아무리 나를 거역한다 해도 이건 너무한 처사 아니오.”

1왕자가 앞으로 나서며 달천과 아이미 앞을 가로막았다.

“후후, 동생. 걱정하지 말고 비키시게. 원래 이 형이 놈팡이 처리에는 일가견이 있거든.”

“저런 발칙한!”

“진짜 미쳐도 저 정도면 상급이네그려.”

제각기 터져 나오는 외침. 그 와중에 왕자는 달천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싱긋 웃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를 정면에서 바라보니, 미쳐 보이기는커녕 왠지 모를 힘이 느껴졌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하하, 이 형이 거짓말을 할 사람으로 보이나.”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지 오래된 달천은 이제 왕자를 완전히 자기 동생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왕자 자신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마음이 좋고 관대해도 이런 경우에 처했으면서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오히려 유쾌한 기분까지 드는 것이니 이게 무슨 조화일까.

홀로선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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